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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7화 (17/200)

펠릭스의 의뢰(4)

펠릭스는 부지런히 말을 다그치며 북쪽을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이럇!”

─다그닥다그닥

마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

혼자서 말을 타고 달렸기 때문에 그는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어둠 속에서 붉게 빛나고 있는 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케른헴과 달리 붉은색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 이곳은 체스터 백작이 통치하는 도시 카트카다.

펠릭스는 검문을 통과하고 카트카 중앙에 위치한 백작의 성채로 향했다. 철옹성과 같이 삼엄한 성채였지만, 한 경비병이 펠릭스를 알아본 덕분에 그는 검문 없이 바로 내부로 안내받았다.

경비병은 펠릭스를 당직 사관이 근무 중인 방으로 데려갔다.

─똑똑

“손님이 오셨습니다.”

“들여보내라.”

내부에서 젊은 남성의 목소리가 허락했다.

펠릭스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적발의 기사가 맞이했다. 그는 펠릭스를 보자마자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릭스 경!”

“그렇게 부를 필요 없다네. 나는 더 이상 기사가 아니니까.”

“하하. 제게는 영원한 기사십니다.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이봐! 손님께 차를 한 잔 내드려라.”

적발의 기사는 구석에서 무언가 서류를 끄적이고 있던 부관에게 차를 내오도록 주문했다.

“체스터 백작님께서는 무탈하신가?”

“북부 원정 때문에 속이 좀 썩고 계시지만, 건강엔 문제가 없으십니다.”

“일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이로군.”

“백작님이 원했던 출정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경께서는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그것도 이런 오밤중에.”

그가 찻잔을 홀짝이며 본론을 물었다.

“내 장원 근처에서 탈영병을 붙잡았다네. 호송할 마차와 인력을 보내주겠나.”

“탈영병...? 미치겠군.”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듯 말하자, 펠릭스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 요즘 탈영병이 꽤나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 보병이 하나둘씩 슬그머니 도망가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상관을 살해하고 탈영하는 놈들까지 있습니다.”

“전장에서는 늘 그런 일이 벌어지지. 심지어 원정 중인 북부는 척박한 곳이니, 더 심화될 수밖에.”

“그러게나 말입니다. 보통 탈영병들은 북부로 숨어들곤 했는데, 경의 장원 근처에서 잡혔다는 걸 보니 이젠 케른헴으로 도주하는 자들도 있나 보군요.”

적발의 기사가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눌렀다.

“후... 어쨌든 인력을 내드리겠습니다. 탈영병은 몇 명을 붙잡으셨습니까?”

“다섯 명이라네. 마법사 한 명과, 보병 네 명.”

“......마법사?”

“푸른색 머리칼을 가진 젊은 남자지. 이름은 러─”

“러스틴? 혹시 러스틴입니까?”

펠릭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었다.

“그렇다고 하더군. 마나 구속 고리를 채워서 내 저택 지하에 구금해뒀지.”

“마나 구속 고리의 등급이 어떻게 됩니까?”

“하급이네.”

“이, 이런. 감시는... 경께서 이곳에 와계신다면, 감시는 누가하고 있습니까?”

“모험가 하나가 지켜보고 있네만.”

“안 돼!”

그가 경악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펠릭스는 그런 그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놀라는가?”

“그놈이 상관을 살해하고 도망친 놈입니다!”

“내가 말했잖나. 전장에서 그런 일은 흔한─”

“그냥 상관이 아니라, 지휘관을 살해했습니다. 로렌스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펠릭스도 경악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뭣? 로렌스? 그럴 리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사를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는데.”

상대는 자신의 검을 쉴드로 막기에 급급했었다.

반격의 엄두도 내지 못한 걸 보면 하위 마법사로 판단됐다. 중위 마법사였다면, 적어도 캐스팅이 빠른 기초 공격마법 정도는 써가며 반격했을 테니까.

그런 하위 마법사가 기사인 로렌스를 죽였다니?

“놈은 하루에 한 번뿐이지만, 중급 마법인 오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마법으로 로렌스를 기습해서 살해하고 도망친 겁니다!”

“허.”

