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38화 (38/200)

메두사 레이드 (4)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반경이 증가한다고?’

더 멀리 떨어져있는 대상의 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건 꽤나 묘한 부분이 있다.

나는 능력이 사용가능할 때, 누군가와 가까이서 같이 잠들면 내 의지와 관계없이 꿈속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건 반경이 늘어날수록 단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곁에서 여러 명이 자고 있어도, 내가 잠들지만 않으면 된다. 그럼 원하는 사람을 골라서 들어갈 수 있다.

내가 ‘파이어 애로우’를 처음 훔칠 때, 밤새도록 잠들지 않고 버틴 이유다. 아론과 테도린이 같이 자고 있었으니까.

‘반경이 얼마나 늘었느냐가 관건인데....’

거리에 따라서 활용방식도 달라질 수 있겠지만, 이 불친절한 게임은 이번에도 상세한 수치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범위가 늘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고작 한 단계 승격했을 뿐이니까. 중급 마법이 해금되는 퀘스트가 있었으니, 추후에 더 높은 등급의 마법이 해금되는 퀘스트도 또 발생하겠지.

어쨌든 범위가 얼마나 늘었는지는 나흘 뒤에 직접 테스트해보면 될 것이다. 그때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오니.

“바, 방금 무슨 소리였지? 천둥이 치는 소리와 메두사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들렸던 것 같은데... 이보게들! 괜찮으신가?”

당황스러운 듯한 찰리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메두사는 분명 죽었으니, 나는 안심하고 눈을 떴다.

아직도 뱀이 제법 남아있는 상태였다. 다만 주인을 잃어서인지, 이전과 같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여주진 않았다.

‘더 이상 추가소환도 없을 테니, 저것들만 마무리하면... 어? 이건?’

회색으로 굳어버린 메두사의 사체가, 마치 모래가 흩날리듯 바람에 날리며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 자리엔 은은한 붉은 빛을 내고 있는 두 개의 보석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나는 당황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설마 마안인가? 몸에 이상은 없는데....’

붉은 빛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별다른 이상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저걸 본다고 해서 석화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눈을 뜨고, 두 개의 붉은 보석을 관찰했다. 둥그렇고 영롱하게 빛날 뿐, 그 외에 특이한 사항은 없었다.

‘두 개인 걸 보면 마안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메두사가 죽으며 단순히 보석이 되어버린 건가? 아니면 뭔가 다른 능력이라도 있나?

일단은 그것을 챙겨서 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눈을 뜨셔도 됩니다! 메두사는 죽었습니다.”

“뭣? 그게 정말인가?”

“예. 방금 죽...어, 었습니다....”

나는 순간 현기증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슬슬 라이트닝 블래스트로 인한 마나탈진이 찾아오는 모양이었다.

“방금 전의 천둥소리와 연관이 있는 건가? 자네가 처치했나?”

“예. 제가... 크윽!”

─쉬쉭!

근처에 도사리고 있던 뱀 하나가 내 다리를 우악스럽게 물어뜯었다. 나는 검으로 놈의 머리를 찍으며, 힘겹게 한 걸음 물러났다.

“정말 메두사가 보이지 않는군? 이, 이런! 엘!!”

눈을 뜬 찰리가 주변을 살피다가, 뱀에게 물려 씨름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는 엄청난 속도로 뱀들을 베어 넘기며 내게 다가왔다.

─서걱!

“괜찮나?”

“예. 제, 제가 탈진 상태라서....”

“그렇군. 걱정 말게. 내가 보호해줄 터이니.”

찰리는 내 말뜻을 빠르게 이해하고 나에게 다가오는 뱀들을 처리했다. 나는 뱀에게 물렸던 다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아... 피곤하군.’

몸에 힘이 없고 몹시 피곤한 상태였지만, 자리에서 즉시 잠들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승격 퀘스트를 완료하며 마나가 조금 회복돼서, 완전한 마나탈진에 빠지진 않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전장에 있던 찰리와 다른 두 명의 모험가가 눈을 뜨고 싸우기 시작하니, 제법 빠른 속도로 뱀이 줄어들고 있었다.

메두사의 지휘가 없어서인지 그냥 도망가는 뱀들도 보였다. 그때 후방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억울한 마법사!!!”

“엘!!!”

“어디에 있나!!!”

“엘님! 엘님!!”

고개를 뒤로 돌려보니, 도린 형제와 엘미나가 목이 터져라 나를 부르며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후방에 있는 뱀들에게 공격받아도 그냥 무시하며 억지로 뚫고 다가왔다.

