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처럼 마법을 쉽게 얻는 법 (3)
나는 일단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자세한 상황 파악을 위해서다.
“꺄아아악!!”
“도, 도망쳐!!”
“케케케. 못가.”
눈앞의 마을에선 학살로 인한 비명소리와 방화로 인한 연기가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게 야만족인가...?’
얼굴엔 무슨 짐승의 탈 같은 것을 쓰고 있었고, 상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죽으로 어깨 정도만 덮고 있었다. 저딴 걸 갑옷이랍시고 차려입은 거라면, 정말 멍청하고 야만스럽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정황상 니콜스가 말했던 마을인 듯했다.
마을 가까이에 있는 울창한 숲이나, 야만족에 의한 약탈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 등에서 니콜스의 증언과 일치했다.
‘그렇다면 니콜스에게 죽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겠어.’
과연 대마법사답게 생성된 꿈의 세계가 넓긴 했지만, 야만족들을 따라다니다가 니콜스를 마주치기만 하면 된다. 그럼 그가 알아서 광역 마법을 사용해줄 테니까.
이렇게 간단명료할 수가 있다니.
“누, 누가 좀 도와줘!!”
“내가 도와주지. 네가 죽는 것을. 케케.”
바닥에 쓰러져 애타게 도움을 요청하는 마을 주민을, 야만족 전사가 물음표처럼 생긴 곡도로 무자비하게 베어버렸다.
“끄아아아!!”
처절하게 울부짖는 주민을 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으나, 이건 현실이 아니다. 내가 저 인형과 다름없는 상상 속의 인물들을 도와줄 이유는 전혀 없다.
‘일단은... 저놈들 중 하나로 변장해야겠어.’
얼음폭풍의 정확한 범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멀리서 야만족을 뒤따라가기보다는 아예 그들과 섞여서 움직이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나는 나무에 몸을 숨겨가며, 상대적으로 인적이 드문 마을의 외곽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울타리를 넘어서, 가까이에 있는 작은 가정집의 창문을 들여다봤다.
집주인으로 보이는 주민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아있었고, 야만족 둘이 전리품을 놓고 다투고 있었다.
“이건 내가 발견했다.”
“먼저 손을 댄 것은 나다!”
“그렇다면 나도 네놈의 얼굴에 손을 대주지.”
두 명의 야만족이 서로 뒤엉켜서 싸우기 시작했다.
─퍼억! 우당탕!
처음에는 몸싸움만 벌였으나, 다툼이 길어지자 결국 한 놈이 곡도를 꺼내서 상대를 난자해버렸다. 승자는 피투성이가 된 바닥에서 일어나 전리품을 집어 들었다.
“케케케. 이건 내 거다.”
‘미, 미친놈들... 진짜 야만스럽네.’
전리품이란 작은 술 한 병이었다. 고작 그것 때문에 동족을 죽이다니. 니콜스의 말마따나 규칙도 질서도 없는 멍청한 놈들이었다.
어쨌든 나는 승자가 술병을 들이켜고 있는 틈에 집안으로 진입했다.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회]
꿈속에서는 마법 횟수의 제한이 없다. 나는 영화에서처럼 팽이를 돌리는 대신, 이것으로 꿈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끄으으.”
마법에 적중당한 야만족은 바닥에 쓰러져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개개인의 무력이 썩 강한 편은 아닌 모양이다. 나는 그를 지나쳐서 주민에게 다가갔다.
“여기가 도튼 남부에 있는 마을이 맞습니까?”
“사, 살려주세요.”
집주인은 공포에 질려서 목숨을 구걸하기만 할 뿐,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당신을 해치러 온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세요. 이곳이 도튼의 남부가 맞습니까?”
“주, 죽이지 말아주세요.”
“아니, 저는 그럴 생각이─”
“제, 제발 저를 해치지 마세요.”
“.......”
역시, 이들과 제대로 된 대화는 어려웠다.
이번 꿈의 주역은 니콜스와 야만족이다.
마을 주민들은 그저 ‘학살당하는 사람’정도로만 구현된 엑스트라일 뿐. 그래서 목숨을 구걸하는 것과 관련된 말밖에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서걱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곡도로 야만족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놈의 짐승 탈을 비롯한 옷가지를 벗겨내서 갈아입었다.
‘우욱... 이게 무슨 냄새야?’
야만족이 얼굴에 쓰고 있던 탈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악취가 풍겼다. 이것에 비하면 노숙자의 악취는 고급 향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헛구역질이 치밀어 올랐지만, 곧 얻게 될 마법을 생각하며 억지로 탈을 쓰는 것으로 변장을 마무리했다.
샌들, 속옷처럼 짧은 바지, 어깨에 두른 가죽, 그리고 짐승의 탈.
