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56화 (56/200)

돌아온 카트카 (2)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테드를 바라봤다.

“놈이 육체 강화 마법을 사용한다는 게 확실한 겁니까? 그냥 주먹 좀 쓰는 놈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나처럼 말이다.

나도 B급 정도는 주먹으로 이길만하다.

나는 조금 특이한 경우긴 하지만, 마법사라고 전부 약골인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당연히 육체단련에 힘쓰는 사람이 있고, 3대 500을 칠법한 근육쟁이가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지고 있다면, 마법사라 할지라도 충분히 사람을 때려죽일 수 있다.

“확실해.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타겟이 살인을 저지를 때 몸에서 은은한 빛이 났다더군. 그건 마법에 의해 강화됐다는 걸 의미하지.”

테드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아, 마법을 사용 중일 땐 티가 나는군요. 그럼 놈은 강화 마법을 썼을 때 어느 정도로 강해집니까?”

“글쎄. 그건 사람에 따라 다르니 정확히 어떻다고 말해줄 수가 없겠군. 어쨌든 피해자들의 머리통은 일격에 터져나갔다는 것만 알아둬.”

“오... 상당하네요.”

최소한 일격에 사람의 머리통을 터트리는 수준이다라...

그렇다면 육체적 능력은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봐야 했다. 기존에 그래왔던 것처럼 마법과 검을 병행해서 싸우기보다는, 마법만 이용해서 싸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클로이가 끼어들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엘은 기사랑도 싸워봤잖아? 육체 강화 마법을 쓴다 해도, 기사가 오러로 강화한 육체보다는 약하니까.”

“네? 아, 네.”

그렇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수배범이 강화 마법을 주로 쓴다는 걸 보면, 공격 마법은 썩 대단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 마법을 잘 다룬다면 뭐 하러 고생스럽게 몸으로 싸우겠는가?

내 경험상 수배범은 찾는 게 고달플 뿐이지, 찾기만 하면 처치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만, 얼마나 강한지는 현상금 액수를 보면 대충 견적이 나온다.

“현상금은 얼마죠?”

“...8골드다.”

“예? 그렇게나 높다고요?”

나는 의외의 액수에 당황했다.

윈드 블레이드를 쓰던 B급 용병이 1.5골드, 랜드 라이즈를 쓰던 정신병자 마법사가 3골드였다. 그런데 이번엔 8골드짜리라니.

“그렇게 당황할 거 없다. 원래 체스터 백작가에서 타겟에게 건 현상금은 5골드다. 거기에 모험가 길드에서 추가로 3골드를 얹은 거지.”

“아, 그렇군요.”

5골드라면 그렇게 강하진 않을 듯했다. 나도 마지막으로 수배범을 잡았을 때보다 훨씬 강해진 상태였으니까.

“근데 모험가 길드에서는 왜 현상금을...? 모험가가 많이 당했나 보죠?”

“그런 것도 있지만... 이번 타겟은 도시 안에 있는 게 아니야. 백작령 남부에서 활동하고 있지. 자네도 알겠지만 그쪽엔 몬스터가 많고.”

“아.”

이번 수배범이 모험가 길드의 돈벌이에 방해가 된다는 소리였다.

백작령 남부라면 내가 예전에 펠릭스와 함께 몬스터들을 토벌하러 다녔던 곳 부근이다. 고블린 같은 허접한 몬스터부터 만티코어처럼 강한 몬스터까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모험가들이 의뢰를 수행하러 즐겨 찾던 그런 곳에, 사람의 머리통을 터트려대는 살인마가 설쳐대고 있다. 그것도 B급은 간단히 처치할만한 수준의.

그럼 당연히 B급 이하의 모험가들은 그쪽으로 가는 의뢰를 회피할 테고, 그건 곧 길드의 손해로 이어진다. 그래서 현상금을 얹은 것이었다.

“수배범의 초상화는 있습니까?”

“있지.”

─스윽

테드가 테이블 위로 초상화를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서 살폈다.

“음...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다르게 생겼네요.”

평범한 마법사의 모습.

아니, 마법사 평균보다 비실비실해 보였다.

“실제로도 굉장히 마른 체형이라는군. 그래서인지 덩치가 좋은 비마법사를 주로 노린다고 한다. 마치 자신의 육체 능력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말이야.”

“그렇군요. 참고하겠습니다.”

덩치가 좋은 검사 같은 걸 주로 노린다는 거군.

내 덩치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검사처럼 보이기는 한다.

“시간은 오래 걸려도 상관없으니 잘 해보게.”

“그래, 엘. 조심히 다녀와.”

“알겠습니다.”

나는 테드에게 마나 속박 고리와 몇 가지의 정보를 더 얻은 뒤에 ‘오늘의 기억’을 나섰다.

***

이번 일은 상당히 구미가 당겼다.

