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54화 (54/200)

용병 등록 (3)

‘......내가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까?’

기사.

마법사의 천적.

마법사가 일대 다수의 싸움에 특화되어 있다면, 기사는 일대일의 싸움에 특화되어 있다.

그들의 육체적인 능력은 일반적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고, 그들이 사용하는 오러는 극한에 집중되어 있어 무엇이든 벨 수 있다고 한다.

“크억!”

또 다른 용병 하나가 기사의 검에 무참히 찢겨나갔다. 그는 무덤덤하게 다음 타겟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푸슉!

그가 검을 휘두를 때마다 용병은 하나씩 줄어갔다. 이제 이쪽에 남아있는 용병이라고는 B급 하나뿐.

“으어어어!”

남아있던 용병마저 비명을 내지르며 줄행랑을 쳤다. 기사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피식 웃고는, 나를 향해 여유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도망치지 않을 생각인가?”

“.......”

도망칠 수 있다면 진작 그랬을 것이다. 기사의 코앞에서 도망가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가 쫓고자 하면 얼마든지 쫓을 수 있을 테니까.

저 거만하고 여유로운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당장이라도 마법을 한방 먹여주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는데 생각해보니 못할 것도 없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0회]

어두운 밤하늘이 일순간 밝게 번쩍였다.

─번쩍!

─꽈릉!

“컥!”

급작스레 떨어진 벼락에, 기사의 자신감 가득하던 얼굴이 고통으로 물들었다. 몹시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는 쓰러지지 않고 여전히 자리에 서있었다.

‘...역시 기사는 기사라는 건가. 콜링 썬더가 바닥난 게 아쉽군.’

어쨌든 어느 정도의 타격은 받은 듯 보였기에, 나는 즉시 추가 마법을 캐스팅해서 날렸다.

─치직. 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4회]

쏜살처럼 날아간 전기의 화살이 그의 얼굴에 거의 닿았을 때쯤, 그는 비틀거리면서 무릎 꿇듯 자세를 낮춰서 그것을 피해냈다.

그리고 그대로 다리를 펼쳐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내게 마법을 쓰다니!”

“미, 미친놈.”

마법사가 마법을 썼다고 화를 내는 녀석은 처음 봤다.

그는 순식간에 내게 당도해 검을 휘둘렀으나, 아직 콜링 썬더의 충격이 몸에 남아있는 모양인지 맥아리 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기사는 당황하지 않고 즉시 다음 공격을 퍼부어댔다.

─챙! 채앵!

내 검과 그의 검이 맞부딪히며 만들어낸 요란한 쇳소리가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마법사 주제에 잘도 버티는구나!”

“크윽...!”

녀석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손아귀가 저릿해져왔다. 그의 공격은 횟수를 거듭할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검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나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놈의 검을 막아내는 와중에, 정신을 집중해서 마법을 준비했다.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1회]

“......!”

내게 바람이 몰려들기 시작하자, 수상함을 감지한 기사가 몇 발짝 물러나며 검을 고쳐잡았다.

바람의 칼날이 그를 향해 날아드는 순간, 그의 검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곧 두 개의 칼날이 서로 격돌했다.

─푸학!

‘뭐, 뭐야?’

기사의 오러가 실린 검은 내 마법을 무참하게 베어버렸다.

처음 겪어보는 일에 매우 당황스러웠으나, 상대는 내가 당황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기사가 푸르게 빛나는 검을 들고 내게 달라붙었다.

나는 몸을 뒤로 내빼며 쉴드를 전개했지만, 그는 순식간에 나를 따라잡아서 검을 휘둘렀다.

─부욱!

“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쉴드가 갈라졌다. 쉴드는 검의 경로만 조금 비틀었을 뿐, 온전히 막아내지는 못했다.

그의 공격이 재차 이어졌다. 오러가 실린 공격은 하나하나가 전부 위협적이었고, 나는 그때마다 쉴드를 새로 캐스팅하기에 급급했다.

─부욱! 부욱!

“쉴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쓰는구나!”

기사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실제로 당장 눈앞에서 쉴드를 비집고 들어오는 검 때문에, 중급 이상의 마법을 캐스팅할 여유가 없었다.

─슈우웅! 화르륵!

급한 대로 몇 가지 기초 마법을 날렸지만, 그는 기묘한 몸놀림을 선보이며 모조리 피해냈다.

‘큰 걸 쓰려면 거리를 벌려야 하는데....’

마법사가 기사에게 접근을 허용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는 말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겪어보니 그건 진짜였다.

“어딜 내빼려고! 하압!”

그는 내가 거리를 벌리려고 뒤로 물러날 때마다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애당초 서로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전투가 시작됐기 때문에, 도저히 충분한 간격을 만들 틈이 없었다.

나는 뾰족한 수 없이 검까지 휘두르며 저항했다. 그러나 내 검은 녀석의 오러에 의해 오히려 두 동강나버렸다.

