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색 마탑 (3)
─퍽! 퍽! 퍽!
적당히 힘 조절을 해서 연타했다.
내 목적은 파이톤을 다치게 하거나 이기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적절한 타이밍에 져줄 생각이다.
“크윽!”
파이톤은 의외의 공격에 당황한 듯 한동안 정신없이 얻어맞았으나, 머지않아 정신을 차리고 마법을 캐스팅했다.
텅! 그의 몸을 둘러싼 쉴드에 내 주먹이 가로막혔다. 나는 그대로 스태틱 쇼크를 밀어 넣었다.
─파지직!
“끄으으...!”
감전당해 자리에 주저앉은 그는, 놀랍게도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단하군.’
마법진에 의해 위력이 반으로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승격까지 마친 내 스태틱 쇼크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파이톤은 투지를 불태우며 다시 공격 마법을 캐스팅했고, 그렇게 근거리에서 몇 번의 마법이 오고갔다.
─화르륵!
─쏴아아
중급 마법을 사용할 시간을 허용해주지 않으니, 대부분 쉴드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마법들이었다.
─퍽! 퍽!
하지만 마법 방어 쉴드로는 주먹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간간이 주먹질도 섞어서 공격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이쯤에서 져주면, 그는 자신이 구타당하는 생소한 상황 속에서도 역전을 일궈냈다고 생각할법했다.
나는 잠시 공격을 느슨하게 하며 틈을 내줬다. 잠깐의 틈이었지만, 파이톤은 놓치지 않고 날카로운 얼음송곳을 하나 생성해냈다.
─사삭!
완성된 얼음송곳이 나를 향해 날아든다.
나는 저걸 맞아주고 대련을 끝내기로 결정했다.
─푹
“으악!!”
나는 고통에 겨운 소리를 내질렀다.
메두사처럼 리얼하게 연기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진짜로 뾰족하고 차가운 게 몹시 아팠다.
“그만! 대련은 여기까지 하도록.”
니콜스가 대련 종료를 선언하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파이톤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하했다.
“잘 싸웠다. 이번 대련으로 네가 물리 공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느꼈겠지.”
“예, 스승님.”
“와아아! 역시 파이톤 님!”
“불 마법을 쓰는 자에겐 지지 않으시지!”
파이톤은 그대로 환호하는 하급 제자들에게 휩쓸려갔다. 니콜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괜찮나? 저쪽에 있는 회복 마법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게나.”
“알겠습니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맙네.”
“...네?”
“껄껄. 어서 치료나 받으시게.”
뭐가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남부 학살자에게 말대꾸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대로 다목적실에 대기하고 있던 회복 마법사에게 가서 치료를 받았다.
─화아아
회복 마법사에게 치료 받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사제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사제가 생명력을 불어넣는 느낌이라면, 회복 마법사는 재생을 돕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치료를 받고 있으려니, 클로이가 다가왔다.
“엘. 왜 그랬어?”
“......?”
설마 주먹을 쓰면 안 되는 거였나?
“아, 죄송합니다. 실전처럼 싸우라고 해서 주먹을 써도 되는 줄─”
“아니, 주먹은 상관없는데? 내 말은... 왜 져줬냐는 소리야.”
뜨끔했다. 나름대로 자연스럽게 져줬다고 생각했는데, 들킨 건가.
“그, 그럴 리가요. 처음엔 할 만하다고 느꼈는데, 싸움이 길어지니 역부족이더군요.”
청색 마탑의 중급 제자.
실제로 마법으로만 놓고 보자면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무슨 소리야? 엘이 불리했던 적이 없는데.”
클로이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그대로 계속 두들겨 팼으면 진작 끝났잖아? 게다가 엘은 검도 사용하지 않았고. 마법만 놓고 봐도 캐스팅 속도부터 차이가 나던데. 솔직히 오브끼리 부딪혔을 때, 추가 마법을 쓸 수 있었는데 일부러 쓰지 않은 거지?”
“.......”
매우 정확한 분석이다.
나는 느닷없는 팩트 폭행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빙빙 돌리며 말을 이었다.
