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처럼 마법을 쉽게 얻는 법 (1)
마법서를 품에 안고 마탑으로 달려갔다.
물론 내가 직접 두 다리를 움직여 달린 것은 아니고, 말이 달렸다. 도튼은 크고 더워서 마차가 필수다.
이번 일의 총 소득은 중급 마법서와 2골드.
2골드는 일반 데스웜의 핵 값으로 받았다.
나중에 제자들에게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군.
마탑에 도착해서 바로 2층으로 올라갔다.
내 방으로 가기 위해 하급 제자 공용 휴게실로 들어가니, 로지가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참 말하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해서 스콜피온에 박힌 얼음송곳을 빼내가지구 더위를 식히면서 버텼지~.”
“정말? 로지 대단하다!”
“에헴~. 이게 다 엘 님한테 배운 거라구. 모험가는 역시 다르더라니까.”
“나도 모험가랑 모험을 나가보고 싶다아.”
사막에서 있었던 일을 친구들에게 얘기해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지나가며 슬쩍 말을 던졌다.
“로지. 너는 어째 맨날 휴게실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것 같냐.”
“아앗, 억울한 엘 님! 맨날 이러는 거 아니거든요? 스승님이 오늘은 휴식하라고 하셨어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황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그래? 뭐, 알았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라.”
“벌써 들어가시게요? 저희랑 조금 놀다 가세요.”
“나 바빠. 흐흐흐. 독서를 해야 하거든.”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로지를 지나쳐서 방으로 들어갔다.
─철컥
방문을 닫고 침대에 걸터앉아 마법서를 펼쳤다.
“.......”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
나는 당황하지 않고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손바닥에 상처를 내서 책 하단에 피를 떨어트렸다.
피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꾸물거리며 책으로 흡수된다. 그리고 곧, 책에 적혀있는 글자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마법서에 걸려있는 보안 마법이다. 처음 피를 떨어트린 사람이 양손으로 마법서를 붙들고 있을 때에만 내용을 볼 수 있다.
‘...철저하단 말이지.’
마법서는 주로 마탑이나 학파에서 작성한다.
이게 그들의 주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에, 외부로 반출하는 마법서는 대부분 이렇게 보안 마법이 걸려있다.
이런 제한 없이 반출해버리면, 마법서를 되팔거나 여러 명이서 돌려볼 수 있으므로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즉, 반독점적 공급자의 지위를 지키기 위한 상술이라고 할 수 있다.
‘뭐, 이해 못할 것도 아니지. 나 같아도 그랬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판매가 가능한 마법서가 두 권 있다.
고대의 마법서.
인페르노와 라이트닝 블래스트.
이것들은 별도의 보안 마법이 걸려있지 않다. 아직까지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서, 카트카의 귀중품 보관소에 큰 비용을 지불하고 맡겨둔 상태다.
‘일단은 이것부터 읽자.’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마법서를 읽기 시작했다. 전부 세세하게 읽을 필요는 없지만, 앞부분에 있는 개요 정도는 제대로 읽었다.
콜링 썬더는 벼락을 치게 하는 마법이었다.
술자의 몸에서부터 생성되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치는 마법. 그렇기에 전격 속성이 부족하면 정확도가 매우 떨어진다고 적혀 있었다.
‘정확도는 내가 신경 쓸 부분은 아니고....’
나야 전격 속성 펜투플이니 그런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다만 이 마법은 실내에서 쓰기는 어려울 듯했다. 건물 안에서 써봤자 지붕에 벼락이 떨어질 테니까.
‘기습용으로 괜찮을 것 같은데?’
나만 바라보고 있는 적의 머리위에서 갑작스레 벼락이 떨어진다면, 어지간해서는 반응하지 못할 것 같았다.
어쨌든 그렇게 마법서의 개요만 정독하고, 나머지 부분은 대충 휙휙 읽어 넘겼다.
탁!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법 ‘콜링 썬더’를 배웠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콜링 썬더’ - 3회]
“아아, 나는 이제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세 번이나 날릴 수 있는 몸이 되어버린 것인가...?”
내가 말하고도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새로운 마법을 배울 때마다 이런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히곤 한다.
나는 다시 공용 휴게실로 나갔다.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투가 똑같더라니까? 목소리도 엄청 크구. 그래서... 어? 엘 님!”
여전히 실습에서의 경험담을 늘어놓고 있던 로지가 나를 발견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또 다시 음흉하게 웃음 짓기 시작했다.
“독서... 푸흡. 독서하러 가신다더니 벌써 나오신 거예요~?”
내가 지루한 독서를 참지 못하고 금세 튀어나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귀엽군... 자꾸 나를 비웃는 모습이 아주 귀여워... 이거 참을 수 없이 귀여운 걸...? 흐흐흐.”
“히익! 죄, 죄송해요!”
로지가 과장스럽게 몸을 내빼는 시늉을 했다. 나는 로지와 곁에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난이고. 혹시 클로이 씨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클로이 님이요? 아까 강당에서 뵌 이후로는 못 봤는데... 연구실에 계시지 않을까요?”
로지 이외의 다른 제자들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흠. 역시 연구실로 가봐야 하나.”
