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39화 (39/200)

청색 마탑 (1)

“응? 같이 간다면 나야 덜 심심하고 좋지만... 갑자기 왜? 아! 감정할 아이템이라도 있나봐?”

클로이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그렇게 말했다.

“네. 몬스터에게서 얻은 건데, 도통 뭐하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어서요. 청색 마탑에 맡겨보고 싶네요.”

“그렇구나. 그럼 감정을 맡길 아이템이랑 여정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서 와. 여비나 옷가지 같은 거 말이야. 그때까지 기다려줄 테니까.”

마안은 지금 품속에 지니고 있다.

돈도 마찬가지다. 나도 이제 나름대로 한 가닥 한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에, 메두사 레이드를 마치고 받은 보상을 전부 들고 왔다.

산적 따위를 만나도 내가 그들의 돈을 뺏으면 뺏었지, 뺏길 일은 없어서다.

“아이템과 돈은 이미 가지고 왔습니다. 그냥 바로 출발해도 될 것 같은데요?”

“옷은? 필요 없어? 마탑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날 수도 있고, 거기까지 가는 데에도 꽤 오래 걸리는데.”

나는 다년간의 모험가 생활로 다져진 몸.

단벌로 생활하는 것에 익숙할뿐더러, 언제든 노숙이 가능하게끔 건량도 항시 지니고 다니는 준비된 사람이다.

“괜찮습니다. 뭐, 필요한 게 있다면 그때그때 구입하면 되죠.”

“그래? 알겠어, 그럼. 마차가 오려면 시간이 아직 좀 남아있는데, 그때까지 엘도 좀 앉아있는 게 어때?”

클로이가 자신의 옆에 있는 의자를 탁탁 치며 말했다. 내가 그곳으로 가서 앉자, 바텐더 테드가 자동적으로 술잔을 꺼내 술을 한잔 따라줬다.

─쪼르륵

“아,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공짜 술을 받아마셨다.

‘이거, 멀리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내가 가본 도시라고는 케른헴과 카트카 딱 두 개 뿐이다. 이번에 새로운 도시, 그것도 마탑을 가게 된다니. 이건 설레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었다.

마법에 대한 정보도 좀 얻을 수 있을지 모르고, 무엇보다 마법사들이 득실거릴 것이다. 마탑 근처에서 머물다보면, 마법사의 꿈에 들어갈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뭔가 새로운 방법들을 좀 시도해봐야겠어.’

마탑의 마법사들에게 기존의 방법, 그러니까 현실에서부터 반감을 사는 방법을 사용하기는 곤란하다. 붙잡아서 두들겨 패거나 시비를 걸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이건 가는 길에 천천히 고민해봐야겠다.

─클로이 님!

그렇게 앉아서 술을 마시며 기다리고 있으니, 술집 밖에서 클로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앗. 마차가 도착했나보다. 얼른 나가자. 우리 갈게, 테드 씨! 다음에 봐!”

“그래, 조심히 다녀와.”

클로이가 짐 가방을 챙겨들며 테드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그녀의 가방을 하나 들어서 술집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척 보아도 꽤나 고급스러운 마차가 한 대 서있었다. 두 필의 말이 끄는 마차였는데, 말들의 상태를 보니 아주 빠를 것 같았다.

“짐은 이리 주시지요. 제가 실어드리겠습니다.”

“아냐, 괜찮아. 내가 할게.”

클로이는 마부의 도움을 거절하며 스스로 마차에 짐을 들고 올라탔다. 마부의 태도나 클로이의 말투를 보건대, 이건 그녀의 개인 마차인 듯 보였다.

“엘, 뭐해? 얼른 타!”

“아, 네.”

나는 클로이가 상당한 부자라는 생각을 하며 마차에 올라탔다. 널찍하고 푹신한 의자에 앉으니, 그녀가 마부에게 출발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출발하겠습니다!”

“히히힝!”

─달그락달그락

“이야, 승차감이 참 좋네요.”

나는 의자를 조몰락거리며 말했다. 실제로 마차가 움직이고 있음에도 몸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치? 그래도 마탑까지 가려면 좀 불편할거야.”

“에이, 설마요. 이 정도라면 하루 종일 타고 있어도 끄떡없겠는데요?”

“하루 종일...?”

그녀는 조금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설마 청색 마탑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거야?”

“네? 네. 모릅니다.”

“해리슨 공작령에 있어!”

“그렇게 말하셔도 잘 모르겠는데요.”

해리슨 공작령? 이름조차 처음 들어본다.

반응을 보아하니 좀 멀리 떨어진 곳인가?

뭐, 하루 이틀 정도쯤이야.

“왕국 남부에 있다구! 어떤 경로로 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주일 이상은 걸릴 거야.”

“예? 그, 그렇게나 오래 걸립니까?”

미친! 너무 오래 걸리잖아!

사실 얼마가 걸리든 크게 상관은 없다.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니까.

다만, 문제는 내가 지금 꿈에 들어가는 능력이 사용가능한 상태라는 거다.

‘마탑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안잘 생각이었는데....’

