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망 쌓기 (1)
시끌벅적한 카트카의 모험가 길드.
“서부 늪지대에서 자이언트 크로커다일을 함께 잡을 사람을 구하고 있소!”
“페버툰 산에 출몰한 트롤 토벌대 모집합니다! 불 속성 마법사 우대!”
“하피의 깃털을 구하러 가실 B급 모험가님?”
아침이라 그런지, 거대한 게시판 주위에는 파티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의 외침으로 가득했다.
일단 적당한 테이블을 찾아서 앉았다.
“흐음....”
어떻게 해야 모험가들이 훌륭한 정보원이 되어줄까.
맥주를 대접하며 친분을 쌓기?
아니, 이건 별로 같다. 길드에 죽치고 앉아서 수다나 떨고 있으면, 자칫 일은 안하고 놀기만 하는 놈팽이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험가들이 지난번에 수배범 제르딘의 정보를 열성적으로 제공해준 이유는, 내가 A급이기 때문이었다.
A급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면 자신을 데리고 좋은 의뢰에 나가줄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기대감.
그래, 이걸 해소시켜주면 되겠군.
능력의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 B급 이하의 모험가들과 함께 의뢰를 나가서 명망을 쌓는 것이다. 그렇게 입소문을 타다보면, 자연스럽게 나와 가깝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지.
얼추 방향을 정한 나는 접수대로 향했다. 다행히 남자 직원 한 명이 한가해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케른헴에서 활동했던 A급 모험가 엘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곳 에서 의뢰를 수행하려면 뭔가 조건 같은 게 필요합니까?”
“아, 케른헴에서 오셨군요. 저희 길드에 모험가 등록을 하시면 됩니다. 수속비용은 5실버가 발생하는데, 등록하시겠습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그리 말하자, 직원이 내 인적사항을 물으며 외형을 비롯한 정보를 명부에 상세히 기입했다.
“혹시 신원을 보증해줄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으시다면 A급은 2골드의 보증금을 내셔야합니다. 보증금은 두 달 내에 반환해드리고, 실적에 따라 기한이 당겨질 수도 있습니다.”
오, 과연. 철저하군.
이건 타지에서 온 내가, 사고를 치고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요구하는 듯했다.
“보증금으로 하겠습니다.”
내 대부분의 재산은 케른헴 모험가 길드에 맡겨둔 상태였지만, 에드윈에게 받은 보상금과 현상금 덕에 보증금을 낼 돈은 있었다.
직원에게 2골드 5실버를 지불하니, 내 모험가 패에 ‘카트카’라는 문구를 추가하는 것으로 등록이 마무리됐다.
“자, 그럼 어떤 의뢰를 해보실까.”
너무 어려운 의뢰를 수행할 필요는 없다.
그래도 기왕이면 마법 연습도 좀 할 수 있고, 용돈 정도는 벌리는 일이 좋겠지. ‘윈드 블레이드’를 습득하고 아직 써보지도 못했다.
나는 게시판에 붙어있는 의뢰들을 살펴봄과 동시에, 파티원을 모집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트롤을 수색, 토벌하러 가실 불 속성 마법사 없습니까?!”
“짐꾼 D급 모험가 대기 중! 불러만 주시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모으러 가실 B급 모험가 있소?”
트롤은 조금 부담될 것 같고... 미노타우로스? 이건 좀 흥미롭군.
미노타우로스는 인간의 몸에 황소의 머리를 한 몬스터다. 리자드맨보다 조금 강한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케른헴에는 서식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른다.
나는 미노타우로스 파티를 모집하고 있는 중년의 사내에게 다가가 상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알겠소. 말 그대로 미노타우로스의 뿔을 모으러 가는 거요. 최소 스무 개의 뿔을 모아야 하고.......”
그가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뢰의 총 보수는 1골드.
그걸 구성원들끼리 나눠 갖는 형태다.
뿔을 스무 개 이상 모아오면 보수가 늘어난다고 한다.
체스터 백작령 동쪽 숲 지대에 많이 서식하는데, 주로 커다란 도끼를 들고 다녀서 부수입이 짭짤한 편이라, 모험가와 용병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몬스터라고 한다.
‘꽤 괜찮겠는데?’
일단 서식지가 명확하니, 몬스터를 찾는 수고를 덜 수 있어보였다. 인기가 많다고 하니 다른 모험가들과 안면을 트기도 수월 할 것 같고. 돈도 적당히는 벌리고, 나름 한 가닥 하는 몬스터니 마법 연습도 될 듯하다.
“저도 참가하고 싶군요.”
“그러시겠소? 등급이 어떻게 되시는지?”
“A급 마법사입니다.”
“A급?! 우, 우리야 일을 빨리 끝낼 수 있어 좋지만... A급께서 하시기엔 보수도 적고 시시하실 텐데....”
그가 조금 주눅들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제가 케른헴 출신이라 아직 백작령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요. 이곳의 지리도 배울 겸 해서 참가하고 싶습니다.”