“뭐냐...? 왜 그렇게 헐레벌떡 와...?”

나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물었다.

“천둥소리를 들었다!!”

“그게 뭐...?”

라이트닝 블래스트 소리가 후방에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하긴, 산 전체에 울릴 정도로 큰 소리긴 했다.

“네가 그 번쩍거리는 마법을 쓴 것이잖나!”

“구울에게 썼던 마법 말이다!”

“그 마법을 쓰면 너는 금방 기절하잖나!!”

“엘님! 괜찮으세요? 분명히 마나탈진 상태이실 텐데... 이, 일단 다리부터 치료해야겠어요!”

이들은 내가 고대의 마법을 사용하고 나면 어떤 부작용을 앓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천둥소리를 듣고, 내가 전장에서 무방비 상태로 잠들까봐 서둘러 달려온 듯했다.

“아... 그래서 온 거였냐... 아하하. 나는 괜찮아. 옆에 찰리님도 있고....”

─우우웅

엘미나가 뱀에 물린 내 다리에 신성력을 내뿜었다. 상처뿐 아니라 전체적인 컨디션도 좀 나아지는 것이, 뱀에게 독이라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내 치료를 끝낸 뒤, 도린 형제도 치료했다. 이 녀석들도 여기저기 상처가 있어보였다.

“고맙소, 사제님! 그런데... 메두사는 어디로 간 것이지? 네 마법에 맞고 도망갔나?”

“죽였지. 죽으니까 모래처럼 사라지더라고.”

“죽였다고? 설마 눈을 감고 죽인 것인가?”

“말하자면 긴데... 뭐 결론은 그렇지.”

아무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만큼 상황이 정리된 것은 아니었기에, 테도린과 엘미나만 내 곁에 남고 나머지는 뱀들을 처치했다.

그러다 보니 곧 후방에 있던 다른 모험가들이 합류했고, 뒤이어 용병들도 도착하며 상황은 완전히 정리됐다.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석상을 운반해라!”

사람들이 일곱 개의 석상을 조심히 들어 날랐다. 메두사의 연기에 일곱 명이 속아 넘어간 것이다.

나는 엘미나의 부축을 받으며, 귀환하는 행렬에 동참했다.

뒤늦게 도착했던 용병들 역시 우리와 함께 이동했다.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뱀만 잡다가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모험가들에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어댔다.

“어떻게 된 일이요?”

“메두사는 처치하셨소?”

“누가 잡은 거요?”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도린 형제였다.

도린 형제가 용병을 겸하고 있어서 친분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사람저사람에게 큰 소리로 대답해줬다.

“저기서 비틀거리고 있는 엘이 처치했소!”

“우리 형제와는 오랜 친구사이지!”

“메두사 따위는 눈감고도 이기는 친구지!”

“오오....”

“굉장하군...?”

“메두사 슬레이어...!”

용병들이 수군대며 나를 힐끔 쳐다본다.

뭔가 뉘앙스가 잘못 전달된 느낌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눈감고도’ 이긴 것이 아니라, ‘눈을 감은 덕분에’ 이긴 것이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시선들을 피해서 조금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리고 내 팔을 자신의 어깨에 두르고 있는 엘미나에게 슬쩍 물었다.

“메두사에게 완전히 석화된 경우에도 마안으로 풀 수 있다고 하셨는데, 혹시 방법을 아십니까?”

이미 죽은 사람은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없지만, 석화된 사람은 마안을 이용해 풀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해요. 신화서에 메두사가 자신이 걸었던 저주를 다시 풀어줬다는, 짤막한 구절만 적혀있었거든요.”

메두사가 다시 풀어줬다라.

단순히 내가 마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풀어줄 수는 없는 건가. 그럼 이 마안의 용도는 뭐지?

아무래도 어디 전문적인 기관에 감정 의뢰라도 맡겨야할 듯싶다. 마법 공방으로는 무리일 것 같고... 마탑 정도는 되어야 하려나?

***

메두사 레이드가 끝나고 열흘 가량이 지났다.

그동안 케른헴에서 쉬면서 이것저것 테스트를 해봤었다. 꿈에 들어갈 수 있는 반경에 대한 것과, 마법의 위력과 횟수 변화 등.

그리고 오늘, 꿈에 들어가는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왔기 때문에, 카트카에 있는 ‘오늘의 기억’을 향해 가고 있다.

