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 수배범 (1)
“불법적인 인체실험...? 그게 뭘 의미하는 겁니까?”
“글쎄. 허가받지 않고 사람을 대상으로 마법의 위력을 시험할 수도 있고, 키메라를 만들거나 무언가 저주를 개발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
테드가 태연하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늘어놓았다.
“정확히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른다는 거군요.”
“붙잡지 않는 이상 상세한 내막은 모를 수밖에.”
그건 그렇다. 붙잡아서 심문하거나 직접 실험실에 들어가 봐야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그가 마법사라는 것과 인체실험을 하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안 겁니까?”
“목격담과 생존자의 증언이지. 주로 먹을 것으로 부랑자와 고아를 유인하지만, 종종 마법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도 한다더군.”
“인체실험은요?”
“탈출한 아이의 말로는, 타겟을 따라간 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고 하네. 워낙 공포에 질려서 위치도 기억 못할 만큼 증언의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마법사가 그런 취약계층만 잡아들인다면 이유는 불 보듯 뻔해.”
마법사인 것은 확실하지만, 인체실험을 한다는 것은 추측이라는 거군.
그렇다면 걱정되는 점이 하나 있었다.
“사람으로 실험을 하는 게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이를 테면... 제물로 바친다든지.”
수배범이 흑마법사일 가능성.
흑마법사는 일반적인 마법사와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다. 마법을 연구하고 수련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힘을 얻는다고 한다.
계약한 악마에게 많은 제물을 바칠수록, 또는 더 강한 악마와 계약할수록 강해진다고 들었다.
즉, 그들은 힘을 ‘빌려서’ 사용한다.
얼마나 강한지 가늠하기 어려운 존재를 상대하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다. 아직 내게는 무리다. 나는 마법을 배우고 싶은 거지, 제물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테드는 내가 우려하는 바를 바로 캐치해냈다.
“혹시 타겟이 흑마법사일 가능성에 대해 말하는 건가?”
“네. 그런 위험은 피하고 싶네요.”
“...흑마법사를 만나본 적이 없나보군.”
당연히 없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만 가끔 접해봤을 뿐.
“흑마법사일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네.”
테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들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티가 나거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지. 이런 대도시에 숨어있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호오.”
부정적인 감정을 빨아들인다라.
굉장히 흥미로운 특성이군.
“도시 내에 그런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체스터 백작님의 기사가 직접, 아니 세르시아 교단에서 가장 먼저 움직였을 걸세.”
그럼 그냥 미치광이 마법사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그렇군요. 현상금은 얼마입니까?”
현상금이 높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높을수록 상대가 강력하다는 방증. 현상금의 액수는 대상의 강함을 판단할 수 있는 지표다.
“3골드.”
“괜찮네요. 제가 해보겠습니다.”
해볼 만한 수준이다.
지난번에 잡았던 현상수배범이 1.5골드였으니, 그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지.
“잡을 때 뭔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까?”
“웬만하면 살려서 잡아오게.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죽여도 상관없지만, 그런 경우에는 증거도 챙겨 와야 해.”
테드는 그렇게 말하며, 마나 속박 고리를 하나 건넸다.
“중급 속박 고리라네. 생포했을 경우 이걸 채워서 데려오도록.”
“오오, 알겠습니다.”
중급 마법까지 억제할 수 있는 고리였다. 내가 가진 것보다 한 등급 높다. 혹여나 망가트리기라도 하면 내 등골이 휘어질 테니, 소중하게 챙겨 넣었다.
나는 테드에게 몇 가지 정보와 주의사항을 더 들은 뒤에 ‘오늘의 기억’을 나섰다.
***
이번 건은 ‘비공개’ 현상수배범이다.
비공개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개나 소나 현상금을 노리고 달려들었다가 역으로 당하는 일을 방지하는 것과, 어설픈 추적으로 인해 오히려 수배범이 도망가게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즉, 지난번처럼 사람들에게 대놓고 초상화를 보여주며 ‘이사람 아세요?’라고 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상관없지만, 내가 수배범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게끔 찾아내야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도시 전체를 뒤질 필요는 없다는 점.
