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던전(4)
장내가 후끈 달아올랐다.
전투를 앞둔 긴장감.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머리 위에 생성된 불덩어리가 내뿜는 열기 때문이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그녀의 입이 끔찍하게 쩌억 벌어졌다.
역시 저건 인간이 아닌 괴생명체다.
당장이라도 잡아먹으려 달려들 기세.
“이, 이런. 에잇! 안녕하세요!!!!!”
나는 따뜻한 인사 한마디와 함께 뜨거운 불덩어리를 쏘아 보냈다.
─화르르륵!!
상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의 주위에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이 생성되더니,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저 녀석도 마법을...?’
치이익- 얼음 조각들이 허공에서 플레임 오브와 교차하며 증발했다. 허나, 모든 조각이 증발한 것은 아니었다. 몇 개는 여전히 형태를 유지한 채 날아왔다.
나는 쉴드를 전개했다.
─퉁! 퉁! 퉁!
마법방어 쉴드에 막힌 얼음 조각들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끼야아아아악!!!”
플레임 오브에 직격당한 그녀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회전하는 불덩어리는 주변과 함께 그녀를 불태웠다.
“어떠냐! 뜨겁지? 으하하핫! 어, 어...?”
나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는 놀랍게도 몇 걸음 뒤로 밀려났지만, 불덩어리를 양손으로 붙든 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치이이익
기사조차 죽였다는 마법과 맨손으로 씨름하다니.
이윽고 그녀의 품 안에서 플레임 오브가 소멸했다. 마법은 소멸했지만, 몸은 여전히 불타고 있었다.
“미, 미친!”
불타오르는 그녀가 나를 향해 도약했다. 화끈한 여자였다.
─쾅! 쾅! 쾅!
황급히 전개한 쉴드를 미친 듯이 두들겨댔다. 맨손으로는 역부족이란 것을 느꼈는지, 그녀가 손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투두둑. 괴상한 소리와 함께 손이 짐승의 그것처럼 변했다. 그리고 위력 역시 변했다.
─쾅!! 쾅!! 콰직!!
‘깨, 깨진다!’
쉴드를 다시 캐스팅하기엔 상대가 너무 가깝다. 코앞에 있는 그녀는, 그 짧은 틈을 허용해주지 않을 것이다.
‘일단 검으로 한번 버텨내야 한다.’
─챙그랑!
쉴드가 깨졌다. 나는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녀의 우악스러운 손이 내 검과 닿으려는 순간,
─우우웅
내 앞에 새로운 백색 장막이 형성되더니,
─쾅!!!
날아드는 손을 막아냈다.
“?!”
“이 틈에 어서 공격 마법을 준비하세요!”
엘미나가 다급하게 외쳤다.
도린 형제 역시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
“우리도 시간을 벌어주지!”
“우리 형제는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다!”
“흐아아아압!!”
함성을 내지르며 기세 좋게 달려든 도린 형제는, 한 대 맞을 때마다 픽픽 나가떨어졌다.
─퍼억! 퍽!
“크헉....”
“끄아아악!”
“어, 어떻게든 해봐라 억울한 마법사!!”
‘.......’
나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마법을 써버렸다. 이젠 기초 마법밖에 남지 않은 상태. 오브도 버텨낸 상대에게 과연 이게 통할까...?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해봐야지.’
그녀가 도린 형제들에게 정신이 팔려있는 틈.
나는 그 틈을 노리고 접근해 그녀의 등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니, 찔러 넣으려고 했었다.
‘뭐, 뭐야. 검이... 안 박혀?’
검이 피부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젠장. 어쩔 수 없다. 살갗에 대고 쓸 수밖에.
나는 그녀의 등에 손바닥을 댄 채, 스태틱 쇼크를 연달아 시전 했다.
─파지직!
─파지직!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0회]
“끼이이이익!!!”
그녀가 바닥에 쓰러져서 경련했다.
그러나, 곧 비틀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모든 마법을 쏟아 부었음에도 역부족이었다.
“제, 젠장. 그렇다면...!”
나는 그녀가 온전히 회복하기 전에, 어깨로 들이받아 문밖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문을 닫아버렸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문이 닫혔다.
“하... 일단 시간은 벌었나....”
우리가 방 안에 있고, 괴물이 바깥에 있다.
