돌아온 카트카 (3)
테이블 위로 편지를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린 형제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뭣! 억울한 마법사, 네 녀석이 정말로 우리의 여동생을 만나고 온 것인가?”
“아아, 만나기만 한 게 아니다. 흐흐흐.”
“......?”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아 테이블 위에 턱을 괴고, 편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이게 바로 너희들의 동생이 보낸 편지다.”
여동생의 편지라는 소리에 그들은 야단법석을 떨었다.
“오오오!”
“네도린의 편지...!”
“그런 소중한 것을!”
형제들의 가운데에 앉아있는 테도린이 대표로 편지를 집어 들고 코에 가져다댔다.
“킁킁. 편지지에서부터 네도린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하군.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벌써 5년 전의 일이지. 그땐 아직 아이였는데, 지금쯤이면 어엿한 숙녀가 다됐겠군. 크흐흐.”
테도린은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는데, 내 평생 이 녀석이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말 그대로 아빠미소, 아니 오빠미소였다.
곧 테도린이 낭독을 시작했다.
“......‘꿈에도 그리운 오빠들에게.’ 크흐흐흣! 이거 첫 문장부터 마음에 쏙 드는군.”
“오빠들도 네가 그립단다!”
“다음 문장! 다음 문장!”
도린 형제는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잠시 멈추고는, 온갖 소감과 사족을 덧붙여가며 편지의 내용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편지를 받아 반가운 심정은 십분 이해하겠으나, 너무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모험가 길드 내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서 내가 다 부끄러웠다.
“......‘어제는 어머니가 도적의 머리를 잘라서 집에 가져오셨어.’ 역시 우리 어머니답군!”
“도린 마을 최고의 여전사지!”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크흑!”
사람의 머리를 잘라왔다는 살벌한 내용조차도, 그들에겐 그저 그리운 가족 이야기일 뿐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눈물 콧물을 쏙 빼며 요란스럽게 진행되던 낭독은, 테도린이 갑작스레 입을 다묾으로써 중지됐다.
“억울한 마법사님이... 나를... 실컷...???”
“뭔가! 왜 갑자기 낭독을 멈춘 것인가!”
“빨리 다음 문장! 다음 문장!”
─스스스
잠시 말없이 편지를 바라보던 테도린의 고개가 서서히 들려지며 나를 향했다.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
그러나 생기를 잃어 흐리멍덩한 눈동자.
“...이게? 무슨? 소리지? 억울한? 마법사?”
테도린은 전에 없던 기이한 말투로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모습에 위화감을 느낀 다른 형제들이 편지지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뭐지? 왜 그러는 것인가, 형제여?”
“편지에 무슨 이상한 내용이라도...... 헙!”
편지의 끝부분에 적혀있던 문장을 확인한 나머지 형제들은, 무슨 숨이 넘어가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곧 테도린과 똑같은 얼굴이 되어 나를 쳐다봤다.
─스스스스스스
여섯 개의 생기 없는 눈동자가 나를 주시한다.
그리고 세 개의 입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내가? 편지를? 잘못 읽은? 것인가?”
“네도린을? 실컷? 귀여워? 해주다니?”
“대체? 내 동생에게? 무슨 짓을? 한 거지?”
의문은 꼬리를 물며 새로운 의문을 낳았다.
“설마? 네놈의? 비루한? 몸뚱이로?”
“우리의? 소중하고? 가냘픈? 네도린에게?”
“그렇고? 그런 짓을? 했다는? 것?”
끝없이 이어지던 의문은 곧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론은 도린 형제의 심경에 격렬한 파도를 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꽈당!
그들은 의자를 넘어트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소리로 포효하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엑!!!!!”
“그어어억!!! 그런 짓을 하다니!!!!!”
“끄오오오옥!!! 그것도 실컷 하다니!!!!!”
이들은 이미 세 마리의 몬스터였다.
“지, 지, 진정해......!”
“진정? 내가 잘못 들었나? 진저어어엉? 네놈 같으면 진정할 수 있겠나!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여동생이... 그런... 짓을...!!!”
