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29화 (29/200)

명망 쌓기 (2)

내가 자신 있게 말했지만, 톰은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내가 망신을 당할까봐 그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말 괜찮겠나? A급인 자네가 용병에게 두들겨 맞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예. 아니, 설령 못 이긴다 하더라도 발악이라도 해야 다음부터 쉽게 시비를 걸지 못할 거 아닙니까.”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러 다니는 걸 보면, 나처럼 다른 목적이 있지 않은 이상에야 B급으로 추정된다. 그 정도쯤이야 뭐.

우리는 원래 사냥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용병들은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젠장. 그새 튀었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딱 그 꼴이다.

나에게 두 번이나 시비를 건 녀석이다. 혼내주려고 마음먹고 왔더니만 어딜 간 건지.

“쩝. 그럼 뭐, 일단 사냥이나 계속 하고 있을까요? 여기가 몬스터도 잘 나오고 명당인 것 같던데.”

당장 온 숲을 뒤져서라도 녀석들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나에겐 일행이 있고 맡은 의뢰가 있다. 나 혼자라면 모를까, 의뢰를 수행중인 다른 모험가들의 시간까지 뺏기는 좀 그랬다.

어차피 이 주변에서 사냥하고 있다 보면, 놈들이 다시 나타나서 시비를 걸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세.”

“혹시 그놈들이 보이면 꼭 저한테 알려주시고요. 다들 아시겠죠? 꼭이요.”

나는 사냥을 재개하기에 앞서, 일행을 모아두고 신신당부했다.

“허허, 알겠네.”

“알았어요.”

“네.”

“알겠습니다.”

네 명 모두의 확답을 듣고 나서야 다시 사냥을 시작했다.

근방을 돌아다니다 보니, 역시 명당답게 금세 미노타우로스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여성 마법사 레아가 선공을 준비했다.

─사라락

그녀의 머리 위에 작은 얼음 덩어리 하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저건... 전에 한 번 맞아본 마법이군.’

기사 살해범 러스틴의 꿈속에서 맞아봤던 마법이다. 피격부위를 잠시 얼어붙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검으로 마무리해도 되겠어.’

그동안의 사냥에 기초 마법을 꽤나 소모했다. 이제 전격 계열과 위력이 강한 마법위주로 남은 상태. 전격 마법은 그 용병들을 위해 아껴둬야 하니, 검으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얼음 덩어리가 발사됨과 동시에, 나도 검을 뽑아 들고 쇄도했다. 그리고 미노타우로스의 몸통이 얼어붙는 순간, 녀석의 가슴에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몸통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는 덕분에, 정확히 심장을 노릴 수 있었다.

검을 뽑아내자, 피를 쏟아내며 미노타우로스가 푹 고꾸라졌다.

“자, 자네 검도 상당히 잘 다루는군...?”

“레아 씨가 얼려주신 덕분이죠.”

“아니야... 몸놀림을 보니 검만 사용해도 나보다 강할 것 같은데. 어쩐지 마법사가 검을 들고 다니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네만, 그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군.”

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미노타우로스의 사체로 가서 거대한 뿔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사실 말이 뽑는 거지, 두개골을 부셔서 분리해내는 작업에 가까웠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문득 의문이 하나 치밀었다.

“그런데 그 흉물스러운 뿔은 대체 어디에 쓰이길래 수요가 있는 겁니까?”

“아, 이거 말인가?”

그는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처럼 두개골을 두드리다가, 여성 마법사의 눈치를 슥 보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끓는 물에 푹 고아서 마시면 남자에게 좋다는 설이 있네.”

“......?”

“정력 말일세! 황소 같은 정력을 갖게 된다고 하지. 나도 몇 번 마셔봤는데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더군.”

“.......”

왠지 자괴감이 느껴졌다. 내가 고작 남의 정력 따위를 위해서 일하고 있었다니.

“하하... 그렇군요.”

아무튼 그렇게 계속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뿔 스무 개를 모두 모으는데 성공했다. 벌써 열 마리를 처치한 것이다.

우리는 적당한 그루터기에 앉아서, 저마다 챙겨온 음식으로 요기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생각보다 굉장히 빨리 모았군.”

톰이 육포를 질겅거리며 말했다.

“아직 창창한 오후라 벌써 돌아가기엔 조금 이른 감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해가 질 때까지는 더 사냥해도 좋을 것 같은데, 자네들의 생각은 어떠신가?”

“저는 찬성이에요! 모처럼 A급과 함께 나왔는데, 이럴 때 더 벌면 좋잖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레아를 비롯한 다른 모험가들이 톰의 의견에 동조했다.