던전을 나가려면, 이 방에서도 나가야 한다. 결국엔 다시 저 괴물을 마주쳐야 한다는 소리다.
자정이 지나서 마법횟수가 초기화되길 기다려야 하나? 확신할 수 없었다. 플레임 오브를 한 번 더 맞는다고 해서 죽을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녀도 다시 쌩쌩해질 것이다.
─콰앙!!!
순간, 철문을 때리는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야. 설마 벌써 회복한 건가...?”
그 소리가 미친 듯이 반복해서 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콰앙!! 콰앙!!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제, 제발 그 소리 좀 그만해!!!”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회복하자마자 하는 소리가 저거라니.
미쳐도 보통 미친 게 아니다.
저 소리를 더 듣다가는 나도 미칠 지경이다.
─콰앙!!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문을 얼마나 세게 때리는지, 때릴 때마다 땅을 포함한 방 전체에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문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이제 어떡하나 억울한 마법사!”
“뭔가 남은 마법이라도 있나?”
“전부 다 써버렸는데.... 어?”
남은 마법?
다른 마법?
나는 황급히 책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을 주워 들었다.
[라이트닝 블래스트]
만약 이 고대 마법에 등급의 제한이 없다면, 한번 읽는 것만으로도 배울 수 있다. 제한이 있다면 배워지지 않겠지만, 이게 지금으로써는 유일한 방법이다. 저 철문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나는 바로 마법서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철문을 등으로 막고 서 있는 도린 형제가 어이없다는 듯 소리쳤다.
“억울한 마법사! 지금 그게 무슨 짓인가!”
─콰앙!!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안, 안녕하시오!! 너는 지금 이 상황에 왜 책을 읽고 있는 것인가!”
─콰앙!!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조, 좋은 밤이오!! 삶을 포기한 것인가!”
도린 형제는 나에게 소리치랴, 문밖의 괴물에게 인사하랴 굉장히 바쁜 듯했으나, 나는 그들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미친 듯이 읽었다.
미친 듯이 대충 읽었다.
내용이 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훑고, 기계적으로 페이지를 휙휙 넘겼다.
그렇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순간,
[마법 ‘라이트닝 블래스트’를 배웠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닝 블래스트’ - 1회]
메시지가 뜨는 것과 동시에, 철문이 박살 났다.
─콰다당!!
그녀가 방으로 걸어 들어온다.
처음 봤을 때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또 그 소리냐.
나는 더 볼 것 없이 마법을 캐스팅했다.
'......!'
처음 느껴보는 감각.
온몸의 마나가 빨려 나간다.
영혼이 빠져나간다면 이런 느낌일까.
─파직. 파직.
모든 마나가 오른손에 몰려들었다.
곧 샛노란 스파크가 일기 시작했다.
“어, 어...? 제 머리카락이...?”
옆에 있던 엘미나의 긴 생머리가, 내 손에서 발생한 정전기에 대전 되어 한올 한올 허공으로 뻗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여성형 구울이, 이전과는 다르게 악을 쓰듯 외치며 달려들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나는 그녀에게 오른손을 뻗었다.
“이게 내 인사다! 작별 인사!”
─쩌저저적!!
─꽈르릉!!
번쩍! 팔뚝만 한 굵기의 새하얀 번개가 그녀를 향해 뻗어나갔다. 그와 동시에, 번개가 지나간 경로의 공기가 팽창하며 천둥소리를 만들어냈다.
“컥.”
─털썩
그녀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드디어 인사와 관련 없는 말을 했다.
“내... 배를... 갈라서 죽여줘....”
“......!?”
"뭐라고?"
“그게 무슨...!”
그 소리를 들은 도린 형제가 경악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내... 배를... 갈라서 죽여줘....”
“내... 배를... 갈라서 죽여줘....”
“내... 배를... 갈라서 죽여줘....”
그러자 도린 형제가 검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는 황급히 그들을 제지했다.
“멈춰!”
전승에 의하면 죽기 직전의 구울의 배를 가르면 부활한다. 진위 여부는 모르겠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저렇게 배를 갈라달라고 할 이유가 없다. 구린내가 난다.
“절대로 저 괴물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면 안 돼. 그럼 부활할 수도 있어. 차라리 저기에 묶어둬.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죽을 테니.”
