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40화 (40/200)

청색 마탑 (2)

클로이의 스승 니콜스의 연구실.

“메두사의 마안이라.......”

니콜스는 새하얀 장갑을 낀 손으로 마안을 조심히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돋보기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확실히 겉으로만 보기에는 용도를 추측하기 어렵군. 심층적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겠어. 혹시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겠나?”

“급할 건 없긴 한데... 얼마쯤 걸리겠습니까?”

어차피 용도를 모르면 사용할 수도, 처분할 수도 없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용도를 파악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잘 모르겠군. 짧으면 일주일? 길어지면 한 달 이상이 걸릴 수도 있다네.”

그는 마안과 돋보기를 탁자에 내려놓고 나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소요시간이 길어져도 괜찮다면, 이건 꼭 우리 청색 마탑에 맡겨줬으면 좋겠네. 이런 희귀한 아이템은 연구하는 것만으로도 큰 배움을 얻을 수 있거든.”

“알겠습니다. 달리 맡길 곳도 없거든요. 그런데 감정에 드는 비용은 얼마나...?”

나는 감정비용을 슬쩍 물었다. 희귀한 아이템이니 못해도 골드 단위는 들 것 같았다.

“비용? 껄껄. 그런 건 걱정하지 말게나. 방금 말했잖나. 이건 우리 측에게도 이로운 일이라고. 오히려 우리가 마안을 훼손시켰을 경우 배상을 하면 했지, 자네에겐 일체의 비용도 청구하지 않을 터이니 신경 쓰지 마시게.”

“오, 그렇습니까.”

니콜스가 인심 좋은 노인처럼 껄껄 웃으며 말했다. 남부 학살자라는 무시무시한 이명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이 메두사의 마안은 어디서 얻었는가? 어딘가의 유적에서라도 발견했나?”

“보름쯤 전에 케른헴에 메두사가 출몰했었는데, 그때 처치하고 얻었습니다. 죽으니까 시체는 가루가 돼서 휘날리고 마안만 남더군요.”

“호오. 직접 처치했다고?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줄 수 있겠나?”

“예. 아주 교활한 뱀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저희가 전투 내내 눈을 감고 있으니,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해서 별 수작을 다 부렸습니다. 뭔 자신의 슬픈 사연을 들어달라고 하더니.......”

나는 메두사와 있었던 일에 대해 적당히 요약해서 설명했다.

니콜스는 몹시 흥미롭다는 듯 내 말을 경청했다. 클로이는 이미 마차에서 한번 들었음에도,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 마냥 눈을 빛내며 집중했다.

“......해서 흙벽으로 마안에서 벗어난 뒤, 상급 성수로 석화의 저주를 해제하고 마무리 지은 거죠.”

“흥미롭군... 정말 흥미로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잠시 턱을 어루만지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곧 자신의 추측을 내놓았다.

“흠... 자네의 몸에 석화가 진행될 때 마안이 빛났다고 했으니, 이 마안도 그런 능력이 있지 않을까 싶군. 이것도 빛나고 있으니 말이야. 아마 특정 조건을 만족하면 발동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쪽으로 알아봐야겠어.”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면 발동?

그럼 석화 수류탄 같은 느낌이려나.

아무튼 자세히 알아보겠다는 니콜스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마안에 관한 대화는 끝이 났다.

그 후로는 시시콜콜한 잡담이 오갔다.

“모험가이자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상반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군 그래.”

“아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저,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묻기로 했다.

바로 대련에 관한 것이다.

현실에서 마법사와 대련을 한다면, 몇 가지 조건이 붙겠지만 꿈속에서도 대련을 유도할 수 있다. 그런 다음 마법에 맞아 죽으면 꿀맛이겠지.

“다목적실에서 제자들끼리 대련을 할 때도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어떤 방식으로 싸웁니까? 위험하지 않나요?”

사실 마법사간의 대련은 매우 위험하다.

검사처럼 목검을 사용할 수도 없고, 세밀하게 컨트롤하기도 어렵다. 한번 손을 떠난 마법은 회수하기도 불가능할뿐더러, 상대가 피하거나 막지 못한다면 치명적인 상처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런 이유로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마법 대련을 하지는 않는 편이다.

하지만 이곳은 마법사의 성지인 마탑.

실제로 대련을 한다고도 하니, 뭔가 대비책이 있을 것만 같았다.

항시 회복 마법사가 대기하고 있다거나, 대련 시에 특별한 규칙이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아, 그거?”

내 질문에 답한 것은 클로이였다.