일단 수배범이 내 동료와도 같은 모험가들을 죽인 놈이라는 점에서 의욕이 지펴졌다.

그리고 시간제한이 없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게 편했다. 물론 빨리 잡을수록 좋기야 하겠지만, 제대로 준비도 못 하고 쫓기듯 찾아 나설 필요는 없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역시 이거다.

“육체 강화 마법.”

솔직히 슬슬 수배범한테서 강력한 마법을 얻기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 중급 마법을 늘려나가고 있는 단계였으니까.

클로이의 말에 의하면 육체 강화 마법은 땅 속성의 중급 마법이라고 한다. 다른 중급 마법에 비해 단발적인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대신 버프 형태로 오래 지속되는 장점이 있다.

“특이한 마법인 것도 마음에 드는데, 중급이라니. 흐흐흐.”

물론 맞아 죽어야 한다는 것이 꽤나 꺼림칙하긴 하지만.

어쨌든 수배범을 찾으러 가기에 앞서, 일단 몇 군데 들려볼 곳이 있었다. 나는 어느 건물 앞에 서서 간판을 쳐다봤다.

[그라텔라 마법 공방]

케른헴에 있는 공방과 똑같은 이름이다.

‘그라텔라’라는 마법사가 세운 체인점이라고 하는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쓸어 담을 것 같아 몹시 부러웠다.

“어서 오세요.”

안으로 들어서니 말끔하게 차려입은 직원이 공손하게 허리 숙여 맞이했다.

“강화 마법이 걸린 검을 좀 살펴보고 싶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직원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니, 눈이 부실 정도로 광택을 내뿜는 검들이 진열되어 있는 공간이 나왔다.

눈을 찡그리고 있는 나에게 직원이 물었다.

“어느 정도로 강화된 검을 원하시는지요?”

“오러를 버틸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있긴 합니다만... 오래도록 견뎌낼 수는 없습니다. 오리할콘으로 만든 검이 아닌 이상은 오러를 견디기에는 한계가 있지요.”

직원이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리할콘?”

“마나에 반응하는 귀금속이지요. 수백 년 전에 채굴된 게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저희 지점에 오리할콘제 검은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진열대에 다가가서 특정 부분을 손으로 가리켰다.

“여기부터 오른쪽으로 진열된 검들이 그나마 오러를 견딜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한번 살펴보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나는 진열대 가까이로 가서 강화 마법이 걸린 검들을 살폈다. 그리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미, 미친! 엄청 비싸네....’

가장 싼 게 10골드였고, 진열대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가격은 더 비싸졌다.

“가격이 높을수록 오러를 더 잘 견뎌냅니다.”

“그, 그렇군요....”

직원이 그런 당연한 소릴 하며 은근슬쩍 더 비싼 검을 추천했지만, 내가 지금 가진 돈으로는 가장 싼 것조차 구입하기 부담됐다.

‘...현상금을 받아야 살만하겠어.’

“흠흠.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제가 급한 일이 좀 있어서.”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급한 일이 있다는 내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어쨌든 다시 공방의 출구까지 공손하게 안내해줬다.

“안녕히 가십시오.”

나는 그의 배웅을 받으며 공방을 나서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

이번 수배범은 도시 밖에서 활동한다.

직접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광활한 장소에 숨어있는 그가 먼저 튀어나오게 하려면, 그가 좋아할 법한 미끼가 필요하다.

덩치가 좋고, 비마법사며, 멍청해 보이는 미끼.

그렇다. 바로 도린 형제다.

나는 케른헴을 향해 가고 있다.

─달그락달그락

출발 전에, 살해당한 모험가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카트카의 모험가 길드에도 잠깐 들렀었다.

거기서 얘기를 들어보니, 도린 형제를 데리고 돌아다니면 딱 좋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마침 수배범이 활동하는 위치도 백작령 남부니, 케른헴과도 가깝다.

“그 녀석들이 길드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통신 수단이 발달한 세계가 아니다 보니, 미리 약속을 잡지 않은 이상, 원하는 때에 원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참 어렵다.

특히 도린 형제처럼 주거지가 일정하지 않은 사람이면 더더욱.

아무튼 그렇게 마차를 타고 가다 보니, 곧 케른헴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도시의 북쪽 성문에서 내렸다.

“안녕하십니까.”

고향에 도착해 자동으로 예절이 장착된 나는, 성문을 지키고 있는 자경 단원에게 인사를 건네며 도시로 걸어 들어갔다.

역시 작은 도시답게 금세 모험가 길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드 앞에는 여전히 메두사에게 석화 당한 사람들의 석상이 세워져 있었다.

─끼이익

문을 열고 들어서니 입구 근처에 있던 모험가들이 나를 쳐다보고 웅성거렸다.

“오오... 엘 님이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야?”

“그래. 메두사를 처치한 장본인이지.”

