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47화 (47/200)

데스웜 (5)

“안녕히 가세요! 억울한 마법사님!!”

“잘 가게! 그놈들에게도 안부 전해주고!”

네도린과 판도린이 팔을 흔들며 배웅한다.

특히 네도린은 근무 중이라 내가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득부득 마을 입구까지 따라 나왔다.

“너도 잘 지내라! 목걸이 잘 전달할게!”

네도린은 오빠에게 전해달라며, 자기가 하고 있던 작은 나무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내게 맡겼다.

나도 그들에게 팔을 크게 흔들어준 뒤, 몸을 돌려 도시를 향해 출발했다.

광활하게 펼쳐진 뜨거운 모래벌판.

꼭 달궈진 프라이팬으로 올라가는 것 같아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번에는 길잡이가 있었다.

마을에 있던 행상인 하나가 도튼으로 갈 계획이라기에 동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를 도적과 몬스터로부터 보호하고, 그는 도튼으로 가는 빠른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아아~ 드디어 마탑으로 돌아가네요!”

옆에서 걷던 로지가 신난다는 듯 말했다.

“도착하면 시원한 방에 틀어박혀서 하루 종일 잘 거예요.”

“그래, 나도 마탑의 서늘함이 그립다.”

“다른 팀들은 복귀했을까요? 다들 데스웜의 핵을 얼마나 모았으려나. 그래도 저희가 최고 평가를 받겠죠?”

“아무래도 그렇겠지? 큰 걸 잡았으니까.”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 1개와 일반 핵 1개. 원래 일반 핵은 한 개 더 있었는데, 배낭에 넣어두는 바람에 오아시스에서 낙타와 함께 잃어버렸다.

속이 조금 쓰리긴 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자이언트 핵만 있어도 중급 마법서를 받을 수 있으니.

“저희는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엘 님 덕분에 일등을 하겠네요. 고맙습니다, 억울한 마법사님!”

“뭐, 뭐야. 그렇게 부르지 마.”

나는 기겁하며 대답했다. 저 별명이 딱히 싫은 건 아닌데, 들을 때마다 도린 형제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다.

“꺄하핫! 사막의 소녀는 그렇게 불렀잖아요? 혹시 엘 님이 ‘실컷 귀여워해준’ 사람만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건가요?”

로지가 장난기 가득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자들도 네도린이 편지를 작성할 때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내가 무슨 문장을 추가해달라고 했는지 다 들었다.

단순히 도린 형제를 놀려주려고 그런 거였지만, 이렇게 남의 입을 통해 들어보니 오해하기 딱 좋았다. 이게 그 쾌락 없는 책임이라는 것인가?

혹시 모르니 입단속을 시켜야겠군.

“흠흠. 편지의 내용은 잊어버려. 너도 다 봤잖아? 내가 용돈만 주는 거. 그냥 친구한테 장난치려고 그런 거야.”

“정말요~?”

“그래! 어디 가서 말하고 다니지 마. 만약 소문내고 다닌다면....”

“소문내고 다닌다면...?”

“너도 잔뜩 귀여워해주지!!!”

“히익!”

우리는 그렇게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나갔다.

행상인이 알아서 잘 이끌어줬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햇볕이 너무 강하면 잠시 쉬어갔고, 몬스터를 만나면 우리가 처치했다.

“흐흐흐.”

“......?”

나는 행군 중에 가끔씩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는데, 도린 형제가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편지를 전해주면서 어떤 말을 해야 좋을까?

온 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즐거운 상상이다.

“또 음흉한 생각 하셨나요? 아휴 정말.”

“......아니, 너는 대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음흉한 마법사...? 꺄하핫!”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하루를 꼬박 걸어서, 다음날 오후에 마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즉, 마탑을 떠난 지 사흘 만에 복귀한 것이다.

들어보니 다른 팀들은 대부분 돌아온 상태였다. 아직 복귀하지 않은 팀도 소수 있었지만, 계속 기다릴 수는 없으니 내일 강당에 모여서 복귀한 팀들의 성과를 공개한다고 한다.

“드디어 도착했어요!”

“너무 피곤해~.”

“앞으로 사막은 쳐다보지도 않을 겁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얼른 올라가서 쉬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제자들과 함께 마탑 2층에 있는 하급 제자 숙소로 올라갔다.

‘중급 마법서는 내일 받으러 가야겠군.’

강당에서 성과를 공개하기 전까지는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을 공작가로 가져갈 수 없다. 오늘 하루는 그 동안 밀린 잠이나 잘 생각이다.

***

시원한 방, 푹신한 침대.