“위험하지. 그래서 다목적실에서만 대련이 허용돼. 거기에 마법의 위력을 절반으로 제한하는 마법진이 설치돼있거든. 그래도 다치는 경우가 많아서 옆방에는 회복 마법사가 준비하고 있구.”

‘......다목적실에서만?’

그렇다면 현실에서 대련을 했어도, 꿈에서 대련을 유도하려면 조건이 하나 더 붙는다.

상대가 마탑에 있는 꿈을 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다목적실로 데려가서 대련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위력의 제한은 큰 문제는 아니다.

강력한 마법이라면 위력이 절반으로 제한됐어도, 충분히 죽을 수 있으니까.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야? 마탑의 제자들과 대련이라도 해보고 싶어?”

“아, 네. 그럴 수만 있다면야. 실력을 키우기 좋은 기회잖습니까?”

“흐응. 그러고 보니 나도 아직 엘의 실력을 본 적이 없네. 테드 씨가 엄청 칭찬하던데.”

그 무뚝뚝한 테드가? 의외군.

클로이는 턱을 괴고 비스듬히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스승인 니콜스에게 말했다.

“엘도 원한다고 하니까... 제자들과 대련을 한번 시켜보는 게 어떠세요? 스승님만 허락해주신다면 제가 주선해볼게요.”

“그래, 좋다. 녀석들도 자기들끼리만 대련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상대와 싸워보는 것이 좋겠지.”

니콜스가 흔쾌히 허락했다.

***

웅성웅성.

청색 마탑 4층에 있는 다목적실은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들어 이벤트를 구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남자가 누군데?”

“나도 몰라. 클로이 님이 데려왔대.”

“클로이 님이?”

갑작스럽게 성사된 외부인과 마탑 제자간의 대련은, 그들에게 있어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였다.

─파지직!

“끄아악! 제, 제가 졌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마탑의 제자가 바닥에 쓰러져 항복을 선언하자, 외부인이 손을 내밀며 일으켜 세웠다.

그 모습을 바라본 하급 제자들이 수군거렸다.

“이게 벌써 몇 명 째야?”

“캐스팅 속도가 뭐 저렇게 빨라? 다들 제대로 반격도 못하고 당하고 있잖아.”

“중급 제자님을 불러와야 하는 게 아닐까?”

“에이,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아무리 다목적실이라지만 중급 마법을 잘못 맞았다가는─”

“다들 조용히 하거라!! 견학하라고 부른 것이지, 잡담이나 하라고 부른 것이 아니다!”

니콜스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그들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제자들이 얌전해진 것을 확인한 니콜스는 다시 외부인을 바라봤다.

‘역시 하급 제자들로는 무리였군.’

이미 하급 제자 셋이 패배했고, 방금 하나 더 패배했다. 엘은 빠른 캐스팅과 다양한 속성의 마법을 사용해 상대를 일방적으로 쓰러트리고 있었다.

메두사를 처치했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상급 성수의 덕을 크게 본 것 같았지만, 분명 실력도 어느 정도 뒷받침됐을 것이다.

‘정말 중급 제자를 불러와야 하는 것인가.’

중급 제자는 중급 마법을 하나 이상 다룰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즉, 마법의 위력을 제한하는 마법진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크게 다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다.

클로이가 처음으로 데려온 동료가 다치거나, 중급 제자가 다치거나.

둘 다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제자들이 픽픽 쓰러져나가게 두는 것은 청색 마탑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

그는 옆에 있던 하급 제자에게 말했다.

“가서 파이톤과 회복 마법사를 불러오너라.”

***

─파지직!

“끄아악! 제, 제가 졌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나는 눈앞에 쓰러진 제자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웠다. 그는 아직 몸에 잔여 전류가 남아있는지, 바들바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걸로 네 명 째인가?’

나는 최선을 다해 하급 제자들을 제압하고 있었다. 대련이니 적당히 봐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곳은 마법이 널려있는 뷔페다.

뷔페에서 김밥만 먹을 수는 없다.

하급 제자는 기초, 하급 마법을 다루는 자들이다. 마탑까지 와서 고작 그런 마법을 얻기는 아깝다. 나는 적어도 중급 마법을 원한다.

압도적으로 하급 제자를 눌러버리면, 더 강한 제자를 불러오지 않을까 싶어서 이러고 있는 것이다.

“역시, 너무 시시하지? 엘.”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클로이가 다가와서 물었다.

