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21화 (21/200)

고대의 던전(3)

“둘 다라니,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얼핏 들어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몬스터와 인간이 협공이라도 했단 말인가.

“......처음에는 괜찮았어요. 출구가 사라져 잠시 당황했지만, 원래 목적대로 수습 성기사님들 다섯 분과 함께 이곳을 정화 중이었죠.”

그녀가 자세한 내막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때로는 강력한 마물을 만났지만, 저희는 이겨냈어요. 돌아다니다 마주치는 다른 사람들도 호의적이었구요. 서로 마물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함께 싸우기도 하고, 출구가 어디에 있는지 묻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고개를 푹 숙인 어린 사제의 어깨가 떨려온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변해갔어요. 마물에 당하는 사람들이 늘고, 식량도 부족해지고, 출구는 안 보이고... 점점 신경질적으로, 배타적으로 변했어요. 다른 그룹끼리 싸우는 경우도 발생할 만큼....”

어찌 보면 예정된 수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위층들과는 다르게 출구가 불명확하다. 갇혀있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그런 심리적 불안감에 더해 몬스터와 식량이라는 현실적인 문제까지 겹쳤으니, 자칫 서로 간에 약탈로 이어질 수 있다.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부분도 식량이었다. 일주일치를 준비해왔기에 아직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출구를 발견하는 것이 늦어진다면 식량난에 직면하게 된다.

“저희는 충분히 준비를 하고 들어와서 괜찮았었어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기도 하고, 저희 그룹에 합류시켜주기도 했었죠.... 불침번을 서던 사람이 수습 성기사 세 분을 죽이고 식량을 훔쳐 가기 전까지는요.”

뭐야? 뭘 믿고 모르는 사람을 세워두고 잠을 자? 모험가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교인들이라 타인에 대한 의심이 적은 건가?

어쨌거나 그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후부터는 저희 일행도 피폐해졌어요. 다른 그룹을 경계하고, 사기도 떨어지고. 그러다가... 아까 혼자 있는 어떤 이상한 여자를 만났어요.”

“이상한 여자?”

“네. 이상한 기운을 풍기는 여자였어요. 그래도 사람을 만났으니, 저는 인사를 하고 지나갔죠. 다른 성기사 분들은 그냥 그녀를 경계하며 지나갔구요. 그랬더니... 갑자기 그 여자가 다른 분들을...... 잡아먹었어요.”

“예에?”

“알고 보니 마물이었어요. 너희들은 왜 인사를 하지 않냐며 달려들더니... 저만 빼놓고 다른 분들을 종이 찢듯이 찢어서.......”

시팔.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사제의 말을 들어보니, 일단 이곳에서 만나게 될 다른 파티는 아군으로 보기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 더해, 뭔 인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수습 성기사 두 명을 그냥 찢어발기는 몬스터까지 있다니.

“그, 그래도 아는 분을 만나서 다행이에요. 저, 저도 그룹에 참여시켜주시면 안 될까요...? 저 혼자서는 도저히....”

그녀가 여전히 덜덜 떨며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혹시 신성력을 이용해 공격 마법도 사용할 수 있으십니까?”

“아, 아니요. 저는 치료 사제라 회복과 몇 가지 보조 마법 밖에는... 죄송해요.”

공격 능력은 없다 이거군.

뭐, 그래도 상관없다. 세상에 미치지 않고서야 힐러를 마다하는 파티는 없다. 안 그래도 만만치 않은 곳 같으니, 사제는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다.

“죄송하다뇨. 당연히 환영입니다.”

“정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교회에 돌아가면 꼭 보상을 해드릴게요!”

그렇게 사제가 파티에 합류했다.

***

─쐐액!

스켈레톤 아처가 발사한 화살이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 화살은 다른 스켈레톤과 싸우고 있는 테도린을 향해 날아갔다. 나는 황급히 그에게 경고했다.

“조심해!”

─텅!

날아가던 화살은 테도린에게 닿지 못하고, 빛나는 장막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고맙소! 사제님!”

“별말씀을요!”

나는 그 틈에 달려 나가 스켈레톤 아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빠각!

통쾌한 소리를 내며 놈이 으스러졌다. 그것을 확인한 즉시 도린 형제에게 합류해 나머지 스켈레톤들을 처치했다.

“후, 아주 순조로운데?”

“크흐흐. 당연하잖나? 무려 사제님이 계신데. 내가 사제의 가호를 받아보게 될 줄은 몰랐군.”

