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37화 (37/200)

메두사 레이드 (3)

“나에게 진정으로 공감해주는 인간이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단다. 내게 도움을 줄 수는 없겠니?”

조금 더 가까워진 듯한 메두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반신이 뱀이었기에, 아직까지는 기척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아직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다른 모험가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나는 지금 정말 슬프단다. 내 눈을 보고 함께 대화해줄 인간은 없는 거니?”

그대로다. 소리는 같은 자리에서 들려온다.

“정말 내 사연을 들어주지 않을 거니?”

‘......뭐? 반대 방향? 어떻게 벌써?’

이번에는 완전히 반대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는 속도가 굉장히 빠른 듯했다.

다만, 목소리의 크기는 일정하다.

“내가 어떻게 해야 나를 바라봐줄 거니?”

이번에도 방향만 다를 뿐, 크기는 일정했다.

메두사는 분명, 특정 거리를 유지하며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녀가 더 가까이오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마안의 사정거리 내에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해 메두사가 무슨 짓을 할 것인가?

답은 하나다.

“다들 공격에 대비하세요!”

나는 그렇게 외치며 검을 뽑아들었다.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달려드는 적을 처치하려면, 검이 가장 빠르다.

─스스스

느껴진다. 뱀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이.

─스스스스스스스스스

한두 마리가 아니다.

대체 얼마나 소환한 건지, 짐작하기 힘든 숫자가 사방팔방을 돌아다니며 감각을 교란시키고 있다.

─짤랑. 짤랑. 짤랑.

방울 소리가 곳곳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모험가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뜻.

“타앗!”

“허업!

모두들 짧은 기합소리만 내며 싸울 뿐, 의미 있는 문장은 말하지 못했다. 눈을 감고 있기에, 브리핑해줄 만한 정보를 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곧 뱀과의 전투를 시작했다.

뱀의 덩치가 워낙 커서 기척을 감지하기가 수월하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꼭 그렇게 내 마음을 난도질해야만 하겠니? 나는 그저 다시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이란다. 제발 부탁이니, 나의 슬픈 이야기를 들어주렴.”

또 목소리의 방향이 바뀌었다.

메두사는 계속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뱀 같은 세치 혀를 놀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뱀이 맞긴 하네. 어쨌든 교활하게 소모전을 유도하고 있다.

“정말 대화를 하고 싶다면, 뱀은 왜 자꾸 보내는 거요!”

누군가가 악에 받친 듯 메두사에게 대꾸했다.

“무언가 오해하고 있구나. 그 뱀들은 내 의지로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나는 너희를 해치고 싶지 않단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만! 메두사와 대화하지 마세요!”

─서걱!

나는 지척에서 느껴지는 뱀을 베면서, 그 누군가에게 메두사와의 대화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

“세르시아가 나의 외모를 시기해서 저주를 내렸단다. 내 몸의 반을 흉측한 뱀으로 만들고,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뱀에게 잡아먹히게 만들었지.”

“희망의 여신 세르시아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메두사의 목소리와, 모험가의 목소리가 비슷한 방향에서 들려오고 있다. 메두사가 그를 향해 다가간 듯했다.

“너도 속고 있구나. 가엾은 것. 자, 내 등을 확인해보렴. 그 계집이 내 몸에 강제로 자신의 문양을 새겼단다. 눈을 뜨고 이 끔찍한 낙인을 직접 본다면 너도 내 말을 믿게 될 거란다.”

“그런다고 내가 눈을 뜰 것 같... 끄으악!”

뭐야. 무슨 일이지?

눈을 뜰 것 같지는 않았는데?

메두사에게 직접적으로 공격 당한건가?

아니면 집중이 흐트러진 틈에 뱀에게 당한건가?

답답했다. 눈을 감고 소리로만 모든 상황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아아,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해 뱀에게 당해버리고 말았구나. 눈을 떴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을... 내게 내려진 세르시아의 저주가 원망스럽구나.”

모험가는 뱀에게 당한 거였나.

그녀가 진정 안타깝다는 투로 말했다.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흐아악!!!”

“끄으으...악!”

그리고 비명이 들려오는 곳에서는, 늘 메두사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슬프구나. 대체 왜 눈을 뜨지 않는 거니? 눈을 뜨고 뱀을 모조리 죽여 버리렴. 너희들이 이 비열한 뱀에게 당하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바라보기 힘들구나.”

─짤랑. 짤랑.

방울 소리는 점차 잦아들고 있었다.

그만큼 당한 모험가의 수가 많다는 것.

우리의 수는 줄어들고 있지만, 메두사가 소환해내는 뱀은 여전히 많았다.

어째서인지 후방에 있는 병력들의 지원이 없었다. 그쪽도 뱀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는 건지, 메두사가 자꾸 돌아다녀서 눈을 감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이대로 소모전을 지속해서는 답이 없는데.’