“미, 미친...!”

“하! 한심하군. 마법사의 검 따위가 내게 닿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반쪽자리 검을 들고 허망해하는 나를 보고, 그가 조소를 머금었다. 이대로라면 내가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그럼 내 검은 어떤가.”

돌연 마차 반대편에서부터 헥스가 걸어 나왔다. 나머지 적들을 모두 끝장내고 온 것이었다. 헥스는 늘 그랬던 것처럼, 무게를 잡으며 레이피어를 적에게 겨냥했다.

아군의 등장이 몹시 반갑긴 했지만, 조금 못미더웠다. 롱소드도 일격에 절단 나는 판국에 고작 레이피어로 기사를 어떻게 상대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네 검...? 하하, 이거 미치겠군.”

기사는 헥스의 레이피어를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곧 사라졌다.

헥스의 손에 들린 레이피어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호오. 네놈도 오러를 다루는군.”

다만 헥스의 오러는 기사의 그것에 비해 미약했다. 그래서인지 기사는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

곧 헥스가 기사에게 달려듦으로써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됐다.

─카앙!

헥스의 레이피어는 기사의 검을 버텨냈다.

‘오오, 헥스...!’

그러나 가까스로 버티기만 할뿐, 서로간의 기량 차이는 뚜렷했다. 기사가 시종일관 압도하는 싸움이었다.

나는 즉시 그들을 등지고 달려 나갔다. 헥스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가 시간을 벌어주고 있을 때 기사와의 거리를 벌려둬야 한다.

“하하! 네 동료는 너를 구하러 왔지만, 너는 동료를 버리고 도망가는구나!”

기사는 내가 도망친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그렇게 큰 소리로 외치며 나를 조롱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 달렸다. 그리고 충분히 멀어졌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멈춰 섰다.

뒤를 돌아본 순간, 헥스가 기사의 발에 얻어 맞고 날아가 마차에 틀어박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더 늦기 전에 기초 마법을 날려대며 그의 시선을 끌었다.

─화르륵! 슈우웅!

그는 마법을 가볍게 피해내며 말했다.

“...도망간 게 아니었나? 미련하군. 굳이 죽음을 자초하다니.”

상당히 앞뒤가 맞지 않는 녀석이었다.

도망간다고 조롱할 땐 언제고, 이제는 도망가지 않았다고 미련하다니?

“흐흐흐. 할 수 있으면 와서 죽여 봐.”

나는 낮게 웃으며 그를 도발했다. 시간을 벌어준 헥스를 죽게 놔둘 순 없었다.

“태도가 변했군. 마법을 쓸 여유가 생겨서인가? 네놈의 마법 따위는 피하거나 베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애? 그럼 아까 벼락은 왜 맞았지?”

“.......”

그는 나를 잠시 말없이 노려보고는, 곧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도 바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사사사삭!

내 머리위로 한기를 내뿜는 얼음 구체가 형성됐다. 얼음 구체는 회전하며 주변에 작은 얼음덩어리들을 흩뿌려댔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스트 오브’ - 1회]

나는 그것을 기사에게 쏘아 보내며, 즉시 한 번 더 캐스팅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스트 오브’ - 0회]

“......!”

그는 오브를 벨 수는 없다고 판단했는지, 방향을 틀어 회피를 시도했다.

나는 그가 이동하는 경로 앞쪽에 두 번째 오브를 쏘아 보냈다.

“두, 두 개? 이익...! 그런다고 내가 맞을 것 같으냐!”

그는 오브와 오브 사이의 빈 공간에 자리 잡았다.

첫 번째 오브는 그의 왼쪽으로 지나갔고, 잠시 후 두 번째 오브가 그의 오른쪽으로 지나갔다.

즉, 빗나갔다.

그러나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스트 오브는 작은 얼음덩어리들을 흩뿌리며 주변까지 얼리는 범위 마법. 본체가 빗나가서 치명타를 입히진 못했지만, 기사를 눈에 띄게 둔화시키는 것에는 성공했다.

“으으으....”

그가 신음하며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진 않을 것이다. 지금 기회에 끝장을 내야한다.

“이번엔 다른 벼락을 보여주마!”

어차피 남은 적은 기사 한 명뿐.

그리고 내 예상이 맞다면, 나는 탈진하지 않을 것이다.

─파직. 파직.

모든 마나가 오른손에 몰려들며, 샛노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블래스트’ - 0회]

제아무리 날렵한 기사라 할지라도, 지금 상태로 이 마법을 피할 수는 없다.

─쩌저저적!!

─꽈르릉!!

귀청이 떨어질 듯한 굉음과 함께 새하얀 번개 줄기가 번쩍였다.

“끅!”

기사는 짧은 신음과 함께 털썩 쓰러졌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역시.”

사병을 죽여도 올랐는데, 기사라고 안 오를 리가 없다. 게다가 이번에는 확실하게 체감이 될 정도였다. 느낌상 마나량이 20%정도는 증가한 것 같았다. 덕분에 탈진도 면한 것 같고.