테도린이 황송하다는 듯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어제 합류한 엘미나라는 이름의 사제는 기대 이상으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일단 도린 형제의 전투력을 크게 향상시켜줬다. 원거리에서 보호막을 걸어주기도 하고, 만약 다쳐도 그녀에게 즉시 치료받을 수 있으니, 도린 형제가 좀 더 과감하게 싸울 수 있게 만들어줬다.

나 역시 도린 형제에게 신경을 덜 써도 되니, 온전히 내 전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이동속도가 향상됐고, 그것은 곧 전리품을 더 많이 획득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그녀는 전리품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자신은 사악한 마물을 정화하고 무사히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던전에서 얻는 것은 우리가 다 가져도 상관없다고 했다. 천사가 아닐까?

“뭐, 잡담은 이쯤하고 다시 움직이자고. 라이트가 꺼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움직이는 게 좋으니까.”

“알았다.”

라이트는 랜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밝았지만, 지속시간이 한 시간이다. 내가 다섯 번을 사용할 수 있으니, 다섯 시간밖에 밝힐 수 없다는 소리다.

미로 같은 던전을 다시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직 대박이라 부를만한 아이템도, 출구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만 몇 번인가 다른 파티를 만난 적은 있었는데, 서로 경계만 했을 뿐 싸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잘 생각해보면 우리 파티는 이 던전 내에서 꽤나 강력한 축에 속한다. 어디 다른 지역에서 A급 모험가나 용병이라도 온 게 아닌 이상에야 나보다는 약할 것이다. 게다가 우린 사제도 있으니까.

“정지.”

선두에서 걷던 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일행을 멈춰 세웠다.

“시체로군.”

끔찍하게 난자당해있는 시체 세 구. 아직까지 피가 흘러나오는 것으로 보아, 죽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일방적으로 당한 것 같은데... 뭐에 당한 거지?”

“아마 스펙터 일거에요.”

찡그린 얼굴로 시체를 살펴본 엘미나가 말했다.

“스펙터?”

“실체가 없는 망령이에요. 그다지 강한 편은 아니지만, 신성력이나 마나가 아닌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상대할 수 없어서 굉장히 까다로워요.”

“흐음. 실체가 없다라. 그래서 이 사람들이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한 거군요. 위험한 놈이네. 그 스펙터란 건 어떻게 생겼습니까?”

“......저, 저렇게요! 저렇게 생겼어요!”

저렇게?

통로 저편에서 검은색 천을 눌러쓴 존재가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검은색 천과 삐져나와 있는 손톱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마법은 통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나는 즉시 파이어 애로우를 캐스팅해 발사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파이어 애로우’ - 2회]

마법에 적중당한 놈은, 순식간에 불타오르며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그 모습을 바라본 엘미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까지 라이트 이외의 마법은 아껴두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캐, 캐스팅이 굉장히 빠르시네요...?”

“잔재주죠 뭐. 그건 그렇고, 어디 보자....”

나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시체들의 배낭을 뒤졌다.

“오?”

안에는 잡다한 물품들과, 약간의 식료품, 식수가 들어있었다.

식량을 먼저 챙긴 뒤, 시체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추려내서 챙겼다. 엘미나는 죽은 자들을 위해 뭔가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

그렇게 망자의 위로와 능욕을 동시에 행한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

─화아악!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 - 0회]

“이번이 마지막이군.”

어느덧 오늘분의 라이트를 모두 소진했다.

엘미나도 라이트 비슷한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서 번갈아 가며 사용했는데, 그녀는 나보다 먼저 사용횟수가 바닥났다.

나도 라이트만 바닥났을 뿐이지, 아직 다른 마법들은 제법 남아있는 상태였다. 지금까지 오는 동안 스켈레톤 시리즈, 스펙터, 밴시, 듀라한 따위의 그저그런 언데드만 만났기 때문이다.

스펙터와 밴시를 제외하고는 모두 검으로 처치가 가능했다.

어쨌든 식량을 조금 수급해서인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상태다. 엘미나도 슬슬 동료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밝아지고 있었다.

그런 엘미나가, 갑자기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 왜 그러십니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선 채로 몸을 덜덜 떨 뿐.

엘미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니, 웬 여자 하나가 맨발로 우릴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사박. 사박.

아름다운, 그러나 사이한 여자였다.

분명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으나, 동시에 죽어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 안녕하세요...?”

엘미나는 공포에 질린 얼굴 위에, 억지웃음을 덮어씌우며 인사를 건넸다.

