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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33화 (33/200)

비공개 수배범 (3)

“이, 이런 미친....”

누군가의 꿈에 들어가자마자 육성으로 욕설을 내뱉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꿈의 세계 자체는 꽤 선명했다.

배경은 도시였다. 실존하는 도시인지는 모르겠으나, 비교적 넓은 반경까지 디테일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상한 쪽으로 디테일하다는 거다.

도시 곳곳에 박혀있는 높다란 말뚝에는, 처참하게 손상된 시체들이 피를 뚝뚝 흘리며 보란 듯이 걸려있었다.

하늘은 이상하리만치 검붉고, 건물의 지붕 위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걸터앉아 있기도 했는데, 그들은 특이하게도 눈이 푹 파여 있었다.

“이게 그놈의 눈으로 보는 세상인가...?”

아무래도 수배범의 환각이 반영된 꿈이 아닐까 싶었다.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그만의 세상.

현실에서 그의 언행을 보고, 뭔가 정신적인 질환을 앓고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는 있었다. 당연히 꿈의 내용도 일반적이진 않겠지.

“그래도 좀... 섬뜩하군.”

예측하기 어려운 위험부담이 있음에도 수배범의 꿈속으로 들어온 이유는, 나에게는 최후의 보루가 있기 때문이다.

자살.

만약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진다면, 마법을 얻는 것을 포기하고 자살함으로써 언제든지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다.

안전장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나는 바로 꿈의 주인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현재 내가 있는 장소는, 구현된 도시의 외곽쯤으로 추정됐다. 이번 꿈의 주인은 제정신이 아니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보편적으로는 구현된 세상의 중앙부근에 주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일단 중앙으로 가보자.”

건물 사이로 나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이런 부분은 그냥 평범한 도시였다.

건물 위에 앉아있는 눈알 없는 괴인이 나를 쳐다보는 것만 빼면.

─스윽

그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때로는 뭔가 중얼거리기도 했는데, 너무 웅얼거리듯 말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시, 시팔. 눈알도 없으면서 왜 쳐다보는 거야.’

눈이 없어서 앞이 보이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는 않으니,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중앙에 가까워져가니, 멀쩡한 모습을 한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어봤다.

“안녕하십니까.”

“.......”

“안녕하세요?”

“으어에이으어?”

여러 명에게 접근해봤지만, 제대로 대화를 할 수 있는 인물은 없었다. 내가 처음 마법을 훔쳤었던 아론의 꿈처럼, ‘지나가는 행인’정도로만 구현된 것 같았다.

간혹 정상적인 문장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속삭이지 마.”

“예? 아, 저기!!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속삭이지 마. 속삭이지 마. 속삭이지 마.”

“.......”

뭔 말만하면 속삭이지 말라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환청을 자주 듣는 수배범의 무의식이 반영된 듯싶다.

“하, 이러면 진짜 오래 걸릴 텐데.”

아론의 꿈에서도 그랬지만, 구현된 세계가 넓으면 꿈의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때도 혼자서 한참을 헤매다가, 대화가 가능한 인물을 만나고 나서야 단서를 얻었었다.

“...큰 소리로 이름이라도 불러볼까?”

원래는 내 쪽에서 나서서 이런 돌발행동을 하면, 꿈이 깨질 위험이 있다. 자연스럽지 못하니까. 하지만 이 수배범은 환청을 들을 정도로 정신이 이상하니,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어쨌든 그런 고민을 하며 계속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꿈의 중심부로 추정되는 곳에 도달했다.

건물이 늘어선 어두운 골목길.

깊숙할수록 더 어두워져서, 끝부분엔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 말뚝을 지나, 골목길에 한 발짝 들어섰다.

─스윽

“어....”

건물 위에 앉아있던 괴인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본다. 이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니, 뭔가 특별한 장소에 오긴 한 모양이다.

‘일단 가까운 건물부터 하나씩 직접 들어가 봐야겠군.’

왼편에 있던 건물의 문을 열기위해 손잡이에 손을 올린 순간, 머리 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키킥.”

지붕에 걸터앉은 괴인이, 뻥 뚫린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진짜 기분 나쁜 꿈이군. 빨리 마법을 얻고 나가든가 해야지....’

역시나 직접적으로 나를 공격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무시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평범한 가정집 같았다. 내부가 불쾌하게 끈적거린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그렇게 수색을 반복하며 다섯 번째 건물에서 나왔을 때였다.

골목 저편의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또 지나가는 행인인가?’

지금까지 이 꿈속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대화가 불가능했지만, 이곳은 꿈의 중심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래, 안녕?”

“......!”

어둠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곧, 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화가 가능한 존재...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구현 된 인물인가? 마침 잘 됐군.’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저... 혹시 이곳이─”

“저곳으로 가보렴.”

“네?”

“네가 찾는 사람은 저기에 있어.”

...뭐?

“뭘 그렇게 놀라니? 저기에 있다니까?”

그녀는 어두운 골목의 끝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짐을 느꼈다.

온통 기괴한 것투성이인 꿈이긴 했지만, 단연코 이 여자가 제일 기괴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응?”

“제가 누구를 찾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있냐는 말입니다.”

“꿈속에 들어왔으면, 당연히 꿈꾸는 자에게 볼일이 있는 거 아니겠니?”

“.......”

이 여자는 지금 이곳이 꿈속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누가 꿈의 주인인지도.

일반적인 피조물과는 확실히 달랐다.

