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32화 (32/200)

비공개 수배범 (2)

“으으, 좀 춥네.”

망토를 걸쳤지만 옷이 워낙 얇았기에, 밤이면 으슬으슬 추워졌다. 나는 팔뚝을 문지르며 따뜻한 자리를 찾아다녔다.

이곳에서 밤을 맞이한 게 벌써 세 번째다.

그렇다. 나는 사흘이나 잠복 중이다.

맨발의 아저씨에게 신발을 벗어주고 구체적인 정보를 얻었었다. 구체적이라고 해봐야 그냥 이곳에 며칠마다 음식을 주는 남자가 나타난다는 이야기 정도였지만.

아무튼 그렇게 부랑자들 사이에 녹아들어서 삼 일을 보냈고, 몇몇에게 더 얻은 정보에 의하면 가끔 밤에 음식을 주는 남자가 있다는 건 거의 확실시됐다.

“오늘은 나타나려나...? 오, 좋은 자리!”

붉은색 결계 앞에, 피아노 건반처럼 누워있는 노숙자들 사이에 빈자리가 하나 있었다. 냉큼 그곳으로 달려가 자리 잡았다.

난로를 쬐듯 앉아서 훈훈한 열기를 받아냈다.

양 옆에는 지저분한 노숙자가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딱히 악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들과 부대끼며 지내다보니 어느새 후각이 마비된 듯하다.

“젠장. 이렇게 고생한 보람이 있었으면 좋겠군.”

수배범은 무슨 마법을 사용할까?

기왕이면 화끈한 공격 마법을 쓴다면 좋겠다.

나는 꿈속에서 맞아 죽어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극단적인 공격 마법 외에는 배우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테면 미노타우로스를 토벌하러 갔을 때 여성 마법사 레아가 쓰던 얼음 마법 같은, 유틸리티 계열의 마법은 맞아도 잘 죽지 않으니까.

‘윈드 블레이드 같은 마법을 쓴다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말이지.’

그런 상념에 잠겨있을 때였다.

“어이.”

누군가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

“거긴 내 자리다. 꺼져.”

웬 노숙자 다가와 자리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당연히 개소리다. 아무것도 모르던 첫 날엔 그냥 비켜줬었지만, 나도 이젠 당당한 노숙자의 일원이다. 알 건 다 안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헛소리...... 아, 예. 앉으시죠!”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했다. 이 노숙자 뒤편 저 멀리에, 수상한 남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검은색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지난 삼 일간 저런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늦은 밤에 로브를 눌러쓰고 노숙자가 득실거리는 곳에 온다? 이건 수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배를 벅벅 긁으며 근처로 걸어갔다.

“아이씨. 배고파 죽겠네에.......”

그 남자는, 자리싸움에서 밀려나 결계와는 먼 곳에 쪼그려 앉아있는 아이에게 뭔가 먹을 것을 건네주고 있었다.

“어... 그거 먹을 건가...? 나도 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내가 주변을 지나가다가 슬쩍 말하자, 그가 말없이 나를 한번 훑어봤다.

‘수배범이 맞나? 아닌가?’

초상화가 추상적으로 그러져있는데다가 주변이 어둡고, 로브까지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일단 덮치고 볼까 싶었지만,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싸워서 제압했는데 만약 수배범이 아니라면, 이 소동이 진짜 수배범의 귀에 들어갈 염려가 있다.

그는 곧 로브 안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파이를 하나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오오... 고맙습니다.”

파이를 받아든 나는 그에게 꾸벅 인사하고, 등을 돌려서 걸어 나갔다. 그러자 그가 말을 걸어왔다.

“그걸로 충분한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틀을 굶었는데. 왜요. 더 주시려고요...?”

“지금은 없다. 내일도 남아있는데 없어졌다. 내 거처에 더 있다. 그럴 때마다 어제 속삭였다. 그들은 응답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나를 따라와라. 머리가 아프기 때문에 그랬다. 파이를 더 준다. 지금도 속삭이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욕망이겠지.”

자신의 거처에 음식이 더 있고, 따라오면 준다는 소리인가?

아무래도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았다.

“가겠나?”

“.......”

나는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그는 옆에 쪼그려 앉아서 파이를 먹고 있던 꼬맹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가겠나?”

“아저씨를 따라가면 파이를 더 주신다는 거예요...?”

“그렇다.”

“그럼... 갈래요!”