이게 현재 내 옷차림의 전부였다.
몹시 추했지만, 덜 덥다는 장점은 있었다.
나는 야만족들의 시체를 집안 구석에 대충 숨겨두고, 밖으로 나가서 마을의 중앙 쪽으로 향했다. 약탈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케케케.”
나는 그들의 웃음소리를 따라냈다.
야만족들은 특색 없이 다 똑같이 웃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웃도록 교육이라도 받은 건지, 아니면 꿈의 주인인 니콜스가 야만족은 다 비슷하다고 여겨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녹아들었다.
“비켜라! 그 술은 내 차지다!”
“웃기지 마라. 먼저 마시는 사람이 임자다.”
이 야만족들은 걸핏하면 자기들끼리 싸워댔는데, 대체적으로 싸움의 동기는 술이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싸우기 시작하면, 근처에 있던 야만족이 죄다 몰려들어서 구경했다.
“케케케. 죽여 버려!”
“주먹 말고 칼을 써라!”
나는 그런 그들을 지켜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왜 이렇게 숫자가 적은 것 같지?’
야만족의 숫자가 묘하게 적었다.
수백 명이라던 니콜스의 증언과는 달리, 이곳에 있는 야만족은 다 합쳐도 백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니콜스가 부풀려서 말한 건가?’
과거의 무용담이니 과장을 좀 섞었다거나.
아니면...... 설마.
순간, 어제 술자리에서 니콜스가 했던 말들 중 하나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시기에 야만족은 어디에나 있었지.]
니콜스가 그런 생각을 품은 채 꿈을 꿨다면, 이 꿈속에 야만족은 여러 무리가 존재할 수도 있다.
즉, 나는 니콜스가 처치했다는 야만족 무리가 아닌, 다른 무리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젠장!’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즉시 마을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랜드 라이즈를 캐스팅해서 언덕 지형을 만들어냈다.
─쿠르르... 쾅!
너무 높게 만들면 니콜스에게 들킬 수도 있기 때문에, 나무보다 조금 높은 정도로만 생성해냈다.
그곳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숲.
그리고 숲 저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내가 서 있는 높이가 애매해서 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곳도 마을로 추정됐다. 연기의 규모로 볼 때, 내가 있던 마을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저기가 니콜스가 말한 마을인가?’
저쪽 마을도 연기가 나는 걸 보면, 야만족에게 약탈당하고 있는 듯했다. 놈들은 약탈을 끝낸 건물에 불을 지르니까.
니콜스가 무용담을 과장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저쪽에 나타날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즉시 그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니콜스보다 먼저 저 마을에 도착해야 한다.
─탁탁탁!
“간만에 좀 쉽게 마법을 얻어 보나 했더니!”
남부전쟁 시기의 꿈을 꾸도록 유도하고 들어온 것까지는 좋았으나, 니콜스가 너무 뛰어난 것이 문제였다. 꿈의 세계가 워낙 크다 보니 엉뚱한 위치에 떨어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전력으로 질주하던 중, 저 멀리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특정 지역을 향해 새하얀 무언가가 무수히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꽤나 거리가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곧 내가 있는 곳까지 서늘한 바람이 도달했다.
“안 돼!!”
니콜스는 이미 야만족 무리를 만나서 얼음폭풍을 사용한 것이다.
“젠장... 어떡하지?”
이번 꿈은 포기하고 다음 기회를 노려볼 수도 있겠으나, 그때도 전쟁 꿈을 꾸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술자리에서 헐리우드급 리액션을 선보였기에, 다음번에는 니콜스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반드시 이번에 마법을 얻어내고 싶다.
‘그가 얼음폭풍을 또 사용할 수 있으려나?’
가능하다고 믿고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없다. 이번 꿈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손해 보는 것은 없으니까.
니콜스가 다시 얼음폭풍을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다시 원래 있었던 마을을 향해 뛰었다.
도착한 그곳은 약탈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이제 살아있는 주민은 없어 보였다. 나는 마을 중앙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술이 가득한 창고를 발견했다!! 케케케!”
술 때문에 동족끼리 죽이기도 하는 놈들이다. 이건 못 참겠지.
“뭐야! 술 창고? 어디에 있지?”
“당장 말해라! 말하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
놈들이 곡도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이 마을에 있는 게 아니다. 저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지. 나 혼자 마시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술이 너무 많았다.”
나는 니콜스가 말했던 마을이 있는 방향을 가리켰다. 그는 아마도 야만족들을 얼려버린 후, 주민들의 시체와 불타는 마을을 수습하러 갔을 것이다.
“앞장서라.”
“어서!”