펠릭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기사라 할지라도 무방비 상태에서 그런 걸 맞으면 생명이 위태롭다. 게다가 중급 마법이니, 하급 마나 구속 고리만으로는 억제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러스틴을 감시하고 있다는 그 모험가는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기초 마법을 몇 개 다루는 B급 모험가라네.”

“기초 마법사라... 젠장. 어림도 없겠군. 당장 출발하시죠. 놈의 마법 횟수가 초기화되기 전에 가야 합니다!”

“......알았네.”

펠릭스의 어조는 침울했다.

아무리 빨리 간다고 해도, 자정 전에 도착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봐! 나는 먼저 펠릭스 경과 말을 타고 출발할 테니, 마차와 호송할 인원을 마련해서 경의 장원으로 보내라.”

“알겠습니다!”

적발의 기사는 부관에게 급히 명령을 하달하고, 지체 없이 출발했다.

***

그 시각, 펠릭스 저택의 지하실.

“크윽....”

러스틴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눈앞의 모험가가 미친놈 같았기 때문이다.

“대체 원하는 게 뭐....”

─짜악!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도, 돈을 주겠다고 약속해도 반응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괴롭힐 뿐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녀석이 유일하게 반응할 때가 있었는데,

“죽여버리겠다!”

“그래? 나를 죽이고 싶어? 흐흐.”

죽여버리겠다는 말만 하면 묘하게 좋아하며 괴롭힘의 강도가 약해졌다. 그야말로 미친놈 중의 미친놈이 아닐까 싶었다.

“미, 미친놈.”

─짜악!

그 외엔 어떤 말을 해도 손바닥이 날아왔다.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꼬장꼬장한 기사가 사라지고, 웬 어설퍼 보이는 모험가가 지하실로 내려왔을 때에는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감언이설로 꼬드겨 자신을 풀어주게 만들거나, 풀어주지 않더라도 시간만 벌면, 하급 속박 고리를 이겨내고 중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미친놈은 회유에 넘어가기는커녕,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자신의 혼을 쏙 빼놓고 있었다.

‘도저히 마나 회복에 집중할 수가 없다.’

러스틴은 아침에 로렌스를 기습하고, 저녁엔 펠릭스와 전투를 벌인 바람에 마나가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조용히 쉬면서 마나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런 틈을 일절 주지 않고 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통 받는 상태라면 마나 회복 속도가 몹시 더디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자정이 지나서 마법 횟수가 초기화된다 하더라도 오브를 쓸 만큼의 마나가 모이지 않을 것이었다.

“기, 기회가 온다면 너를 반드시 죽일 거다!”

“죽여 봐. 흐흐.”

한숨 자는 것이 가장 빠르게 마나를 회복하는 방법이었지만, 도무지 잘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저 미친놈이 원하는 말을 해주면서, 괴롭힘의 강도가 약해졌을 때마다 야금야금 마나를 회복하는 방법뿐.

“내, 내가 죽어서라도 너를 죽여주지.”

“그래그래.”

자꾸 죽이겠다는 말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정말로 죽이고 싶어져 갔다.

원래부터 탈출하는 즉시 죽일 생각이긴 했지만, 그 마음이 커지고 커져서 이제는 간절한 수준이다.

‘기필코 죽여주마....’

자신은 로렌스마저 죽인 실력자다.

로렌스가 부하를 신뢰하는 성격이었기에 무방비하게 등을 내줬다고는 하나, 그래도 기사였다. 기사도 죽였는데 고작 모험가 하나 죽이지 못할까.

그런 지옥 같은 시간이 한동안 더 이어지다가,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벽보고 반성해라.”

이 지독한 모험가는 자신을 가지고 노는 것에 싫증이 났는지, 의자를 돌려서 벽을 바라보게 만든 뒤 지하실을 떠난 것이다.

“.......”

두 번의 전투와 장거리 이동, 그리고 지옥 같았던 시간까지. 지칠 대로 지친 러스틴은, 마나 회복을 위해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엘이 슬그머니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잠들었나? 잠들었군.”

엘은 러스틴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다른 네 명의 탈영병들에게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케빈을 지하실로 데려와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깨우라고 당부한 뒤, 러스틴의 의자 뒤에 앉아 함께 잠들었다.

***

‘뭐, 뭐야?’

