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의 던전(2)
“콜록콜록! 뭐, 뭐야. 여기 공기가 왜 이래.”
차갑게 내려앉은 듯한 분위기.
형용할 수 없는 텁텁한 냄새.
위층과는 확연히 달라진 공기에 기침이 나왔다.
“왠지 으스스한 느낌도 드는데?”
“언젠가 맡아본 적이 있는 냄새군....”
“그렇다, 형제여....”
“이것은... 죽음의 냄새로군.”
도린 형제가 자기들끼리 오글거리는 말을 중얼거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죽음의 냄새? 시체?”
“죽었으나 죽은 것이 아닌... 언데드 말이다!”
“흐음. 언데드라. 확실히... 길드 직원도 언데드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했었지.”
내가 지금껏 만나본 언데드라고는 좀비뿐. 겨울에 공동묘지 근처를 돌아다니다 보면, 간혹 움직이는 시체를 만날 때가 있었다. 좀비 이외의 언데드는 아직 경험해본 적이 없다.
“이제부턴 긴장해야겠군.”
나 역시 칼을 뽑아 들었다. 분위기상 꼭 언데드가 아니더라도, 뭔가 나오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변을 경계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1층과는 분위기도 구조도 달라졌지만, 미로처럼 꼬여있는 건 여전했다. 아무래도 길을 잃지 않도록 뭔가 표시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사각사각
나는 단검으로 던전의 석벽을 조금 긁어냈다.
지나가는 길은 사선 한 개,
탐색을 마쳤거나 막다른 길에 막혀 되돌아온 경우에는, 그 위에 한 개를 더 그어서 X자로 만들었다.
더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나 찾아다니면서도, 눈에 보이는 방이 있으면 들어가서 수색했다.
“확실히 뭔가 연구를 했던 장소 같긴 하단 말이지....”
무언가를 담기 위한 시약병이나, 연구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가재도구들. 이런 것들로 미루어보면 마법이나 연금술에 관련된 던전인 듯 보였다.
다만, 먼지가 수북하게 내려앉은 테이블이나 선반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젠장. 그러면 뭐 하나! 이번에도 다른 녀석들이 한발 먼저 다녀간 모양이군. 더 빨리, 더 깊게 들어가야 한다! 이대로라면 계속 녀석들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한데....”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던전에 들어온 파티와, 늦게 들어온 우리가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특별히 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에야 그들이 먹다 남긴 짬 처리나 할 가능성이 높다.
“속도를 올려도 괜찮겠어? 너희 말대로 언데드가 출현할 수도 있다고?”
나야 검과 마법이 모두 가능한 하이브리드 B급 이상의 실력에 쉴드까지 있다지만, 도린 형제는 그렇지 못하다.
던전 한복판에서 심각한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마땅히 치료할 방법도 없다. 케른헴까지 돌아가기도 오래 걸리고, 챙겨온 싸구려 포션은 자잘한 상처나 치료할 수 있다.
“허, 우리 형제를 무시하는 것인가?”
“우린 언데드 경험이 풍부하다!”
“아무 걱정 말고 속도를 올려라! 지금은 지루해서 하품이 나올 지경이군.”
도린 형제는 남들이 보물을 싹 다 쓸어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언데드와 싸우는 게 낫다며 호기롭게 말했다.
“언데드 경험이 풍부하다고...?”
또또또. 또 허세부리는 것 같았다. 케른헴 주변에는 언데드가 거의 없고, 도린 형제의 고향 역시 사막이라 언데드가 없다.
어쨌든 본인들이 괜찮다고 하니 속도를 올리기로 했다.
“뭐, 알았다.”
걷는 속도를 올렸고, 문이 부서져 있거나 사람의 손을 탄 것처럼 보이는 방은 과감하게 스킵하며 나아갔다. 물론 갈림길마다 표기를 하는 것은 빼놓지 않았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니, 이곳에서 처음 맞닥뜨리는 형태의 공간에 도달했다.
거대한 공동.
운동장처럼 평탄한 형태가 아닌, 약간의 지형지물이 가미된 거대한 동굴 같은 형태였다.
“여기가 지하 2층의 중앙인가?”
중앙인지 확신 하지는 못했다. 미로 같은 던전을 돌아다니다보니, 방향감각은 진즉 잃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도 그런 것 같군. 그런데....”
테도린이 말끝을 흐리며 랜턴을 높게 치켜들었다.
“너무 넓어서 랜턴으로는 다 밝혀지지가 않는군.”