놈들이 재촉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그냥 안내해 줄 수는 없다. 다들 장식품을 챙겨 와라. 도착한 술 창고가 마음에 든다면 그때 나에게 장식품을 한 개씩 넘겨라.”
이들의 장식품이란 사람의 머리다.
니콜스가 보고 분개했다던 그것.
잔인한 주문이지만, 어차피 진짜 사람도 아니니까.
“좋다.”
“그러지.”
이미 상당수의 야만족은, 주민의 머리통을 장식품처럼 엮어서 목에 걸고 있었지만, 없는 놈들은 곡도를 치켜들고 마을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로 향했다.
그들은 금세 돌아왔다. 나는 백여 명의 야만족들을 이끌고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더 빨리 달려라! 다른 놈들이 술 창고를 털어가는 걸 보고 싶나!”
“그럴 순 없지! 술은 내 거다. 케케케.”
니콜스가 떠나기 전에 도착해야 했기에, 나는 부지런히 야만족을 재촉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저 멀리에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연기가 희미해졌다는 것은 누군가가 마을의 불을 끄고 있다는 것. 좋은 신호였다.
“왜 이렇게 멀지? 설마 우리를 속였나?”
“아니, 거의 다 왔다. 계속 달려라!”
놈들이 슬슬 의심하기 시작할 무렵, 목표했던 마을 근처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일단 놈들과 함께,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풀숲에 몸을 숨겼다.
마을에는 푸른색의 로브를 입은 사람 몇 명이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건... 청색 마탑의 사람들!’
나는 마탑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놈들이 내가 말한 술 창고를 털고 있다.”
“뭐야? 당장 저놈들을─”
“잠깐 기다려라!”
나는 당장 뛰쳐나가려는 야만족들을 만류했다. 우리는 니콜스가 만났던 야만족 무리보다는 수가 적으므로, 넓게 퍼져야 그가 얼음폭풍을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놈들은 마법사로 보인다. 뭉쳐 있다가 마법에 같이 맞으면 안 되니, 최대한 넓게 퍼져서 공격하는 게 좋겠다.”
이 야만스러운 놈들이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풀숲에 몸을 숨긴 채로 야만족들이 넓게 퍼지기 시작했다.
야만족들이 어느 정도 자리 잡았을 때, 나는 옆에 있던 녀석이 장식품처럼 목에 걸고 있던 사람의 머리통 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것을 마탑원이 있는 곳을 향해 힘껏 던졌다.
─떼구르르
꽤나 거리가 있었기에, 사람의 머리통은 데굴데굴 굴러서 그들의 발치에 닿았다.
“......!”
마탑원들은 바닥에 있는 머리통을 보고 잠시 굳어있었다. 곧, 그중 한 명이 서서히 고개를 치켜들고 이쪽을 바라봤다.
그는 니콜스였다.
함께 술을 마셨던 흰머리 가득한 니콜스가 아닌, 혈기왕성한 청년 니콜스. 그의 표정은 마치 얼음장 같았다.
나는 내친김에 머리통 몇 개를 더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야만족의 탈을 쓰고 있어서 내 정체는 봐도 모른다.
나는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그리고 니콜스를 화나게 만들기 위해, 비정상적인 고음을 내지르며 그를 향해 달려 나갔다.
“끼요오오!!”
내가 튀어 나가자, 풀숲에 넓게 퍼져서 숨어있던 백여 명의 야만족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과 함께 달려들기 시작했다. 목에 사람 머리통을 주렁주렁 달고서.
“케케케!”
“술 창고는 내 거다!”
“마법사의 머리통은 베개로 써주지!”
청년 니콜스는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싸늘한 눈빛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어찌나 싸늘한지, 추위가 느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눈앞으로 눈송이 하나가 살포시 떨어졌다.
“......전부 얼어붙어라.”
분노한 니콜스의 짧은 한마디.
그와 동시에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사아아악
곧, 새하얀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수한 눈송이들은 광풍과 뒤섞여 눈보라를 만들어냈고, 사방팔방으로 거세게 휘몰아쳤다.
하얀 눈송이들이 햇빛을 가려, 이 일대는 오히려 어두워졌다. 폭풍 같은 눈보라 때문에 움직이기는커녕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굳이 마법을 맞기 위해 몸을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이미 나를 포함한 모든 야만족은 눈보라 권역 내에 있었다.
─까드득
순식간에 하반신이 잠길 정도로 눈이 쌓였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니콜스를 향해 달려들던 야만족들이 하나둘씩 얼어붙어 갔다.
나 역시 몇 걸음 더 가지 못하고, 자리에 굳은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물론 몸을 떤 이유가 단순히 눈보라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마법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환희. 그것이 날 전율케 했다.
‘믿고 있었습니다... 니콜스 님...!’
내 몸이 빠르게 얼어붙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