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레이드 (2)
레이드를 위해 이동 중인 행렬 속.
“예? 그게 정말입니까?”
나는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정말 이게 석화의 저주도 풀어준다고요?”
“네. 제가 전에 말씀드렸잖아요? 저보다도 치유 효과가 더 뛰어나다구요. 해주도 마찬가지에요.”
엘미나가 내 손에 들린 성수를 가리키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와, 그런 효과까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아껴두길 잘했네.”
“세르시아님의 축복이 담긴 성수니까요.”
예전에 고대의 던전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교회에서 받은 상급 성수다.
엘미나의 말에 의하면 성수도 세르시아의 힘을 이용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치료나 해주 같은 기적은 성수 역시 가능하다고 한다.
그냥 잘 듣는 회복 포션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런 능력까지 있었다니.
속성이 전격밖에 없는 원소마법사인 나로서는, 회복 계열의 마법을 배울 수 없다. 힐이나 해주 마법 같은 것은 회복 속성이 따로 필요하다. ‘회복 마법사’라 불리는 자들이 별도로 존재하는 이유다.
그런 나에게 있어서, 해주가 가능한 이 성수는 정말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까지 해주가 가능합니까? 완전 석화된 경우에도 가능한가요?”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아요. 그러니 석화가 시작되면, 늦기 전에 성수를 드셔야 해요.”
“그렇군요. 하긴, 완전히 석화되면 어차피 숨을 못 쉬어서 죽을 거라고 하던데... 제가 이상한 질문을 했네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저희 교단의 신화서에 따르면 메두사의 마안에 의해 완전히 석화된 경우에도, 마안으로는 풀 수 있다고 해요.”
“오, 그렇습니까?”
“네. 석화된 자의 시간이 멈춘다고 했으니, 질식으로 인해 죽지는 않을 거예요.”
도린 형제 이놈들. 나한테 또 헛소리를 했군.
‘근데 마안도 마법인가?’
메두사는 인간형 몬스터다. 당연히 잠도 잘 테고 꿈도 꿀 것이다. 마안이 마법으로 판정된다면, 극히 낮은 확률이긴 해도 뺏을 가능성은 있다.
‘......욕심이겠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고쳐먹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도 모르는데, 무슨 수로 죽이지 않고 제압만 해서 꿈속으로 들어가겠는가. 그런 상황이 나온다면야 좋겠지만, 일단은 여유부리지 말고 처치를 목표로 삼는 게 나을 것이다.
─각 파티의 리더께서는 잠시 이쪽으로 모여 주십시오!
슬슬 목적지에 가까워졌기에, 리더를 소집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나는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곧 길드 직원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제 메두사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들어가실 겁니다. 그에 앞서 파티를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겠습니다. 먼저 찰리님의 그룹은.......”
직원은 각 A급이 지휘할 그룹을 편성했다.
내가 맡을 그룹은, 우리를 포함해 4개의 파티가 합쳐진 20명 남짓한 그룹이었다.
“먼저 수색을 진행하셔야 합니다. 이후 세부적인 지시는 그룹을 이끄시는 A급분들께서 내려주시면 됩니다. 호각과 방울을 지급해 드릴 테니, 메두사를 발견하면 호각을 불어서 신호를.......”
메두사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커다란 산을 수색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간단한 회의를 통해 내가 이끄는 그룹은 좌측, 찰리는 중앙, 다른 A급은 우측으로 진입하기로 결정했다. 용병 길드는 우리와 반대편에서부터 들어온다고 한다.
“저희는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건투를!”
길드의 직원들은 비전투인원이기 때문에, 함께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 남아서 혹시 모를 장기전에 대비해 야영지를 설치하기로 했다.
나는 산으로 이동하는 와중에, 내가 맡은 그룹에 속해있는 파티의 리더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각 파티의 전력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알겠소. 우리 파티는 B급 세 명에─”
“저희는 B급 마법사─”
설명을 들어보니 다들 밸런스 있게 파티를 꾸려온 상태였다. 딱히 인원을 재분배할 필요는 없어보였기에, 그들에게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전달한 뒤, 산으로 진입했다.
***
스무 명이 같이 몰려다니며 수색하는 것은 낭비 같았기 때문에, 파티별로 쪼개져서 수색을 진행했다.
─짤랑. 짤랑.
각자 몸에 부착한 방울 때문에, 걸어 다닐 때마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고양이가 된 기분이네.”
