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55화 (55/200)

돌아온 카트카 (1)

클로이와 함께 카트카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직 훌륭한 마법들이 즐비하게 남아있는 청색 마탑이었지만, 대부분은 그림의 떡이라는 판단에서다.

중급 마법 이상을 다루는 자들, 그러니까 정식 마탑원과는 딱히 접점이랄 게 없기 때문에, 그들의 꿈에 들어가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 이하의 마법들은 제자들과 대련을 한다면 얻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클로이 없이 나 혼자서 마탑에 몇 주 이상 눌러앉아 있기도 좀 어렵다.

‘뭐, 하급 마법 정도는 마탑 말고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이대로 떠나기는 아쉬운 감이 있었기에, 클로이에게 부탁해 마탑에서 제작하는 기초 마법서를 두 권 구매했다.

─탁!

방안 침대에 걸터앉아서 읽고 있던 마법서를 덮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법 ‘프리즈 샷’을 배웠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프리즈 샷’ - 6회]

이건 내가 본 적도 많고, 직접 맞아본 적도 있는 마법이다. 작은 얼음 조각을 발사해서 피격부위를 얼어붙게 만든다. 적의 발을 묶거나 둔화시키는 용도로 사용된다.

“자, 그럼 다음 마법서를 읽어볼까.”

나는 침대에 놓여있던 다른 기초 마법서를 집어 들었다.

[워터 폴]

대상에게 물을 한바가지 퍼붓는 마법.

설명대로 진짜 별거 없는 마법이다. 공격력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물 속성의 마법사들도 이건 거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배우는데 들이는 시간이 아까우니까.

하지만 나는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 없이 한번 읽기만 하면 배워지므로 그냥 구매했다.

“배워두면 분명 써먹을 데가 있겠지.”

상대를 촉촉하게 만든 뒤에 전격 마법을 써서 위력을 증가시킨다거나, 장기간 도시 밖에 나가있을 경우 식수 조달용으로 쓴다거나.

어쨌든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구매했다.

기초 마법서 두 권에 4골드.

대도시인 도튼의 물가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직접 마탑에서 구매해서 그런 건지, 클로이가 직원용 할인을 받아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만족하고 있다.

[마법 ‘워터 폴’을 배웠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워터 폴’ - 9회]

그렇게 워터 폴까지 배우고, 잠시 침대에 누워있을 때였다.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똑똑

“엘 님!”

“아, 로지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줬다.

“무슨 일이야? 우리 로지 파텔 양께서 방까지 직접 다 찾아오시고.”

“그냥 로지라고 부르시라니까요~. 아무튼, 스승님께서 방금 돌아오셨어요.”

“오, 그래?”

카트카로 돌아가기 전에 니콜스를 한번 만나야 했다. 마안의 감정이 어디까지 진행 됐나 확인해봐야 하니까.

그래서 아까 니콜스의 연구실을 찾아갔었는데, 출타 중이라 만나보지 못했었다.

“네. 엘 님이 뵙기를 청한다고 말씀드리니, 연구실로 오라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잘됐네. 당장 가봐야겠어.”

나는 한 발짝 걸어 나와 방문을 닫았다.

“스승님을 뵙고 바로 떠나실 거예요?”

“그래야지. 클로이 씨가 기다리고 있거든.”

“아앗... 그럼 배웅은 못 해드리겠네요. 저는 이제 곧 수업에 들어가야 하거든요.”

로지가 못내 아쉽다는 듯 바닥을 발로 휘적거리며 말했다.

“됐다. 배웅은 무슨. 아까 작별인사 다 했잖아? 수업이나 잘 들어.”

“그래도 아쉽잖아요~. 다음에 또 놀러 오세요! 알았죠?”

“알았어.”

나는 로지와 두 번째 작별 인사를 마치고 니콜스의 연구실로 향했다.

***

─똑똑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간 니콜스의 연구실 안에는 클로이도 있었다.

“오, 클로이 씨도 여기 계셨군요.”

“응. 떠나기 전에 스승님이랑 인사는 해야지. 엘도 이리 와서 앉아.”

그녀가 찻잔을 홀짝이며 자신의 옆 자리를 손으로 탁탁 쳤다. 내가 그곳으로 가서 앉으니, 니콜스가 입을 열었다.

“클로이와 함께 오늘 떠난다지?”

“예.”

“이거 아쉽구먼. 자네와 술을 한 번 더 마시고 싶었는데. 껄껄.”

니콜스는 이틀 전에 있었던 술자리가 몹시 마음에 든 모양인지, 호쾌하게 웃으며 친근하게 말했다.