짧은 문장은 제대로 말할 수 있는 건가?

그가 다시 나를 바라봤다.

“가겠나?”

그가 수배범이 맞는지, 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다만 제정신이 아닌 놈처럼 보였기에, 그와 대놓고 함께 가는 것은 꺼림칙했다.

“저는 별로....”

내가 거절하자, 그는 휙 돌아서 꼬맹이만 데리고 떠났다.

나는 살며시 그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어둠속에서 시야가 허용하는 만큼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따라갔다. 그는 한동안 골목을 이리저리 꺾어 다니다가, 평범하게 생긴 2층짜리 건물로 들어갔다.

나는 잠깐 기다린 뒤, 그들이 들어간 건물로 접근했다. 그리고 귀를 가까이 대서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집중했다.

“.......”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창문으로 안쪽을 슬쩍 들여다봤지만, 역시 남자와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2층으로 올라갔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봐야할 것 같았다. 나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들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끼익

‘젠장.’

약간의 소음이 발생했기 때문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 더 기다리며 반응을 살피다가 진입했다.

내부는 술집처럼 보였는데, 빈 병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보니 장사를 안 한지 꽤 오래된듯했다.

나는 바로 2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리고 살금살금 한 계단씩 올라갔다.

“......?”

2층도 1층과 같은 술집으로 보였는데, 어지럽게 넘어져있는 테이블과 의자만 있을 뿐 남자와 꼬맹이는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이 건물로 들어왔는데...?’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아마도 지하실이나 비밀 통로 같은 게 있는 모양이다. 일단 건물 내부는 너무 어두웠기에, 부러져있던 의자 다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치익

[금일 사용 가능한 ‘이그나이트’ - 6회]

의자 다리 끝부분에 불꽃이 피어났다.

전에 마법서를 구매해서 배운 기초 마법 중 하나다. 별 건 아니고, 그냥 간단한 점화 마법이다. 모닥불을 피울 때 애용하고 있다.

간이 횃불을 들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구석구석, 특히 바닥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이건?’

카운터와 진열장 사이의 바닥에, 뚜껑처럼 여닫을 수 있는 문이 있었다. 열어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나는 그곳으로 내려갔다.

평범한 술 저장 창고라고 보기엔 이상할정도로 깊었다. 얼마간 내려가니 앞쪽으로 뚫려있는 통로가 나왔고, 횃불이 박혀있었다. 통로의 끝엔 또 다른 문이 하나 보였다.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든 거지? 이건 뭐 거의 작은 던전 수준인데.’

더 이상 내가 만든 간이 횃불은 필요 없었기에, 불을 꺼서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통로의 끝에 있는 문으로 다가갔다.

“아, 아저씨... 사, 살려주세요....”

문 안쪽에서 비릿한 혈향과 함께, 아까 만났던 꼬맹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안 돼.”

“오, 오지 마! 아아아악!!!”

급기야 꼬맹이가 절규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로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갔다.

─콰당!

중앙에 있는 실험대 위에 꼬맹이가 결박되어 있었고, 톱을 들고 다가가던 남자가 나를 보고 멈칫했다.

“너 이 새끼! 애한테 뭐하는... 미, 미친...!”

그리고 구석에 있는 실험대에는 사람과 몬스터의 신체부위가 뒤섞인, 흉물스러운 혼종이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나는 즉시, 가장 빠른 마법을 캐스팅했다.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7회]

그도 뭔가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속도전에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순식간에 모여든 전류가 그를 향해 뻗어나갔다.

“커억.”

그의 공격마법은 스태틱 쇼크에 고스란히 맞은 후에나 발동됐다.

내 발밑에서 수상한 진동이 느껴졌다. 나는 황급히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쿠르르... 쾅!

땅이 비정상적으로 솟아오르며 천장을 때렸다.

‘땅 속성의 마법사인가?’

그는 자신의 공격이 실패하자, 앞쪽 땅을 일으켜서 흙의 방패를 만들어냈다.

어떻게 지하실을 이렇게 깊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파지직!

다시 한번 스태틱 쇼크를 날렸지만, 흙벽을 뚫지 못하고 막혀버렸다.

‘...전격 마법으로는 안 되겠어.’

전격은 땅에게 밀리는 상성이다. 좀 더 강력한 체인 라이트닝이라면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꼬맹이가 가까이 있어서 위험했다.

그가 방패 뒤에 숨어서 재차 공격을 감행했다.