‘......?’

뭐지? 내가 그렇게 유명했나?

오랜만에 돌아온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는 조금 낯선 느낌이었다. 모르는 얼굴도 제법 보였다.

같이 레이드를 갔던 사람이야 나를 알아본다 쳐도,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나 싶었다.

그렇게 잠시 벙쪄있을 때였다.

“어머어머! 이게 누구야. 엘 씨!”

접수대에 앉아있던 길드 여직원이 놀라운 몸놀림을 선보이며 접수대를 폴짝 뛰어넘어서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 덕분에 길드 안에 있던 모든 모험가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들의 수군거림으로 장내가 술렁였다.

─드디어 돌아왔나 봐.

─저 사람이 그 억울한....

─쉿! 그렇게 부르면 절대 안 된대. 테도린 씨가 자기네 형제들만 그렇게 부를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런 술렁거림을 뚫고 다가온 여직원이 내 앞에 섰다.

“오랜만이에요, 엘 씨! 또 한 달이 넘게 지나고 나서야 돌아오셨네요? 지난번에도 그러시더니.”

“아하하. 안녕하십니까. 어딜 좀 갔다 오느라.”

나는 멋쩍게 웃으며 인사했다.

“근데 길드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네요.”

“아, 엘 씨는 모르시겠구나. 메두사 레이드 이후로 타지에서 넘어오는 모험가들이 늘어났거든요. 던전에 메두사까지 나왔으니, 앞으로 또 뭐가 나올지 모른다면서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좌우를 한번 슥 훑었다. 그리고는 내게 얼굴을 가까이 대면서 귓속말을 했다.

“...엘 씨처럼 명성을 한번 얻어 보겠다는 거 같은데, 솔직히 좀 바보 같아요. 그런 게 또 쉽게 나오겠어요? 그냥 우연의 일치였지.”

“그... 귀 간지럽습니다.”

“앗.”

그녀는 황급히 얼굴을 떼어내며 귓속말을 멈췄다. 나는 가려워진 귀를 하염없이 긁어댔다.

“뭐어, 어떤 이유에서든 모험가가 늘어나는 건 환영이에요. 길드도 그만큼 커지니까요. 물론 제 급여도....”

여직원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오늘 도린 형제들은 일하러 나왔습니까?”

“네네. 아침 일찍 의뢰를 나가셨어요. 이제 슬슬 해가 저물어가니까... 곧 돌아오실 것 같은데요?”

“오....”

제법 성실하게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여기 정산 좀 해주시오!

“앗, 저는 다시 일하러 가봐야겠네요.”

“네, 수고하세요.”

접수대 앞에서 어떤 모험가파티가 직원을 부르고 있었기에, 그녀는 총총거리며 돌아갔다.

나도 도린 형제를 기다릴 겸 해서 맥주를 한잔 사 들고 빈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확실히 사람이 늘긴 늘었네.’

메두사 레이드 때 사상자가 제법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흘러들어온 모험가 때문에 오히려 레이드 이전보다도 사람이 많아진 상태였다.

아무튼 그렇게 두 잔째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익숙한 녀석들이 문을 열고 길드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어이, 형제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

“억울한!!”

“마법사!!”

─우당탕탕!

도린 형제가 몇 개의 테이블을 넘어트리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언제 돌아온 것이지?”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죽은 줄 알았더니 아쉽군!”

“아니, 너희 일단 좀 앉아라. 정신 사납다.”

나는 그들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히고, 맥주를 추가로 석 잔 주문했다.

“크흐흐.”

“흐흐흐.”

우리는 맥주가 나올 때까지 실없이 웃어댔다. 원래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겨운 법이지만, 내 웃음은 조금 다른 의미였다.

곧 주문한 맥주가 나왔고, 나는 다 같이 건배를 한 뒤에 입을 열었다.

“나 너희 고향 갔다 왔다. 도린 마을.”

“?”

“?”

“?”

도린 형제는 메두사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청색 마탑에 볼 일이 좀 있어서 도튼에 머물다 왔는데, 그때 사막을 돌아다니다가 너희 마을을 가게 됐지 뭐냐.”

“뭣! 그게 정말인가?”

“아아, 그래. 너희들이 그동안 내게 했던 고향에 대한 거짓말은 모두 들통났다.”

“우, 웃기지 마라! 믿을 수 없다! 네 녀석이 우연히 남부 지역의 지도라도 본 모양이군!”

테도린은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자 현실을 부정하며 소리쳤다.

나는 의자 등받이에 한쪽 팔을 걸어 올리고, 한껏 거만한 자세를 취하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도린.”

“!!!!!”

“그, 그게 무슨!”

“네, 네도린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지?”

내게 한 번도 말해준 적 없던 여동생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도린 형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귀엽더군. 너희의 여동생.”

나는 테이블 위로 네도린의 편지를 스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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