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43화 (43/200)

데스웜 (1)

시끌벅적한 도튼의 모험가 길드.

“와아. 모험가 길드는 처음 와 봐요!”

“엄청 활기차다~. 그런데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계시는 분들이 많네요?”

안으로 들어서자 로지와 로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모험가들이 아침에 일감을 기다리며 맥주 한잔 하는 거야 그리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곳은 유독 비율이 높았다. 거의 절반가량은 술잔을 들고 있었다.

높은 기온 때문에 나타난 현상 같았다. 원래 더우면 시원한 맥주가 땡기는 법이니까.

“너희들 다 성인이지? 우리도 한잔씩 하고 있자. 안 그래도 갈증 나던 참이었는데 잘 됐네.”

“네??”

“술이요?”

“아무리 그래도 실습 중에 술은 조금....”

하급 제자 삼인방이 난색을 표했다.

“어허, 이것도 다 실습의 연장선이야. 모험가들에게 정보를 얻기에는 이 방법이 최고거든. 뭐, 싫은 사람은 안 마셔도 되고.”

적당히 자리 잡고 맥주를 마시고 있으면, 호사가 모험가가 술잔을 들고 알아서 찾아온다.

“로사, 우리도 한잔씩만 마셔볼까?”

“그러자~.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마시겠어.”

“실습의 연장선이라고 하시니 저도....”

결국 모두 마시기로 했다.

우리는 길드 구석에 마련된 주류 판매 코너에서 맥주를 한잔씩 사들고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둘러보며 노련해 보이는 모험가가 있는지 살폈다.

그때, 벌컥거리는 소리가 삼중창으로 들려왔다. 제자들이 술을 들이키는 소리였다.

“푸핫-! 너무 시원해!”

“마탑에서 몰래 나와서 마시기만 하다가, 이렇게 당당하게 먹으니까 색다르네~.”

“크으으.”

그들은 단숨에 잔을 반이나 비워버렸다.

뭐야. 처음엔 내빼더니 잘만 마시는군.

“야야, 너희들 좀 천천히 마시─”

“오! 화통하게들 드시는군?”

지나가던 모험가 하나가 멈춰서 우릴 바라보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자신의 상체만큼 거대한 도끼를 바닥에 쿵- 하고 떨구며 말을 이었다.

“못 보던 얼굴들인데... 타지에서 오셨나?”

“저는 타지에서 왔습니다. 이쪽은 청색 마탑의 제자들이고요.”

“...마탑의 제자? 이거 귀하신 분들이었구먼. 혹시 나도 합석해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앉으시죠.”

들기도 힘들 정도로 무거워 보이는 도끼를 사용하는 걸로 보아 B급은 되는 듯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는 큰 소리로 맥주를 주문하고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형씨는 모험가처럼 보이는데, 어디에서 활동하셨소?”

“케른헴과 카트카에서 활동했었습니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어딘지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케른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는 몇 번이나 반복해서 케른헴이라는 이름을 중얼거렸다.

“케른헴... 케른헴... 아! 혹시 메두사가 나타났었다던 지역 아니오?”

“오, 맞습니다.”

나는 내심 놀랐다. 그 소식이 도튼의 모험가 길드까지 퍼졌다니. 역시 희귀한 몬스터다보니, 모험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럼 형씨도 메두사 레이드에 참여하셨소?”

“그랬었죠.”

“오오! 이거 메두사 슬레이어셨군? 어디 자세히 좀 얘기해 보시오. 듣자하니 최후엔 네 명만이 살아남은 처절한 전투였다던데.”

“아, 정확히 네 명만 남은 건 아니고.......”

소문이란 게 으레 그렇듯 과장되고 부풀려진 감이 있었다. 나는 그때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줬고, 제자들과 이름 모를 모험가는 정신없이 내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오오, 그렇구려. 안되겠군. 이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내가 술을 한잔 대접하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맥주를 추가로 주문하려했다. 이 정도면 호감작은 충분한 듯했다. 나는 그를 만류하며 슬슬 본론을 꺼냈다.

“술은 괜찮습니다. 일하러 가야 하거든요. 대신 데스웜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데스웜? 그걸 잡으려고 하시오? 메두사에 비하면 시시할 텐데... 뭐, 알겠소.”

그는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하기 시작했다.

“놈을 찾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할 거요. 땅속을 헤엄쳐 다니기 때문에 눈으로는 찾기가 힘들거든. 일반적인 땅이라면 진동이 느껴지겠지만, 사막에서는 그것도 느끼기 쉽지 않지.”

“...그럼 사막에서는 어떻게 찾습니까?”