“어우. 몸이 뻐근하네.”

여관에서 자지 않고, 도시 밖에서 노숙을 해서 그런지 몸이 여기저기 쑤셔왔다.

내가 노숙을 한 이유는 꿈의 반경 때문이다.

승격 퀘스트 이전의 나는, 같은 방에 있는 정도로 가까이 있는 사람의 꿈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전에 직접 테스트해본 결과,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반경이 대략 작은 여관방 2~3칸 거리 정도로 늘어났다.

그래서 나는 이제 능력이 사용가능할 때에는 여관에서 자면 안 된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누군가의 꿈에 들어 가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거리가 늘어나면서 약간의 특혜도 주어졌는데, 눈을 감고 집중하면 유효 반경 내에서 꿈꾸고 있는 사람의 위치를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위치를 모르면 꿈에 들어갈 수 없으니까.’

즉, 작은방 2~3칸 내에서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해서 들어갈 수 있도록 능력이 강화된 것이다.

이건 일단 마법사의 꿈에 들어갈 기회 자체는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꼭 마법사와 같은 방에서 잘 필요는 없어졌으니까.

“마법을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나는 주로 상대방의 꿈에서 마법을 얻기 전에, 현실에서 나에 대한 반감을 미리 빌드업해두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내가 수배범을 잡으면, 수배범은 탈출하기 위해 나를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 그런 마음을 가진 상대의 꿈에 들어가면, 죽기가 수월하다.

이런 빌드업 없이, 다짜고짜 꿈의 주인을 위협해 나에 대한 공격을 유도하는 것은 성공률이 낮다. 내가 예전에 모험가들의 꿈에서 마법을 얻는 것을 실패하고 욕만 먹은 이유다.

‘...생각해보니 얼굴을 가렸다면 적어도 욕은 안 먹었겠네. 미친!’

아무튼, 핵심은 ‘꿈의 주인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꿈이 잘 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꿈속에서 너무 인위적으로 개입하면, 꿈의 주인이 이상함을 느끼기 쉬우니까.

결론을 말하자면 ‘마법사의 꿈에 들어갈 기회는 많아졌으나, 빌드업은 여전히 필요하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고로 일단은 빌드업이 간편한, 수배범을 잡기 위해 ‘오늘의 기억’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삐그덕

“안녕하십니까.”

“어서와!”

문을 열고 들어가 인사하자, 바에 앉아있던 클로이가 발랄하게 맞이했다. 테드는 조용히 눈인사를 건넸다.

“어... 근데 그건 다 뭡니까?”

나는 클로이 옆에 있는 커다란 짐 가방 몇 개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시나보죠?”

“아, 응. 여행은 아니고, 마탑에 좀 다녀올 생각이야.”

“마탑? 클로이 씨도 마탑 소속이었습니까?”

“앗, 내가 말 안 해줬나? 나는 청색 마탑 소속이야.”

물 속성의 마법사답게 청색 마탑 소속이었군. 하긴,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사는 거의 소속이 있다고 들었다. 마탑이나 학파에 속해야 강력한 마법들을 배우거나 연구하기 좋으니까.

“혼자 연구 중이던 마법이 막혔거든. 그래서 조언을 좀 얻을까 해서. 아마 보름정도는 있지 않을까 싶어.”

나는 내심 당황했다. 혼자서 마법을 연구한다니.

설마 클로이는 고유 마법을 다루는 수준인건가?

고위 마법사쯤 되면, 스스로 마법을 창조해내기도 한다고 한다. 남들은 사용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마법. 그게 바로 고유 마법이다.

“그, 그렇군요. 그럼 좋은 여행 다녀.......”

나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뒷말을 흐렸다.

무려 청색 마탑이다. 그곳이라면 메두사의 마안을 감정할 수 있지 않을까?

“마탑에서 아이템 감정도 가능합니까?”

“물론이지. 마탑보다 감정을 더 잘하는 곳은 없을 걸? 아, 적색 마탑 그 녀석들이라면 형편없을지도?”

역시 불 마법사와 물 마법사는 견원지간인 게 국룰인지, 클로이가 슬쩍 그런 발언을 했다.

아무튼. 감정이 가능하다면 클로이에게 부탁을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강력한 마법사이니 어디 도적떼한테 뺏길 일은 없겠지.

아니, 내가 직접 따라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마법의 성지 중 하나일 테니, 견문도 넓히고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혹시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청색 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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