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웜 (2)
“와! 이게 바로 서부 사막...!”
우리는 교역로와 사막 사이의 숲에서 하루를 보내고, 해가 뜨자마자 사막의 경계로 이동했다.
어제 그곳에서 얻은 소득은 데스웜 한 마리뿐.
사실 더 잡을 수도 있었는데,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청색 마탑에서 나온 다른 팀들과, 해리스 공작가의 보상을 노리고 나온 모험가와 용병들 때문이다.
그들도 척박한 사막보다는 교역로 부근에서 데스웜을 찾는 것을 선호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사막 행을 택한 것이다.
“와... 사막... 진짜 들어가기 싫게 생겼다.”
눈앞에 펼쳐진 건 정말로 모래뿐이었다.
인터넷 사진이나 영상에서 보이던 낭만 따위는 없었다. 건물도, 나무도, 사람도 하나 없이 그저 황량한 모래언덕만 넘실거렸다. 화성도 이것보단 볼거리가 많을 것 같았다.
“에이, 엘 님. 왜 갑자기 약한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끝이 보이질 않는데... 사막을 건너면 뭐가 나오지? 너희 혹시 알아?”
“으음. 저도 가본 적은 없지만, 이대로 남쪽으로 내려가면 또 다른 사막이 나온대요.”
“미, 미친.”
사막 밑에 또 사막이라니. 정신 나간 곳이다.
“일단은 저기서 식수부터 채우고 들어가자.”
사막의 경계면이다 보니, 사막에서 필요한 잡다한 물품이나 식수를 파는 상점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구매했다.
어제 마셔버린 식수를 채우고, 야영시 모래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천막을 치기 위한 용품을 샀다.
히잡처럼 생긴 천도 팔았는데, 바닥에서 반사되는 열이나 자외선으로부터 얼굴을 가리려면 필요할 것 같아서 인원수대로 구입했다.
“로사, 너 그거 그렇게 두르니까 완전 사막 유목민처럼 보여!”
“너도 마찬가지거든? 꺄르르.”
“장난 그만치고 이리 와봐. 낙타를 한 마리 빌려야겠어.”
이곳에서는 낙타도 대여해주고 있었는데, 나중에 반납하지 않으면 보상해야 한다고 한다. 내 모험가패로는 신분 보증이 되지 않아서, 청색 마탑 소속인 로지의 이름으로 빌렸다.
내가 낙타의 고삐를 잡아당기며 끌어내는 모습을 보던 로지가 의아한 듯 물었다.
“엘 님, 그런데 왜 한 마리만 빌리는 거예요? 네 마리를 빌려서 각자 타고 다니면 편하지 않을까요?”
“전투할 때 걸리적거리잖아. 무엇보다 데스웜이 다가오고 있는지 감지할 수도 없고.”
일행 모두 낙타 위에 올라타 있으면 땅의 진동을 느끼기 어렵다. 데스웜의 공격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사막에선 진동이 적게 전달되기 때문에, 더욱 주의할 필요가 있다.
“낙타는 짐을 싣는 용도로만 쓸 거야. 너희도 배낭 다 여기에 올려.”
내가 배낭을 올리며 말하자, 제자들도 자신의 짐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동안 낙타는 멍청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다 됐어요!”
“이제 출발해도 될 것 같아요~.”
“데스웜을 하나라도 더 찾아서, 이번 실습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역시 성적이 걸려있다 보니 다들 의욕이 넘쳐흘렀다. 어느새 더위는 잊어버린 모양이다.
“좋아! 바로 그 자세다! 가보자고!”
우리는 그렇게 푸석푸석한 모래벌판에 발을 내디뎠다.
***
피부가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뙤약볕.
“으으....”
“너무 더워....”
우리는 사막에 들어선지 불과 반나절 만에, 출발할 때의 의욕은 온데간데없이 좀비처럼 흐적흐적 걸어 다니고 있었다.
“머리도 뜨겁고 발바닥도 뜨거워....”
사막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 점은 바닥도 뜨겁다는 것이다. 위아래에서 열이 뿜어져 나오니 두 배로 힘들었다.
“물을... 물을 마셔야겠어요....”
로지가 허리춤을 더듬거리며 수통을 꺼내들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마. 그나저나 어디 앉아서 쉴 그늘도 없고, 차라리 몬스터라도 나오면 좋겠네. 싸우면서 더위를 잊을 수 있게 말이야.”
“우읍, 하-! 그러게요. 사막에 사는 몬스터들도 꽤 있다고 책에서 봤는데, 아직까진 안 보이네요.”