정신이 이상한 수배범이 특별히 자아를 부여해서 창조해낸 존재인가? 아니면 나처럼 외부에서 개입한 존재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너는 내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순순히 대답해줄거니?”

정체를 밝히지 않겠다 이건가.

나는 질문을 바꿔보기로 했다.

“당신이 꿈의 주인에게 키메라를 만들라고 속삭였습니까?”

“뭐어? 푸훗. 내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일을 시키겠니? 그는 욕망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망가진 존재야.”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스스로 망가졌다는 걸 보니, 키메라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의지로 만든 것 같았다.

사실 키메라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눈앞에 있는 이 여자의 정체가 궁금할 뿐.

“나도 너에게 질문 하나 해도 될까?”

“......그러시죠.”

“꿈꾸는 자의 욕망이 급격하게 커졌던데, 혹시 최근에 네가 그를 좌절시켰니?”

이 질문에서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 여자는 수배범의 꿈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는 것.

나와는 달리, 현실에는 개입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예. 아마도.”

“역시 그랬구나. 고마워.”

나는 혹시나 이 여자가 덤벼들까봐 긴장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왜인지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럼 나는 이만 가볼 테니, 너도 얼른 그에게 가보렴.”

그녀의 등 뒤로, 공간이 벌어지며 타원형의 게이트가 생성됐다.

“정신계 마법사지? 어쩌면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겠네.”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게이트로 들어가자, 벌어졌던 공간이 순식간에 닫혀버렸다.

“.......”

별안간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했다.

꿈에 개입할 수 있는 또 다른 존재.

하지만 나와는 드나드는 방식이 다르다.

그 외에도 여러모로 의문투성이였지만, 고민한다고 명쾌한 해답이 나오는 건 아니었다.

“...현실에서 수배범에게 물어보면 뭔가 좀 알 수 있으려나?”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녀석이니 어떻게 될 진 모르겠다. 일단은 원래 목적인 마법부터 얻고 나서 고민해볼 일이다.

나는 정체불명의 여인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

어두운 골목의 끝부분에 있는 어느 건물 앞.

“여기겠군.”

나는 수배범이 이곳에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건물 위에 눈알 없는 괴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나를 비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키킥.”

“킥킥킥.”

아, 체인 라이트닝 마렵네.

어쨌든 건물로 진입하기에 앞서, 간단한 행동방침을 정했다.

‘땅에서 진동이 느껴져도 절대 피하지 않는다.’

수배범이 사용했던 땅 속성의 마법은, 공격력은 떨어져도 유틸성이 좋았다. 방어에도 활용할 수 있고, 조금이지만 지형도 변경할 수 있어서 쓰임새가 많아 보였다.

거의 공격 마법만 사용할 수 있는 나로서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할 수 있겠다.

‘솟아오르는 땅과 천장 사이에 끼어서 압사당하면 되겠지?’

빨리 끝내고 꿈에서 나가고 싶었다.

이 꿈이 너무 불쾌하기도 하고, 현실로 돌아가서 정체불명의 여자에 대해서도 물어보고 싶었다.

“후우.”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딱히 내부를 수색할 필요는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이번에도 역시 꽤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야 했다. 지하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비린내와 함께 수배범의 중얼거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응답하지 않았다. 응답하지 않았다.”

지하실의 문이 살짝 열려있었기에, 그 틈으로 안을 슬쩍 들여다봤다.

‘저건... 소환 마법진?’

나는 소환 마법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무언가 불길한 존재를 소환하는 마법진임을 알 수 있었다.

피로 그려진 마법진 위에, 토막난 시체가 제물로 올려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분명한 오늘이지만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내일도 속삭였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나를 바라보고 죽어야하는 것은 썩을 뿐이다.”

그는 마법진 앞에 엎드려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자꾸 ‘응답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들어가는 걸 보니, 그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족 소환에 실패했다는 건가?’

뭐, 저 녀석이 꿈속에서 뭘 소환하려 했든 간에, 또는 과거에 그랬었던 경험에 대한 꿈을 꾸든지 간에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나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그가 엎드린 채로 고개만 휙 돌려서 나를 바라봤다.

“너도?”

그는 나에게 영문 모를 질문을 했다.

“......?”

“너도 내 욕망을 탐하러 왔나. 비가 내리는 이유는 구더기가 내 눈을 파먹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지만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냥 제발 닥치고 나를 죽이기나 하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나도? 그 말은 꼭 다른 누군가도 네 욕망을 탐하고 있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그렇다. 오래전부터 속삭였지만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부식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조금 전에 내 욕망을 가져갔다. 내일도 파도가 칠 것이다. 너도 내 욕망을 탐하러 왔나.”

‘......조금 전에 가져갔다고? 아, 설마.’

수배범의 말을 전부 이해하기는 힘들었지만, 얼추 그림은 그려졌다.

어떤 여자가 수배범의 욕망을 가져갔고,

정체불명의 여자가 내게 고마워한 이유.

내가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것처럼,

그녀는 꿈속에서 욕망을 훔치는 것이다.

“너도 내 욕망을 탐하러 왔나.”

수배범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그 여자의 정체가 뭐지?”

“내 욕망을 탐하러 왔나.”

“아니. 그런 건 관심 없고, 그 여자 정체가 뭐냐고.”

“너도 내 욕망을 탐하러 왔나.”

“.......”

아직 궁금한 게 많았지만, 아쉽게도 더 이상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원하는 답을 말해줬다.

“그래! 네 욕망을 모조리 빨아먹으러 왔다!”

─쿠르르...

발밑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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