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웜 (3)
모래언덕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수많은 모래알들이 흩어지며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사사사사사사
“이, 이런 미친...!”
사막임에도 다가오는 진동이 느껴졌다.
오아시스 표면에 파동들이 일어날 정도였다.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이언트 데스웜.
“다들 흩어져!”
일반적인 데스웜을 대비할 때처럼 한 발짝 물러나는 정도로 그친다면, 분명 한입에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나는 일행들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자리를 황급히 벗어났다.
─사사사사사사... 콰앙!!
진동이 점점 거세지는가 싶더니, 원래 우리가 모여 있었던 자리에서 거대한 핏빛 벌레가 입을 쩍 벌리고 튀어나왔다.
“이, 이 새끼... 흙을 퍼먹다니!”
우리는 이미 자리를 피했었기에, 놈의 주둥아리엔 애꿎은 한 무더기의 흙만이 들어있었다.
“캬아아아!”
녀석은 흙을 삼켜버리고 흉포하게 울부짖었다.
‘이건 너무 크잖아....’
데스웜을 찾는 속도가 더뎌서, 차라리 자이언트 데스웜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실물을 마주하니 그런 마음은 쏙들어갔다.
몸의 둘레가 화물트럭 정도는 되어보였고, 길이는 기차 4~5칸 가까이 되는 듯했다.
놈을 검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이쑤시개로 찌르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런 두께라면 윈드 블레이드로도 절단하기 어려워보였다.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 엄두도 안 나는군.’
일반 데스웜에게 그랬던 것처럼, 핵을 얻기 위해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빠르게 치명상을 입혀 제압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일단은... 짜릿한 맛 좀 봐라!”
─치직. 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4회]
전기의 화살을 생성해서 날려 보냈다. 스파크를 튀기며 날아가는 화살은, 녀석의 흉물스러운 주둥이 아래쪽에 적중했다.
움찔.
평범한 데스웜이 감전되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던 것과는 달리, 녀석은 마법에 맞은 부위 쪽으로 몸을 잠시 웅크렸을 뿐, 여전히 몸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역시... 덩치가 너무 커.’
보편적으로 덩치가 클수록 전기저항도 높다. 그렇기에 전격 마법이 충분히 몸으로 퍼져나가지 못하는 듯했다.
전기파리채에 닿은 모기는 전신이 바삭하게 튀겨지지만, 인간은 닿은 부위만 살짝 따끔한 정도에서 그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캬아아아!”
“제, 젠장. 괜히 화만 돋궜잖아!”
자이언트 데스웜이 입을 크게 벌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제각각 꿈틀거리는 거대한 이빨은 마치 작동 중인 분쇄기 같았다.
나는 기겁하며 몸을 내뺐다.
─퍼석!
모래가 비산한다.
녀석은 빈 땅을 가격하고는, 그대로 땅속으로 대가리를 밀어 넣었다.
─사사사사... 쾅!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해 꼬리가 아직 지면에 남아있는데도, 땅을 헤집던 대가리는 새로운 자리에서 튀어나왔다.
“다들 계속 움직여! 같은 자리에 있으면 안 돼!”
“네,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주변을 어지럽게 뛰어다녔고, 자이언트 데스웜은 그런 우릴 노리며 땅속을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다.
─사사사사... 쾅! 쾅!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문제는 뿅망치가 두더지를 잡는 것이 아니라, 두더지가 뿅망치를 잡는다는 것이었다.
“으아아아!”
“꺄악!”
“일단 꼬리에라도 마법을 갈겨!”
놈의 몸통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땅속으로 파고들어도 꼬리는 지면에 자주 노출됐다. 우리는 정신없이 도망 다니면서도, 꼬리에 마법을 날려댔다.
─슈우웅
─파지직!
─사삭!
녀석의 꼬리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가며 붉은 체액이 흘러나왔다.
그래봤자 고작 꼬리일 뿐이었기에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통증은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자이언트 데스웜이 돌연 멈춰서, 나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렸다.
“......? 아!”
나는 급히 쉴드를 전개했다. 곧, 놈의 주둥이에서 황갈색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치이이익
“끄륵!”
주변에 있던 풀과 나무들이 매캐한 연기를 발생시키며 부식되었고, 나무에 묶여있던 낙타 역시 순식간에 뼈가 보일 정도로 녹아내렸다.
내가 한턴 버텨내는 사이에, 제자 삼인방이 마법을 캐스팅해서 자이언트 데스웜에게 날렸다.
─푹! 푹! 푹!
팔뚝만한 얼음송곳 세 개가 쏜살같이 날아와 녀석의 목, 사실 대가리 빼고는 다 똑같이 생겨서 저걸 목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근처에 틀어박혔다.