“카트카 북쪽 구역.”
테드가 알려준 정보에 의하면, 부랑자와 고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나타나지만, 주로 북쪽에서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아마 실험실도 그쪽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일단은 거기로 가봐야지. 여기요! 마부님!”
나는 지나가던 마차를 불러 세웠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도시의 남동쪽이다. 목적지와 거리도 좀 있고, 걷기도 귀찮으니 호사스러움을 누려보기로 했다.
“예이! 어디로 모실까요?”
마차를 멈춰 세운 마부가 쾌활하게 물었다. 말 한 마리가 끄는 작은 마차였다.
“음... 카트카 북쪽 성문으로 가주세요.”
“북쪽 성문, 알겠습니다~.”
그는 내가 마차에 탑승하자마자 말을 출발시켰다.
─달그락 달그락
편히 앉아서 도시를 가로질러나갔다.
완전 오픈형 마차였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아 눈이 즐거웠다.
“이야. 이거 도시에서 마차를 타니까 또 새롭네.”
게임 속 인생의 대부분을 쿠퍼단위로 벌며 거지처럼 살아온 나다. 의뢰를 나갈 때나 타봤지, 이렇게 비교적 짧은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타본 적은 처음이다.
“그렇죠? 단순히 관광 목적으로 타시는 손님도 많습니다요.”
마부를 포함해 4인승 밖에 안 되는 작은 마차였기에, 내 감상평이 들린 모양인지 마부가 맞장구쳤다.
“그냥 도시를 한 바퀴 빙 돌아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들도 있습죠.”
“오, 그렇군요.”
그는 이동하는 내내 끊임없이 관광 가이드처럼 주절거렸다. 어디 음식점이 맛있다느니, 어디 여관의 시설이 좋다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럼 혹시 빈민가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카트카 북쪽 구역에서요.”
“아유, 당연하죠. 성문을 등지고 오른쪽으로 쭈욱 가다보면, 도시의 결계가 성벽보다 안쪽에 있는 구역이 있습죠. 거기에 노숙자가 아주 빽빽합니다요. 지나갈 때마다 냄새가 그냥, 어휴.”
그는 마치 지금도 냄새가 난다는 것 마냥, 손을 코앞에서 휘휘 저으며 부채질했다.
“왜 하필 그곳에...? 거기에 뭐 무료 급식소라도 있답니까?”
“결계 때문이죠. 따뜻하니까 죄다 결계 근처로 몰려드는 겁니다. 날씨가 추워지면 자리를 놓고 자기들끼리 다투기도 합니다요.”
아, 카트카의 결계는 불 속성이라 따뜻했지.
어쨌든 좋은 정보를 얻었다.
역시 이런 정보는 택시기사가 최고지.
그렇게 마부와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북쪽 성문에 도착했다. 빈민가까지 가달라고 할까도 싶었으나, 그런 곳에 마차를 타고 가면 이목을 끌 것 같아서 그만뒀다.
1실버를 지불하고 마차에서 내렸다.
“성문을 등지고 오른쪽이랬지.”
나는 마부가 알려준대로 성벽을 따라 걸어갔다.
얼마간 걷다보니 과연, 성벽이 불룩하게 바깥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니, 붉은색 결계가 드러나는 구간이 나왔다.
결계는 반구형(半球形)이지만, 도시의 성벽은 완벽한 원형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물론 결계도 완벽한 반구형은 아니고, 윗부분은 좀 흐릿하다.
“킁킁. 냄새가... 심하긴 하군.”
아무튼 꽤 많은 노숙자들이 보였다.
제각각 사연 있는 얼굴을 하고 누더기를 걸친 그들로부터 악취가 풍겨왔다.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어야겠어.”
그럴싸한 체인 메일과 롱소드로 무장한 상태.
이곳에서 내 복장은 너무 튀었다.
***
나는 아예 저들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그래야 정보를 얻든, 잠복을 하든 간에 편할 것 같아서다.
허름한 옷으로 갈아입고, 일부러 흙을 묻힌 싸구려 망토를 둘렀다. 내친김에 얼굴에도 묻히고,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무장은 전부 여관방에 놓고, 단검과 마나 속박 고리만 챙겼다.