“역시 체면을 세워주려고 그런 건가? 엘이 다치면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뭐어, 어쨌든 연기는 좋았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듯 보였기에,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일까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군.’
쿨타임 때문에 내일 밤에나 꿈에 들어갈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으니, 그때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워야겠다.
***
다음 날.
나는 밤이 오길 기다리며, 잠시 마탑에서 벗어나 도시 ‘도튼’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오, 다들 개방적이군.”
이곳의 사람들은 더운 날씨 때문에, 반팔이나 민소매처럼 짧은 옷을 즐겨 입는 경향이 있었다. 옷차림뿐만 아니라 성격도 좀 친근하고 쾌활했다.
지구에서도 따뜻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낙천적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이곳도 비슷한 것 같았다.
“모험가 길드나 잠깐 들러볼까?”
나는 처음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 카트카에서 곤란함을 겪고 있을 때, 그곳의 모험가들이 보여줬던 따뜻함을 잊지 못한다.
사실 이 더운 도시에서 더 이상의 따뜻함은 필요 없지만, 심심하니까. 나는 이곳에 보름 이상은 머무를 예정이다.
오늘은 아니지만, 능력의 쿨타임 동안에는 소일거리 삼아 이색적인 몬스터를 잡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저, 실례합니다. 혹시 모험가 길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저쪽 모퉁이를 지나서 가다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금방 모험가 길드를 찾아갈 수 있었다.
길드 안으로 들어가니, 매우 익숙한 유형의 외침이 들려왔다.
“리자드맨 토벌 함께하실 B급 구해요!”
“푸른 선인장의 가시 수집 파티원 모집 중!”
“저는 짐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서부 사막으로 스콜피온의 독침을 구하러 가실 분 있소? 파티에 회복 마법사가 있으니 중독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리자드맨 빼고는 생소한 내용의 의뢰들이었다. 심지어 회복 마법사를 대동한 의뢰라니. 이곳엔 강한 몬스터가 많은가?
어쨌든 나는 그들을 헤집고 들어가 게시판을 살펴봤다. 정중앙에 대자보처럼 큼지막한 게시물이 하나 붙어있었다.
‘......이건?’
[데스웜 관련 보상 안내]
─최근 기승을 부리는 데스웜이 사막을 벗어나 도시의 교역로까지 습격하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 데스웜을 처치하고 핵을 가져오면 해리스 공작가에서 보상할 것을 공지함.
보상 내용은 다음과 같음.
핵 1개 = 2골드
핵 2개......
......
......
핵 10개 또는 자이언트 데스웜의 핵
= 목록 중 택일.
기사단급 풀 플레이트 아머
강화 마법이 걸린 흑요석 검
중급 마법서 [익스플로젼]
중급 마법서 [콜링 썬더]
‘중급 마법서를 준다고?’
눈이 튀어나올 법한 파격적인 보상에 가슴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공작가라 통이 큰 건가? 아니면 자이언트 데스웜이 그렇게나 강한가?
자이언트는 모르겠지만, 일반 데스웜은 1마리에 2골드를 준다는 걸로 보아 트롤보다는 약할 것으로 추정됐다.
‘콜링 썬더’는 누가 봐도 전격 계열이다.
저 마법서의 주인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은, 당연히 전격 펜투플인 나란 말이다!!
‘후... 진정하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
나는 일단 흥분을 가라앉혔다.
오늘은 파이톤의 꿈에 들어가야 한다.
중급 마법은 그의 꿈속에도 있으니까.
***
야심한 밤의 청색 마탑 2층.
하급 제자들이 사용하는 공동 휴게실.
내가 머무는 방과 이어진 휴게실이기도 하다.
“......하니까 긴장돼서 마법이 안 나가는 거 있지? 그래서 스승님한테 엄청 혼났다니깐~.”
“어머, 정말? 꺄르르.”
늦은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두 명의 하급 제자가 잡담을 나누고 있다.
“어쨌든... 흐아암. 이제 그만 들어갈까?”
“그러자. 나도 졸리네.”
그녀들은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엘 님은 안 졸리세요?”
“응? 어, 난 아직 잠이 안 와서 조금 더 있다 가려고. 너희 먼저 들어가.”