놈이 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휙 돌렸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준비했다.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1회]
바람이 모여들어 얽히고설켜서 칼날을 형성해냈다. 나는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그것을 발사했다.
─푸슉!
“젠장... 퉤! 역시 역부족이었나.”
나는 입안에서 씹히는 모래를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분명 윈드 블레이드가 정통으로 직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목덜미 부분에 길쭉한 자상만 입혔을 뿐, 절단해내는 데는 실패했다.
“캬아아아아!!”
놈이 피를 철철 흘리며 포효했다.
녀석은 몸통을 지상에 노출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다시 땅속으로 파고들어갔다.
─사사사사... 쾅!
이전과 같은 공격패턴이 반복됐다.
놈은 땅속에서 튀어나오고, 우리는 도망 다녔다.
‘...이래서는 끝도 없겠는데.’
주구장창 꼬리만 때려봤자 녀석은 죽지 않을 것이었다. 오히려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우리가 먼저 지칠 가능성이 높았다.
‘본체에 데미지를 누적시켜야겠어.’
사막 한복판에서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쓰고 탈진할 수는 없었다. 추후 데스웜이라도 나타난다면 제자들만으로는 나를 온전히 지키기 어렵다.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누적시키려면 역시 불태우는 게 가장 좋겠지.
─사사사사....
발밑으로 놈이 다가오는 진동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고, 쉴드를 전개했다.
─콰앙!
땅속에서 튀어나온 자이언트 데스웜의 날카로운 이빨과 내 쉴드가 맞부딪혔다. 그 반탄력에 의해 내 몸은 공중으로 튕겨져 나갔다.
나는 날아가는 와중에, 녀석의 입안을 향해 마법을 쏘아 보냈다.
─화르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1회]
커다란 불덩어리는 녀석의 대가리에 불을 내뿜으며, 정확히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것과 동시에, 나는 지면을 향해 추락했다.
털썩- 꽤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부드러운 모래 덕분에 충격은 크지 않았다.
자이언트 데스웜은 아무소리도 내지 못하고, 입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지가, 죽은 자도 되살려낸다는 금단의 주문을 외워버렸다.
“와아... 해치웠나?”
“그, 그런 말 하지 마!!”
하지만 이미 늦었다.
불타며 몸부림치던 데스웜이 오아시스를 향해 뛰어든 것이다.
─풍덩!! 쏴아아...
그 여파에 의해 물이 튀어오르며, 마치 비가 내리듯 주변에 흩뿌려졌다.
놈은 오아시스 안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곧 몸 안에 있던 불이 꺼져버렸는지, 녀석이 우릴 바라보며 포효했다.
“캬아아아아!”
“제, 젠장! 하필 물이 있어서....”
분명 플레임 오브는 유효한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지만, 오아시스 때문에 망쳐버렸다.
잠깐.
아니지.
오아시스?
“다들 물가에서 멀리 떨어져!”
나는 그렇게 외치며 오아시스로 달려갔다.
“물은 너만 이용할 줄 아냐? 흐흐흐.”
물은 피부의 전기 저항을 크게 감소시킨다.
놈은 아예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상태.
전격 마법의 효과가 극대화 된다는 뜻이다.
─파지직!
─치직. 지지직.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8회]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3회]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4회]
나는 온갖 종류의 전격 마법을 연달아 캐스팅했다. 놈에게 직접 날리기도 하고, 사거리가 짧은 마법은 물에다 쏟아 부었다. 그렇게 계속 마법횟수를 소진했다.
녀석은 오아시스 안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격렬한 댄스에 내 얼굴까지 물이 튀었다.
“아주 좋아죽네 그냥.”
물의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0회]
이것으로 전격 마법은 전부 소모했다.
“캬아아아....”
“이... 끈질긴 놈.”
그럼에도 자이언트 데스웜은 살아있었다.
다만 이전과 같은 위용은 사라지고, 힘이 상당히 빠진 듯 보였다.
“어어, 저거 도망가요!”
녀석이 오아시스를 빠져나와 다시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황급히 마법을 캐스팅해 날렸지만, 이미 대가리는 땅속으로 들어간 뒤였다.
놈이 모래언덕을 일으키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사사사사사사
“안 돼! 내 중급 마법서! 일단 따라가자!”
우리는 놈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놈이 움직일 때마다 모래언덕이 생겨났기 때문에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달리다가, 내 뒤를 따라오는 로지가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사막에서 달리는 것은, 평지에서 달리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허, 헉. 그런데 이렇게 따라간다고 해서 잡을 수가 있나요? 땅속에서 안 나오면 방법이 없잖아요.”
“.......”