일주일이나 걸린다면 잠을 안자고 버틸 수는 없다. 그냥 빠르게 능력을 써버리고 쿨타임을 다시 돌리거나, 아니면 나 혼자 외딴 곳에서 자야한다.

“그럼 잠은 어디에서 잡니까?”

“글쎄. 가는 길에 거치는 마을이나 마차에서 자야겠지?”

‘혼자 노숙하기는 불편한데... 그냥 오늘 밤에 클로이의 꿈에라도 들어갈까?’

나는 몇 가지 이유에 의해, 아직 클로이의 꿈에서 마법을 습득할 생각이 없었다.

직장동료인 그녀의 꿈에 들어갈 기회는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있다는 점, 마법은 딱 한번밖에 얻을 수 없다는 점, 그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나중에 그녀에 대해 충분히 알게 되고, 반감을 사지 않고도 마법을 얻는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기다렸다가, 최대한 좋은 마법을 습득할 생각이다.

‘꿈속에서 허튼 짓 말고 얌전히 구경이나 해야겠군....’

애당초 성공 확률도 낮겠지만, 괜히 습득을 시도했다가 어정쩡한 마법에 맞아 죽기라도 하면 그건 성공이 아니라 오히려 실패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

“남쪽이라 그런가... 지, 진짜 덥네요. 후우.”

찜통처럼 느껴지는 마차안의 열기에 나는 손으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많이 더워?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조금만 더 참아. 도시에 들어가면 좀 나을 거야.”

“오, 그건 반가운 소리네요.”

거의 다 왔다는 소리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벌써 엿새나 남쪽으로 달려온 것이다.

‘타이밍은 괜찮네.’

이틀 뒤면 다시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클로이의 꿈에 들어갔다 나온 지 딱 일주일이 되는 날이니까.

클로이의 꿈은 뭐랄까, 조금 슬픈 느낌이었다.

어린 클로이가 하염없이 울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는 꿈이었는데, 종종 ‘언니가 꼭 구해줄게’라고 말하는 걸 보니 여동생을 부르는 것 같았다.

아마 어린 시절에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꿈속에서 어린 클로이가 나를 발견하고 논리적 불일치를 느껴서 꿈이 금방 깨져버렸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아, 너무 덥다! 아아! 으아!!!”

내가 더위 속에서 절규하자, 클로이가 피식 웃었다.

“푸훗. 뭐야 그게. 나는 참을 만한데?”

“예? 이보세요. 지금 여기에 익지 않은 빵 반죽이 있었다면, 금방 빵으로 변했을 겁니다!”

솔직히 내 면상에 프로즌 더스트라도 한방 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근데... 청색 마탑은 왜 이런 더운 지방에 있는 거죠? 잘 안 어울리는데.”

내 상상속의 청색 마탑은, 어디 얼음이 뒤덮인 지역에 고독하게 서있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였다.

“오히려 더운 지방이니까 있는 거야. 너무 덥다보니 옛날부터 물 마법에 대한 수요와 연구가 많았거든. 그게 쌓이다 보니 청색 마탑이 들어서게 된 거지.”

“그거 아이러니하네요.”

그럼 적색 마탑은 북쪽에 있나?

아무튼 클로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더위를 잊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한동안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앗, 엘! 저기 좀 봐봐!”

클로이가 마차의 창밖을 바라보며 외쳤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정글을 연상케 하는 우거진 초목, 잘 닦여진 길, 그리고....

“오, 바로 저깁니까! 청색 마탑이 있는 곳이!”

“응. 저기가 해리슨 공작이 통치하는 도시 도튼이야.”

저 멀리에, 푸른색 결계에 뒤덮인 거대한 도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작이 통치하는 곳이라 그런지, 확실히 카트카보다 그 규모가 컸다.

그리고 푸른색 결계 때문에,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그렇게 창밖으로 도시를 구경하고 있으니, 곧 성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무를 서고 있던 경비병이 검문을 위해 마차로 다가왔다.

“방문 목적과 신분을 밝혀주십시오.”

“청색 마탑에 방문하려고 해요. 자, 여기요.”

클로이가 목적을 말하며 신분패를 제시했다.

나도 그녀를 따라서 모험가패를 건넸다.

“마탑 소속이셨군요.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동행하신 분은... 케른헴 소속의 A급 모험가?”

내 모험가패를 살피던 경비병이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하지만 케른헴의 신분은 인정해드리지 않습니... 아, 카트카에도 등록 되어있으셨군요? 이거 실례했습니다.”

‘와 씨. 큰일 날 뻔했네.’

일주일을 넘게 달려와 놓고 도시에 들어가지 못할 뻔한 것이다.

아무래도 케른헴은 버려진 도시다보니, 그곳에서의 신분은 인정해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경비병은 마부의 신분까지 확인한 뒤에 우리를 통과시켜줬다.

“어때, 엘? 조금 덜 덥지 않아? 도튼의 결계는 물 속성이거든.”

“음... 조금 그렇긴 하네요.”