“엘, 자네의 생각은 어떠한가?”

“저야 당연히 좋죠.”

애당초 나는 모험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목적으로 왔고, 아직 용병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다.

의뢰의 할당량은 끝냈으니, 이제부터 더 얻는 미노타우로스의 뿔은 보너스 개념. 그렇다면 일행들을 데리고 좀 더 넓은 반경을 돌아다녀도 괜찮을 것이다.

“허허,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럼 조금만 더 쉬다가 다시 움직이기로 하세.”

***

미노타우로스가 성난 황소처럼 포효한다.

“움모오오!!!”

“엘! 이번엔 우리끼리 해결해보겠네. 레아 양!”

“네, 바로 준비할게요!”

톰의 지시를 받은 레아가 얼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완성된 마법이 미노타우로스의 발을 얼렸다.

“지금이네!”

톰이 다른 B급 모험가와 함께 검을 치켜들고 달려들으려 할 때였다.

─휘익!

─푹

“무, 무슨...?”

돌연 화살 하나가 날아와 미노타우로스의 몸통에 꽂혔다. 톰은 잠시 당황했으나, 곧 침착함을 되찾고 공격을 재개했다.

미노타우로스는 발이 바닥에 붙은 채 얼어버린 상태였기에 후방이 취약했고, 톰과 검사 모험가는 그 부분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털썩

머지않아 놈이 바닥에 쓰러졌다.

“좋아. 다들 수고했네. 그런데 이 화살은 대체 어디서.......”

“킁킁.”

톰이 미노타우로스의 몸에 박힌 화살을 뽑아내며 말하고 있을 때, 익숙한 코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구나!

“이봐, 너희들. 자리를 옮긴다고 하더니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지? 킁킁.”

거구의 용병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에는 네 명의 용병들이 비릿하게 웃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설마 모험가가 용병의 말을 무시할 만한 배짱이 있는 건 아닐 테고. 길을 잃고 헤맨 건가? 아무튼, 이 미노타우로스의 뿔 하나는 우리가 가져가야겠어.”

“그게 무슨 말이오! 이건 우리가 잡았소!”

톰이 버럭 하며 소리쳤다.

“그 화살, 내 동료가 쏜 거거든. 우리도 처치에 기여했으니, 반은 우리가 갖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그런 억지가 대체 어디에─”

“워워. 잠깐만 아저씨. 가까이 오지 말아주겠어? 내가 모험가 냄새에 민감한 편이거든. 킁킁.”

몬스터 스틸이라니. 내가 게임 속에 있는 게 맞긴 맞구나 싶었다.

어쨌든, 기다렸던 친구가 왔으니 내가 나섰다.

“그래? 그럼 내가 고쳐줄까?”

“뭐?”

“자꾸 킁킁 거리는 네 코 말이야. 비염이 심해서 불편해 보이는데.”

“.......”

거구의 용병은 잠시 멍하니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동료들과 마주보더니 이내 폭소를 터트렸다.

“푸, 푸하하하!”

“으하하하핫!”

“낄낄낄.”

“어떻게 고쳐준다는 거지? 설마 나한테 덤비겠다는 소리는 아닐 테고. 웃음 치료사인가?”

그는 배를 움켜잡고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쭈욱 빼서 내밀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신 있으면 고쳐봐라. 킁킁. 킁킁킁킁.”

“못할 것도 없지.”

그렇게 말하며 내가 한 발짝 다가가자, 그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 쳤다. 코를 이용해 뭔가 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녀석이다.

“흥, 애송아. 그런 비실비실한 몸으로 까불다가 정말 혼나는 수가 있어. 내 주먹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커헉!”

불현듯 거구의 용병이 눈앞에서 왼쪽으로 날아갔다.

“??????”

“뭐, 뭐야?”

모험가와 용병 모두 당황했다.

그리고 나도 당황했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분명 방금 돌덩어리가 날아온─”

“트, 트롤이다!!!”

누군가가 내 말을 자르며 그렇게 소리쳤다.

─후웅

─콰직!

사람 머리통만한 돌덩어리가 또 다시 날아와 나무에 처박혔다.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니, 저 멀리서 거대한 녹색 괴물이 돌을 던지고 있었다.

─콰직! 콰직!

트롤은 돌을 몇 번 더 던지고는, 거대한 곤봉을 집어 들고 우릴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모, 모두 흩어져서 도망쳐!!!”

어떤 용병 하나가 그렇게 말하자, 나머지 용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구의 용병은 버려둔 채로.

“이, 이런. 트롤이라니... 페버툰 산에서 내려온 건가? 엘! 어떻게 하면 좋겠나!”