“그냥 많이 돌아다니면 된다오. 놈이 역으로 진동을 감지하고, 잡아먹기 위해 튀어나오거든.”

그렇다면 교역로를 수색할 땐 땅의 진동에 집중하고, 사막을 수색할 땐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며 유인해내면 되겠군.

“아, 그리고 웬만하면 마법으로 처리하는 게 좋소. 검으로 어설프게 상처 입히면 놈이 땅속으로 도망가버리기 때문이지. 그럼 쫓아갈 방법이 없으니, 확실하게 끝내야 하오.”

“그렇군요.”

그건 뭐 문제없을 것 같았다. 우린 마법사만 네 명인 파티니까.

그렇게 그에게 몇 가지 정보를 더 얻어낸 뒤, 길드를 떠나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도튼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교역로의 초입지점.

─달그락달그락

“마부님! 저희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나는 마차를 멈춰 세웠다. 나와 제자들이 내리자, 마부는 마차를 돌려 다시 도튼으로 돌아갔다.

“으으... 덥네요... 도시 바깥은....”

쨍쨍한 햇볕에 눈을 찡그린 로지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 힘없이 말했다.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해? 사막으로 가면 더 더울 텐데.”

“으으....”

지금 우리가 서있는 교역로는, 서부 사막보다 조금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부터 주변을 살피며 사막까지 걸어갈 생각이다.

“엘 님은 안 더우세요...?”

“나도 덥지만 어쩌겠어. 곧 익숙해지겠지.”

마탑의 제자들은 더운 지방에 살면서도 더위에 몹시 약한 면모를 보였다. 마탑의 시원함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자, 출발하자. 그래도 사막까지 가는 길엔 숲이 있어서 좀 나을 거야.”

우리는 그렇게 사막을 향해 출발했다.

다들 빵빵한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이번 데스웜 사냥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기에 뭐든 넉넉하게 준비한 것도 있지만, 식수의 비중이 특히 컸다. 사막에서는 물을 구하기 어려우니까.

‘데스웜을 몇 마리나 잡을 수 있으려나....’

모험가 길드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데스웜은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는 아니다. 미노타우로스보다 조금 강한 정도?

날카로운 이빨과 주둥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성 물질이 주된 공격수단이라고 한다.

그렇게 숲을 나아가던 중, 로지가 내 팔을 톡톡 치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어, 엘 님! 저기 좀 보세요. 몬스터예요!”

호들갑을 떠는 그녀의 손가락이 향하는 곳은 저편에 있는 나무 위. 그곳에 리자드맨이 거꾸로 매달려 침을 뚝뚝 흘리며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리자드맨이네? 너희가 죽... 아니다.”

나는 하급 제자들에게 직접 처치하라고 말하려다가 마음을 바꿨다. 실전 경험이 거의 없다고 했으니, 처음은 시범을 보여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화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파이어 애로우’ - 5회]

순식간에 생성된 불의 화살이 리자드맨을 향해 쇄도했다. 녀석은 불타오르며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제자 삼인방이 경악했다.

“꺄아악!”

“저, 저런...!”

“너무 끔찍해!”

뭐야. 고작 몬스터가 죽는 모습을 봤다고 이런 반응을 보여? 이렇게 마음이 약하면 도움이 안 되는데....

“불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시다니!”

“보기만 해도 덥습니다!”

“다음부턴 제가 얼음송곳으로 시원하게 머리를 꿰뚫을게요!”

“아, 그, 그래라....”

나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몬스터를 죽인 것 때문이 아니라, 그냥 불 속성 마법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파이톤과 대련할 때에도 내 주먹질엔 야유하지 않았지만, 불 마법엔 야유를 보냈던 녀석들이다.

‘클로이도 그렇고 얘들도 그렇고... 무슨 사상 교육이라도 받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계속 나아갔다.

그 뒤로 만나는 잡다한 몬스터들은, 내 지시 하에 하급 제자들이 착실하게 처치했다.

“이번에는 로지가 둔화를 걸고, 로사가 공격 마법으로 마무리해봐.”

“네!”

“알겠어요!”

─사라락

─사삭!

“꾸에엑!!”

“잘했다.”

이런 식이다.

처음에는 내 지시를 따라오지 못하고 삐걱댔지만, 기본기가 탄탄하다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녀석들이 마음에 드는 점은, 얼음을 생성하는 마법을 자주 쓴다는 점이다.

“흐흐흐. 이번에도 멀쩡하군.”

나는 리자드맨의 대가리에 박혀있는 얼음송곳을 뽑아냈다. 이건 겉 부분을 조금 녹여서 이물질을 닦아내면, 시원한 아이스 팩으로 탈바꿈한다.

“아아, 시원하다.”

