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2)
어느새 일어서있는 수배범의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휘오오
몰려든 바람은, 녀석의 눈높이 정도에서 뒤엉키며 가로선의 형태를 갖췄다.
그리고 내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칼날이 휘둘러지는 것처럼.
─쐐액!
‘바람 계열의 마법...? 처음 보는 건데.’
마법방어 쉴드를 전개한 상태지만, 당연히 피할 수 있다면 피하는 게 좋다. 나는 자세를 낮춰서 그 마법을 흘려보냈다.
─콰드득!
허공을 가른 바람 줄기가, 목조 건물의 벽면을 긁어내며 선명한 상흔을 남겼다.
나는 그대로 달려 나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놈의 앞에 생성된 하늘색 장막에 가로막혔다.
“역시 용병 출신은 다르네.”
녀석은 자신의 공격이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해, 내가 어떤 유형의 공격을 해올지 예상하고 미리 쉴드를 캐스팅해둔 것이다.
“...현상금 사냥꾼이냐?”
그는 조금 전까지의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아닌, 날카로운 눈빛을 하며 물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다시 바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말을 걸어 내 주의를 분산시키고 다른 마법을 준비하다니.
나는 그를 감싸고 있는 물리방어 쉴드에 손바닥을 갖다 대며 대답했다.
“너 좋을 대로 생각해.”
나 역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엔 스태틱 쇼크만한 게 없다.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7회]
왼손에서 발생한 스파크가, 거침없이 하늘색 장막을 뚫고 들어가 녀석의 몸에 직격했다.
“끄으으...!”
그는 경련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얌전히 있어라.”
그리 말하며 품에서 마나 속박 고리를 꺼내려던 찰나, 문득 묘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휘오오
이상하게도 바람이 계속 몰려들고 있었다.
내 앞의 사내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떨고 있는 상태.
‘......설마?’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쉴드를 캐스팅하자마자, 일전의 칼날 같았던 바람 줄기가 날아들었다.
─쐐액!
─까드득!
바람의 칼날은 내 쉴드를 우악스럽게 한번 긁고는 소멸했다.
“......대단하군. 경련하는 와중에도 마법을 계속 캐스팅하다니.”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껏 이정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상대는 만나본 적이 없었다.
“젠장! 뭐 이런 놈이...!”
그는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막히자,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 나와의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뒷걸음질 치며, 내게 매직 미사일을 날려댔다.
─슈우웅! 슈우웅!
‘사정거리의 우위를 이용하겠다는 건가.’
그는 스태틱 쇼크의 사정거리가 짧다는 점을 이용해, 자신만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유지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내게도 사정거리가 긴 마법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이게 좋겠군. 단일 타겟에게 사용하긴 조금 아깝지만....
내 손에 푸른색 빛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녀석도 즉시 자리에 멈춰서 쉴드를 캐스팅했다.
─치지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체인 라이트닝’ - 3회]
이윽고 뻗어나간 푸른 전류가 녀석의 쉴드와 충돌했다.
─치직! 치직! 치지직!
체인 라이트닝과 마법방어 쉴드의 힘겨루기.
이런 방식의 힘겨루기는, 어느 한쪽이 압도적이지 않다면 방어하는 쪽이 유리하다.
그러나 힘겨루기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지지직... 챙그랑!
나는 전격 속성의 펜투플.
전격 마법만큼은 월등하다.
“끄아아아아악!!!”
녀석이 바닥에 쓰러져, 마치 팝핀 댄스를 추는 것처럼 격렬하게 몸을 떨어댔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구속 고리를 걸고, 포승줄로 손을 포박했다. 그리고 옆에 쪼그려 앉아서,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좋은 경험이었군.’
기존에 싸워왔던 탈영병들보다, 이 녀석이 훨씬 더 잘 싸웠다.
말을 걸고 기습하는 방식이나, 내 마법의 단점을 파악하고 거리를 벌리려고 했던 점, 그리고 감전된 상태로도 반격을 준비했던 점까지. 확실히 배울만한 점들이 좀 있었다.
역시 다양한 상대와 싸워보는 것이, 전투 감각을 늘리기엔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으으....”
“정신이 좀 들어?”
전투에 대해 복기하고 있으니, 수배범이 정신을 차리고 신음했다. 그는 묶여있는 팔을 풀어내려고 이리저리 뒤척였다.
“헛수고야. 아주 꽁꽁 묶어놨거든. 게다가 네 목에 마나 속박 고리도 걸었고.”
“크윽.”
“그런데 말이야....”
나는 그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하나 물었다.