나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분명 탈영병 마법사의 꿈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그대로 깨버렸기 때문이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지하실에서 여전히 네 명의 병사가 겁에 질린 얼굴로 내 눈치를 보고 있었고, 마법사 역시 내가 벽을 보게끔 의자를 돌려둔 상태 그대로였다.

‘......왜 실패했지?’

이상했다. 지금껏 이런 경우는 없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꿈에 들어간 게 딱 일주일 전이었으니, 쿨타임도 아니었다.

혹시 같이 있었던 케빈은 뭔가를 봤을까 싶어서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새 다시 올라간 모양인지 그는 지하에 없었다.

케빈을 찾으러 일층으로 올라가 보니, 벽난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이렇게 책임감 없는 녀석이었나?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 아!’

나는 뭔가 짚이는 것이 있어서, 즉시 펠릭스가 우리에게 제공해줬던 방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역시.”

방 안에는 내가 알고 있던 가구는 온데간데없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백색 공간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꿈이었어.”

그렇다. 이건 탈영병 마법사의 꿈속이었다.

내가 꿈속으로 들어가는 걸 실패한 게 아니라, 단지 그 마법사가 펠릭스 저택의 지하에 갇혀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저택의 지하실과 일층은 그 마법사도 봤기 때문에 현실과 똑같이 구현됐지만, 내가 머물던 방의 내부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구현되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벽을 보고 있는 마법사의 의자를 다시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봐.”

“주, 죽이겠다!”

그동안의 교육이 성과가 있었는지, 그는 내가 말을 걸자마자 파블로프의 개처럼 그렇게 말했다.

나는 한동안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까... 너를 풀어주면 돈을 주겠다고 했었지? 그게 정말인가?”

“주, 죽이겠다!”

성과가 너무 있었군.

“아니,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생각해보니 너를 체스터 백작한테 넘겨주고 받는 돈보다, 네가 더 줄 수 있다면 그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계속 그 제안을 했었는데 네가 전부 거절했었잖나!”

그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까는 펠릭스님 때문에 네 제안에 응할 수 없었다. 지금은... 그분이 호송할 병력을 요청하러 떠나서 이곳에 없거든.”

펠릭스가 없다는 소리에, 마법사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숨어서 살 정도의 거금... 그래, 10골드 정도면 되겠군. 그 정도만 준다면 풀어주기로 약속하지.”

그동안 지독하게 굴다가, 이제 와서 갑자기 이유 없이 구속을 풀어준다고 하면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럴싸한 핑계를 둘러댔다.

“좋다. 약속하겠다.”

“알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마나 구속 고리와 포승줄을 풀어줬다.

자유로워진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를 향해 긴장한 척 하며 말했다.

“저, 정말 약속 지키는 거지...요...?”

“그래... 약속. 지켜야지. 크크크.”

그는 그렇게 말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우우웅

그의 머리 위에 길쭉한 빛의 막대기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너를 죽이겠다는 약속을 말이지!!”

그 외침과 함께 마법이 나에게 날아들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즉시 옆으로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다.

왜냐하면 저건 매직 미사일이었기 때문이다.

─콰앙!

매직 미사일이 지하실 벽면에 강타했다.

‘고작 3골드 주고도 배울 수 있는 마법에 만족할 수 없지.’

그가 재차 매직 미사일을 캐스팅해 날렸다.

─콰앙! 콰앙!

나는 죽을힘을 다해 피해 다녔다.

아니, 매직 미사일 말고 좋은 것 좀 써라!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그렇다면...!”

─사라락

하늘색을 띤 작은 얼음 조각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처음 보는 마법이었기에, 이번엔 피하지 않고 그냥 맞기로 했다.

“뭐, 뭐지?”

분명히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죽지 않았다.

대신, 발이 얼어붙었다.

“크크크. 이젠 도망치지 못하겠지? 이제 진짜를 보여주마. 너 따위에겐 과분한 마법이니 영광으로 알아라!”

그가 또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사람 머리통의 다섯 배는 될 것 같은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 구체는 맹렬히 회전하면서, 주변에 작은 불덩어리들을 내뿜었다.

타닥! 타닥! 하며 지하실 벽면이 불에 타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마법이 완성됐는지, 마법사가 작별을 고했다.

“잘 가라.”

맹렬히 회전하는 화염의 구체가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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