─쿠르르... 쾅!

이번에도 바닥에서 진동이 먼저 느껴졌기에 어렵지 않게 피해내며, 나도 다른 마법을 준비했다.

‘땅 속성보다 우위에 있는 건... 바람.’

─휘오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1회]

바람이 몰려들어 칼날을 만들어냈다. 죽으면 곤란하니, 최대한 낮은 지점을 향해 쏘아 보냈다.

─쐐액!

─퍼석!

바람의 칼날이 자욱한 흙먼지를 일으키며 방패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으으....”

발목이 잘려나간 수배범이 자리에 쓰러졌다.

바로 그에게 다가가 마나 속박 고리를 채웠다. 그리고 실험대 위에 있는 꼬맹이를 풀어주고, 거기에 수배범을 묶었다.

“괜찮니 꼬마야?”

“아... 아....”

꼬맹이는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덜덜 떨다가,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나는 품에 쓰러진 꼬맹이를 바닥에 눕혀놓고, 구석에 있는 실험대로 다가갔다. 거기엔 아까 본 끔찍한 혼종이 피투성이가 된 채 묶여있었다.

“키메라를 만들려다 실패한 건가.”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다. 머리는 사람이었다. 몸통은 기괴한 살덩어리로 이루어져있었고, 여러 개의 팔과 다리는 사람과 몬스터의 것이 섞여서 달려있었다.

살아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예 실패한 건지, 나중에 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건드려 봐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이봐. 이거 죽은 거 맞아? 이런. 일단 지혈부터 시켜야겠군.”

중앙의 실험대에 묶여있는 수배범의 발목에서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 같았기에, 서둘러 지혈부터 했다.

그리고 초상화와 그의 얼굴을 대조해봤다. 밝은 곳에서 보니 동일인물로 보였다.

“네가 저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 부랑자와 고아들을 잡아들인 게 맞나?”

“그렇다.”

그는 예상외로 순순히 시인했다.

“대체 왜 저런 걸 만들려고 했지? 아니, 됐다. 이제 와서 이유를 들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어.”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다. 이유를 듣는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그냥 꿈속에 들어가고, ‘오늘의 기억’에 넘기면 종결이다.

“속삭였다. 나는 어린 아이를 잡았지만 그는 나를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속삭인다. 수많은 벌레가 내 눈알을 파먹고 있는 이유는 욕망이다.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또 이러네.”

말이 조금만 길어지면 이런 엉뚱한 소릴 내뱉는다. 방금 전에 나랑 멀쩡히 전투까지 했으면서.

“지금도 내 머릿속에서 너와 함께 속삭인다. 그들은 보이지만 응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실패한 욕망 때문에 나를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자꾸 속삭임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걸 보니, 환청이나 환각 증세가 있는 것 같았다.

‘키메라를 만들라고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라든가.

아마 정신병의 일환으로 언어구사 능력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소름끼치는 말을 계속 듣고 있다가는 내 정신도 이상해질 것 같았기에, 더 이상 대꾸해주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장소를 옮겨야겠군.”

이곳은 수배범의 꿈속으로 들어가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

일단 꼬맹이가 있었다. 지금은 기절해있지만, 나중에 깨어나서 사람들을 불러오기라도 한다면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저 키메라.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만에 하나라도 살아있다면 위험하다. 꿈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나는 무방비한 상태니까.

나는 수배범을 기절시킨 후, 지하실에 있는 포승줄을 이용해 단단히 포박했다. 거기에 내가 입고 있던 망토까지 씌웠다.

“읏차...!”

양쪽 어깨에 수배범과 꼬맹이를 둘러메고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꼬맹이는 원래 있던 곳 근처에 내려줬다. 여관이라도 잡아줄까 했으나, 양쪽 어깨에 사람을 메고 가면 심히 수상해 보일 테니 그만뒀다.

꼬맹이를 내려 준 뒤에는, 자세를 고쳐서 수배범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허름한 여관을 찾아 들어갔다.

“방 있습니까?”

“50쿠퍼. 선불이네.”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노인이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

“여기 1실버입니다. 이틀 묵겠습니다.”

혹시나 등에 있는 사람은 누구냐고 물으면 ‘친구가 많이 취했다’라고 변명하려 했는데, 딱히 캐묻지는 않았다.

나는 방으로 올라가서 수배범을 침대에 묶었다.

‘이제... 기다렸다가 꿈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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