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53화 (53/200)

용병 등록 (2)

도튼의 동쪽으로 향하는 길.

나는 마차 뒤꽁무니를 바라보며 걷고 있다.

─달그락달그락

왜 마차를 놔두고 미련하게 걷는 것이냐 하면, 원래 호위 임무는 그런 거라고 한다.

A급 용병 헥스가 말하길, 호위를 맡은 자들이 마차 안에 타고 있으면 외부의 위협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우니 밖에서 걸어야 한다고 했는데,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았다.

게다가 어차피 마차에는 이미 설탕 자루가 가득 실려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마땅히 앉을 자리도 없었다. 그래서 의뢰인인 바그너와 마부만 타고 있다.

“근데... 물건의 주인이 귀족인데도 습격하는 간 큰 놈들이 있는 겁니까?”

나는 옆에서 걷고 있던 헥스에게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귀족의 마차를 습격한다는 것은 매우 정신 나간 짓이 아닐까 싶었다.

“......돈에 눈이 먼 자들은 돈밖에 보이지 않는다.”

헥스가 그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아니, 유력한 습격 후보 중에 귀족도 있다던데... 무려 공작령에서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겁니까? 강력히 처벌하는 거 아닌가요?”

“모조리 죽여 버린다면 아무도 모르지 않나.”

“헛.”

살인멸구.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귀족을 죽이면 크게 처벌받는다 한들, 목격자가 없으면 흉수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설탕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다.”

“음. 그렇군요.”

하긴, 의뢰인은 우리들을 호위로 고용하는 데에 이미 큰돈을 썼다. 당연히 거래로 남기는 이윤은 이것보다 많을 것이다.

사실 무슨 마약이라도 파는 줄 알았지만, 설탕도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너는 강한 것에 비해 모르는 게 많군.”

“제가 변방 출신이라서... 하하.”

나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헥스는 A급 용병답게 제반지식이 많았다. 어차피 당장은 마차를 따라 걷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기에, 그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가고 있었다.

“케른헴 출신이라고 했나. 그곳은 어떤 곳이지?”

“시골이죠 뭐. 영주도 없고, 결계도 없고. 그나마 최근에 던전이랑 메두사가 나타나서 활기가 좀 돌았었는데, 그래봤자 버려진 도시죠.”

케른헴에 대해 설명하다보니 왠지 조금 그리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이니까.

메두사 레이드를 끝내고 떠났으니 꽤 오랫동안 방문하지 않았다. 그때 실력 있는 모험가들이 많이 죽거나 다쳤는데, 전력 공백 때문에 도시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던전과 메두사? 그런 것이 발견됐는데 주변 영지에서 가만히 있던가.”

“그럴 리가요. 특히 던전이 발견됐을 때에는 다른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잔뜩 몰려들어서 난리도 아니었죠.”

나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던 모험가 길드를 떠올리며 말했지만, 왜인지 헥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소리가 아니다. 다른 영지에서 쳐들어오지 않았냐고 묻는 거다.”

“네?? 그런 곳을 뭐 하러 쳐들어와요? 척박해서 경작할 땅도 별로 없는데.”

괜히 버려진 도시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돈 나올 구석은 별로 없고, 몬스터는 많은 동네다. 그곳의 영주가 되면 작은 마을까지도 책임지고 챙겨줘야 할 텐데, 유지비만 더 깨질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 어떤 귀족도 케른헴을 통치하겠다고 나선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버려진 도시라고 불린다.

“......이유는 네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던전과 메두사.”

“던전은 이미 다 털었고, 메두사는 죽었는데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반문했다.

“그런 희귀한 것들이 연달아 나타났다면 앞으로 또 뭔가 나올지도 모르지. 그런 기대감에 용병과 모험가들도 더 몰려들 테고. 그렇게 도시의 인구가 많아지면 다른 영지에서 탐낼 수도 있다.”

확실히 메두사가 출현한 일은 모험가들 사이에서 유명하긴 했다. 도튼의 모험가들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으니. 덩달아 케른헴도 유명해졌다.

“에이, 그렇다고 설마 쳐들어오기까지야....”

“너는 귀족이 얼마나 탐욕스러운 작자들인지 잘 모르는군.”

헥스가 마차에 가득 실려 있는 설탕 자루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들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전쟁도 불사한다. 그 덕에 나 같은 용병이 먹고살고 있지.”

“하긴. 이번 일도 그렇긴 하네요.”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 호위 임무에서도, 의뢰인을 습격할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귀족이라고 했다. 물론 본인이 직접 습격하는 게 아니라 사병만 보내겠지만, 어쨌든 배후는 귀족이다.