“아아, 간만에 개운하게 잤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회중시계를 확인해보니 성과 공개까지 아직 여유가 좀 남아있었다. 나는 대야에 담겨있던 물로 간단히 세수를 한 뒤, 데스웜의 핵이 담긴 자루를 챙겨서 공용 휴게실로 나갔다.

그곳엔 이미 하급 제자 몇 명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하아... 우리 팀은 망했어... 이틀을 돌아다녔지만 한 마리밖에 잡지 못했거든. 분명 꼴찌일거야....”

“정말? 우리도 마찬가지인데... 결국엔 선배님이 짜증만 내시는 거 있지? 로지는 어땠어? 그 모험가님이랑 같은 팀이었잖아. 좋았어?”

“에헴~. 엄청 좋았지. 다양한 경험도 했고. 얼마나 잡았는지는 이따가 강당에서 직접 확인하라구~.”

팔짱을 끼고 한껏 거드름을 피우던 로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사뭇 음흉한 웃음이었기에, 괜히 불안해진 나는 조용히 검지손가락을 들어 입에 갖다 댔다. 그리고 눈으로 말했다.

[도린 마을에서 있었던 일 소문내지 마!]

라는 의미였다.

로지는 여전히 음흉하게 웃으며 고개를 슬며시 끄덕거렸다.

썩 마음이 놓이는 반응은 아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나는 휴게실에 있는 하급 제자들과 가볍게 인사만 나누고 일층으로 내려갔다.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강당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제자들이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니콜스가 입장했고, 곧 성과 공개가 시작되었다.

“호명된 팀은 성과물을 들고 앞으로 나오도록 해라.”

그냥 개수를 파악하고 니콜스가 발표하는 방식일 줄 알았는데, 팀원들이 직접 단상에 올라가서 모두에게 데스웜의 핵을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에이... 번거롭게.’

빨리 끝내고 공작가로 가서 보상으로 교환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듯했다.

“중급 제자 채드가 인솔하는 팀!”

니콜스가 크게 외치자, 제자 네 명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품에서 붉은 핵 두 개를 꺼내 머리위로 올려보였다.

“두 마리를 처치했구나. 수고했다.”

그들은 자신을 짧게 치하하는 니콜스에게 핵을 넘겨주고 자리로 돌아왔다.

성과 공개는 계속 그런 식으로 진행됐다.

핵을 한 개밖에 구하지 못한 팀은 니콜스에게 꾸중을 들었고, 두 개는 ‘수고했다’, 세 개는 ‘잘했다’라는 칭찬을 받았다.

아직까지는 세 개가 최고 성과였다.

“중급 제자 파이톤이 인솔하는 팀!”

파이톤이 호명되자 나는 괜히 미안해짐을 느꼈다. 내가 본의 아니게 그들의 데스웜 한 마리를 스틸한 이력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은 단상으로 올라가서, 자루에 담긴 핵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저, 저것 좀 봐...!”

“대체 몇 개나 가져온 거야?”

“역시 파이톤 선배님이셔!”

“나도 저 팀이 됐어야 하는데!”

파이톤과 그의 팀원들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들고 있는 데스웜의 핵은 총 다섯 개. 역시 파이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콜스도 전에 없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이 닳도록 그를 칭찬했다.

그들은 그렇게 잠시 환호를 받다가 내려왔고, 니콜스는 곧 다른 팀을 호명했다.

“모험가 엘이 인솔하는 팀!”

“오, 우리군. 빨리 올라가자. 나 바쁘다.”

“네!”

나는 로지, 로사, 핀과 함께 단상으로 올라갔다. 팀원들은 목에 깁스라도 한 것 마냥 고개를 뻣뻣하게 세우고 있었다.

나는 자루에서 일반 데스웜의 핵을 꺼내서 로지에게 건네주고, 양손으로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을 꺼내들었다.

“읏차...!”

내 머리위에 있는 붉은색의 거대한 원형 핵.

그것을 본 파이톤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프, 플레임 오브...?”

뭔 미친 소리야.

“저건... 뭐야?”

“데스웜의 핵 맞아?”

“뭐가 저렇게 커?”

“설마...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

제자들의 수군거림으로 장내가 술렁였다.

니콜스도 잠시 당황한 듯 멍하니 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팔 아픈데 언제까지 그렇게 바라보고만 계실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야만인 수백 명을 한 번에 얼려버렸다는 남부 학살자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좋지 못한 결과를 불러올 테니 그냥 참았다.

그렇게 양팔을 들고 벌서듯 서있던 중,

─짝. 짝. 짝.

갑자기 들려온 누군가의 박수 소리에 의해 술렁임이 멎고 니콜스도 정신을 차렸다.

