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 (1)
엘이 떠난 뒤, 클로이는 구석에 있던 자신의 술잔을 가져와 바텐더 앞에 앉았다.
“테드 씨. 너무 짓궂은 거 아니야?”
“그가 더 어려운 일로 달라고 했잖나.”
테드는 여전히 술잔을 닦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조금 지나친 것 같은걸. 검을 쓰는 모험가 같던데. A급은 아닐 테고... B급 정도 되려나? 그 수준으로는 어려울 텐데.”
케른헴과 달리 카트카에서 B급 모험가는 그렇게 강한 축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모험가일 뿐.
그녀는 테드가 엘에게 평범한 모험가로서는 해결하기 벅찬 일거리를 맡겼다고 생각했다.
B급 용병 셋을 죽인 마법사를 잡아오는 일.
용병은 사람과 싸우는 일을 주된 업으로 삼는 직업이다. 서로 같은 B급이라고 해도, 용병과 모험가의 대인 전투능력만큼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용병을 살해한 마법사를, 과연 모험가가 잡아올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가 마법사를 잡겠다고 자진해서 요청했기에 줬을 뿐이네.”
“무슨 일을 주는지는 테드 씨 마음이지만... 그러다가 덜컥 죽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에드윈 씨가 추천한 사람인데.”
“죽으면 죽는 거지. 애송이가 처음부터 과한 욕심을 부린 대가로.”
─쪼르륵
테드는 어느새 비어버린 클로이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에드윈 경이 추천한 사람이니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니길 바라야지.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피하는 것도 실력이야.”
“앗, 그럼 잡아오길 기대하고 보낸 게 아니었어?”
클로이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술잔을 테이블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테드는 인상을 찌푸리며 테이블에 흘러넘친 술을 닦아냈다.
“그래. 타겟을 만나고도 살아서 돌아온다면, 적어도 타겟을 찾는 수색 능력과 위험에 대처하는 판단력은 입증되는 셈이지.”
“어쩐지! 첫 테스트 치고는 너무 강한 상대를 준다 싶었어. 그냥 찾기만 해도 합격을 줄 생각이었구나?”
클로이의 물음에 테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
“근데 이거... 어디로 가야 하지?”
‘오늘의 기억’에서 일감을 받아 나오긴 했지만, 막상 찾으려고 하니 막막한 느낌이었다.
타겟은 현상금 1.5골드 짜리의 마법사.
공개적인 현상수배범이다.
테스트를 위해 일단은 공개적인 현상수배범부터 잡아보라고 했다. 이게 정보를 수집하기 쉬우니, 능력껏 찾아보라면서.
이름은 제르딘. B급 용병이다. 세 명의 다른 용병과 함께 의뢰를 수행하다가, 동료를 죽이고 소지품을 강탈한 혐의다.
용병 길드에는 동료들이 산적에게 당했다고 거짓 보고를 올리고 잠적했다고 한다.
그가 동료를 살해한 후, 바로 다른 도시로 도망가지 않고 카트카에 돌아온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안전을 위해 모험가 길드에 소지금의 대부분을 맡겨두듯, 용병도 용병 길드에 소지금을 맡겨두기 때문이다.
아무튼, 혼자서 돌아온 용병이 갑자기 돈을 전부 찾아가는 걸 수상히 여긴 길드 직원이 빠르게 신고한 덕분에, 그는 카트카를 빠져나가지 못하고 갇혀있는 신세라고 한다.
“돈을 미리 찾아가지 않았다는 걸 보면 우발적인 범행 같은데....”
계획적이었다면 동료를 죽이자마자 다른 도시로 도망갈 수 있도록 미리 돈을 찾았을 것이다.
“일단 용병 길드로 가봐야겠군.”
내가 가지고 있는 건 수배범의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와, 그에 대한 몇 가지 추측뿐.
너무 막연한 상태였기에, 단서를 더 얻기 위해 용병 길드로 향했다.
용병 길드가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몰랐지만,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늘의 기억’과 달리,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위치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금세 용병 길드에 도착했다.
제법 큰 규모의 이층짜리 건물.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와. 진짜 바글바글하네.”
대도시의 길드답게 용병들과 의뢰인들이 쉴 틈 없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게다가 용병은 모험가에 비해 좀 더 거친 면이 있어서, 굉장히 소란스러웠다.
접수대에 앉아 있는 길드 직원들도 여러 명이었는데, 그럼에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바빴다.
나는 가장 줄이 짧은 곳으로 가서 맨 뒤에 서서 기다렸다. 그러고 있으니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킁킁. 이게 무슨 냄새지?”
돌아보니 수염이 덥수룩한 거구의 사내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킁킁. 이상한 냄새가 나는데.”