***
마탑 6층에 있는 니콜스의 연구실.
그 옆이 클로이의 연구실이다.
─똑똑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리자, 곧 문을 열고 클로이가 걸어 나왔다.
“누구... 엘! 웬일이야? 여기까지 다 찾아오고.”
“아하하. 요즘 통 못 봤잖아요? 아까 강당에서 잠깐 본 거 빼고는. 잘 지내시나 궁금해서 한번 와봤죠.”
“흐응... 정말? 하급 제자들이랑 노느라 정신없는 줄 알았는데. 어쨌든 잘 왔어. 들어와!”
클로이는 나를 슬쩍 한번 올려다보고는, 문을 활짝 열며 들여보내줬다.
나는 그녀의 책상 맞은편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여러 장의 문서가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무슨 마법식 같은 게 잔뜩 그려져 있었는데, 봐도 전혀 모르겠어서 시선을 거뒀다.
“연구는 잘 돼가고 있습니까?”
“으응. 그럭저럭.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옆방으로 찾아가서 스승님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거든.”
“그거 다행이네요.”
그래서 니콜스의 옆방을 얻은 거였나.
클로이는 의자 등받이에 푹 기대며 기지개를 켰다.
“흐아앗-! 다행은 무슨.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으려니 답답해 죽겠어 정말.”
하긴. 카트카에선 수배범을 때려잡으러 다니던 사람인데, 여기선 이렇게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있으려면 답답하긴 할 것이다.
“술이라도 드시지 그러십니까? 술 좋아하시잖아요.”
“응, 안 그래도 매일 마셔. 스승님이랑도 종종 마시는데, 술 드시면 매번 옛날 얘기만 하셔서 엄청 지루하다니깐. 그놈의 남부 전쟁... 하아암.”
사제 간의 사이가 좋은 모양이군.
어쨌거나 그녀는 니콜스의 옛날 얘기가 떠오른 모양인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했다.
“흠흠. 그럼 저랑 같이 다목적실에 잠깐 다녀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응? 다목적실? 나랑 대련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클로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우, 그럴 리가요. 제가 상대나 되겠습니까. 그냥 테스트해보고 싶은 마법이 있는데, 제가 외부인이라 혼자서 다목적실에 들어가기가 좀 그래서요. 마침 클로이 씨도 연구실에만 있기 답답하다고 하시니.”
“무슨 마법인데?”
“제가 전에 말씀 드린 거 있잖습니까? 메두사를 처치할 때 썼다는 마법.”
라이트닝 블래스트.
이건 딱히 비밀은 아니다. 굳이 소문내고 다니지는 않지만, 메두사 레이드를 포함해서 이미 목격자가 좀 있다. 그때 천둥소리를 들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이렇게 고대의 마법까지는 아니더라도, 던전에서 구시대의 마법서를 발견해서 배우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고 한다.
클로이한테는 그냥 우연히 얻은 구시대의 마법이라고만 말해둔 상태다.
“앗, 그 구시대의 마법? 나도 꼭 한번 보고 싶었어! 당장 가보자!”
그녀는 매우 흥미가 동한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녀와 함께 4층에 있는 다목적실로 이동했다.
도착한 다목적실에는, 이미 하급 제자 두 명이 마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얘들아. 연습 중에 미안한데 잠시만 자리를 비켜주지 않을래?”
“크, 클로이 님...? 네네! 편히 쓰세요!”
클로이가 웃으며 부탁하자, 제자들이 꾸벅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다목적실에 있는 창문의 커튼을 전부 내려서, 외부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끔 했다.
그리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조금 뜸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 이거 막상 쓰려니까 부담되네요.”
“응? 왜?”
“이걸 쓰면 제가 탈진하거든요.”
다목적실엔 마법의 위력을 반감시키는 마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당연히 마나의 소모도 반으로 줄어든다. 즉, 이곳에선 내 마나량이 두 배인 것과 다름없다.
나는 마나량이 두 배인 상태에서도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쓰면 탈진하는지 궁금했다.
물론 그것을 확인하려는 목적만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정말? 구시대의 마법은 극단적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엘의 마법도 그런 가봐?”
“마나가 쪽 빨리는 느낌이에요. 몇 시간은 그대로 잠들거든요.”
“흐음. 그럼 활용이 조금 제한적이겠네.”
클로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제가 마법을 쓰기 전에 클로이 씨의 마법을 좀 구경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마법?”
“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마법을 쓰면 잠드니까요. 아직 대낮인데 잠들어버리면 시간이 삭제되는 느낌이라, 그 전에 뭔가 눈요기라도 하면 좀 덜 아까울 것 같아서요.”
“뭐어, 그건 어렵지 않지. 어떤 마법이 보고 싶어?”
그녀는 쿨하게 수락하며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즉시 원하는 바를 말했다.
“기왕이면 멋지고 강한 마법이 보고 싶어요!”
“나도 그런 걸 보여주고 싶지만... 너무 강한 걸 사용하면 다목적실 벽면이 부서질 거야.”
미, 미친.