‘흠... 케른헴이 공격받을 수도 있다라.’

아무튼 그렇게 반나절쯤 걸었을 때였다.

마차의 왼편에서 호위를 담당하던 용병 하나가 돌연 소리쳤다.

“습격자다!”

용병의 외침에 마부는 즉시 마차를 세웠다.

우리는 마차와 의뢰인을 보호하는 진형을 갖추고 전투에 대비했다.

곧 열 명의 장정들이 마차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은 누가 봐도 날강도처럼 보였는데, 하나같이 복면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압박감을 주려는 모양인지, 일정 거리에서 일렬횡대로 멈춰 섰다. 그리고 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와 입을 열었다.

“달콤한 가루를 순순히 내놓는다면 너희들은 살려서 보내주지. 낄낄낄.”

틀에 박힌 듯한, 전형적인 도적의 대사와 웃음소리였다. 그리고 저렇게 말하는 놈 치고, 진짜로 살려서 보내주는 놈은 본 적이 없다.

용병들이 여전히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자, 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보기로 몇 놈 죽여야 달콤한 가루를 내놓을 것인가?”

마차에 뭐가 실려 있는지 아는 걸 보니, 미리 습격을 계획했던 녀석들 같았다.

그때였다.

“......재밌군.”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헥스가 끼어들었다.

“......달콤한 가루를 원한다고 했나.”

그는 느릿하게 고개를 뒤로 돌려서 마차를 쳐다봤다.

“여기 있다. 네가 원하는 가루. 와서 한번 가져가봐라.”

“뭐, 뭐야?”

그렇게 차갑게 말하고는 레이피어를 꺼내 들고 적을 향해 겨눴다. 헥스가 내뿜는 포스에 도적 대장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디서 한번 본 장면이었다.

헥스는 이렇게 무게를 잡다가 콜링 썬더 한방에 허무하게 나가떨어진 이력이 있다. 왠지 이건 헥스의 사망 플래그 같았기 때문에 내가 나서기로 했다.

“흠흠. 헥스 씨. 저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의뢰인이 말했던 대로, 적들의 무장상태를 보니 그다지 강한 것 같지는 않았다. 머릿수를 믿고 까부는 모양인데, 저런 잡졸들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그리고 저 도적들이 혹시 귀족의 사병이라면, 퀘스트에 반영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즉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4회]

푸른색 전류 한줄기가 뻗어나가 도적 대장에게 적중했다. 놈들은 고맙게도 일렬로 서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연쇄적으로 감전됐다.

“으아아악!”

“끄어어....”

나는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녀석들에게 다가가 검으로 마무리했다.

─푹

‘귀족의 사병이 아닌가...?’

놈들을 처리했음에도 퀘스트와 관련된 메시지가 떠오르진 않았다. 어쨌든 적들이 모두 죽자, 의뢰인 바그너가 다가왔다.

“큭큭. 일처리가 아주 훌륭하군. 비싼 값을 주고 고용한 보람이 있어.”

그는 음산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도적들의 복면을 벗겨서 얼굴을 확인했다.

“베론의 수하들은 아니군. 어쩐지 너무 시시하다 싶더니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마차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이들은 귀족의 사병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전리품을 챙기고 다시 출발했다.

***

우리는 야심한 밤이 다돼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설탕 구매자와 만나 거래를 한다고 한다. 아직 구매자는 도착하지 않았기에, 바닥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드디어 왔군.”

그렇게 한동안 기다리니, 의뢰인 바그너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마차를 보며 말했다.

─달그락달그락

우리보다 더 큰 규모의 호위를 받는 마차였다. 곧 마차가 멈춰서며 고급스런 옷을 입은 남자 하나가 내렸다. 그는 바그너를 향해 물었다.

“...물건은?”

“자, 직접 확인해봐라.”

바그너가 설탕 자루 하나를 구매자에게 건넸다.

구매자는 즉시 자루를 열어 설탕을 꼬집었다. 그리고는 엄지와 검지를 비벼 설탕의 감촉을 느꼈다.

“품질이 좋군.”

“맛은 더 좋다. 큭큭.”

바그너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하자, 구매자가 직접 맛을 봤다.

“크... 맛이 어떤가? 기분이 좋아지지 않나? 도튼에는 내 물건 없이 못사는 녀석들이 넘쳐나지.”

“훌륭해. 이거 나도 중독될 것만 같군.”

“조심하라고. 우리 같은 판매자는 물건에 중독되는 순간 끝장이니까. 큭큭.”