“아, 혹시 저한테서 냄새가 납니까?”
나는 나한테서 악취가 나나 싶어, 왼팔을 들어 올려 냄새를 맡아보며 말했다.
“그래. 너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
“흠...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원래 자기한테서 나는 냄새는 잘 느끼지 못한다고는 하지만, 몸 이곳저곳 맡아봐도 이상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킁킁. 아니야. 확실히 냄새가 나. 어디선가 맡아본 적이 있는... 겁쟁이의 냄새....”
그가 과장스럽게 자신의 코를 움켜쥐는 시늉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겁쟁이의 냄새가 나면서도 허술한 방어구를 보니... 너는 모험가로군!”
‘......오랜만이라 용병에 대해 잊고 있었군.’
도린 형제도 그렇지만, 원래 용병들은 모험가를 무시하는 경향이 좀 있다. 사람과 싸울 용기가 없어서, 몬스터나 썰어대는 겁쟁이로 취급한다.
지금 이 거구의 사내도, 내 복장을 보고 모험가라는 것을 알아채고 시비를 걸었던 것이다.
모험가는 몬스터와 싸우기 때문에, 흉갑과 몇 가지 주요 부위를 제외한 다른 방어구는 잘 챙겨 입지 않는다. 마법사라면 구분이 어렵겠지만, 나는 검사의 복장이니까.
“겁쟁이 모험가가 우리 용병 길드에는 어쩐 일이지?”
“아, 뭐 물어볼 게 좀 있어서요.”
짜릿한 전기 맛을 보여주고 싶었으나 참았다.
어쨌거나 여기는 용병의 홈그라운드. 나는 수배범의 정보도 얻어야 하는 입장이니, 괜히 일을 키워서 좋을 게 없다. 짜릿한 맛은 나중에 밖에서 만나면 보여주도록 하자.
“뭔데? 용병이 되는 법을 물어보고 싶나? 간단해. 사람을 찌를 용기가 있으면 된다.”
그는 내 뒤에서 쉴 새 없이 쫑알거렸다. 말이 많은 성격인 듯 보였다.
‘......이 사람한테 물어볼까?’
어차피 공개적인 현상수배범이니, 조심히 조사할 필요는 없다.
길드 직원과 대화를 하려면 아직 한참이나 더 기다려야 했기에, 나는 이 용병에게 수배범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이자를 아십니까? 용병이라고 하던데.”
“제르딘 그 빌어먹을 자식이군.”
그는 단번에 수배범을 알아봤다.
“오, 아는 사람인가보죠?”
“아주 잘 알고 있지. 여기서 동료를 죽이고 잠적한 이 쓰레기새끼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현상금까지 걸려있는데.”
잘 알고 있다고? 그럼 굳이 직원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근데... 제르딘에 대해서는 왜 묻는 거지? 설마 너도 현상금을 노리는 건가?”
“네, 뭐. 그렇죠.”
“푸하하! 포기해라. 몬스터만 잡아대는 모험가에게는 무리다! 게다가 우리 용병들도 틈틈이 찾아다니고 있지만,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찾아다니고 있는데도 못 찾는 걸 보면, 다른 용병들에 비해서 좀 노련한 마법사인가보죠?”
내가 그렇게 묻자, 그가 변명하듯 대답했다.
“그 주정뱅이가 우리보다 노련하기는 무슨! 틈틈이 찾는 거라고 말했잖나! 찾지 못하면 시간낭비만 하게 되는 셈이니, 그냥 의뢰를 오고가는 길에 찾아보는 정도다.”
“오오... 그렇군요.”
불친절하게 버럭버럭하며 말했지만, 어쨌든 꽤나 많은 정보가 담겨있었다.
주정뱅이고, 용병들도 동선이 겹치면 찾고있다는 것.
나는 그렇게 서서 그와 좀 더 대화를 나눈 뒤에 용병 길드를 떠났다.
***
나는 카트카의 모험가 길드에도 들러봤다.
모험가야 현상금 사냥에 대해 별 관심이 없겠지만, 공개적인 현상수배범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의외로 소득이 있었다.
용병 길드와는 달리, 모험가 패만 보여주면 다들 몹시 친절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케른헴에서 활동했었던 A급 모험가 엘이라고 합니다. 잠시 말씀 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A급??!! 이야, 이거 반갑소!! 나는 C급 칼이라고 합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테이블에 한가로이 앉아있던 모험가가 반색했다. 나는 그에게 초상화를 보여줬다.