그녀가 볼에 한가득 머금고 있던 물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하여튼, 내 모험가 인생에서 이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몬스터를 찾아다닌 적은 처음이다. 우리의 진동을 느끼고 나타날 때까지 무작정 걷기만 해야 한다니.”
무척 비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보상으로 걸린 중급 마법서만 아니었다면, 이딴 일은 진작 때려치웠다.
이 페이스대로라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차라리 자이언트 데스웜을 마주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팀들도 결국 사막으로 오겠죠?”
“글쎄. 한 마리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계속 교역로 근처에 죽치고 있을 수도 있겠지.”
“에이~. 마탑의 제자들을 어떻게 보시는 거예요. 다들 점수를 얻으려... 아앗! 전갈이다!”
별안간 로지가 전방에 있는 모래언덕을 가리켰다.
그곳엔 정말 전갈이 있었다. 사람보다 커다란 전갈. 스콜피온이었다.
“엘 님! 저건 저희가 처리할게요!”
“맞아요!”
“맡겨만 주십시오!”
“......? 그, 그래라.”
왜인지 다들 너무 의욕적으로 외쳤기에 그러도록 허락했다.
스콜피온은 단단한 껍질과 독침만 조심하면 되기 때문에, 원거리에서 마법으로 상대하면 어렵지 않다고 한다.
─사삭!
─사삭!
─사삭!
팔뚝만한 크기의 얼음송곳 세 개가 스콜피온에게 작렬했다. 다들 마법 적중률이 괜찮았기에, 송곳은 모두 대가리 근처에 박혔다.
곧 스콜피온의 숨이 끊어졌다.
제자 삼인방은 즉시 달려가서 얼음덩어리를 뽑아내고는, 스콜피온의 체액을 슥슥 닦아내서 자신의 목덜미에 가져다댔다.
“아아, 너무 시원해!”
“엘 님이 어제 왜 이러셨는지 알 것 같아~.”
“이제야 좀 살겠다.”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전투할 때 외에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으니, 이때다 싶어서 얼음 마법을 사용한 것이었다.
“뭐야, 너희. 나더러 더럽다고 할 땐 언제고?”
“다 보고 배운 거죠. 에헤헤.”
로지가 배시시 웃으며 넉살좋게 받아쳤다.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쪽으로 얼마간 걷다보니 데스웜 한 마리가 땅속에서 튀어나왔고, 그건 내가 직접 처리했다.
─서걱!
“이걸로 두 마리째군.”
나는 윈드 블레이드에 의해 깔끔하게 절단된 데스웜의 대가리에서 핵을 꺼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제자들이 아쉬워했다.
“아앗! 캐스팅 속도가 너무 빨라요 엘 님!”
“아쉽다~. 얼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으나,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정오를 지나며 더위가 정점에 달했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다시 추욱 늘어져서 걸었다.
“으으.... 할 수만 있다면 이 주변을 모조리 꽁꽁 얼려버리고 싶네....”
로지가 그런 터무니없는 희망사항을 말하자, 로사가 꺄르르 웃으며 나무랐다.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로지. 사막을 얼리는 건 마탑의 고위마법사님들도 못하실걸? 스승님이라면 모를까.”
“여, 역시 그렇겠지...?”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물었다.
“스승님이라면... 니콜스님을 말하는 건가?”
“네, 맞아요.”
“니콜스님이 사막을 얼릴 수 있다고?”
얼핏 들어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니콜스가 남부 학살자라고 불릴 만큼 강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막을 얼리는 것은 강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지 않은가?
“전체를 얼린다는 말은 아니구요~. 일정 범위에 얼음 폭풍을 일으키실 수는 있어요.”
“맞아! 남부 전쟁 때에는 그 마법 한 방으로 야만인 수백 명을 얼려버리셨다고 하던데.”
“수, 수백 명을 동시에? 와....”
감탄이 절로 새어나왔다.
이건 오브나 체인 라이트닝 같은 ‘범위 마법’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는, ‘광역 마법’이라고 봐야했다. 수백 명을 얼릴 정도면, 범위가 운동장 크기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하신 분이셨구나....”
“그럼요~.”
“대단하시죠!”
제자들은 마치 자신이 칭찬받은 것처럼 좋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마법이지만... 어쨌든 현실은 가혹하네. 해가 좀 가라앉을 때까지는 천막을 치고 쉬는 게 나을 것 같다. 이대로는 도저히 무리야.”
해가 정중앙에 떠있어서, 계속 움직이다가는 누구 하나라도 열사병에 걸려 쓰러질 것 같았다.
어차피 데스웜은 시각보다는 촉각에 의존해서 찾아야하니, 태양빛이 필수는 아니었다.