“이 정도면 됐겠지?”
내가 봐도 꼴이 형편없었다.
거지가 뭐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정도면 충분할 듯싶었다.
바로 여관을 나서서 걷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꽤 괜찮은 여관을 선택했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모여 있던 장소와는 거리가 좀 있었다.
지나가던 모자(母子)가 나를 보고 수군거렸다.
“엄마!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더러워?”
“쳐다보지 마렴, 찰스. 너도 열심히 기술을 배우지 않으면 나중에 저런 사람이 된단다.”
“.......”
나는 칭찬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만큼 훌륭하게 위장했다는 뜻이겠지.
그런 경멸어린 시선들을 마주하며 걷다보니 곧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길바닥에 누워있는 그들 사이에 적당히 자리 잡았다.
한동안 조용히 분위기를 살폈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딸 수 있었는데... 분명 홀수가 나올 차례였는데... 거기서 왜 짝수가 나왔지...?”
“술 가져와! 술!!”
“나도 한때는 잘나갔었어.”
“땅은 침대요, 결계는 이불이로다. 넓은 침대와 따뜻한 이불이 있으니 행복하기 그지없구나.”
“엄마... 어딨어...? 잠깐만 기다리라며....”
다양한 인간군상이 있었다.
때로는 신세한탄을 하고, 자기들끼리 찬란했던 과거를 자랑하기도 하고, 시답잖은 이유로 싸우기도 했다.
다만 수배범에 관한 이야기, 그러니까 먹을 걸 나눠준다는 마법사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나는 그나마 대화가 잘 통할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슬쩍 다가갔다. 자신이 한때는 잘나갔었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저... 제가 배가고파서 그런데... 여기서 먹을 걸 구하는 방법이 있습니까? 혹시 음식을 나눠주는 구호단체가 있다든지.......”
“나도 한때는 잘나갔었지.”
“아, 예. 그러시군요. 아무튼 음식을─”
“나도 가난한 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던 시절이 있었어.”
“예, 훌륭하셨네요. 그래서 음식을─”
“나도 한때는 훌륭했었지.”
그냥 이 사람은 포기해야겠다.
“꼬맹아. 아저씨가 배고파서 그런데─”
“아빠...? 아빠야? 드디어 와줬구나!!”
“저... 제가 배가고파서 그런데─”
“나는 술이 고파.”
그 뒤로도 몇 명에게 더 말을 걸어봤지만, 내 말에 제대로 대답해주기는커녕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무래도 묻는 방식이 잘못된 것 같았다.
나는 배를 벅벅 긁으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이 싯팔... 배고파 죽겠네... 어디 먹을 거 좀 없나...?”
최대한 그들처럼 말하려 노력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니, 누군가가 나를 불러세웠다.
“이보게, 청년.”
수염과 머리카락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털이 지저분하게 자란, 맨발의 아저씨였다.
“신발이 좋아 보이는군? 그 신발을 내게 준다면 음식을 구할 방법을 알려주지.”
“음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방법만 알려준다고요...? 별로 안 땡기는데.”
내가 슬쩍 한번 튕기자, 그가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고기가 들어간 파이를 주는 남자를 알고 있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세요? 우리 같은 거지에게 누가 그런 파이를 줍니까...?”
나는 말도 안 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내심 기대에 부풀었다. 거지에게 좋은 음식을 주는 남자라니. 딱 봐도 수상했기 때문이다.
“어허! 정말이네. 내가 받아봤어!”
“아....”
실망감이 느껴졌다.
이 아저씨는 멀쩡히 살아있지 않은가?
음식을 줬다는 남자는 수배범이 아닌 듯했다.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고작 파이 하나를 얻을 수 있는 정보와 제 신발을 바꾸기엔 아깝네요.”
내가 손을 내저으며 다시 걸어가려하자, 맨발의 아저씨가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자, 잠깐! 고작 파이 하나가 아니야!”
“......?”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음식을 받을 수도 있어! 그 남자가 자신을 따라오면 더 주겠다고 했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