랜턴안의 불은 공동의 끝은커녕, 근처에 있는 장애물 정도나 가까스로 비춰주고 있었다.
“걱정 마라. 이럴 때 쓰려고 배운 마법이 있지.”
─화아악!
[금일 사용 가능한 ‘라이트’ - 4회]
내 머리 위에 흰색 섬광을 내뿜는 빛 덩어리가 생성됐다.
“오오...! 그것은 뭐지? 엄청나게 밝지 않은가! 저 멀리까지 보이는...... 헙! 전투준비!!!”
라이트의 성능에 감탄하던 테도린이, 무언가를 바라보며 그렇게 외쳤다.
“뭐야? 뭘 보고 그러는 건데?”
서둘러 테도린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랜턴으로는 비추지 못했던 장애물 뒤에서 하얀 해골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스켈레톤이다!”
─달그락달그락
스켈레톤이 삐걱대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턱을 달그락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는 몹시 당황했다.
“시, 시팔. 저게 뭐야?!”
스켈레톤이 강하거나 두려워서 당황한 것은 아니다. 딱 봐도 비실비실해 보이는 게 별거 없을 듯했다.
날 당황케 한 것은 스켈레톤들이 들고 있는 검.
녹이 너무 심각하게 슬어있었다. 그냥 검 형태의 녹 덩어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저딴 건 스치기만 해도 파상풍으로 죽겠군.”
그렇다고 스켈레톤 따위에 마법을 쓰기는 아까웠다. 미래를 위해 어지간한 문제는 검으로 해결하는 편이 낫다.
“뒤져라! 으하하하!”
“억울한 마법사 너도 어서 참여해라!”
“크흐흐. 손맛이 죽이는군!”
도린 형제는 이미 달려들어서 신명 나게 해골을 뽀개고 있었다. 언데드 경험이 많다더니 진짜였나? 아무튼 저들만 재미 보게 둘 순 없다.
나는 땅을 박차고 나아가며 롱소드를 야구배트처럼 휘둘렀다.
─뽀각!
해골이 부서지는 상쾌한 소리.
ASMR이 따로 없었다.
손끝에는 찌르르한 쾌감이 몰려온다.
“짜, 짜릿해....”
황홀한 타격감에 홀려버린 나는 무아지경으로 스켈레톤의 골통을 분쇄했다.
─뽀각! 뽀각! 퍼석!
“더... 더... 더...! 비켜라 도린 형제!”
“으앗! 새치기하지 마라!”
“그건 내 거다! 이 미친 마법사!”
그렇게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스켈레톤을 분쇄하니, 상황은 금세 종료됐다. 합쳐서 스무 마리가량 처치한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널린 뼛조각들을 보며 말했다.
“후. 엄청나군. 스켈레톤이라는 것은....”
“미, 미친 녀석. 던전에서 돌아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도린 형제가 혀를 내둘렀다.
“근데 언데드 치고는 생각보다 너무 시시한데...? 좀비보다 약한 것 같아.”
“방심하지 마라! 이 스켈레톤들이 유별나게 약한 것이다. 게다가 다른 언데드들은 훨씬 강하지.”
“아, 당연히 방심은 안 하지. 그나저나 이건 돈이 안 되겠네.”
나는 녹슨 검을 발로 슥슥 건드렸다.
고대의 던전으로 추정된다고 하더니, 진짜였나 보다. 이 정도로 녹이 슬려면 웬만한 세월로는 어림없어 보였다.
“뭐, 다시 움직여 보자고.”
우리는 더 깊은 곳을 향해 떠났다.
***
지하 3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발견한 것은 사흘이 지난 후였다.
2층에서 삼 일이나 헤맸다는 소리다.
2층에 나오는 몬스터라고는 스켈레톤뿐이었고, 마땅히 득템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마나석 세 개가 전부였다.
그래서 더 내려가야겠다는 판단하에 3층으로 가는 입구를 찾는 것에 주력했으나, 의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1층에서 그랬던 것과는 달리, 2층에 만나는 사람들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를 경쟁자라고 생각해서 그런 모양인지, 꽤나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뭐, 엄밀히 따지면 경쟁자가 맞긴 하지.’
그러한 까닭으로 입구를 직접 찾아다녀야 했고, 그게 삼 일이나 걸린 것이다.
“야, 다들 일어나.”
나는 바닥에 망토를 깔고 자고 있던 도린 형제를 깨웠다.
3층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발견한 것은 어제였지만, 한밤중이었기 때문에 근처에서 노숙을 했다.
온종일 어두컴컴한 던전 내부에서도 밤인지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자정에 내 마법횟수가 초기화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것 때문에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잃지는 않고 있다.