“네에. 그럼 내일 봬요~.”
“그래 잘 자라.”
그녀들이 떠나자, 휴게실엔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하급 제자들은 내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파이톤과 비등한 전투를 벌인 것도 있고, 무엇보다 클로이의 동료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클로이는 제자들의 우상 같은 존재였다.
아무튼, 덕분에 하루 만에 하급 제자들과 친해질 수 있었고, 휴게실에서 그들과 대화하며 파이톤의 일과와 방을 알아낼 수 있었다.
“흐흐흐.”
그는 늘 자정까지 공동 연구실에 있다가 방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시계를 보니 곧 자정. 슬슬 움직여야겠군.
나는 마탑의 중앙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중급 제자들의 숙소가 있는 3층과, 공동 연구실이 있는 4층을 반복해서 오르내렸다.
그러다보니 곧 파이톤을 마주칠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아, 엘 씨. 안녕하세요.”
서로 가볍게 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눈도장은 찍었고....’
자기 전에 내 얼굴을 본다면, 꿈에 내가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나는 다시 2층으로 가서 얼마간 더 기다렸다가, 파이톤이 머무는 방과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다.
인적 하나 없는 조용한 복도.
그곳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니, 일정 범위 내에서 꿈꾸고 있는 자들의 위치가 느껴졌다. 물론 그 중엔 파이톤도 있었다.
즉시 그의 꿈으로 들어갔다.
─화아악!
*
‘어라?’
나는 잠시 당황했다.
꿈속에 들어오자마자, 내 바로 앞에 파이톤이 있었기 때문이다.
“커억....”
복부를 움켜쥐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는 파이톤. 그리고 그가 내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정황상 그는 배를 얻어맞은 듯 보였다.
‘누가 때린 거지? 설마 나인가?’
그런 의문을 품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마탑의 다목적실이었다. 그리고 옆에는 구경꾼처럼 서있는 클로이와 니콜스, 하급 제자들이 보였다.
이건 어제 벌였던 대련의 꿈이 분명했다.
‘내가 원했던 꿈이긴 하니 좋긴 한데.......’
궁금한 것은 누가 파이톤을 때렸냐는 거다. 아무리 봐도 내가 때린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방금 꿈에 들어왔다.
‘설마... 꿈속에 있던 내 몸에 내가 빙의한 건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파이톤의 꿈속에서 대련하고 있던 ‘가상의 엘’에 내가 덧씌워졌다고 하면 말이 됐다.
아무래도 꿈속에 이미 내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곳으로 들어가지는 모양이었다.
‘뭐, 어쨌든 마법부터 얻자.’
─촤악!
나는 날아드는 물줄기를 피하며 옆으로 한 발짝 비켜섰다. 파이톤이 연속으로 같은 마법을 생성해서 날렸다.
─촤악! 촤악! 촤악!
물줄기가 내 쉴드를 연타한다.
‘아니, 이거 말고 강한 걸로 써줘...!’
내가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지, 그는 중급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일단 거리를 벌려야겠군.
나는 충분히 멀리 떨어진 다음, 플레임 오브를 캐스팅했다.
─화르르륵!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플레임 오브를 보자마자 자신의 오브를 캐스팅했다.
─사사사삭!
‘그렇지!’
나는 회전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는 얼음덩어리를 보고 군침을 흘렸다.
이윽고 그의 마법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오브끼리 서로 부딪혀 소멸하면 안 되니, 나는 플레임 오브를 아무도 없는 엉뚱한 방향으로 쏘아 보냈다.
그 순간, 니콜스의 경악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안 돼!!”
내가 파이톤의 오브에 무방비로 노출되자 당황한 것이다. 니콜스는 황급히 어떤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바, 방해하지 마세요!”
나는 그렇게 외치며 파이톤의 오브를 향해 달려 나갔다.
─콰드드득!
순식간에 내가 원래 서있었던 자리 앞쪽에 무지막지한 얼음 방벽이 솟아났다. 니콜스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한 마법인가? 하지만 나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사사사삭!
파이톤의 오브가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마탑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