“혹시 이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음... 나는 본적이 없소만... 잠시만 기다려보시겠소? 어이, 패튼!! 혹시 이 사람 본적 있나? A급 모험가님이 찾고 계신다네! 뭐? 모른다고? 모르면 알아 와야 될 것 아니야! 그럼 로빈 자네는? 자네도 몰라? 잭슨! 베버! 톰!”
그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나서서 길드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배범을 본 사람이 있는지 찾아다녔다.
‘진작 여기로 올걸.......’
대도시다 보니 A급이 그렇게 희귀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B급 이하의 모험가들에겐 늘 친하게 지내고 싶은 존재다. 그래야 좋은 의뢰에 따라갈 기회가 생기니까.
아무튼 그렇게 앉아서 기다리니, 곧 모험가 네트워크가 풀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저는 B급 모험가 마빈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수배범을 찾아다녀봤는데, 카트카 동남쪽에선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 D급 로나라고 해요! 엘님께서 말씀하신 사람을 일주일 전에 연금술사 길드 근처에서 본 것 같아요!”
“C급 잭슨입니다. 저는 본 건 없는데 그냥 인사나 드리러 와봤습니다.”
“반갑네. 나는 A급 찰스라고 하네. 나도 아까 북쪽 주거구역을 돌아다녀봤네만, 수배범은 찾을 수 없었지. 거긴 빼고 찾아봐도 좋을 걸세.”
“저도 로베른 상회 근처에서.......”
“저는 B급.......”
미친 듯한 정보가 흘러들어왔다.
모험가 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내가 모험가라는 게 이렇게 뿌듯한 적은 없었다.
물론 별로 쓸모없는 정보도 많았지만, 유의미한 내용도 꽤 있었다. ‘수배범을 잡기 위해 어디어디를 수색해봤는데 발견하지 못했다’라는 내용이 특히 가치가 높았다.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나는 거의 감동의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까 용병 길드에서는 웬 허접한 용병한테 무시나 당했는데...!
이 행복한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으므로 눈물을 머금고 떠났다.
“자, 그럼 후보지부터 추려내 볼까.”
일단 아까 거구의 용병이 한 말로 미루어보면, 용병 길드 근처에는 없을 것이다. 용병들이 자주 드나드는 도시의 성문이나, 대장간 같은 곳 주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모험가 길드에서 얻은 정보를 추합하면, 수색을 배제해도 되는 구역이 많았다. 그렇게 배제하고 나니, 후보지가 상당히 좁혀졌다.
카트카의 남서쪽과, 남쪽.
“그래도 여전히 넓긴 하네.”
어쩔 수 없다. 이제부턴 직접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보는 수밖에.
술주정뱅이라고 했으니, 술과 관련 있는 장소 위주로 찾아다니면 되겠지. 우발적인 범행이었던 것 같으니, 죄책감에 못 이겨 더더욱 술을 찾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도시의 남쪽부터 수색하기 시작했다.
술집이란 술집은 다 들어가서 탐문했고, 여관 역시 빠짐없이 돌아봤다. 그러다보니 금세 해가 저물었다. 수배범과 싸우는 것보다, 찾는 게 더 고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있을 때쯤이었다.
“잠시만요!”
나는 막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는 주류 판매점의 주인에게 달려갔다.
“왜 그러시오?”
“혹시 이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흐음....”
그동안 초상화를 보여준 사람들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초상화에 얼굴을 더 가까이 갖다 대고 확인했다.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기억을 잘 더듬어봐 주십시오.”
“비슷한 사람을 본 것 같은데... 로브를 눌러쓰고 있던 자라 확실하게는 모르겠소만....”
“그게 언제입니까? 행색은 어땠죠?”
“아까 해가 질 무렵쯤이었소. 아주 지저분한 회색 로브를 입고 있었지.”
옷이 지저분하다면 길거리를 전전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술을 사간 시간도 얼마 안 됐으니,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나는 주류 판매점 주인에게 동화 몇 닢을 사례로 건네고 달리기 시작했다.
─탁탁탁
주변 구석구석을 달려 다니며, 로브를 입고 있는 노숙자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렇게 온 몸에 땀이 흥건해질 무렵, 어떤 골목에서 로브를 입고 병나발을 불고 있는 사람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초상화와 매우 유사한 얼굴의 남자였다. 그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술에 취해 풀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너 뭐야?”
“제르딘 씨? 혹시 B급 용병 제르딘 씨 맞습니까?”
“아닌데......?”
“아, 아니시군요. 실례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사과하고 뒤돌아섰다.
뒤에 신경을 집중하며 몇 발자국 걸어 나가던 중,
─휘오오!
등 뒤에서 갑작스럽게 바람이 몰아쳤다.
“그럼 그렇지.”
나는 마법 방어 쉴드를 전개하며 그에게 쇄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