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의 의뢰(5)
“으아아아─!”
뜨겁다. 생생하고도 끔찍한 고통.
마법이 내게 닿기도 전부터 살갗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이글거리는 불덩이 뒤로, 조소를 머금고 있는 탈영병의 얼굴이 보인다. 이 마법 고맙다며, 나도 함께 웃어주고 싶었으나 견디기 힘든 고통에 비명만이 새어 나왔다.
이윽고 마법의 본체가 내게 닿았을 때,
나는 불타 죽었다.
[꿈속에서 마법 ‘플레임 오브’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이게 오브였구나.’
실로 놀라운 위력이었다.
내가 알기로 ‘오브’는 중급 마법이다.
중급 공격마법의 대명사라고 불리며, 각 속성마다 별개의 오브가 존재한다. 물 속성이면 ‘프로즌 오브’, 불 속성이면 ‘플레임 오브’ 같은 식이다.
들어보기만 했을 뿐, 실제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케른헴에서 이 정도 마법을 구사하는 자는 본 적이 없었다. 중급 마법을 쓰려면 최소 A급 모험가 이상이어야 할 텐데, 그런 모험가는 케른헴 따위의 허접한 도시에 잘 머물지 않는다.
‘훔친다.’
[마법 ‘플레임 오브’를 훔쳤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플레임 오브’ - 1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흐흐흐.”
이로써 나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사용횟수는 단 1회뿐이지만, 불 속성 없이 불 속성의 중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생각해보니 조금 이상하군.
전격 속성이 펜투플인데, 전격 계열은 스태틱 쇼크밖에 쓰지 못하다니. 본업보다 부업이 더 잘되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전격 마법도 더 배워야 하는데.
“이봐. 일어나봐.”
나는 아직 자고있는 탈영병 마법사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감겨있던 그의 눈꺼풀이 스르르 열렸다.
“??????”
그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는,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얼어붙었다.
“뭐. 왜 그렇게 놀라는데.”
“??? 내, 내가 분명 방금 너를 죽였는.......”
“아.”
그는 어리둥절해했다. 꿈속에서 나를 죽이고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을 때쯤 깨웠으니, 현실과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꿈에서 깬 직후가 가장 선명하니까.
원래는 나와 있었던 일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하도록 좀 더 자게 놔두는 게 좋았지만, 이 녀석한테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처형당하거나 감옥에 들어갈 녀석이었으니.
“나를 죽이는 꿈이라도 꿨나 보지?”
“.......”
“뭐, 네 꿈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마법사의 의자를 돌려 나를 향하게 만들었다.
물어볼 것들이 좀 있었다.
“탈영하는 사람들 중엔 너처럼 마법사도 좀 있는 편인가?”
확실히 마법을 훔치기엔, 이번처럼 현실에서도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편했다. 언제든 싸워도 이상하지 않을 탈영병이나 수배범들. 현실에서 싸웠으니, 꿈에서 싸우기에도 자연스럽다.
탈영병 중에 마법사가 많다면, 그들을 잡아서 마법을 훔치는 것도 꽤나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마법사는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인지 한참이나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이게 현실임을 깨닫고 입을 열었다.
“...없지는 않지만, 많지도 않다.”
“그래? 그들의 수준은? 너와 비교하면 어떻지?”
너무 강하면 곤란했다. 강한 마법을 훔칠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런 상대와 섣불리 싸우면 십중팔구는 내가 죽을 것이다.
“나와 비교해서...? 너는 내 수준을 모를 텐데. 내가 이렇게 묶여 있다고 얕잡아 보는 건가? 나는 너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짜악!
“이 새끼가! 아직 달콤한 꿈에서 덜 깼나 보지? 묻는 말에나 대답해!”
“크윽....”
훌륭한 마법을 선물해줘서 좋게 좋게 얘기하려 했더니만 매를 버는군.
“타, 탈영병 중에 나보다 강한 사람은 거의 없다. 기초 마법사나 하위 마법사처럼 낮은 지위를 가진 병사들이 주로 탈영하니까.”
“호오.”
그건 그렇다. 군대도 장교보다는 병사, 병장보다는 이등병이 더 많이 탈영하니까.
‘훌륭한 마법 공급원이 될 수 있겠는데...?’
나는 탈영병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심문했다.