닦아낸 얼음송곳을 뒷목에 대고 있으니, 더위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으엑. 지저분하잖아요, 엘 님!”

“맞아요~. 제가 하나 새로 만들어드릴게요.”

“됐어, 모험가는 비위가 좋거든. 그리고 그렇게 마법을 낭비하면 안 되지. 앞으로 뭘 만날지도 모르는데.”

이곳 해리스 공작령엔 특이한 점이 하나 있다.

서부 사막은 무법지대에 가깝다는 것이다.

공작령 자체가 워낙 넓어서 신경써야할 곳이 많다보니, 교역로는 보호해도 그 밑에 있는 사막은 방치한다고 한다. 황량하고 몬스터나 존재하는 곳이니 딱히 가치가 없어서다.

물론 사막에서 모험가들끼리 서로 죽이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적이 꽤나 많다고 했다.

그렇기에 사막을 들어가야하는 우리로서는, 불필요하게 마법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도 아까 들었지? 사막은 위험.......”

나는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바닥에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드드

‘...이게 데스웜이 움직여서 발생하는 건가?’

즉시 자세를 낮춰서 땅바닥에 귀와 손바닥을 가져다대고 집중했다.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은데....’

우리를 노리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아마 주변에 있는 다른 누군가의 진동을 느끼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는 듯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제자리에서 미친 듯이 방방 뛰기 시작했다.

“에, 엘 님...?”

“가, 갑자기 뭐하세요...?”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자 삼인방이 나를 몹시 이상한 놈 취급하며 물었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뛰며 말했다.

“야야! 너희들도 빨리 나처럼 뛰어!”

“네에?”

“데스웜이 근처에 있는 것 같으니까 얼른!”

그들은 얼떨떨해하면서도 제자리에서 콩콩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성의 없어? 더 격렬하게!”

우리는 그렇게 금요일 밤의 클럽을 방불케 할 만큼 혼신의 힘을 다해 점프했다.

─드드드드드

잠시 점프를 멈추고 확인해보니, 진동이 거세졌다. 데스웜이 우리 쪽을 향해 방향을 튼 것 같았다.

“이제 너희는 뒤로 조금 물러나있어.”

나는 제자들을 뒤로 물린 뒤,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며 놈이 오길 기다렸다.

진동이 정점에 달했을 무렵, 나도 뒤로 물러났다.

─드드드드드드 콰앙!

데스웜이 내가 있던 자리에서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거대한 지렁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창자 같았다. 두께가 두 아름은 될 것 같은 붉은색 창자.

입인지 항문인지 모를 구멍엔 흉물스러운 이빨 수백 개가 제각각 꾸물거리고 있었다.

‘어중간하게 상처 입히면 도망간댔지...?’

그렇다면 불 속성 마법은 제외다.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땅속으로 도망갈 위험이 있으니.

─치직. 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차지드 볼트’ - 4회]

내 머리 위에 전류로 이루어진 커다란 화살이 생성됐다. 그것을 즉시 쏘아 보냈다.

“피이이이이이!”

데스웜은 무슨 바람 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꿈틀거렸다.

그 모습이 생김새와 너무 잘 어울려서, 감전 당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이렇게 꿈틀거리는 건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서걱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2회]

나는 녀석이 도망가기 전에, 바람의 칼날로 대가리를 절단했다.

“와아! 순식간에 해치우셨... 아앗! 징그러!”

감탄하며 내게 다가오던 로지가 얼굴을 찡그리며 다시 뒷걸음질 쳤다.

“징그럽긴 하네.”

그도 그럴 것이, 데스웜의 몸통은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데스웜의 대가리를 들고 몸통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검을 뽑아서 대가리를 갈라보니, 주먹 만한 크기의 붉은색 돌 같은 게 나왔다.

“오, 이게 핵이군.”

이걸 열 개를 모으면 된다 이거지.

아니면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을 하나 얻던가.

“왠지 죄송하네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도망가기 전에 잡았으면 됐지.”

“아니에요! 제가 다음번에는 꼭 마법... 어? 파이톤 선배님?”

나에게 사과하던 로지가 파이톤의 팀을 발견했다. 그들도 우릴 발견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의 마법 스승 파이톤에게 반갑게 말을 걸었다.

“이야, 파이톤 씨네 팀도 여길 돌아다니고 계셨나보죠?”

“그, 그렇습니다. 역시 엘 씨 팀은 벌써 한 마리 처치 하셨군요. 저흰 한참동안 이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아직 구경도 못해봤습니다.”

그가 분리된 데스웜의 몸통과 대가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운이 좋았.......”

잠깐. 이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그럼 이 데스웜이 원래 향하던 곳은....

아, 이거 왠지 미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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