“오오, 그렇소? 그럼 마침 잘 됐구려. 내가 카트카에서 모험가 생활만 30년을 한 토박이라오. 지리라면 아주 빠삭하지. 흐하핫! 아, 이거 소개가 늦었군. 나는 B급 모험가 톰이라고 하오.”
“저는 엘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아유, 나야말로 잘 부탁합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A급 모험가가 파티에 있다는 점을 내세워 홍보하니, 나머지 인원들이 금세 모였기 때문이다.
B급 마법사 한 명에, 검사 두 명.
C급 짐꾼 한 명.
그리고 나까지 해서 총 다섯 명으로 구성됐다.
우리는 약간의 준비를 거친 후, 마차를 타고 미노타우로스 서식지로 출발했다.
***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이보게 엘. 저기에 있는 산 보이나? 저게 페버툰 산이라네.”
톰은 뭔가 이름 있는 장소가 보일 때마다 내게 성실하게 설명해줬다.
“오, 그렇군요.”
내가 톰보다 등급은 더 높았지만, 그냥 말을 편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이차이가 워낙 심해서 존댓말을 듣기가 거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페버툰 산 옆이, 바로 우리가 사냥할 미노타우로스가 서식하는 숲이지.”
“그럼 곧 도착하겠네요?”
“그렇다네. 슬슬 준비하세나.”
과연 톰의 말대로 금방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일행들은 각자 기지개를 켜며 몸을 풀었다. 진짜로 마차는 한 시간만 타도 온 몸이 쑤신다.
“자, 그럼 어디부터 가보는 게 좋겠나?”
스트레칭을 하고 있으려니, 톰이 그렇게 물어왔다.
“네? 그거야 톰 아저씨께서 저보다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우리 파티에서 등급이 가장 높은 게 자네잖나? 당연히 리더인 자네의 의견을 따라야지.”
“아.......”
리더는 약간의 보수를 더 받는다.
나누기 애매한 잔돈을 갖는 정도?
보통은 파티를 모집한 사람이 리더가 되지만, 이렇게 등급이 섞여있는 경우에는 가장 높은 등급의 모험가가 리더를 맡는다.
그래서 톰이 나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었다.
“에이. 꼭 그런 고리타분한 규칙에 얽매일 필요 있겠습니까? 저는 여기가 어딘지도 잘 모르는데. 베테랑인 톰 아저씨께서 이끌어주세요.”
“그, 그래도 내가 어떻게 A급을 두고....”
“괜찮습니다. 저는 심지어 미노타우로스를 만나 본 적도 없어요!”
정말로 톰이 파티를 이끄는 편이 좋았다.
나는 경력이 특이한 모험가였으니까.
4년을 하급 모험가로 살아왔다. B급 생활은 1개월 밖에 하지 않았고, A급 생활은 이제 2개월 차다. 심지어 A급으로 승급한 이후로는 거의 탈영병만 잡아왔다.
즉, 고블린 같은 허접 몬스터를 상대하는 건 누구 못지않게 능숙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몬스터를 상대해본 경험은 일반적인 B급 모험가보다 훨씬 적다는 뜻이다.
괜히 자존심을 내세우며 내가 리더를 맡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노련한 토박이인 톰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정말 그래도 되겠나...?”
조심스레 묻는 톰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허허. 이거 기분이 묘하군. 내가 이끄는 대로 A급이 따라온다니.”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음. 이 숲에는 미노타우로스를 잡으려는 경쟁자들이 많으니, 정직하게 들어가는 것보다는 외곽을 돌아보는 게 낫다네. 내가 애용하는 경로가 있으니 거기로 가보세.”
톰이 자신 있게 앞장서며 일행을 이끌었다.
우리는 숲으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숲의 경계를 따라 왼쪽으로 돌았다.
미노타우로스는 인기 있는 몬스터라더니,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이동 중에 종종 다른 파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가, 어느 지점에서 톰이 멈춰 섰다.
“여기서부터 들어가도록 하지. 페버툰 산맥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어서 그나마 인적이 드물다네. 그 산에서는 제법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현하거든.”
“오오, 알겠습니다.”
역시 토박이는 다르군.
숲속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이번 일의 가장 큰 목적인 모험가와의 친목도모를 위해서, 톰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레아 씨라고 하셨죠? 레아 씨는 무슨 마법을 주로 다루십니까?”
“저, 저요!? 저는 물 속성이 주력이에요. 엘님은요?”
“저는 전격입니다.”
“와...! 신기하네요. 전격을 주력으로 삼는 마법사는 흔치 않은데.”
“그래요?”
“네에. 전격 마법은 컨트롤이 어려워서 아군도 감전시키는 일이 흔하니까요. 속성을 타고나지 않은 이상은... 앗! 죄송해요. 엘님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에요.”
호오. 팀킬이 자주 나온다라.