계속 뱀과 싸워봤자 끝이 없다. 메두사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해야 한다. 공격과 방어를 모두 뱀에게 의존하는 걸 보면, 본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을 거라고 추정됐다.

그녀가 강했다면 이렇게 빙빙 돌며 교란할 거 없이, 진작 우리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서 큰 거 한방만 먹일 수 있다면, 처치가 불가능하지도 않아 보였다.

“조심하렴. 그쪽에는 교활한 뱀이 너를 노리고 있단다. 뒤로 한 발짝 물러나는 게 좋겠구나.”

‘......?’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 미친 메두사는, 모험가들에게 뱀의 위치를 알려주는 기이한 트롤링을 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너도 마찬가지란다. 네 뒤에서 뱀이 다가오고 있구나. 그쪽을 향해 검을 휘두르렴.”

“고, 고맙소.”

뭐? 고맙다고?

메두사는 계속 뱀의 위치를 경고해줬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메두사의 진정성에 흔들리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정말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은 건가...?”

“무슨 소리야! 길드 앞에 있던 석상 못 봤어? 메두사한테 당한 거라고!”

“하지만 지금은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데....”

“비명소리는 늘 메두사의 목소리와 함께 들리잖나! 속지 마라!”

다만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강하고 노련한자들이었기에, 메두사를 믿지 않는 쪽이 훨씬 많았다.

“너희가 내 말을 믿어주지 않으니 참으로 원통하고 비참하구나. 나는 너희를 도우려 최선을 다하고 있거늘. 너무나도 속상해서... 눈물이 흐르는구나.”

정말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목소리만큼은 애절했다.

“그래... 괜찮다. 내게 내려진 저주의 탓이지, 너희의 탓은 아니니. 그래도 너희들 중에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헤아려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녀는 자조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다니며 착실하게 모험가들을 도왔다.

나는 저게 소름 돋는 메소드 연기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메두사에게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당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저주가 풀리는 겁니까?”

이딴 헛소리를 지껄이는 사람의 비율이 점점 늘고 있다.

그리고 보통은 그게 그들의 마지막 말이었다. 눈을 떠서 마안에 석화당한 건지, 뱀에게 당한 건지, 그냥 조용히 있는 건지는 알 겨를이 없었다.

‘이젠 정말 서둘러야겠어.’

메두사에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더 발생하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했다.

하지만 메두사의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무턱대고 마법을 날릴 수는 없는 일. 그런 방식으로는 맞히기도 어렵고, 오히려 높은 확률로 아군이 맞을 것이다.

‘말을 거는 척해서 내 쪽으로 유인해볼까?’

메두사를 불러들이면 다수의 뱀에게 공격당하겠지만, 나는 쉴드로 뱀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다.

그녀의 말에 현혹된 척해서 최대한 가까이 불러들인 다음, 마법을 퍼부어대면.......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아악!!!!!”

메두사가 돌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던 뱀들이 그녀를 향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스스스스

“저, 저리 가거라! 내게 다가오지 마!”

그녀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뭐지? 뱀들에게 소리치는 건가?

“도, 도와다오! 갑자기 뱀들이 나를 공격하고 있단다! 제발 누가 나를 좀 도와... 꺄아아악!!”

계속 비명을 내질렀다.

이상한 점은, 뱀이 정말로 그녀를 공격하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그쪽에서 무언가가 투닥거리는 소리와 진동이 느껴졌다.

“누가 나를 좀... 아, 아악!! 아파! 너무 아파! 거, 거기에 서있는 인간아. 나를 도와다오. 나, 나도 아까 너를 도왔으니, 제발... 아악!”

─쿵! 퍼덕!

격렬한 몸싸움이라도 하는 중인지, 땅이 흔들리며 육중한 소리가 났다.

“왜, 왜 아무도 나를 돕지 않는 것이냐! 아악!! 비, 빌어먹을 세르시아 년!! 내가 인간에게 이해받아 저주를 풀까봐 그리도 겁이 났더냐!”

세르시아? 그녀는 마치 세르시아가 뱀을 조종해 자신을 공격한다는 듯한 암시를 하며 울부짖었다.

“저주한다!!! 내게 저주를 내린 세르시아를 저주하고, 나의 죽음을 방관한 너희들을 저주할 것이다! 내가 죽어서라도 너희들을 저주─”

뚝.

메두사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겨버렸다.

그와 함께 몸싸움으로 인해 발생했던 땅의 흔들림도 멎었다.

─스스스스

뱀들이 다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검으로 그것을 베어 넘기며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다네!”

저 멀리서 찰리가 대답했다.

“나도 살아 있소. 하압!”