“그, 그렇군요. 그래도 제가 프로스트 오브는 봤으니까 그거 보다는 강한... 아! 전에 카트카에서 기사 출신의 노예 밀매범을 죽이신 적 있죠? 그때 썼던 마법이면 어떨까 싶은데요.”
“응. 그건 여기서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네.”
클로이가 그렇게 말하며 다목적실에 설치되어있는 과녁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잠깐! 그 마법의 공격범위는 얼마나 되죠?”
“으음. 한... 이 정도?”
그녀는 직접 과녁 주변을 돌아다니며 범위를 설명해줬다. 대략 직경 3미터. 단일 대상을 공격하는 마법인 듯했다.
나는 그 범위에서 열 발자국 정도만 뒤로 물러났다. 클로이가 의아한 듯 물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구경하려구?”
“무려 클로이 씨의 마법인데 자세히 봐야죠. 이 정도면 위험하진 않겠죠?”
“당연하지! 더 가까이 서도 문제없어.”
그녀는 마법 적중률에 꽤나 자신 있는 모양인지, 호기롭게 외쳤다.
하지만 더 가까이 가진 않았다.
목숨은 소중하니까.
“그럼... 이제 마법 쓸게?”
“네!”
그녀가 손가락을 들어 과녁을 가리키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 보였다.
아무런 변화도, 조짐도 없었다.
그러다가 밑바닥에서 한기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파사사삭!!
눈 깜짝할 새에 과녁 밑에서 무수한 얼음 가시들이 솟아났다. 과녁은 마치 얼어붙은 고슴도치 같은 상태가 되었다.
“오오... 과연 기사를 죽인 마법이네요.”
─짝짝짝!
나는 클로이를 향해 박수를 치며 말했다.
확실히 위력은 오브보다 강해보였다.
그러나 내 목표는 이 정도의 마법이 아니다.
나는 훨씬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에헤. 왠지 쑥스럽네. 그럼 이제 엘의 마법도 보여줄래?”
“그러죠. 근데 여기 방음은 잘 되나요?”
나는 얼굴을 붉히고 있는 클로이에게 물었다. 내가 쓸 마법은 매우 시끄러운 소리를 동반하니까.
“응. 웬만한 소리는 새어나가지도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마.”
창문이 있는데 그게 가능한가?
그래도 저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걸 보면 뭔가 마법적인 처리라도 되어있는 모양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이제 마법을─”
“잠깐만 기다려! 엘이 탈진할 정도의 마법이라고 했지? 혹시 모르니까 다목적실의 벽면을 강화해야겠네.”
─콰드드득!
클로이는 과녁 뒤편에 있는 벽면 앞에 얼음장벽을 생성해냈다. 파이톤의 꿈에서 니콜스가 나를 지키기 위해 사용했던 마법이었다.
“이제 시작해도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을 캐스팅했다.
─파직. 파직.
마나가 오른손에 몰려들며 샛노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마나가 빨려나가는 감각은 똑같은데...?’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블래스트’ - 0회]
마법진이 설치된 다목적실임에도 마나가 모조리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손에 몰려든 전류 역시 이전과 같은, 아니 메두사에게 썼을 때보다 더 강렬한 느낌이었다.
─쩌저저적!!
─꽈르릉!!
굉음과 함께 내 손에서 뻗어나간 새하얀 번개 줄기는, 과녁을 부수고, 클로이의 장벽마저 뚫어버린 뒤 다목적실 벽면에 적중했다.
“......뭐, 뭐야?”
클로이는 귀를 틀어막은 채 경악했다.
“엘... 너 이 정도였어?”
“저도 이상하네요. 마지막으로 썼을 때보다 이번이 더 강력한 느낌인데.”
경악하고 있는 클로이에게 내 감상을 말하자,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몸은 어때? 이번에도 탈진할 것 같아?”
“그럴 것 같네요.”
마나가 바닥난 느낌이었다. 경험상 머지않아 현기증과 잠이 쏟아질 듯했다.
“음... 내 생각엔 엘의 마법은 마나량 만큼의 위력을 내는 것 같아. 그래서 다목적실의 마법진이 효과가 없었던 거지.”
올인(All in)기 라는 소리였다.
마나가 얼마나 있든 간에 모조리 소모하는 마법.
메두사 레이드 이후로 승격을 하면서 내 마나량도 늘어났으니, 그만큼 위력도 더 강해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럼 결국 쓸 때마다 탈진한다는 소리잖아.’
“에이. 그렇군요....”
슬슬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휘청거리자 클로이가 달려와서 부축했다.
“이, 일단 여기에 좀 누워. 숙소에는 내가 데려다줄게.”
그녀가 나를 바닥에 눕혔다.
누우니까 눈꺼풀이 절로 감겨왔다.
그대로 잠들려던 순간, 깜빡하고 클로이에게 전하지 못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억지로 정신을 붙잡으며 입을 열었다.
“클로이 씨, 이따 밤에 시간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긴 한데... 왜?”
클로이와 연구실에서 술을 마셔야 내 계획의 성공률이 올라간다.
“그럼 술 한 잔 하시죠. 제가 연구실로 찾아가겠습니다.”
“그, 그래, 알았어.”
그녀의 대답에 나는 안도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