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던전(5)
우리는 다음 날 아침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지나고 마법횟수가 초기화되자마자 바로 움직일까도 싶었으나, 다들 꽤나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충분히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아침이라고 해봐야 여전히 어두컴컴한 던전이었지만, 엘미나가 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나도 회중시계를 하나 구입할까 싶다. 슬슬 여유가 생기기도 했고.
근데 케른헴에서 시계를 구할 수가 있으려나? 뭐, 다른 도시에서 구입하면 되겠지. 어차피 탈영병을 잡으면, 영주성에 갈 일도 생길 테니.
“야야, 테도린. 조심해. 그거 자꾸 벽에 부딪히잖아. 품에 안듯이 소중하게 들란 말이야.”
“무, 무섭단 말이다!”
테도린이 버럭 했다. 그가 들고 있는 것은 갈색 망토에 돌돌 말려있는 구울의 사체였다.
“어차피 죽었는데 뭘 그래? 내가 들어주고 싶지만... 나는 아직 회복이 덜 돼서. 수고 좀 해줘.”
“쳇!”
엘미나가 말하길, 수습 성기사 두 명의 흉수인 구울의 사체를 교회에 제출하면, 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구울은 예상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죽었다. 듣기로는 시름시름 앓다가 잠들었다고 했는데, 그 상태로 몇 시간 뒤에 완전히 죽어버렸다.
그리고 구울이 죽는 순간, 간만에 능력치가 올랐다. 역시 강한 몬스터를 잡으면 보상이 따르나 보다.
‘그나저나... 몬스터의 꿈속에서도 마법을 가져올 수 있었을 줄이야.’
꿈을 꾸는 몬스터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었다. 지능이 있고, 잠을 자는 생명체라면 꿈을 꿀 수도 있을 테니까. 개나 고양이처럼 말이지.
인간형 몬스터인 구울이 꿈을 꾸기도 한다는 사실이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으나, 그 꿈에서도 내가 마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이는 내가 마법을 얻을 경로가 더 많아졌음을 시사한다.
물론 마법을 쓰고 꿈까지 꾸는 몬스터가 얼마나 있겠냐마는, 없는 것보다야 낫다. 혹시 아는가? 언제 드래곤의 꿈속에 들어갈 기회라도 있을지.
아무튼, 이번에는 그동안 그랬던 것과는 다르게, 구울의 마법을 훔치지 않고 습득해봤다. 혹시 뭔가 차이점이라도 있을까 싶어서다.
‘......근데 뭔 차이인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습득한 마법은 ‘프로즌 더스트’.
막상 습득하고 보니, 비교할 대상이 없었다.
‘프로즌 더스트’를 훔쳤을 경우의 위력을 모르니, 습득한 경우와 비교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쓰는 ‘프로즌 더스트’는 구울이 쓰던 것보다는 조금 약했는데, 이게 습득해서 약한 건지, 단순히 내가 관련 속성이 없어서인지, 구울 보다 숙련도나 능력치가 부족해서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케른헴에는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마법에 관해 정보를 얻으려면, 역시 큰 도시로 나가야 하나?
그렇게 상념에 빠져 걷던 중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갑자기 엘미나와 도린 형제의 인사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통로 맞은편에서 다른 파티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즉시 그들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구울에 의해 예절주입이 된 결과다.
우리는 어제 겪었던 끔찍한 일 때문에, 강제적으로 예의 바른 파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몸이 되어버렸다.
“......?”
“.......”
“아, 예.”
그들은 뭔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다짜고짜 공손히 인사하는 우리가 미심쩍어 보인 모양이다. 그들은 혹여나 우리가 뒤통수라도 치지 않을까 싶었는지, 계속 뒤를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쯧. 저 녀석들은 예절 교육을 받지 못했군!”
“놈들도 구울을 한번 만나봤어야 하는데!”
“저들이 예의 바르지 못한 것은, 모두 네 탓이다! 억울한 마법사!”
도린 형제가 혀를 차며, 뜬금없이 나를 힐난했다.
“뭐? 그게 왜 내 탓이야?”
“당연한 소릴 하는군!”