“아까 나한테 썼던 마법은 뭐였지? 바람 속성의 마법 같던데.”
“.......”
그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부라리며 나를 노려봤다. 왜 항상 한 번에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는 걸까.
“너는 묶여있다는 걸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위, 윈드 블레이드다. 네 말대로 바람 속성의 하급 마법이지.”
“이런.”
그의 대답은 나를 고민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저 마법이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꿈에 들어가는 능력의 쿨타임이 나흘이나 남은 상태다. 마법을 배우려면, 이 수배범을 ‘오늘의 기억’으로 나흘 후에나 데려갈 수 있다는 소리다.
‘기한은 일주일을 준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테스트니, 기한보다 더 일찍 잡아가면 뭔가 가산점을 주지는 않을까?
하지만 마법을 위해 현상수배범을 잡는 건데, 마법을 배우지 않고 넘겨버리면 본말전도가 아닐까?
“으음.......”
나는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했다.
“좋아! 결정했어.”
나흘 후에 넘기는 걸로.
***
─쐐액!
“죽어라!!”
맹렬하게 쇄도한 바람의 칼날이 내 목에 닿는다.
─서걱
[꿈속에서 마법 ‘윈드 블레이드’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습득한다.’
이 수배범은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
나는 습득을 선택하기로 했다.
백작성에서 즉시 처형할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현장검증 같은 거라도 하게 된다면, 이 수배범이 마법을 쓰지 못할 경우 그림이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마법 ‘윈드 블레이드’를 습득했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윈드 블레이드’ - 2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나는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 방금 전의 섬뜩한 느낌을 떠올리며 목을 어루만졌다.
“이 새끼... 반성하는 척하더니....”
수배범은 여전히 침대에 묶여있는 채로 자고 있었다.
그는 지난 나흘간 눈물까지 흘려가며 반성하는 기미를 보였다. 한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동료를 죽인 것을 후회한다며, 새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속죄하며 살겠노라고 다짐해댔다.
그래 놓고 꿈속에서 나를 보자마자 죽였다.
“거짓 반성이었다, 이거지.”
물론 진짜로 반성했어도 잡아갈 생각이었지만. 그를 용서할 자격이 있는 건 영주나 피해자의 가족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아직 캄캄한 새벽이었기에 그냥 자게 놔뒀다. ‘오늘의 기억’에 있는 사람들도 잠은 잘 테니, 당장 데려가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다.
몇 시간이 지나니, 곧 해가 뜨기 시작했다.
나는 수배범을 깨워서, 여관 일층으로 내려갔다. 모든 여관의 일층은 식당을 겸한다. 테이블에 앉으니, 주문을 받기 위해 점원이 쪼르르 달려왔다.
“어제 드셨던 스튜로 이 인분 드릴까요?”
“아뇨. 스튜는 저만 주시고, 이 친구는 여기서 제일 비싼 걸로 하나 내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수배범을 넘기기 전에, 맛있는 걸 먹이기로 했다. 원래 사형수도 형 집행 전에는 맛있는 걸 먹이는 법이다.
수배범 제르딘도 내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모양인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저, 저, 저 진짜 많이 뉘우쳤습니다!! 아직도 죽은 도, 동료들의 얼굴이 눈에 막 아른거리고... 그들의 가족들에게도 영원히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데....”
말은 장황하지만, 풀어달라는 소리다.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야.”
나는 딱 잘라 거절했다.
꿈에서 그의 진심을 보기도 했고.
꿈속에 들어가서 꼭 마법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뭐, 통장의 비밀번호처럼 세부적인 비밀을 캐내긴 어려워도, 음습한 욕망이나 성향, 과거의 편린 같은 것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곧 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우리는 식사를 시작했다. 그는 계속 나를 설득하려 들었지만, 내가 대꾸하지 않자 포기하고 음식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뒤, 바로 ‘오늘의 기억’으로 향했다.
─삐그덕
삐그덕 거리는 문을 열고 한 발짝 들어서니, 바텐더와 클로이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엘! 돌아왔...... 어어? 옆에 그 남자는? 설마 그걸 잡아온 거야?”
“예? 예.”
클로이가 놀라는 모습을 보니, 뭔가 내가 의뢰의 내용을 착각해서 엉뚱한 사람을 잡아 온 건가 싶어질 정도였다.
“테드 씨! 테드 씨! 보고 있어? 저것 좀 봐봐! 정말로 잡아 왔어. 그것도 나흘 만에!!”
“......보고 있다.”