“아 빨리 일어나라고!”
여전히 바닥에서 뭉그적거리는 도린 형제를 툭툭 쳤다. 그러자 곧 하나둘씩 일어났다.
우리는 간단히 식사를 하고, 내려갈 채비를 끝냈다. 나는 라이트를 캐스팅하고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다들 준비됐지?”
“물론이다!”
“가보자!”
“대박을 터트리러! 크흐흐.”
의욕 넘치는 도린 형제와 함께 3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계단이 꽤나 좁았기 때문에, 내가 선두에 서서 한 줄로 내려갔다.
얼마간 내려가니 계단의 끝에 지하 3층이 보였다. 그렇게 3층에 발을 딛는 순간,
─스윽
전신을 훑는 기묘한 감각이 느껴졌다.
“뭐, 뭐지?”
당황하며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내려온 계단이 사라져 있었다.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마법인가? 함정인가? 그럼 도린 형제는?
계단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신 존재하고 있는 벽을 손으로 더듬어봤으나 그저 벽일 뿐이었다.
“안 돼! 내려오지 마!!”
나는 계속 벽을 더듬으며 혹시라도 도린 형제에게 들릴까, 고래고래 소리쳤다.
그때 손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짐과 동시에, 벽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어딜 만지는 것인가! 억울한 마법사!”
랜턴을 들고 있는 테도린이었다. 그리고 곧 나머지 형제들도 벽에서 튀어나왔다.
“계단을 내려가던 네가 갑자기 우리의 눈앞에서 사라지던데, 어떻게 된 일인가?”
“계, 계단이 사라졌어. 아니, 니들은 내가 눈앞에서 사라졌으면 일단 멈춰야지, 그걸 왜 계속 내려와? 딱 봐도 뭔가 이상하잖아!”
아무래도 지하 3층은 입구와 출구가 별도로 존재하는 형태 같았다.
“흥, 우리 형제는 동료를 저버리지 않는다. 설령 그게 함정일지라도 말이지. 당연한 것 아닌가?”
“너, 너희들...! 나는 너희가 함정에 빠지면 버릴 거야.”
“크흐흐. 그럴 줄 알았지.”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이 있어야 할 자리를 조금 파내봤지만 역시 출구는 없었다.
“어쨌든 결국은 돌아다닐 수밖에 없겠네. 출구를 찾기 위해서라도. 근데... 여긴 진짜 기분 나쁜 곳이군. 2층보다 훨씬 심한데....”
지하 2층은 차갑고 싸늘한 느낌이었다면, 여기는 그것을 넘어서 공기가 끈적거리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언제든 싸울 수 있도록 전투태세를 유지한 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저벅저벅
확실히 3층은 아직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장소가 많은 듯 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상 건질만 한 물품이 있는 건 아니었다. 빈방도 많았고, 너무 오래돼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물건들도 많았다.
“그래도 마나석은 좀 있네.”
마나석은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수정을 말한다. 쓰임새도 많고, 가격도 10실버가 넘는다.
그렇게 어떤 방에서 마나석을 챙기고 있을 때였다.
─부스럭
문득, 방 밖의 통로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황급히 통로 쪽을 바라보니, 누군가가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우릴 살펴보고 있었다.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사제님?”
그녀는 세르시아 교단의 사제였다. 리자드맨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받으러 갔을 때, 내 상처를 손가락으로 쿡쿡 쑤셨던.
“앗! 당신은 그때 그....”
그녀도 나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그녀는 안도하는 듯한 한숨을 푹 내쉰 뒤, 내가 있는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사제님이 왜 이런 곳에 계십니까?”
“저, 저는 던전에 사악한 마물이 있으면 정화하라는 교회의 명령을 받고 왔어요.”
교회에서 말하는 사악한 마물이란 언데드고, 정화란 처치다. 즉 언데드를 처치하라고 보냈다는 소리다.
“예? 혼자서요? 그것도 치료사제가?”
“아, 아니에요... 교, 교회의 다른 분들과 함께 왔었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고 있었다.
“저, 전부 당하셨... 흑....”
“전부 당했다고요?? 그게 무슨??”
나는 경악했다.
무려 세르시아 교단의 교회에서 보낸 토벌대다.
아무리 변방의 케른헴 지부라지만, 개개인이 B급 모험가 수준은 된다는 말이다.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토벌대가 당했다고?
“몬스터에게 당했습니까?”
그녀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럼... 설마 사람에게 당했습니까?”
그녀는 재차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둘 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