“네 녀석이 구울을 죽였기 때문이지!”
“구울이 살아있었다면, 이 던전에는 인사를 잘하는 예의 바른 사람들만이 살아서 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미, 미친놈들.”
가히 소름 돋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에이. 그래도 저희는 엘님이 구울을 처치해주신 덕분에 살았는걸요? 근데... 결국 죽을 때까지 인사를 단 한 번도 받아주지 않았네요. 그럼 왜 그렇게 인사를 하라고 한 거람.”
“......!”
“......!”
“......!”
“......!”
그랬다. 이 미친 몬스터는 우리가 골백번도 넘게 인사했지만, 끝까지 받아주지 않은 것이었다.
***
감격스러운 순간이 찾아왔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햇빛이냐...!”
나는 양팔을 벌리고 눈을 감은 채,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아, 영광스러워요. 마치 다시 세례를 받는 기분이에요!”
엘미나는 던전 입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나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며 햇빛을 맞았다. 사제의 법복을 입고 저러고 있으니, 진짜로 세례를 받는 것처럼 보였다.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역시 사람은 햇빛을 받으며 살아야지.”
우리는 구울을 처치한 다음부터, 출구를 찾는 것에 총력을 기울였었다.
파밍을 더 하면 좋았겠지만, 구울 같은 몬스터가 또 있을 수도 있고, 무엇보다 식량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파티의 식량을 빼앗는 파렴치한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빨리 나가기로 했다.
사흘을 헤맨 끝에 2층으로 올라가는 길을 발견했고, 2층부터 던전 입구까지 오는 데에 꼬박 하루가 더 걸렸다.
아무튼, 그렇게 서서 햇빛을 받고 있으려니 던전 입구를 관리하는 사람이 다가왔다.
“혹시 던전 내부에서 처치한 몬스터를 증명할만한 것을 가지고 나오셨다면, 길드에 들러서 제출해주십시오. 실적에 반영해준다고 합니다.”
“네? 갑자기요? 저희가 들어갈 때에는 그런 소리가 없어서 안 챙겨서 나왔는데....”
“지하 3층에서 돌아온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해 방침이 변경됐습니다. 아주 강력한 몬스터들이 출현한다고 하더군요.”
“쩝. 그렇습니까.”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내가 처치한 스켈레톤만 해도 한 트럭은 될 것이다. 그 외에 다른 몬스터들도 많이 처치했고, 심지어 구울까지 잡았는데.
‘어? 구울?’
그러고 보니 구울의 사체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는가! 교회에 제출하기 전에 길드에 들러서 보여주면 되겠군.
“엘미나님. 혹시 교회로 가기 전에 잠깐 모험가 길드에 들러도 괜찮겠습니까?”
“네. 저는 괜찮아요.”
엘미나가 흔쾌히 허락했다.
우리는 바로 케른헴으로 향했다.
던전에 들어갈 때에 비해서, 다들 배낭이 빵빵해져 있었다. 마나석도 두둑이 얻었고, 은으로 만들어진 집기들도 최대한 챙겨왔다.
하지만 이것들은 사소하다고 볼 수 있다.
내가 얻은 고대의 마법서에 비하면.
‘라이트닝 블래스트’는, 중급 마법인 ‘플레임 오브’마저 맨손으로 버텨냈던 구울을 한 방에 끝장냈다. 굳이 등급을 따지자면, 어림잡아도 고급 마법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인페르노’는 내가 배울 수 없다.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팔아버리고 다른 마법서를 구매하는 방법을 고려해봤는데, 글쎄. 마땅히 처분할 곳도 모르겠거니와, 얼마를 받아야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모험가 길드에 도착했다.
─끼이익
길드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으나, 이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던전에서 호되게 당하고 온 모양인지, 수척하고 처참한 몰골을 한 모험가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엘 씨!!”
나를 발견한 길드 여직원이 접수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무사하셨네요!! 던전에 들어가고 일주일이 넘게 소식이 없으셔서 무슨 일이라도 당하신 줄 알았어요!!”
어쩐지 과하게 반긴다 싶더니만, 내가 죽은 줄 알았던 건가.