“미, 미친. 그, 그래도 사람을 눈에 넣으면 아프지! 일단 좀 앉아봐. 내가 자세한 사정을 설명─”
“께에에에에엑!!!!!”
나는 사정을 설명하려 했으나, 왜인지 그들을 더 발작하게 만들어버린 듯했다.
─쾅쾅쾅!
─쿵쿵쿵!
─뻑뻑뻑!
테도린은 테이블에 머리를 쾅쾅 찧어댔고, 둘째는 바닥에, 셋째는 길드 벽면에 머리를 미친 듯이 박아댔다.
지옥조차도 이 정도의 광기는 보일 수 없으리라. 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도린 형제의 반응에 서둘러서 이실직고했다.
“아, 아니... 그, 그만해! 사실 자, 장난이었어!”
─휙!
저마다 어딘가에 머리를 박아대고 있던 형제들의 고개가 나를 향해 휙! 돌아갔다.
“......장난?”
“그, 그래! 그냥 잠깐 장난친 거였어.”
돌연 테도린이 내게 달려와 멱살을 붙잡았다.
“뭐, 뭐야. 왜, 왜 그래?”
“내 동생을 장난으로 실컷 귀여워했단 말인가!!”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너희한테 장난─”
“......이, 이건?”
멱살을 잡고 흔들던 테도린이, 내 목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네도린의... 목걸이....”
네도린이 도린 형제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던 목걸이였다. 편의를 위해 그동안 내가 목에 걸고 있었다.
“아, 맞다. 이거 네도린이 너희에게─”
“내가 만들어준 목걸이로군....”
그는 내 말 따위는 가볍게 무시하며 처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네도린이 어린 시절,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선물하라고 만들어준 것인데... 억울한 마법사 네놈이 차고 있다니... 둘의 사이는... 장난이 아니었나보군....”
“뭐, 뭐야. 이상한 사연 갖다 붙이지마. 난 그런 사연 몰라! 그냥 너희에게 전달해주려고 차고 있던 것뿐이야!”
나는 기겁하며 목걸이를 풀려고 했지만, 테도린이 제지했다.
“아니. 너는 그것을 풀어서는 안 된다.”
“......?”
“그 목걸이는 곧 네도린의 마음. 억울한 마법사, 네놈은 이제 그것을 영원토록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것이다.”
테도린이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형제들도 가까이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툭- 하고 올렸다.
“......우리 형제는 네놈을 인정하도록 하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A급 모험가니... 네도린을 굶길 일은 없겠지.”
“무, 무슨 미친 소리야? 뭘 인정해? 나는 그냥 심부름꾼일 뿐이라고! 빨리 이 목걸이 가져가!”
이상하게 코가 꿰이는 것 같았기에, 나는 재차 목걸이를 풀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삼형제가 모두 달려들어 내 팔을 붙잡았다.
“이익...! 벌써부터 네도린을 버릴 생각인가!”
“아니, 그런 거 아니라고! 이거 놔!”
“웃기지마라! 이 파렴치한 마법사!”
“제, 젠장. 편지지 가져와! 너희들이 동생한테 직접 물어보면 될 거 아니야? 편지 보내는데 드는 비용은 내가 다 댈 테니, 당장 작성해!”
이 광란의 소동은, 도린 형제가 네도린에게 진상을 요구하는 편지를 작성하는 것으로 일단은 마무리됐다.
***
다음날 아침.
나는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후... 피곤하군.”
자고 일어났음에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숙소가 몹시 불편했던 까닭이다.
능력이 사용가능한 상태라서, 케른헴 성벽 근처에 있는 외지고 허름한 여관 하나를 통째로 빌려서 자야했다.
어쨌든 스트레칭을 하며 걷다보니 곧 모험가 길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길드와 가까워질수록 괜히 내 발걸음도 느려졌다.
‘아오. 쪽팔려....’
어제 도린 형제가 길드에서 벌였던 난동은, 상당수의 모험가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길드 여직원이 나를 바라보던 그 충격에 휩싸인 눈빛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녀에게는 서둘러 해명했지만, 모든 모험가에게 그러지는 못했다.