“와아!! 좋아요!”
우리는 그렇게 천막을 치고 태양이 약해지길 기다렸다.
***
조잡하게 설치된 천막 안.
천막 안에 있다고 해서 시원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거기에 두면 안 될 텐데, 로지~.”
“아앗, 한 수만 물러줘!”
제자들은 한가롭게 체스를 두고 있었다.
여기까지 체스를 들고 왔다는 사실이 몹시 놀라웠으나, 부피와 무게가 적게 나가는 간이 체스였다.
나도 심심해서 그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안 돼~. 체크메이트.”
“너무해... 다시 한판 해!”
로지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재대국을 요청했지만, 이젠 슬슬 다시 움직여야 할 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해. 해도 기울어가니 다시 나가야지.”
“으으... 딱 한판만 더 하면 안돼요? 한 번도 못 이겨서 너무 억울해요!”
“여기 놀러온 거 아니잖아. 얼른 일어나. 내가 나중에 체스 필승법 알려줄게.”
“앗, 정말요?”
그녀가 반색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뒤이어 나머지 제자들도 일어났고, 우리는 천막을 철거한 뒤 다시 데스웜을 찾아 나섰다.
아직 해가 떠있는 늦은 오후였지만, 정오 무렵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보니, 이상한 광경이 우리의 눈에 들어왔다.
“.......”
사막 저편에 비현실적으로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작은 숲처럼 모여서 일렁이고 있는 나무들.
사막 여행자들을 죽음으로 유혹한다는 오아시스 신기루였다.
“오아시스가 있는 모양이다.”
“오아시스요? 와아, 그럼 빨리 저기로 가 봐요.”
“저기에 있는 게 아니야. 저건 신기루일 뿐이고, 오아시스는 근처 어딘가에 있는 거지.”
실제 오아시스는 신기루가 보이는 곳에 있지 않다. 빛이 굴절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위치가 왜곡되어 있다.
“......근데 데스웜도 물을 마시나?”
위치도 모르는 오아시스를 반드시 찾아다닐 필요는 없지만, 데스웜도 물을 마신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서 죽치고 있으면 알아서 찾아오는 놈들이 있을 테니까.
“글쎄요. 생명체니까 마시지 않을까요?”
“흐음... 그런가.”
한번 찾아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차피 찾는 동안 걸어 다녀야하는 건 마찬가지니.
“그럼 오아시스를 찾아보자.”
우리는 그렇게 오아시스를 찾아 나섰다.
기존의 정처 없던 걸음걸이에서 벗어나, 높은 모래언덕위에 올라가서 주변을 살피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해가 저물어가며 노을이 사막을 붉게 물들었을 무렵,
“엘 님! 저기에 오아시스가...!”
신기루가 아닌 진짜 오아시스를 발견했다.
호수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규모가 제법 컸으며, 물이 닿는 경계면을 따라서 나무와 풀들이 자라있었다.
어쨌든 사막에서 물을 만났다는 사실에 감격한 우리는 낙타를 이끌고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다.
“여기, 물 좀 보세요! 엄청 깨끗해요!”
물가에 꿇어앉은 로지가 양손을 모아 물을 떠올리며 감탄했다.
“그래도 그냥 마시면 안 돼. 한번 끓여서 마셔야해.”
겉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오랜 세월 동안 사막의 땡볕을 받은 물이 깨끗할 리가 없다. 온갖 미생물과 기생충의 온상일 것이다.
“그래요? 에잇.”
로지는 손에 머금은 물을 땅바닥에 뿌려버리고, 그대로 자리에 드러누웠다. 그렇게 잠시 누워있던 그녀는, 갑자기 자세를 고쳐서 땅바닥에 귀를 가까이 댔다.
“뭐야, 왜 그래? 뭔가 소리라도 들려?”
“네... 어떤... 목소리가 들려요....”
그녀가 미간을 좁히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마 지하에 뭐가 있는 건가?
“목소리? 무슨 목소리?”
“엘 님 목소리요.”
“......아오.”
“꺄하핫! 장난이에요. 사실 뭔가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귀를 대봤는데, 제가 착각했나 봐요.”
그렇게 실실 웃던 로지는, 돌연 안색을 굳히며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저, 저, 저거... 뒤에....”
“뭐, 왜 또. 이번엔 안 속는다.”
나는 꿈쩍도 안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다른 제자들도 로지와 같은 곳을 가리켰다.
“엘 님! 저기 좀 보세요!”
“모래언덕이 움직입니다!”
뭐?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
노을에 붉게 물든 높다란 모래언덕이, 정말로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정확히는 모래언덕이 아니라,
땅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