이는 메두사와의 전투를 위한 전략 중 하나다.
눈을 한번 마주치면 피하기 어렵다고 하니, 유사시에 눈을 감고 싸워야 하는 경우도 감안했다. 다만 눈을 감으면 피아식별이 어려우니, 방울 소리로 구분하는 것이다.
아무튼, 한동안 특별할 것 없는 지루한 수색이 이어졌다.
“그런데 억울한 마법사. 그동안 카트카에 왜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이지?”
나만 지루하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테도린이 불쑥 그런 질문을 해왔다.
“그냥 돈 벌러 갔었지.”
“돈? 그곳에서 모험가 일이라도 했나보군?”
“응. 내가 거기서 트롤을 잡았다는 거 아니겠냐. 트롤 본적 있어? 되게 못생겼더라. 너네 생각나더라고.”
그런 실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돌아다니던 중이었다. 수풀을 헤치고 웬 뱀 하나가 혀를 날름거리며 다가왔다.
─쉬식!
“이게 메두사가 부리는 뱀인가? 몬스터급이라더니... 진짜 크네.”
이건 뭐 거의 아나콘다 급이었다.
도린 형제가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이건 우리가 처리하도록 하겠다.”
삼형제가 뱀에게 달려들어 집단린치를 가했다.
“꼭 누군가를 닮아서 기분 나쁘게 생겼군!”
“죽어! 죽어!”
설마 그 누군가가 나인가? 아무튼 도린 형제는 어렵지 않게 뱀을 토막 냈다. 그래도 명색이 B급인지라 고작 뱀에게 고전하진 않았다.
그 후로, 점점 더 많은 뱀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마법은 메두사를 위해 아껴둬야 했기 때문에, 나는 검을 사용해 도린 형제와 함께 뱀들을 처치하며 나아갔다.
─서걱!
“슬슬 긴장해야겠는데.”
뱀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은, 메두사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아무래도 이제 다른 파티랑 합치는 게 좋겠어.”
메두사를 만나서 각개격파 당하기 전에, 미리 뭉칠 필요가 있어보였다. 나는 더 이상의 전진을 멈추고, 자리에 멈춰서 나뭇잎을 모았다.
─치익!
[금일 사용 가능한 ‘이그나이트’ - 6회]
나뭇잎더미가 불타며 자욱한 연기를 피워냈다. 내 그룹에 속한 다른 파티를 모으기 위한 신호였다. 호각은 메두사를 발견했을 때에만 불기로 약속되어있어서 사용할 수 없었다.
속속들이 다른 파티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시오?”
“지금부터는 함께 행동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소.”
나는 그렇게 스무 명을 데리고, 뱀이 더 많이 나오는 쪽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걸었을까,
─삐이이익!!!
저 멀리서 호각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나타났나?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은데... 일단 달립시다!”
호각소리는 굉장히 먼 곳에서 들려왔기에 위치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달리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다행히 달리는 와중에도 반복해서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곧 소리의 근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협곡에 가까운 산골짜기.
무수한 뱀들이 얽혀서 장벽을 이루고 있었고, 그 뒤에는 메두사가 있었다.
뱀으로 이루어진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꿈틀거리고 있었으며, 상반신은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하반신은 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부리는 수많은 뱀이 인간과 전투하는 모습을 고고하게 관망하기만 할뿐, 직접적으로 움직이진 않고 있었다.
“크윽. 마법으로 활로를 뚫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서 싸우고 있던 A급 모험가 찰리가 소리쳤다. 그의 앞에는, 거대한 뱀들이 서로 얽혀 만든 파도가 넘실거렸다.
─슈우웅!
─화르륵!
─콰직!
여러 개의 마법이 뱀의 파도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조족지혈에 불과할 뿐이었다.
나는 서둘러 그룹원들에게 지시했다.
“엘미나님과 마법사는 후방에서 지원하세요. 도린! 너희는 후방까지 넘어오는 뱀으로부터 이들을 보호해. 나머지는 저와 함께 바로 전장으로 가시죠!”
“네!”
“알았다!”
나는 전장으로 달려가며 마법을 준비했다.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3회]
푸른빛을 띤 전류가 전방을 향해 뻗어나갔다. 뱀에 닿은 전류 줄기는, 곧 연쇄적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뱀의 파도가 일부분 허물어지자, 그 앞에 서있던 찰리가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누, 누가 이런...? 오! 자네였군!”