“깊게는 들어가지 않으셨나 봐요?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분들의 말을 들어보니, 지하 3층은 완전 지옥 같았다고 하더라구요. 동료를 잃고 소수만 살아서 돌아온 분들도 엄청 많아요!”
“지옥 같긴 했죠....”
나는 구울을 떠올리며 한번 몸서리쳤다.
“듣자 하니 몬스터를 처치한 증거를 보여주면 실적에 반영해준다던데... 테도린! 그거 여기에 올려놔.”
그리 말하며 고갯짓을 하니, 테도린이 접수대 위에 구울의 사체를 올려놓았다. 나는 시체를 감싸고 있는 망토를 벗겨냈다.
“이게 지하 3층에서 잡은 몬스터입니다.”
길드 직원은 사체를 보고 흠칫 놀랐다. 겉으로 보기엔 완전히 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이게 몬스터라구요...? 아! 설마 그럼 이게 생존자들이 말한 그.......”
순간, 길드 곳곳에서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꺄악!! 안, 안녕하세요!!
─히이익! 강녕하십니까!!
─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 아.”
구울에게서 예절 주입이 된 것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며 인사하고 있는 저들은, 던전에서 구울을 만나본 자들이었던 것이다.
“엘 씨가 이 괴물을 처치하셨다구요? 아, 아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그녀는 안쪽으로 들어가서 어떤 중년 남성을 데리고 나왔다. 케른헴 모험가 길드의 마스터였다.
길드 마스터는 뭔가를 찾으려는 듯, 능숙한 손놀림을 선보이며 구울의 사체를 샅샅이 훑었다.
“귀를 보니 이건 구울이 맞군. 구울의 신체 부위 중 어디 하나는 반드시 인간과 다르지.”
과연. 이것이 모험가 길드 마스터의 연륜인가.
“구울을 처치했다라. 내부 심사를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면 A급으로 승급시켜도 이상하지 않겠어.”
A급이라는 말에 장내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아, 그렇습니까.”
“케른헴에는 두 명밖에 없는 A급으로 승급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도 그다지 기뻐하는 것 같지 않군?”
내가 덤덤하게 대답하자 그가 이상하다는 듯 말했다.
뭐, 그냥 소소하게 기쁜 정도였다.
내 행동 원리는 주로 마법에 집중되어 있으니, 당분간은 탈영병 같은 범죄자를 잡아서 마법을 배울 생각이었다.
A급으로 승급하면 보수가 늘어나서 마법서를 사기에 용이해지겠지만, 모험가 일은 꿈에 들어가는 능력의 쿨타임이 발생했을 때에나 할 요량이다.
“승급할 수 있다면야 당연히 기쁘죠.”
“흠. 그래? 며칠 내로 결과를 알려주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상당히 쿨한 남자였다.
“엘 씨가 A급으로 승급할 수도 있다니! 제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로 A급으로 승급하는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못 봤어요!”
직원이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가만 보면 이 여자는 나를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하하. 아직 승급한 것도 아닌데요 뭐. 아, 혹시 저한테 들어온 물품 없습니까? 체스터 백작성에서 이곳으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앗! 있어요. 잠시만요.”
그녀가 선반을 뒤적거리더니, 책을 한 권 꺼내서 내게 내밀었다.
“오, 감사합니다.”
전격 계열의 근본 마법 [체인 라이트닝]이었다.
한 번의 캐스팅으로 여러 대상을 연쇄적으로 감전시킬 수 있는 범위 마법이다. 다수의 적과 싸울 때 효율이 아주 좋은, 훌륭한 마법이라 할 수 있겠다.
귀족이라 그런지 역시 안목이 있었다.
‘요즘 마법 복이 터졌군.’
비교적 짧은 기간에, 내 수준을 초과할 정도로 강력한 마법들을 얻었다.
이제 기본기만 좀 다지면, 나도 어디 가서 꿀리지 않는 마법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흐흐흐. 아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가시죠, 엘미나님. 가자! 형제들.”
나는 구울의 사체를 챙겨서, 일행들과 함께 교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