나는 구석에 있는 사슬을 가리키며 말했다.
특이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사슬이니, 나름대로 안전할 것이다.
“알았다. 지금 바로 묶도록 하지.”
“난 잠깐 좀 쉬어야겠.......”
“괘, 괜찮으세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현기증에 휘청거렸다.
엘미나가 아연한 얼굴로 달려와 나를 부축했다.
“어라. 내가 왜 이러지...?”
나는 구울에게서 유효한 공격을 받은 적도 없는데.
“마나 탈진 증세에요.”
“아.”
“마나가 완전히 바닥난 경우에는 심한 탈력감을 느끼고,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워요. 안정을 취하시며 마나를 회복하셔야 해요.”
그녀가 전문적인 진단을 내리며 휴식을 권고했다.
그래. 엘미나는 치료 사제였지.
파티에 사제가 있으니 무료 상담도 받을 수 있고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저는 괜찮으니 도린 형제를 좀 살펴봐 주시겠습니까.”
도린 형제는 구울에게 두들겨 맞아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나보다 저들이 더 치료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알겠어요. 저분들도 봐 드릴 테니, 일단 이쪽에 앉으셔서 좀 쉬시겠어요? 아마 곧 잠이 쏟아지실 거예요.”
그녀는 한사코 내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도린 형제에게 향했다.
“마나 탈진 상태라.... 이건 조심해야겠네.”
기초 마법서에도 적혀있었기에 이것에 대해 대충 알고는 있었다. ‘마나 탈진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라고만 적혀있어서 상세한 증상은 몰랐지만.
직접 겪어보니 이건 완전 무방비 상태다.
움직이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정도. 이런 상태에서 외부의 위협에 노출된다면 죽음뿐이다.
“아무튼... 진짜로... 졸리군....”
엘미나가 말한 대로 잠이 쏟아졌다.
내가 이대로 잠들어도 괜찮으려나.
뭐, 옆에 도린 형제도 있으니 괜찮겠지....
나는 그렇게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
악몽을 꾸었다.
정말 끔찍한 악몽을.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할 정도로 흰 얼굴에 피처럼 붉은 입술.
아름다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사뿐사뿐 걸어오며 내게 뭔가 말하려는 듯, 붉은 입술을 움직였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씨팔!!! 너였냐!”
쌍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현실로 부족해, 꿈에서마저 나를 괴롭히다니.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그녀가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그 끔찍한 소리를 또다시 내뱉으며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마법을 난사해대며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꿈속에서는 마법횟수의 제한이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난사’했다.
그녀 역시, 내 마법을 피해가며 일전의 얼음 조각들을 계속 쏴댔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으아아아! 제발 그만해! 앞으로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 잘하겠습니다!”
하지만 악몽이란 게 늘 그렇듯, 어떻게 해도 악몽의 근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어디로 도망쳐도, 그녀는 계속 인사를 강요하며 끈질기게 따라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니, 잠깐. 이래 봬도 내가 꿈 전문가인데?’
일단 이건 분명히 꿈이다.
현실에서 분명 빈사 상태로 만들고 묶어둔 저 구울이 멀쩡하다는 것부터, 도린 형제와 엘미나가 없다는 점. 그리고 가장 확실한 근거는 마법횟수의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꿈 전문가인 내가, 내 꿈속에서 공포에 젖어 혼비백산하며 도망 다니는 것은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나는 꿈에서 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냥 저 얼음을 맞고 죽어야겠군.’
붙잡혀서 신체가 찢기거나 산채로 잡아먹혀서 죽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마법에 맞아 죽는 게 덜 아플 것 같았다.
나는 쉴드를 해제하고 얼음 조각들을 맞았다.
─푹! 푹! 푹!
시야가 암전했다.
[꿈속에서 마법 ‘프로즌 더스트’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뭐, 뭐야!?”
“네? 무슨 일이세요?”
엘미나의 목소리였다.
몸을 벌떡 일으켜서 주위를 둘러봤다.
내 머리맡에 엘미나가 앉아있었고, 도린 형제는 방의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사슬에 칭칭 감겨 죽어가는 여성형 구울이 조용히 누워있었다.
“......내 꿈이 아니었군.”
가까운 곳에서 자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어서, 나도 모르게 능력이 발동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