“그럴 리가요.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아니야. 하급 제자는 상대도 안 되잖아? 조금만 기다려. 곧 중급 제자가 올 거야. 만만치 않은 녀석이니 조심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마탑의 제자 중에서는 중급이 가장 높다. 그보다 높은 수준은 더 이상 제자가 아니라, 당당한 마탑의 일원이다.

그때, 다목적실 입구 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오오, 파이톤 님이다.”

“결국 중급 제자를 부르신 건가봐.”

“그냥 중급도 아니고 수석을....”

파란색 로브를 입은 젊은 남성이었다. 구경꾼들의 말을 들어보니, 꽤나 잘 나가는 제자인 듯했다.

그는 니콜스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저는 청색 마탑의 중급 제자 파이톤이라고 합니다. 저도 한 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아, 예. 저야말로 배움을 청하고 싶군요.”

나는 이 파이톤이라는 남자의 꿈속에 들어가서 마법을 습득하기로 결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다.

원래는 평범하게 반복적으로 대련해서, 꿈속에서도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탑의 제자들은 다목적실이 아니면 대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조건이 변경됐다. 파이톤이 어디 경치 좋은 뒷산이 배경인 꿈을 꾸면 대련을 할 수 없으니까.

지금 이 다목적실에서 하는 대련을, 매우 인상 깊게 만들어야 한다.

꿈에 나올 정도로.

“엘, 파이톤. 둘 다 위치로 가서 서게.”

니콜스가 대련에 앞서 자리를 정리했다.

“최선을 다해서 실전처럼 싸워주길 바라네. 두 사람 모두 준비 됐나?”

“예, 스승님.”

파이톤이 니콜스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저도 준비 됐습니다.”

“그럼, 시작하게!!”

나 역시 준비완료를 선언하자, 니콜스가 큰 소리로 외치며 시작을 알렸다.

─사라락

시작과 동시에 파이톤의 머리 위에 작은 얼음 덩어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확실히 캐스팅은 빠른데....’

과연 중급 제자답게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저건 모험가들도 즐겨 쓰는 기초 마법. 고작 둔화 효과밖에 없는 마법이다.

나는 쉴드를 전개해 가볍게 막아내고, 파이어 애로우로 응수했다.

─화르륵!

불의 화살이 생성돼서 날아가자, 구경꾼들이 경악하며 외쳤다.

“저, 저런!”

“청색 마탑에서 불 속성 마법이라니!”

“우우, 신성 모독이다!”

“이놈들! 조용히 하거라!”

니콜스가 야유하는 하급 제자들을 야단쳤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머릿속엔 온통 ‘어떻게 해야 이 대련이 꿈에 나올까’라는 생각뿐이었다.

파이톤은 물줄기로 이루어진 창을 소환해서 날렸다. 물의 창은 내 파이어 애로우를 소멸시키며, 그대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쏴아아!

나는 옆으로 한 발짝 물러나며 피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압도적으로 이긴다면 기억에 남겠지만, 상대의 수준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고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쓸 순 없는 노릇.

“에라, 모르겠다.”

─화르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1회]

일단 중급 마법을 날려보기로 했다. 내 머리위에 회전하는 불덩어리가 생성되기 시작하자, 파이톤도 즉시 어떤 마법을 준비했다.

─사사사삭!

‘저건... 오브?’

나와 속성은 다르지만 중급 마법인 오브였다. 그의 머리 위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회전하며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다만, 캐스팅 속도는 나보다 느렸다. 그의 오브는 생성되기까지 제법 오래 걸렸기에, 내 플레임 오브가 훨씬 먼저 그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치이이익!!

뒤늦게 날아온 파이톤의 오브와 내 오브가 허공에서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서로를 잡아먹는 두 개의 오브는, 다목적실에 자욱한 수증기를 내뿜으며 조금씩 소멸하고 있었다.

‘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무언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이 대련을 인상 깊게 각인 시켜줄 방법.

상대는 중급 마법 캐스팅 속도가 느리다.

가까이 붙으면 강력한 마법은 사용하지 못한다는 뜻.

마침 나는 검도 좀 다루는 육체파 마법사다.

나는 다목적실을 뿌옇게 채운 수증기에 몸을 숨겨서 은밀하게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퍽!

주먹으로 그를 가격했다.

"컥!"

─퍽! 퍽! 퍽!

니콜스가 실전처럼 싸우라고 했으니까.

주먹으로 좀 때리다가, 마탑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적당한 마법에 맞고 슬쩍 져주면 서로가 윈윈 아닐까?

나는 마법을 얻고, 파이톤은 제자들의 체면을 세우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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