전격 펜투플이니 나에겐 해당 없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나는 단기간에 성장한 부작용으로 제반 지식이 좀 부족한 편이다.
마법사와 마법에 관한 대화를 나누니 좋군.
그렇게 여러 모험가들과 담소를 나누며 걷던 중, 웬 소의 울음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움모오오!!!”
“미노타우로스다! 다들 준비하시게!”
“와... 생각보다 크네 이거.”
머리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몸이라고 했지만, 덩치가 평범한 인간의 두 배는 돼보였다. 흉포한 황소의 얼굴에, 거대한 도끼까지. 제법 위압감이 느껴지는 몬스터였다.
‘일단 새로운 마법을 시험해볼까.’
나는 수배범에게서 습득한 하급 마법을 캐스팅했다.
─휘오오
주변의 나뭇가지와 잎을 흔들어대며, 나를 향해 바람이 몰려든다. 형태가 보일 정도로 얽힌 바람은, 이윽고 칼날을 만들어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1회]
완성된 바람의 칼날을 정확히 놈의 목을 향해 쏘아 보냈다.
─쐐액!
─서걱
깔끔하게 절단된 미노타우로스의 대가리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오오!! 역시 A급 마법사는 다르구먼!”
“저, 전격 마법사라면서요, 엘님!!”
“우와... 완전 순식간이었습니다!”
B급 모험가들의 칭찬에 조금 민망해졌지만, 어쨌든 마법의 성능은 만족스러웠다.
‘굉장히 깔끔한 마법이군. 위력도 괜찮고.’
전격 계열을 제외하면, 내가 가진 마법은 대체로 상대를 불태우거나, 몸에 구멍을 내는 등의 참혹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건 깔끔해서 좋았다.
“그럼 뿔은 내가 뽑도록 하겠네.”
톰이 미노타우로스의 대가리에서 뿔을 뽑아냈다.
그 뒤로도 사냥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몇 번 더 싸워보니, 비로소 견적이 나왔다.
미노타우로스는 일반적인 B급 두 명이 붙으면 충분히 해치울 만했다.
그걸 깨달은 후부터는, 내가 다 처리하지 않고 적당히만 도와줬다.
너무 나 혼자서 다 해결해버리면 호구라고 소문이 날 위험도 있고, 저들도 성취감을 느껴야 의뢰의 만족도가 더 높아진다.
그렇게 여섯 마리째의 미노타우로스를 사냥하고 있을 때였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용병으로 보이는 다섯 사람이 코를 킁킁대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겁쟁이의 냄새가 나는데... 어? 너는?”
어쩐지 익숙한 멘트를 날리던 용병 하나가 나를 알아봤다. 나 역시 그를 알아봤다.
며칠 전에 용병 길드에서 나에게 시비를 걸었던 거구의 용병이었다.
“역시 모험가의 냄새였군? 킁킁.”
“......무슨 일이시오.”
톰이 코를 움켜쥐고 있는 거구의 용병에게 물었다.
“우리도 이 주변에서 사냥하고 있었는데, 너무 악취가 심해서 말이야. 킁킁. 너희들이 자리를 좀 옮겨줬으면 좋겠군?”
“뭐? 그게 무슨─”
“알겠소. 자리를 옮기겠소.”
내가 나서려던 찰나에, 톰이 황급히 나를 막아서며 자리를 피해주겠다고 말했다.
“엘. 그냥 가세.”
“잘 생각했다. 되도록이면 빨리 가줬으면 좋겠군. 미노타우로스보다 너희의 악취가 심해서 말이지.”
톰이 나를 잡아당기며, 일행과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의 모험가들은 이렇게 무시당해도 그냥 참고 사는 건가?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저들은 용병이잖나. 용병이 모험가에게 시비를 거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그렇다고 그냥 자리를 피합니까? 혹시 체스터 백작령에서는 싸움이 금지 되어있습니까?”
케른헴에서 이런 일은 없었다.
법을 집행하는 영주가 없기 때문에, 도시 밖에서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면 둘 중 하나는 죽을 수도 있다.
“그런 건 아니네만, 상대를 죽이거나 큰 상처를 입히면 처벌받는다네.”
“그럼 큰 상처만 안 입히면 되는 거 아닙니까?”
“...자네는 마법사잖나. 마법을 쓰면 크게 상처 입힐 텐데... 자네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리 A급이라도 마법사가 주먹으로 용병과 싸우기에는....”
아.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서로 크게 상처 입히지 않으려면 주먹으로 싸워야 하고, 주먹으로는 용병을 이기기 힘들다. 그래서 저들이 대놓고 시비를 걸었어도 그냥 자리를 피했다는 소리였다.
“그러니까 어쨌든 눈에 띌 정도로 큰 상처만 입히지 않으면 된다는 소리네요?”
“그렇긴 하지만... 설마 마법을 사용할 생각은 아니겠지? 자네 마법은 하나같이 강하던데.”
“흐흐흐. 가시죠. 그 축농증 용병한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