솔직히 그럴 만도 하다. 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리액션을 해주며 니콜스의 전쟁 이야기를 들어줬으니까. 메두사도 이 정도의 리액션은 못할 것이다.

“크...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말 술안주가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였습니다.”

“껄껄껄! 그런가? 그럼 내일 떠나는 것이 어떻겠나? 내 오늘도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지.”

“예? 이, 이야... 그, 그것도 좋긴 하지만....”

내심 난감했다.

그때야 블리자드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나도 좀 신이 나서 열심히 들었지만, 사실 남의 군대 얘기만큼 지루한 게 또 없다.

어떻게 해야 남부 학살자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거절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나를 구원해준 것은 클로이였다.

그녀 역시 기겁한 얼굴로 니콜스에게 말했다.

“저, 전쟁 얘기는 그때 충분히 하셨잖아요? 너무 많이 들어서 그날 제 꿈에도 나왔단 말이에요... 저희는 오늘 돌아갈래요.”

“이거 서운하구나. 내 오늘은 남부 전쟁 말기에 화염쟁이와 싸웠던 일을 말해주려고 했거늘....”

니콜스가 짐짓 쓸쓸한 표정을 연출했다.

“화염쟁이...? 그건 뭡니까?”

“오, 역시 자네는 관심을 가질 줄 알았지. 불 속성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를 뜻하네.”

뭔 특이한 몬스터인가 싶어서 물어봤지만, 그냥 불 마법사를 낮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청색 마탑 사람들은 불을 참 싫어하는구나 싶었다.

“그러고 보니 자네도 불 속성 마법을 특히 많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던데, 너무 그것만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걸세. 불은 물을 만나면 꺼지거든.”

“맞아, 엘. 불은 물을 만나면 꺼져.”

“그, 그렇군요.”

이건 적색 마탑의 말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내가 그동안 불 속성을 많이 써오긴 했다. 중급 마법이 플레임 오브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프로스트 오브도 있고, 콜링 썬더도 있다.

아무튼 계속 잡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슬슬 본론을 꺼냈다.

“흠흠. 그건 그렇고... 마안의 감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혹시 뭐 좀 나왔나요?”

“오, 그래. 안 그래도 자네에게 말해주려던 참이었지.”

니콜스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일단은 크게 두 가지의 능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네. 그중 한 가지는 사용법까지 포함해서 완전히 알아냈지만, 나머지 능력은 아직 사용법을 연구 중에 있네.”

“오오....”

한참을 걸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벌써 절반 이상은 감정을 해낸 상태였다.

“다만 두 가지의 능력을 모두 사용할 순 없다네. 어떤 능력을 사용할지 하나를 선택해야하지.”

그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마안은 두 개니까.

하나는 감정을 맡겼지만, 하나는 내가 갖고 있다.

“완전히 밝혀진 능력은 뭡니까?”

“마안에 피를 각인시키고 소지하면, 석화의 저주보다 낮은 등급의 저주를 막아준다네.”

부적처럼 쓰인다는 건가?

“악몽의 저주, 광기의 저주, 쇠약의 저주 등 웬만한 저주는 다 막아줄 걸세. 메두사의 석화는 신화시대부터 내려오는 고위 저주에 속하거든.”

메두사가 엄청나게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저주는 다른 모양이다.

내가 저주에 걸릴 일이 있을까 싶었지마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마안 하나는 부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살다보면 재수 없게 흑마법사를 만날 수도 있으니.

“그럼 아직 연구 중이라는 능력은요?”

“메두사가 그랬던 것처럼 석화시키는 능력이라네. 헌데 마안 내부의 흐름을 보면... 석화를 발동시킬 경우 마안이 버티지 못할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석화는 일회용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본체인 메두사에게서 힘을 공급받지 못하니, 그런 강력한 능력을 강제로 발동시키면 부서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군.”

일회용이라....

그렇다면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아직 사용법도 찾지 못했다고 하니 급할 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안만 저주방어용으로 쓰고, 나머지 하나는 연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천천히 고민해보면 될 일이다.

***

─달그락달그락

카트카로 향하는 클로이의 마차 안.

청색 마탑을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고급 마차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여정이 괴로운 모양인지, 클로이가 자신의 허리를 툭툭 두드리고 있다.

“에구... 허리아파.”

“이제 거의 도착하지 않았습니까?”

“흐아앗-! 응. 아마 몇 시간 내에 도착할 것 같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리며 기지개를 켜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이내 다시 허리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을 보면 평범한 여자 같은데 말이지....’