어쨌든 거래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구매자 측 용병들이 설탕을 옮겨 실었고, 구매자는 바그너에게 금화가 담긴 상자를 건넸다. 상자는 제법 컸는데, 내부는 바그너만 확인했기에 얼마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금화 상자를 마차에 실은 바그너가 구매자를 향해 말했다.

“그럼 조심히 가라고... 물건에 손대지 말라는 내 말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명심하지.”

구매자는 고개를 한번 끄덕하고는 마차를 출발시켜 떠났다.

‘미, 미친놈들....’

설탕가지고 온갖 유난을 떠는 모습을 보니 정신적인 피로함이 느껴졌지만, 어쨌든 의뢰의 절반은 끝났다. 이제 도튼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드디어 용병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이봐 용병나리들. 우리도 출발하자고.”

“그러죠.”

바그너는 야영하지 않고 즉시 돌아가기를 원했다. 원래는 밤에 쉬고 다음날 해가 뜨면 이동하기로 되어있었으나, 의뢰인이 원한다고 하니 그냥 지금 돌아가기로 했다.

─달그락달그락

달빛에 의존하며 밤길을 나아갔다.

돌아가는 길은 걷는 속도를 올려야했다. 무거운 설탕 자루가 없어져서 마차가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둠속에서 말없이 행군하던 중이었다.

─쐐액!

“컥.”

돌연 화살 하나가 날아와 마부에게 박혔다.

마차가 멈추자, 곧 앞쪽 풀숲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즉시 무기를 뽑아들고 경계태세를 갖췄다.

“무, 무슨 일이냐!”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바그너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습격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라이트를 캐스팅했다.

─화아악

주변이 환해지며 적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열 명이었는데, 특이하게도 복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한다.

바보거나, 우리를 전부 죽일 자신이 있거나.

“네놈들! 베론의 병사들이구나!”

적들을 살펴보던 바그너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베론...? 그 바그너를 노린다던 귀족?’

그들 중 하나가 바그너를 향해 이죽거렸다.

“이거이거 바그너 님. 설탕을 파는 수고를 대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는 무거운 설탕 대신 돈만 가져가면 되겠군요.”

“흥, 웃기는군. 고작 네놈들 따위가 내 호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그거야 직접 보시면 알게 되겠지요. 죽여!”

놈의 외침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됐다.

처음부터 거리가 가까웠기에, 서로가 섞여있는 난전 형태였다.

“히얍!”

“타앗!”

나에게도 두 놈이 붙었다. 나는 동시에 날아드는 두 개의 검을 막기 위해 쉴드를 전개했다.

─텅! 텅!

‘난전이라 범위가 넓은 마법은 쓰기 어렵겠어.’

나는 한 놈에게는 검을 휘두르며, 다른 한 놈에게는 마법을 캐스팅해 날렸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2회]

내 검은 적의 검과 부딪히며 막혔지만, 윈드 블레이드는 아니었다.

─서걱!

바람의 칼날은 상대가 비명을 지를 틈도 주지 않고 목을 절단해버렸다.

“이, 이런... 벤든! 컥!”

나는 동료의 죽음에 당황하고 있는 또 다른 적의 가슴에 검을 꽂아 넣었다.

‘...이 정도 수준으로 뭘 믿고 습격한 거지?’

적들은 B급 용병과 일대일 승부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다른 용병들을 도와주러 가려고 할 때였다.

순간, 두 개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조건을 달성해 능력치가 오릅니다!]

역시 귀족의 사병은 왕을 섬기는 자로 판정해주는 게 맞았다. 다만 적들이 약해서인지, 어떤 능력치가 얼마나 올랐는지 당장 체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마나량이 조금 늘어난 건 느껴지는군.’

마나는 마법을 쓸 때마다 변화가 느껴지기 때문에, 이번에도 변화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어쨌든 조금이라도 능력치가 오른다면, 다른 용병들에게 뺏기기 전에 서둘러서 적들을 한 명이라도 더 처치해야 한다.

─푹푹푹푹

“끄아아악!”

“......나약하군.”

이미 헥스도 레이피어를 들고 신나게 적을 쑤셔대고 있었다. 헥스 쪽으로 가면 재미를 못 볼 것 같았기에, 나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하하핫! 죽어라!”

“크어억....”

그곳에서도 B급 용병들이 우위를 점하며 싸우고 있었다. 방금 막 적을 처치한 용병 하나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으하하! 엘 님! 이쪽은 저희 차지입니....”

─촤악!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푸른 기운이 일렁이는 검에 몸이 반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오러.’

놈들이 뭘 믿고 습격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적들 중에 기사가 하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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