그 순간, 즉시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이 여자였구나.

이 여자가 성기사를 잡아먹었다는 몬스터구나.

엘미나가 내 옷단을 잡아당기며 신호를 보냈다. 나도 곧바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도린 형제는 아예 허리까지 90도로 굽혀가며 인사했다.

─사박. 사박.

그 여자는, 아무런 말 없이 우리의 옆을 지나쳐가며 어둠 속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시, 시팔. 십년감수했네....”

엘미나에게 얘기를 들었을 때 얼핏 짐작은 했었지만, 직접 만나보니 확실히 알았다.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서도,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하지 않으면 잡아먹는, 성기사를 찢어 죽일 정도로 강력한 존재.

저건 ‘구울’이었다.

구울은 흔히 조금 강력한 좀비 정도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 않다. 민간전승에 의하면 엄청난 괴력에, 뭔 마법 같은 것도 쓰고, 심지어 부활까지도 가능한 미친 몬스터다.

나도 실제로 본 건 처음이었지만, 엘미나의 동료들도 당했지 않은가.

저런 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엘미나님이 미리 말씀해주신 덕분에 살았군요.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저야말로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녀는 구울을 보고 다시 악몽이 떠올랐는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린 나이에 고생이 많군.

축 처진 분위기로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몇 마리의 몬스터를 잡아가며 이동하기를 한참.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발생했다.

나쁜 소식은 마지막 라이트가 꺼졌다는 것이다. 이건 뭐 조금 어둡더라도 랜턴을 사용하면 된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드디어 대박의 냄새가 폴폴 풍기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두꺼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문이 달려있는 커다란 방. 저런 문이 달려있다면 보통 장소는 아닐 것이다. 저게 잠겨있었다면 뚫을 엄두도 못 냈을 테지만, 다행히 열려있었다.

“크흐흐. 돈 냄새가 나는군.”

“아아, 백번 동의한다.”

우리는 흩어져서 방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무언가를 구속했을 것으로 보이는 사슬이었다. 처음 보는 재질의 금속이었는데, 굉장히 튼튼해 보였다.

수많은 테이블 위에는 연구를 위한 도구들이 가득했고, 책장에는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있었다. 당연히 책장으로 향했다.

“오옷!! 억울한 마법사!! 마나석이다!!”

“여기에도 있다!!”

“이 술잔은 은으로 된 것 같군!!”

혹시나 책들 중에 마법서가 있을까 싶어서 살피고 있는데, 도린 형제들이 여기저기서 뭔가를 발견하고 꽥꽥 소리 질렀다.

“알았으니까 소리 좀 그만 지르고 일단 다 챙겨놔. 나는 여기 책장 좀 뒤져보다가 갈.... 께에에엑!!! 마법서다!!!”

마법서를 두 권이나 발견했다.

[라이트닝 블래스트], [인페르노]라는 듣도 보도 못한 마법이었다.

마법서를 들고 펄펄 뛰고 있는 나에게 엘미나가 다가왔다. 내가 너무나 기뻐하자, 그녀도 덩달아 기뻐해 줬다.

“축하드려요! 라이트닝 블래스트? 인페르노? 처음 보는 마법이네요.”

“어라, 사제님도요? 저도 등급조차 모르겠군요.”

마법서에는 속성도, 등급도 적혀있지 않았다.

“헤에. 고대의 던전이니, 고대의 마법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마법이 세분화되기 이전의 시대라든지.”

엘미나가 그런 설레는 추측을 내놓았다.

그래도 이름만 봐도 속성은 알 것 같았다. ‘라이트닝 블래스트’야 전격 마법일 것이고, ‘인페르노’는 불 속성 마법일 것이다.

등급이 문제인데...

나는 마법서를 통해서는, 아직 하급 마법까지밖에 배우지 못한다. 만약 엘미나 말대로 이 마법서가 등급의 제한이 없는 거라면... 어쩌면....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엘미나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제, 제가 말한 게 아니에요...!!”

뭐?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나는 즉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봤다.

랜턴 빛이 희미하게 닿는 문 앞.

그곳에 아까 만났던 여자가 서 있었다.

우리를 싸늘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채로.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아, 그, 그게....”

나는 일단 사과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어두워서 미처 못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어... 안녕하세요?”

순간, 그녀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왜 인사를 하지 않았지?”

“바, 방금 인사 했잖아! 미친년아!”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상대가 달려들기 전에 선수를 쳐야한다.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을 캐스팅했다.

─화르르륵!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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