“그래, 기사를 잡았으면 이 정도는 줘야지. 하마터면 내가 죽을 뻔했는데.”

쉴드가 찢겨나가고 검마저 절단됐을 땐 정말 아찔했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도와주러 온 헥스에게 꼭 감사인사를 해야겠다.

나는 일단 기사의 시체로 다가가서, 그가 사용했던 검을 집어 들었다.

“오... 좋군. 이건 내가 써야겠어.”

날이 잘 서있고 은은한 광택이 흐르는 것이, 내가 원래 쓰던 검보다 훨씬 고급품이었다.

나는 검집까지 벗겨내서 내 것과 교체한 뒤, 그의 시체를 이끌고 마차로 갔다.

문짝이 부서진 마차 안에는 바그너가 금화 상자를 품에 안고 벌벌 떨고 있었고, 헥스는 기절해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 그렇다. 그놈은 죽은 것인가?”

바그너가 내 손에 질질 끌려온 기사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예. 확실히 죽었습니다. 그건 그런데....”

나는 뒷말을 흐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지금 이 장소에 생존자라고는 나와 헥스, 바그너 셋뿐이었다.

“혹시 마차를 몰 수 있으십니까? 마부가 죽어버려서... 저는 마차를 몰 줄 모르거든요.”

기절한 헥스나 다른 용병들의 시체를 수습해가려면 마차는 필수였다. 전리품도 챙겨 가야하고.

“무, 문제없다. 내가 몰도록 하지.”

“다행이네요.”

나는 마차에 용병들의 시체와 전리품, 그리고 기사를 비롯한 습격자 몇 명의 시체를 실었다.

그리고 마부 역할을 하는 바그너의 옆자리에 앉아서 도튼을 향해 출발했다.

***

도튼에는 다음날 아침 도착할 수 있었다.

바그너는 고맙다며 아예 용병길드 앞까지 마차를 태워줬다.

마차에서 내린 헥스가 바그너를 향해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오. 길드에 증명해야 할 것들이 좀 있어서.”

“그러지.”

의뢰는 성공했지만 사망한 동료들이 있기 때문에, 길드에 사망 원인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적들의 시체를 몇 구 챙겨온 거다.

“......엘, 너는 용병 등록을 마쳐라. 증명은 내가 할 테니.”

“오, 감사합니다.”

나는 헥스의 배려에 감사하며, 바로 용병 등록을 진행했다.

등록 절차는 간단했다.

길드 직원이 바그너와 헥스에게 나에 대한 평가를 청취한 뒤, 용병패를 발급해주는 것으로 끝이었다.

그렇게 등록비용을 제한 의뢰의 보수를 수령하고, 전리품을 처분했다. 대형 길드라서 그런지 길드에서 전리품을 매입해줬기 때문에, 이것 역시 신속하게 끝낼 수 있었다.

판매하고 받은 돈은 헥스와 나눠가졌다.

“.......이젠 너도 A급 용병이군.”

“그러게요. 헥스 씨 덕분입니다.”

사실이 그랬다. 헥스가 의외의 실력을 뽐내며 기사를 잠시 붙잡아준 공로가 매우 컸으니까.

“아니. 네 덕분에 내가 살았다.”

하지만 헥스는 반대로 내가 자신을 구해줬다고 여기고 있었다.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나.”

“네, 아마 며칠 내로 갈 것 같네요.”

“도튼에서 나와 함께 용병 일을 계속할 생각은 없나.”

“아하하, 감사한 말씀이지만 고향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대단한 일은 아니고, 도린 형제에게 편지와 목걸이를 전해줘야 된다.

“......아쉽군.”

“아마 나중에 도튼에 또 올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그때 용병 길드에도 들르겠습니다.”

마안의 감정 결과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한번 도튼에 오긴 해야 할 것이다.

“나도 케른헴에 방문하는 일이 있다면 모험가 길드로 찾아가도록 하지.”

“그러시죠.”

나는 헥스와 악수를 나누고 쿨하게 길드를 나섰다.

밤을 지새워서 제법 피곤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나가는 마차를 하나 붙잡아서 바로 청색 마탑으로 향했다.

마차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다보니 금세 마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빨리 숙소로 가서 꿀잠을 때려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마탑에 들어가니, 어쩐 일인지 입구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던 클로이와 마주쳤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게 다가왔다.

“엘! 어디 갔었던 거야? 어젯밤엔 들어오지도 않구.”

“아, 용병 등록을 좀 하느라고요. 어쩌다보니 의뢰도 하나 하게 돼서... 근데 무슨 일 있습니까? 아침부터 왜 여기서 이러고 계십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화사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드디어 연구가 끝났거든!”

“오? 이야, 이거 축하드립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자랑하는 클로이에게 박수를 치며 축하를 건넸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카트카로 돌아갔으면 하는데, 엘의 생각은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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