톰은 그답지 않게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트롤은 A급 모험가가 두 명은 있어야 큰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다는 게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싸워야죠. 어차피 도망도 못 가잖습니까.”

트롤은 몸집도 크고 힘도 강력하지만, 속도역시 굉장히 빠르다. 일단 마주친 이상, 트롤에게서 모두가 도망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용병들도 ‘흩어져서’ 도망친 것이다.

“하, 하지만 자네는 전격 마법이 주력이라고 했잖나! 트롤은 재생력 때문에 강력한 불 속성 마법이 아니면 상대하기 어렵다네!”

싸워본 적은 없지만, 알고 있었다.

트롤의 최대 강점이 재생력이라는 것쯤은.

오러가 실린 검이나, 하급 이상의 불 속성 마법으로 태워버리지 않는 이상은 치명상을 입히기 어렵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알고 있습니다. 일단 제게서 물러나서 엄폐하세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중급 마법이 불 속성 인데.

─화르르륵!

내 머리위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의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부풀어 오르던 구체는, 이윽고 회전하며 주변에 작은 불덩어리들을 흩뿌렸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0회]

달려오던 트롤은, 불덩어리를 보고 위기감을 느꼈는지, 자신이 들고 있던 커다란 곤봉을 내게 던졌다.

그와 동시에 나도 플레임 오브를 발사했다.

─화륵!

─후웅!

서로의 투사체가 허공에서 교차한다.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면, 나는 쉴드로 막아냈고, 녀석은 고스란히 맞았다는 점이다.

“크오오오!!!!”

온 몸에 불이 붙은 녀석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그러나 불타오르면서도 나를 향한 돌격은 멈추지 않았다.

─쿵! 쿵!! 쿵!!!

트롤이 가까워질수록 땅의 흔들림이 느껴졌다.

“.......”

후속타가 필요하다.

‘라이트닝 블래스트’는 내가 마나 탈진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렇다면....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3회]

푸른빛을 띤 전류 한 줄기가 전광석화처럼 뻗어나갔다.

“크오....”

녀석은 역시 플레임 오브에 맞아 이미 상태가 좋지 않았던 모양인지, 전류 줄기가 닿자마자 신음하며 넘어졌다.

─촤르르

달려오던 관성에 의해, 트롤이 넘어진 채로 내 앞까지 쓸려왔다.

“와... 생명력 진짜 질기네.”

내 앞에 쓰러져서 불타고 있는 트롤은 여전히 꿈틀대고 있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봤자 서로 좋을 게 없다. 나는 횟수가 한 번 남은 윈드 블레이드를 캐스팅해 녀석의 목을 베어냈다.

─서걱

트롤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오오오... 자네! 혼자서 트롤을 처치하다니? 내 평생 이런 A급은 처음 본다네!”

가장 먼저 톰이 달려와서 말했다. 뒤이어 다른 모험가들도 달려왔다.

다들 나름대로 트롤과의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마법이나 무기를 준비해둔 상태였다.

“마, 말도 안 돼... 저는 이제야 마법 캐스팅을 겨우 끝냈는데...! 그, 그 사이에 대체 마법을 몇 개나....”

여성 마법사 레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얼음 덩어리를 땅바닥에 쏘아 보냈다.

다른 모험가들도 저마다 한 마디씩 해댔다.

“이런 전투를 목격하다니. 이건 평생 술안주─”

“용병 놈들은 도망가느라 바빴는데, 엘님은 혼자서 트롤을─”

용병?

잠시 잊고 있었군.

나는 축농증 용병이 돌을 맞고 날아간 방향을 살펴봤다.

그는 약간 떨어진 나무에 기대고 앉아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옷이 그를 살린 듯 보였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황급히 눈을 감으며 기절한 척 했다. 나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깨어있는 거 다 봤다.”

“.......”

“다 봤다니까?”

“.......”

“흐흐흐. 아까 나한테 코를 고쳐달라고 했었잖아. 그거에 대해 마저 이야기 해야지?”

“.......”

그는 계속 시치미를 떼며 기절한 시늉을 했다.

“근데, 네 동료들은 어디 갔지? 설마 부상당한 너를 버려두고 도망간 건가?”

“.......”

“용병들은 의리라는 게 없나?”

“.......”

“겁쟁이의 냄새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네 동료들이야 말로 겁쟁이였잖아? 킁킁?”

“.......”

“설마 내가 두렵나? 진짜로 네 코를 부러뜨리기라도 할까봐? 계속 기절한 척 하는 걸 보니 너도 겁쟁이인가 보군.”

“이익!! 내 동료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나를 욕하는 건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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