이 고마운 소리를 내준 것이 누군가 싶어서 눈을 이리저리 굴려보니, 강당 구석에 기대고 서있는 클로이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곧 여기저기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 박수라는 게 누구 하나가 먼저 치기 시작하면 쉽게 번진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와아아아!!

─나도 커서 모험가가 될래요!!

니콜스가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껄껄껄. 자네는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 자이언트 데스웜을 찾아내서 처치할 줄이야.”

“아, 저희가 찾은 건 아니고 그놈이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내가 데스웜의 핵을 다시 자루에 집어넣으며 대답하자, 니콜스는 내 옆에 서있는 하급 제자들을 슥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이 아이들은 자이언트 데스웜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을 터인데... 자네가 혼자 처치했나?”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 얼음송곳? 그걸 아주 잘 쓰더군요. 역시 청색 마탑의 제자다웠습니다.”

칭찬은 공짜다. 실제로 제자들의 도움도 받았으니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

“자네는 또 그러는군?”

“예?”

“껄껄. 아무것도 아닐세. 고생 많았네.”

그렇게 말한 니콜스는 제자들을 바라봤다.

“너희들도 정말 수고했구나. 이번 평가에선 너희가 최고점을 받게 될 거란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스승의 칭찬에 매우 감격한 제자들은 연신 허리를 숙여댔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성과 공개가 마무리됐다.

***

─달그락달그락

“도착했습니다요!”

“아, 예. 감사합니다.”

나는 삯을 지불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내린 곳은 해리스 공작성 앞. 성채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병사뿐 아니라 고급스러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성문을 쉴 새 없이 들락날락 거리고 있었다. 공작쯤 되면 다른 귀족들이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다.

성문으로 다가가니 경비병이 나를 막아섰다.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을 보상으로 교환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루를 슬쩍 열어서 경비병에게 핵을 보여줬다.

“헛!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는 나를 성안으로 안내했다.

깊이 들어가진 않았고, 입구 근처에 있는 응접실이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소파에 앉으니 응접실에 대기하고 있던 하녀가 차를 한잔 내왔다. 그것을 반 정도 마셔갈 때쯤이었다.

─절그럭절그럭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기사가 시종 하나를 데리고 응접실로 들어왔다.

“당신이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을 가져오신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일단 앉으시죠.”

“예.”

그가 내 맞은편에 앉으며 착석을 권했다. 나도 그를 따라서 자리에 앉았다.

“저는 해리스 공작님의 기사 알버트 해리스입니다.”

“아, 저는 모험가인 엘이라고 합니다. 말씀을 낮추시지요.”

알버트 해리스? 공작의 아들인가.

“그래? 일단 핵을 보여주겠나.”

나는 테이블 위에 자루를 올려놓았다.

그는 그걸 열어서 확인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확인했다.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나? 목록은 알고 있나?”

“예. 중급 마법서 콜링 썬더를 받고 싶습니다.”

“알았다. 어이, 가서 콜링 썬더를 가져와라.”

그가 고갯짓하며 명령하자, 시종이 잽싸게 튀어나갔다. 빠른 일처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도튼의 모험가들과 함께 잡았나?”

“아, 저는 도튼의 모험가길드 소속이 아닙니다. 다른 도시에서 왔습니다. 데스웜은 마탑의 제자들과 함께 잡았고요.”

“그런가. 마탑에서 인원을 보냈다는 얘기는 나도 들었지. 그럼 너는 어떤 도시에서 왔나?”

“케른헴입니다.”

“호오.”

마탑의 제자들과 함께 잡았다는 소리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더니, 케른헴에서 왔다고 하니 조금 놀란 기색이었다.

“버려진 도시에 자이언트 데스웜을 잡을 정도의 실력자가 있을 줄은 몰랐군.”

“과찬이십니다. 마탑 제자들의 도움 덕분이죠.”

“뭐,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가 중요하지. 네 행동이 도튼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왔으니 내 감사를 표하지.”

상당히 쿨하군.

그렇게 그와 몇 마디의 대화를 더 나누고 있으니, 곧 시종이 마법서를 들고 돌아왔다.

“받아라. 콜링 썬더와 2골드다.”

“오오, 감사합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도록.”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응접실에서 떠났다.

나도 경비병의 안내를 받아 다시 성 밖으로 나왔다.

“흐흐흐. 얼른 마탑으로 돌아가서 읽어야지.”

이걸로 마법서 획득은 끝냈다. 이제 다시 꿈속에서 마법을 얻을 궁리를 해야 할 때다.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오는 것은 3일 후.

누구의 꿈에 들어갈지는 이미 결정했다.

그때까지 빌드업만 잘 해두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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