“북부 원정 중에 도망친 거라고 했었나? 보통 거기서 탈영하면 어디로 가지? 상세한 탈출 경로는?”
그는 내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열과 성을 다해 답변해줬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성의 없게 대답할 때마다 불꽃 싸대기가 작렬했기 때문이다.
***
“이런....”
말을 타고 달리던 펠릭스는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자정이 한참 지났기 때문이다.
명백한 자신의 실책이었다.
붙잡은 탈영병 마법사 러스틴을 과소평가하고, 모험가에게 감시를 맡겼다니.
하급 마나 속박 고리로는 중급 마법을 억제할 수 없다. 자정이 넘었으니 러스틴의 마법 사용횟수가 초기화됐을 터.
러스틴이 중급 마법을 사용할 만큼의 마나를 회복했다면, 지금쯤 어떤 상황이 벌어져 있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감시를 부탁한 엘은 물론이고, 다른 모험가들과 자신의 부하들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야 했거늘....”
펠릭스는 자신의 안일함을 끝없이 자책하며, 애꿎은 말만 재촉했다.
─다그닥다그닥
“히히이잉─!”
이윽고 저택에 도착한 펠릭스는 말의 고삐를 확 잡아당겨 멈춰 세웠다.
스르릉- 그는 먼저 검부터 뽑아 들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저택으로 진입했다.
“.......”
끔찍한 참상이 벌어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일층에는 양초 하나가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타오르고 있을 뿐 이상한 점은 없었다.
“지하실로 가보세.”
그렇게 말하며 지하실로 내려간 펠릭스는, 그답지 않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짜악!
“이 새끼가! 똑바로 말 안해? 탈영해서 어떤 경로로 여기까지 왔냐고!”
엘이 러스틴에게 당하기는커녕, 그의 뺨을 때려가며 심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윽. 이미 여러 번 대답했잖나!”
“말이 조금씩 달라지니까 그렇...... 어? 펠릭스님?”
러스틴에게 윽박지르고 있던 엘이 펠릭스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침은 돼야 오신다더니, 벌써 오신 겁니까?”
“지금 이게 무슨....”
펠릭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말했으나, 엘은 태연하게 러스틴의 고개를 일으켜 세우며 대답했다.
“아, 이 새끼 이거 아주 악질입니다. 들어보니 상관을 죽이고 도망친 거라는데요? 그런데 뒤에 계신 분은...?”
엘의 물음에, 펠릭스의 뒤에서 검을 들고 서 있던 기사가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나는 체스터 백작님의 기사 에드윈이라고 한다.”
자신을 에드윈이라고 소개한 그는, 검을 집어넣고 품에서 붉은 고리를 꺼내 러스틴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 러스틴을 찢어죽일 기세로 노려봤다.
“에, 에드윈님?! 사, 살려주십시오....”
“네놈이... 감히....”
“자자, 일단 진정하시게. 새로운 구속 고리도 채웠으니, 일단 올라가서 상황부터 들어보지. 궁금한 것이 많군.”
정신을 차린 펠릭스가 엘과 에드윈을 데리고 올라갔다.
그들은 일층에 있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먼저 펠릭스가 입을 열었다.
“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예? 감시하고 있으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래서 감시하고 있었습니다만.”
“아니, 내 말은... 음. 당황스럽군.”
엘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잠시 그의 말문이 막혔다.
“저 마법사가 무슨 짓을 하지는 않던가? 가령 마법을 썼다거나.”
“예? 예. 안 쓰던데요.”
“다행이군.”
펠릭스는 의자의 등받이에 푹 기댄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자네한테 사과부터 하지. 미안하네.”
“갑자기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사과에 당황하고 있는 엘에게, 펠릭스는 자세한 사정을 설명했다.
러스틴이 하루에 한 번 중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부터, 자신이 채웠던 구속 고리로는 그 마법을 막을 수 없다는 것까지.
“......다행히 자네가 러스틴의 마나 회복을 계속 방해한 덕분에, 자정이 지나고도 놈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 것이지. 정말 미안하네.”
“아, 예. 뭐 괜찮습니다.”
엘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이미 자정 이전에 ‘플레임 오브’를 훔쳤기 때문이다. 설령 마나가 회복됐다 한들 러스틴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내가 괜찮지 않다네. 이보게, 에드윈.”
펠릭스가 옆에 앉아있는 에드윈에게 제안했다.