‘...도린 형제가 그 정도로 미쳐 날뛸 줄이야.’
내가 장난을 친 건 맞지만, 솔직히 제대로 놀려주지도 못했다. 준비한 멘트가 몇 개 있었는데, 도린 형제가 자해까지 하는 바람에 써먹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계속 길드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으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억울한 마법사!”
“오, 너희 벌써 와 있었냐.”
들어가자마자, 도린 형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게 다가왔다.
“목걸이는 잘 하고 왔겠지?”
“아오... 그래. 자, 봐라. 됐냐.”
나는 옷 안쪽에 들어가 있는 목걸이를 꺼내보였다.
어제 내가 몇 번이고 해명을 했지만, 이 녀석들은 끝까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네도린에게서 진실이 담긴 회신이 올 때까지는 내가 목걸이를 차고 있기로 합의를 봤다.
장난 한번 잘못 쳤다가, 진짜 한참을 차고 다니게 생겼다. 편지가 왕복하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니까.
“크흐흐. 아주 잘 어울리는군. 그것을 네도린이라고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해라!”
“미, 미친놈.”
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튼... 다들 체스터 백작령 남부로 갈 준비는 됐지?”
어쨌든 어제 그 난리를 수습한 뒤, 도린 형제에게 수배범에 관한 얘기를 했었다. 사례를 할 테니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형제들은 흔쾌히 수락했다.
“물론이다. 당장 출발하는 게 좋겠군.”
“덩치 좋은 검사를 노리는 마법사라니!”
“그런 건방진 마법사는 가만 놔둘 수 없다!”
의욕이 넘치는 것은 좋지만, 솔직히 이 녀석들이 직접 그 수배범을 상대하기에는 무리다.
“아니, 너희는 그냥 미끼 역할만 해주면 된다니까. 나랑 같이 돌아다니면서, 좀 만만한 모습을 보여주란 말이야. 놈한테 사냥감처럼 보이게끔.”
그곳에서 B급 모험가 수준의 실력을 보이면서 몬스터들을 잡다보면, 수배범이 알아서 튀어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우리 형제의 용맹함을 조금 감출 필요가 있겠군.”
“용맹함...? 인사성을 잘못 말한 건가? 뭐, 아무튼 출발하자고.”
우리는 모험가 길드를 나서서, 마차를 타고 체스터 백작령의 남쪽으로 향했다.
─달그락달그락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테도린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예전에 고블린 토벌을 하러 가던 때가 생각나는군? 그때도 이 길로 갔었지.”
“아, 듣고 보니 그러네. 그 마을도 백작령 남쪽 경계 근처에 있었으니까.”
내가 첫 마법서를 구매할 돈을 벌었던 의뢰다. 회중시계 덕분에 짭짤한 수입을 올렸었다.
“크흐흐. 그때만 해도 C급 애송이였던 억울한 마법사가 이제는 A급 모험가라니. 출세가 빠르군.”
“그리고 A급 용병이기도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며 도튼에서 발급받은 용병패를 꺼내서 보여줬다.
“아, 아니! 네 녀석이 어떻게 그걸 얻었지? 도튼의 용병들은 수준도 높고 입단테스트도 까다롭단 말이다!”
“오, 너도 알고 있네?”
고향과 가까워서 그런지 테도린도 그 이상한 입단 테스트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뭔 테스트랍시고 갑자기 도시 밖으로 끌고나가더니 싸움을 시키더라고.”
“그, 그래서 도튼의 A급 용병을 이겼다는 말인가?”
“아아, 그렇다. 변방 출신의 모험가라고 무시하던 녀석들에게 A급을 쓰러트림으로써 본때를 보여줬지.”
내 이야기를 들은 테도린은 한동안 부럽다는 듯 나를 바라보다가, 돌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나의 매제답군.”
“미, 미친놈아 아니라고.”
─도착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실없는 소리를 하다 보니 곧 백작령 남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마차에서 내려 몸을 풀며 말했다.
“흐흐흐. 그럼 수배범을 잡으러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