“저, 저도요.”

그리고 또 다른 A급 모험가와, 여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들도 뱀과 전투 중인 듯했다.

네 명. 스무 명 가까이 진입했음에도, 지금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 건 네 명뿐이었다.

“메두사는 죽은 거겠죠...? 이제 눈을 떠도 될까요? 눈을 감고는 더 이상 싸우기 힘들어요.”

“조금만 더 버텨보시게! 뱀의 기척만 느껴지고 있긴 하지만, 혹시 모른다네!”

상당히 지친 듯한 여성 모험가의 물음에 찰리가 대답했다.

‘정말 죽은 건가? 뱀에게 당해서? 우리를 저주하며,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린 거야?’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벗어나기도 힘들었다. 눈을 뜬다면 일도 아니겠지만, 감은 채로는 아직 잔뜩 도사리고 있는 뱀들을 피해서 후방으로 가긴 어렵다.

‘......내가 눈을 떠보는 수밖에 없나.’

나에겐 상급 성수가 있으므로 한 번의 기회가 있다. 이곳에서 누군가가 확인해야만 한다면, 내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나는 메두사의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을 향해 똑바로 섰다.

그런 다음 기습적으로 몸을 반대방향으로 휙 틀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살며시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땅바닥이었다.

그리고 곧, 앞에서 어떤 붉은 빛이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모종의 불길함을 감지하고, 다시 눈을 감으려고 했다.

‘어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저 홀린 듯 고개를 들어 올리게 될 뿐.

내 의지에 반해서 고개가 서서히 올라가며, 정면에 펼쳐진 광경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피투성이의 시체,

눈을 감은 채 뱀과 싸우고 있는 찰리,

완전히 석화되어 버린 어떤 모험가,

그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는 메두사.

마안이 붉은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전부 연극이었군.’

좀처럼 뱀에게 당하지 않는 사람들의 눈을 뜨게 만들기 위해, 그녀가 꾸민 연극이었던 것이다.

메두사는 교활하게 웃음 지으며,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감상했다.

‘눈만 피하면 되는데....’

왼쪽 다리가 석화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아직 몸의 대부분이 멀쩡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마주치고 있어서 그런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할까 싶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녀도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내게 스멀스멀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만 입은 열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 눈을 감고 있는 다른 A급들도 속이기 위함이리라.

‘조금만 더....’

메두사가 거의 지척까지 다가왔다.

이젠 내 하반신이 거의 석화된 상태.

마안을 빛내고 있는 그녀의 얼굴엔, 묘한 만족감과 승리감 따위가 엿보였다.

나는 그 틈에, 정신이상자에게서 습득한 마법을 캐스팅했다.

─쿠르르... 쾅!

[금일 사용 가능한 ‘랜드 라이즈’ - 3회]

땅바닥이 솟아오르며 나와 메두사의 사이를 가로막는 흙의 장벽을 생성해냈다.

마안으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팔을 움직일 수 있게 된 나는, 즉시 품에서 성수를 꺼내마셨다. 과연 상급 성수답게 빠른 속도로 석화가 풀어졌다.

내 의외의 반격이 몹시 불쾌했는지, 결국 메두사가 흙벽을 두들기며 성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쾅! 쾅!

“이런 발칙한! 아직도 마법이 남아있었나? 그래봤자 어차피 석화가 시작되었으니 이미 늦었다. 얌전히 내 장식품이 되어라!”

“늦은 건 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즉시 내가 가진 최고의 마법을 캐스팅했다. 성수를 마셔버린 이상, 어차피 두 번의 기회는 없다.

─파직. 파직.

모든 마나가 오른손에 몰려들며, 샛노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흙벽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블래스트’ - 0회]

그녀가 고대의 마법에서 풍겨지는 기운에 당황하며 소리쳤다.

“대, 대체 이 기운은...? 네 녀석 무슨 짓을!”

덕분에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즉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마법을 쏘아 보냈다.

─쩌저저적!!

─꽈르릉!!

번쩍! 눈을 감고 있음에도 섬광이 느껴졌다. 산골짜기에 귀가 터질 듯한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꺄아아아아아악!!!!!”

─털썩

그녀가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급으로 연기에 능숙한 메두사였지만, 이번에는 진짜 죽었음을 확신했다.

왜냐하면 메시지가 잔뜩 떠올랐기 때문에.

[축하합니다! 승격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조건을 달성하여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이제부터 중급 마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사용 가능한 마법 횟수가 증가합니다.]

‘오, 마법 횟수까지?’

중급 마법 해금이나, 능력치 상승 중 하나만 보상으로 주어질 줄 알았는데, 둘 다였다. 게다가 마법 횟수까지 늘어났으니 대만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성장 보조 특성이 강화됩니다!]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반경이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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