그건 그랬다. 녀석이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상은 공격할 도리가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저놈을 표면으로 나오게 하려면... 아!’
땅속에 숨어있어도 모래언덕 때문에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끌어낼 방법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달리는 채로 뒤를 돌아보며 제자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아직 공격 마법 남아있지? 내가 놈을 건져올릴 테니까, 그때 바로 공격해.”
“네? 그게 무슨...?”
“그냥 지금 공격 마법 준비해!”
그리고 바로 모래언덕을 향해 마법을 캐스팅했다.
─스스스... 쾅!
[금일 사용 가능한 ‘랜드 라이즈’ - 4회]
사막의 모래가 솟아오르며, 데스웜의 몸도 일부분 튀어 올랐다. 나는 연달아서 같은 마법을 사용했다.
─스스스... 쾅! 쾅! 쾅! 쾅!
마법이 발동될 때마다 조금씩 더 튀어 나오던 녀석은, 마지막 랜드 라이즈와 함께 지면위로 온전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이다! 쏴! 쏴! 쏴!”
내가 목이 터져라 외치자, 제자 삼인방이 각자 준비한 마법을 날려 보냈다. 나도 녀석을 완전히 끝장내기 위해, 마지막 남은 플레임 오브를 캐스팅해 날렸다.
─화르르륵!
녀석의 몸이 다시 불타올랐다.
놈은 그 상태로도 열심히 도망갔다. 다만 다시 땅을 파고들 기운까진 없는 모양인지, 모래벌판 위를 기어서 도망 다녔다.
“아니, 진짜 왜 이렇게 안 죽어!”
역시 체급이 깡패다.
목숨도 질기고, 워낙 거대했기에 성의 없이 기어 다니는 것처럼 보였는데도 꽤나 빨랐다.
하지만 곧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죽을 것 같았기에, 우리는 더 이상의 마법을 낭비하지 않고 그냥 쫓아가기만 했다.
─탓탓탓!
노을이 저물고 어둠이 내리깔리기 시작할 때쯤, 자이언트 데스웜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허억... 헉. 저, 정말 끈질겼네요....”
“너, 너무 힘들어~.”
“고, 고생하셨습니다. 엘 님.”
한참을 달려왔기에, 다들 자리에 주저앉아서 숨을 돌리며 말했다.
“아아, 너희도 고생 많았다.”
나는 그들을 치하하고, 데스웜의 사체로 다가갔다. 그리고 모래를 뿌려서 대가리에 붙은 불을 끈 다음, 검으로 갈라내기 시작했다.
핵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일반 데스웜과 같은 위치에 있었는데, 대신 크기가 열 배는 넘어보였다.
들어보니 꽤나 묵직했다.
“흐흐흐. 이것이 중급 마법서의 무게인가.”
핵을 들고 제자들에게 다가가니 로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 엄청 크네요? 그 정도 크기라면 배낭에 들어가지도 않겠... 어? 배낭? 그러고 보니 저희 배낭 아까 다 녹아버리지 않았나요?”
그랬다. 아까 오아시스에서 전투하던 중, 데스웜의 산성액에 의해 낙타와 함께 우리의 짐도 모두 녹아버린 것이었다.
“미, 미친. 생각해보니 그러네.”
우리는 오아시스에서 데스웜을 따라 한참을 남쪽으로 달려온 상태다. 하룻밤 만에 도시까지 돌아갈 수는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어두워져서 괜찮지만, 내일 찾아올 사막의 낮을 식수와 식량 없이 버텨내기도 만만치 않다.
“곤란하네... 오아시스를 다시 찾아가기도 어려울 텐데....”
“그럼 차라리 남쪽으로 더 내려가는 건 어떠세요?”
내가 고민에 빠져 중얼거리자, 로지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남쪽? 거긴 왜? 남쪽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사막이 나온다며.”
“제가 마탑에 있는 지도에서 봤는데, 서로 붙어있는 건 아니에요. 두 사막 사이에 평탄한 대지도 있고, 마을도 있어요. 이 정도로 내려왔으면... 아마 조금만 더 가면 나올 걸요?”
“오, 그래? 마을이 있어? 다행이네.”
그럼 로지 말대로 일단 남쪽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마을에 잠깐 들러서 식량을 구하고 도시로 돌아가면 되니까.
나는 망토를 벗어서 데스웜의 핵을 감싼 뒤, 어깨에 둘러메며 말했다.
“그렇게 하자 그럼. 근데 되게 특이하네? 그런 척박한 곳에 마을이 있다니. 혹시 마을 이름이 뭔지 알아?”
두 개의 사막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니. 상당히 특이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도 분명 특이하겠지.
“네. 도린 마을이요. 밑에 있는 사막이 도린 사막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