그녀는 내 쪽으로 다가와 수배범의 로브를 들춰서 얼굴을 확인했다.
“맞네!! 어떻게 찾았어? 어떻게 잡았어?”
“진정해 클로이. 일단 타겟부터 처리해야지.”
테드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클로이를 제지했다. 그는 안쪽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서, 어떤 두 명의 사내를 데리고 나왔다.
“데려가.”
그가 지시하자, 두 명의 사내가 수배범을 끌고 술집 밖으로 나갔다. 일종의 배달대행 서비스 같은 건가? 편리하군.
“근데... 수배범의 목에 걸려 있던 마나 속박 고리는 돌려주시는 거 맞죠?”
나는 테드를 향해 물었다.
무려 2골드짜리 물건이다. 현상금보다 비싸다.
“당연히 돌려드려야지. 백작성에는 몸만 넘겨주면 되니 너무 걱정 마시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한잔하겠나?”
“아침부터 술은 좀 그─”
“나도! 나도 부탁해 테드 씨.”
아침이었기에 거절하려고 했으나, 클로이가 내 팔을 잡아끌며 바(Bar)로 데려가서 앉혔다.
테드가 잔 두 개를 꺼내서 술을 따랐다.
─쪼르르
‘......저건 브랜디인가?’
고급스러운 병에서 흘러나오는 갈색 액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것이, 거절하려던 마음이 눈 녹듯 사라졌다.
나는 이 게임에 떨어진 이후로, 술이라고는 걸쭉한 싸구려 맥주밖에 먹어본 적이 없었다. 바로 잔을 집어 들어 한 모금 마시니, 목에 찌르르한 느낌이 꽂혔다.
“크으. 이게 술이지.”
“엘은 독한 술을 좋아하나봐? 나돈데.”
클로이는 단숨에 잔을 비우고는, 잔을 톡톡 치며 리필을 요청했다. 나는 다시 술을 따라주는 테드에게 물었다.
“그래서... 저는 테스트에 통과한 겁니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이번 일의 현상금일세. 오늘부터 여기를 찾아오면 공개적인 현상수배범은 물론, 비공개적인 것까지 정보를 제공해드리지. 지금 당장 정보를 받아보길 원하나?”
“아, 지금은 괜찮습니다.”
오늘 꿈에 들어갔다 나왔다. 지금 당장 정보를 얻어서 또 다른 수배범을 잡아봐야, 쿨타임 때문에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급할 건 없다.
“맞아! 오늘은 쉬어야지. 그보다, 엘. 대체 어떻게 잡았어? 심지어 타겟에 이렇다 할 상처 하나 없던데? 약이라도 쓴 거야?”
클로이가 내 팔뚝을 두드리며 물었다.
“전격 마법을 썼습니다.”
“뭐어어??? 마법사였어??”
“......!”
진짜로, 나를 본 사람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마법사라고 밝히면 이렇게 놀란다. 체인메일을 입고, 검을 차고 다니는 마법사는 어디에도 없으니까.
이건 상당한 장점이다. 적도 속일 수 있으니.
아무튼 동료에게까지 속일 필요는 없다. 앞으로 같이 일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네. 모험가 마법사입니다. A급이고요.”
“A급?! 그래서 자신 있게 더 어려운 일로 달라고 한 거였구나... 근데 왜 나는 엘을 처음 봤지? 카트카에 있는 A급 모험가의 얼굴은 거의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클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는 케른헴 출신이거든요.”
“와아. 케른헴 출신의 검을 찬 A급 모험가가 마법을 써서 카트카의 수배범을 잡았다니. 이거 완전 이상하잖아! 에헤헤.”
그렇게 설명하니 이상하긴 하군.
“직접 실력을 보고 싶은데... 괜찮다면 내일 나랑 일하나 같이 하지 않을래? 기사 출신의 노예 밀매범을 잡으러 갈 생각이거든.”
그녀가 협업을 제안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다. 기사 출신이라니.
나는 마법사가 아닌 이상 별 흥미가 없을뿐더러, 쿨타임이 돌아올 때까지는 다른 일을 할 생각이다.
“아, 저는 따로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모험가 길드에 가볼 생각이었다.
수배범을 찾다보니 정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번 수색에서 가장 큰 도움이 된 건 단연코 모험가 네트워크.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도, A급이라는 내 경력을 인정해주며 정보를 제공해줬다.
나는 앞으로도 사람을 찾아다녀야 한다.
미리 모험가 네트워크에 투자를 좀 해두면, 다른 현상금 사냥꾼에게는 없는, 나만의 강점을 갖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