마차 안은 여전히 더웠지만, 창밖에 손을 내밀어보니 조금 나아지긴 했다. 도시 밖에서 보기엔 엄청 시원할 것 같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일단 옷가게에 들러서 갈아입을 만한 옷을 구매했다.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마탑에 들어가긴 좀 그래서다.

“클로이 님, 마탑에 도착했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얼마간 이동하니, 마부가 최종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알렸다. 나는 클로이와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수고했어. 고마워.”

“별 말씀을요.”

마부는 마차를 끌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어디 주차장이라도 따로 있는 모양이다.

나는 눈앞에 세워져있는 높은 탑을 감상했다.

파랗다. 이게 감상의 전부다.

“들어가자.”

클로이가 내 팔을 잡아끌며 마탑으로 들어갔다. 외부인인 나는 그녀의 동반인 자격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이, 이, 이게 청색 마탑의 기술력...?”

나는 들어가자마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시원했기 때문이다. 마치 에어컨을 풀가동하는 은행에 온 것 같았다.

“기술력이 아니라 마법력이지. 얼음 마법을 통해 온도를 낮추는 거거든.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클로이는 내 혼잣말에 친절하게 답변해주고는, 접수대에 가서 직원과 뭔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주위를 구경했다.

아직 입구 쪽이라 그런지 별 건 없었고, 그냥 파랬다. 건물 내부도 파랬고, 지나다니는 마법사들도 대체로 파란 로브를 입고 있었다.

뭔가 파란색에 대한 강박증이라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곧 클로이가 돌아왔다.

“사람을 보냈으니 곧 스승님이 내려오실 거야. 아이템 감정도 그분께 부탁하면 돼.”

“오... 스승님이 있으셨군요.”

클로이의 스승이라니. 괜히 긴장됐다.

아론의 꿈속에서 봤던 적색 마탑의 스승은, 굉장히 근엄한 느낌이었다. 제자를 꾸짖을 땐 한없이 엄하지만, 평소에는 점잖은 그런 타입. 청색 마탑도 마찬가지겠지.

“응. 옛날에 있었던 남부 야만족과의 전쟁에서 엄청난 활약을 하셨던 분이야. 남부 학살자라고 불리셨어.”

“이, 이야... 그런 무서운 이명이....”

아무튼 손님들을 위한 대기석이 따로 있었기에,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기다렸다.

“클로이!”

한동안 기다리니, 누군가가 클로이를 부르며 다가왔다.

“스승님!”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느냐.”

겉보기엔 평범한 노인이었다. 클로이와 노인은 서로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지, 한참을 서서 안부를 물어댔다.

“그런데 이 청년은 누구시더냐?”

“제 동료 엘이에요.”

노인의 물음에 클로이가 나를 소개했다. 나는 남부 학살자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엘이라고 합니다.”

“오, 반갑네. 나는 벤든 니콜스라고 한다네.”

“저도 반갑습니다. 니콜스님.”

성이 있는 걸 보니 귀족인 모양이다.

“스승님. 제 동료가 감정을 부탁드리고 싶은 아이템이 있대요.”

“그래? 대체 무엇이길래 클로이를 따라 이 먼 곳까지 왔는가?”

“아, 예. 마안입니다. 메두사의 마안.”

순간, 노인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메, 메두사의 마안이라고 했나?”

“예.”

“혹시 잠깐 보여줄 수 있겠나?”

그는 차마 믿지 못하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나는 품에서 붉은 빛을 은은하게 내뿜는 마안을 하나 꺼내서 손에 들었다.

“오오....”

그는 허리를 굽혀서 내 손바닥 위에 있는 마안을 자세히 관찰했다.

“저, 정말 마안이 맞는 것 같군. 이걸 실물로 보게 될 줄이야... 내가 웬만해선 눈물이 나지 않는 사람인데....”

“어머, 스승님 혹시 우시는...?”

“내 말을 뭐로 들은 게냐? 웬만해선 눈물이 나지 않는다고 했잖느냐! 지금도 눈물은 안 난다.”

노인은 마안에서 눈을 떼며 똑바로 섰다.

“일단 내 연구실로 올라가지. 자세한 얘기는 거기서 나누도록 하세.”

“알겠습니다.”

나는 클로이와 함께 니콜스를 따라 마탑을 올라갔다.

마탑은 중앙이 비어있는 원통형 구조였다.

그래서 난간에 서면, 내부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었다. 클로이가 관광 가이드처럼 내부를 설명해줬다.

“저기 2층에 작은 방들 보이지? 저긴 하급 제자들이 머무는 곳이야. 그 옆에는 공동 연구실이고. 그리고 그 위에는.......”

그런 식으로 설명을 받으며 니콜스의 연구실로 이동하던 중, 뭔가 특이한 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클로이 씨. 저건 뭡니까? 4층에 있는 저 넓은 방이요. 꼭 여러 개의 방이 합쳐진 것 같은데.”

“아, 저건 다목적실이야.”

“다목적실?”

“응. 보통은 마법의 위력을 시험하거나, 대련할 때 사용해.”

......대련?

문득 어떤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