“원래는 받지 않으려고 했네만, 탈영병을 붙잡은 보상을 엘에게 지급해주지 않겠나?”
“그렇게 하겠습니다. 경의 저택에서 탈출할 수도 있었는데, 이 친구가 그걸 막았다고 볼 수 있으니 합리적인 제안 같군요.”
그렇게 말한 에드윈이 엘을 바라봤다. 흥미가 동한다는 눈빛이었다.
“모험가라기엔 특이한 친구로군. 러스틴의 자백을 받아낼 정도로 강도 높은 심문을 하다니 말이야. 탈영 경로까지 캐묻던데, 혹시 탈영병을 더 잡을 생각인가?”
“예. 케른헴으로 오는 놈들은 눈에 띄면 잡을 생각입니다.”
“하하! 확실히 특이해. 그래, 우리 쪽 탈영병을 잡으면 백작성으로 데려와. 살려서 데려오기만 한다면, 그것도 보상해주지.”
“알겠습니다.”
에드윈은 한바탕 호쾌하게 웃고 나서 말을 이었다.
“보상으로 뭔가 원하는 것이 있나? 바로 돈으로 지급해주는 게 깔끔하겠지만, 내가 급히 나오느라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돈 말고도 됩니까?”
“어지간하면 원하는 걸로 보상해주지. 펠릭스 경에게 듣자 하니 마법사라고 하던데, 지팡이는 어떤가?”
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원하는 바를 말했다.
“혹시 가능하다면 전격 계열의 마법서를 받고 싶습니다만....”
“흐음. 꽤나 비싸게 부르는군.”
에드윈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뭐, 좋다! 러스틴은 기사를 살해한 자니, 그 정도는 해줘도 될 것 같군. 나중에 사람을 보내 전해주지.”
***
케른헴의 북문.
“그동안 수고 많았네. 그럼, 다음에 또 보도록 하지.”
우리를 이곳까지 태워준 펠릭스가 작별 인사를 건네고 마차를 출발시켜 떠났다.
나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셨다.
“스으읍-! 하! 드디어 돌아왔군.”
“역시 도시가 좋긴 좋네요. 활기차고.”
“그러게. 근데 원래 이랬나? 왠지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느낌인데. 뭐, 일단 전리품부터 처리하러 가보자고.”
펠릭스의 의뢰를 수행하는 동안 제법 많은 전리품이 발생했다. 주로 허접한 몬스터들을 잡았기에 굵직한 건 없고 자잘한 것들뿐이었지만, 당연히 빈손보단 낫다.
그리고 진짜 소득은 따로 있다.
일단 중급 마법인 '플레임 오브'.
이것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애당초 기초 또는 하급 마법 정도나 훔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뜻밖의 소득이었다. 꿈속에서 죽어라 매직 미사일을 피한 보람이 있다.
에드윈이 약속한 전격 마법서도 빼놓을 수 없다.
모험가 길드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무슨 마법서를 보낼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가격도 모른다. 케른헴에서 하급 전격 마법서는 팔지도 않기 때문이다.
에드윈이 '비싸게 부른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적지 않은 가격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자, 약속했던 부츠다.”
“감사합니다!!!”
전리품을 처분하고, 약속대로 케빈에게 3실버짜리 부츠를 하나 사줬다. 어찌나 기뻐하는지, 또 받을 수만 있다면 스태틱 쇼크를 한 방 더 맞을 기세였다.
돈을 나눈 뒤에, 의뢰 완료 보고를 위해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돈은 이미 펠릭스에게 받은 상태였지만, 길드에 보고를 해야 실적에 반영된다.
“뭐지?”
모험가 길드 앞이 이상하게 북적거렸다.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끼이익
“억울한 마법사!!!!!”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것이지?”
“네가 오늘 돌아온다고 해서, 아침부터 지금까지 온종일 기다렸다!”
놀랍게도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길드 안에 있던 도린 형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 지르며 나를 향해 튀어왔다. 진짜로 놀랐다.
“뭐, 뭐야 미친놈들아.”
니들이 아침부터 나를 왜 기다려?
“어제 케른헴에서 던전이 발견됐다!”
“파티에 B급이 있어야 입장할 수 있다!”
“제발 우리를 이끌어다오! 엘이시여!”
“뭣! 그게 정말이야?”
나는 다시 한번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