“상황이 어떻습니까?”
“좋지 않아. 이 좁은 곳에서 뱀의 장벽을 뚫고 메두사에게 접근할 엄두가 나지 않고 있다네.”
서걱! 그가 입을 쩍 벌리고 달려드는 뱀의 머리를 베어내며 말했다.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용병들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고... 그렇다고 퇴각하자니 메두사를 놓칠 것 같고... 이거 곤란하게 됐군.”
과연 찰리의 말대로 뱀의 장벽은 굳건했다.
체인 라이트닝에 맞아 일부 허물어졌음에도, 스멀스멀 다른 뱀들이 빈자리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범위 마법을 쏟아 부어야겠군.’
마법을 아끼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위력이 강한 단일 마법만 남겨두고, 나머지 마법은 써야한다.
“찰리님. 지금 뱀과 싸우는 분들을 뒤로 물려주십시오.”
“그,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전부 달려들어도 뚫지 못하는 판국이네!”
“활로는 제가 만들어보겠습니다. 길이 열리면 메두사에게 진입할 사람들을 준비시켜주세요.”
“혼자서? 그게 가능하... 알겠네.”
내가 앞만 뚫어져라 노려보고 있자, 찰리는 그렇게 대답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일단은....’
─사사삭. 사삭. 사사삭.
내 주위에 한기를 내뿜는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한가득 생성되기 시작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프로즌 더스트’ - 1회]
캐스팅이 완료되자마자 바로 쏘아 보냈다.
─푹! 푹! 푹!
수많은 얼음 조각들이 뱀의 몸통에 박혀들었다.
나는 그대로 다음 마법을 캐스팅해서 날렸다.
─화르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0회]
맹렬히 회전하는 거대한 화염구가 뱀의 장벽을 불태운다.
열기에 의해 뱀의 몸통에 박혀있던 얼음 조각들이 녹아내렸다.
졸지에 몸에 구멍이 생겨버린 뱀들에게서 피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거기에 대고 연속으로 전류 줄기를 뿜어댔다.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2회]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1회]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0회]
뱀의 장벽이 절반 이상 무너져 내렸다.
“이, 이, 이게 무슨...?”
“여, 열렸다! 길이 열렸어!”
“지금이다! 다들 진입해! 어서!”
“후방에 있는 마법사와 회복 마법사도 더 가까이 와서 진입조를 지원해라! 석화에 걸리면 바로 풀어야한다!”
나를 포함한 A급 세 명이 선두에 서서 허물어진 뱀의 장벽을 넘어갔다.
골짜기의 중앙에서 메두사가 우릴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눈이 마주쳤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아직 괜찮은데...?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 있으면 석화시킬 수 없는 건가?”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군.”
옆에 있던 찰리가 동의했다.
나는 일단 원거리에서 마법을 날려보기로 했다.
─화르륵!
내가 파이어 애로우를 생성해서 날리자, 메두사의 주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커다란 뱀이 한 마리 소환돼서 몸으로 마법을 막아냈다.
─슈우웅
이번에는 매직 미사일을 날렸지만, 마찬가지로 뱀을 소환해서 막았다. 그 뒤로도, 그녀는 내가 마법을 날릴 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방어했다.
‘본체의 방어력은 떨어지는 것 같은데.’
굳이 저런 식으로 버티는 걸 보면, 다른 방어수단은 없는 듯 보였다. 게다가 딱히 반격도 하지 못하는 것이, 어쩌면 마안과 뱀 소환만이 메두사의 주력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계속 마법을 낭비할 수도 없는데.’
그때, 메두사가 입을 열었다.
“이리 가까이 오렴. 인간들아.”
몸의 절반이 흉물스러운 뱀인 것과는 달리, 몹시 고혹적인 목소리였다.
“나도 한때는 인간이었단다. 이리 와서 나의 슬픈 사연을 들어주지 않겠니?”
가까이 오길 종용하는 걸 보니, 역시 멀리서는 석화시킬 수 없는 게 맞는 듯했다.
“잠깐만 들어주면 된단다. 누구라도 좋으니, 공감하고 위로해줬으면 좋겠구나. 내가 그리로 가면 되겠니?”
그녀가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두 눈을 감아라!”
찰리가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작전대로 눈을 감고, 소리와 감각에 집중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