클로이는 딱히 겉으로 불평불만을 내뱉지는 않았지만, 몸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

나는 그녀가 이런 연약한 몸으로 어떻게 기사를 때려잡는 건지 심히 궁금했다.

“저, 클로이 씨. 지난번에 기사 출신 수배범을 잡으셨다고 했잖아요.”

“응, 그랬지.”

“대체 어떻게 잡으신 겁니까? 제가 도튼에 있을 때 기사랑 한번 싸워봤는데, 거리를 내주니 답도 없던데요.”

“보통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지.”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럼 붙었을 경우에는요?”

“그런 경우에는 조금 피곤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오러만 막아내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어.”

“예? 오러를 어떻게 막습니까?”

내가 황당해하며 묻자, 클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엘은 아직 속성 쉴드를 배우지 않았구나? 하긴... 희귀하기도 하고 엄청 비싸니까.”

“......속성 쉴드?”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오러를 막을 수 있는 쉴드라니. 군침이 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마나만으로 펼치는 쉴드와 달리, 주력 속성의 영향을 받는 쉴드야. 중급 마법이라서 마법 공방 같은 데에서는 팔지도 않아.”

“그럼 어디서 파는데요?”

“엘은 전격 속성이니까... 황색 마탑이나 전격 계열을 연구하는 학파로 찾아가서 구해야 할 걸?”

그녀가 자신의 하늘색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대답했다.

중급 마법서는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긴, 나도 해리스 공작가에서 받은 콜링 썬더를 제외한 중급 마법은 마법서가 아닌 꿈속에서 익혔다.

“흠... 그럼 당장은 구하기 힘들겠네요. 가진 돈도 별로 없고. 당분간은 기사를 만나면 그냥 튀어야겠네.”

“차라리 무기를 먼저 사는 건 어때? 엘은 검도 잘 쓰잖아.”

내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리니 클로이가 그런 말을 해왔다.

“검이요...? 오러에 그냥 썰리던데.”

“마법 부여가 된 걸 사야지. 강화 마법이 걸린 검이라면 오러에도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걸? 이런 건 마법 공방에서도 판매하니까 가서 한번 문의해봐.”

“오.”

나도 마법 공방을 몇 번 드나들며 마법으로 강화된 장비들을 본 적은 있다. 다만 마법서를 구매하러 간 거였기 때문에, 외형만 대충 구경했을 뿐 자세히 살펴보진 않았었다.

어쨌든 몇 합만이라도 오러를 버텨낼 수만 있다면, 쉴드를 잠시 쉬어도 되니 강한 마법으로 반격할 기회가 생긴다.

‘도착하면 마법 공방도 들러봐야겠군.’

그렇게 클로이와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곧 카트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차는 도시로 들어가 ‘오늘의 기억’앞에서 우리를 내려줬다. 나는 클로이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삐그덕

“이 소리도 오랜만에 듣네.”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어서니, 마룻바닥에서 삐그덕 거리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테드 씨! 우리 왔어!”

클로이는 짐 가방을 대충 내팽개치고 테드가 서있는 바에 가서 앉았다. 나도 그녀를 따라 옆에 앉았다.

“...클로이. 엘. 오랜만이군. 한잔 하겠나?”

“당연하지! 아니, 여러 잔 할래!”

“아, 저는 한잔만....”

늘 그렇듯 술잔을 닦고 있던 테드가 술을 권했고, 늘 그렇듯 우리는 수락했다.

─쪼르르

테드가 잔 가득 술을 채워줬다.

클로이는 즉시 벌컥벌컥 마셔댔지만, 나는 한 모금씩 홀짝였다.

“바로 일을 시작 하겠나?”

놀랍게도 테드는 여행을 잘 다녀왔냐는 형식적인 질문 따위는 생략한 채, 바로 일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에이, 방금 돌아왔는데 무슨 일이야? 나는 오늘은 쉴래, 테드 씨.”

클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자 테드가 나를 바라보며 같은 질문을 해왔다.

“자네는? 자네도 쉴 생각인가?”

“음... 글쎄요. 뭐 괜찮은 거라도 있습니까?”

나도 당장 일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일단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있지. 그것도 자네가 좋아하는 마법사로.”

“무슨 죄를 저지른 놈인데요?”

“당연히 살인이지. 모험가 여럿을 때려죽인 혐의다.”

나는 모험가라는 말에 당황했고,

때려죽였다는 말에 또 한 번 당황했다.

“마법사라면서요? 마법사가 왜 마법을 안 쓰고 때려죽입니까?”

“놈은 땅 속성의 마법사인데, 주로 육체 강화 마법을 사용한다.”

“......육체 강화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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