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6화 (16/200)

펠릭스의 의뢰(3)

“우리가 탈영병? 정신 나간 노인네였군.”

“그딴 헛소리를 늘어놓는 이유가 뭐요?”

마법사를 위시한 병사들이 어이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너희가 말한 로렌스는 모든 부대원을 이끌고 북부 원정에 참여 중인 상태다. 그런 그의 부하들이 이곳에, 그것도 케른헴으로 가려 한다면 뻔하다.”

“그, 그걸 어떻게 알았지? 당신 누구야.”

“펠릭스.”

“펠릭스...?”

“그게 누군데?”

그들은 펠릭스가 누구인지 모르는 듯 보였다. 그게 누구냐며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던 중, 마법사의 얼굴이 서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설마... 몇 년 전 은퇴했다는 기사... 펠릭스?”

펠릭스가 그들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너희들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죄. 그리고 체스터 백작님의 명예를 욕보인 죄로, 너희들을 붙잡아 백작님께 호송하겠다.”

“이익...! 공격해!!!”

마법사가 발뺌을 포기하고 공격을 지시했다.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을 때, 펠릭스는 이미 마법사에게 당도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콰앙!

마법사가 하늘빛 쉴드를 전개해 펠릭스의 검을 막아냈다. 그는 뭔가 공격 마법을 캐스팅하려 했으나, 연달아 이어지는 펠릭스의 공격에 급히 취소하고 재차 쉴드를 전개했다.

─콰앙!

마법사는 다른 마법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검을 막기에 급급할 뿐이었다.

“빠, 빨리 이 늙은이를 죽여!”

그가 그렇게 외치자, 네 명의 병사들이 펠릭스에게 달려들었다.

1:5의 접전이 벌어졌다.

─채앵!

─채앵!

병장기가 맞부딪히며 만들어낸 요란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

나는 외부인인 내가 저 싸움에 참여해도 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이곳이 케른헴이었다면 바로 거들었겠지만, 체스터 백작령이니 혹시 뭔가 다른 법도가 있을까 싶어서다. 펠릭스도 도와달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내 동료들을 지키라고만 말했었다.

‘어차피 펠릭스 정도의 강자라면 혼자서도 충분하겠지.’

나는 저들이 만약 우리를 공격한다면, 그때 참여하기로 마음먹었다. 정당방위라는 명분이 생기니까.

싸움은 의외로 길어졌다.

“크윽. 무슨 노인네가 힘이....”

“죽어라!!!”

죽자 살자 싸우는 적들과는 달리, 펠릭스는 그들을 생포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오러를 사용하기는커녕, 치명상을 입히는 것도 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곧 승기는 기울어져 갔다.

─퍼억!

“커헉...! 컥!”

펠릭스의 발에 얻어맞은 병사 하나가 우리 앞까지 날아왔다. 그는 호흡이 곤란한 듯 바닥에 쓰러져 켁켁댔다.

그를 시작으로 병사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졌고, 쉴드를 모두 소진한 마법사는 결국 펠릭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 투항하라.”

“제, 제길....”

펠릭스가 무릎을 꿇고 있는 마법사를 내려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게 마법사와 기사의 싸움.... 확실히 거리를 내주면 어렵겠군.’

저 마법사는 제대로 된 공격 마법 한번 써보지 못하고 당했다. 물론 나였다면 즉시 캐스팅이 가능하니 저항이라도 해봤겠지만, 펠릭스 역시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건 매한가지다.

무릎을 꿇은 마법사도 그것이 못내 분하다는 듯 씩씩거리고 있었으나, 상황은 이미 종료된 후였다.

“하, 한 번만 못 본 척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는 자신을 풀어달라고 애원했으나, 펠릭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희들을 용서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체스터 백작님뿐이다. 네가 그분께 직접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요청─”

“모두 움직이지 마!!”

순간, 그런 외침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 바로 뒤에서 나왔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펠릭스에게 얻어맞고 날아왔던 병사가 어느새 케빈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 이놈이 죽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우, 우릴 보내줘라!”

“.......”

“그, 그리고 너희들을 믿을 수 없으니, 이놈은 우리와 함께 가줘야겠다. 케른헴까지 무사히 안내해주면 그때 풀어주지.”

놈이 케빈을 인질로 잡고 협상을 시도했다.

펠릭스의 얼굴에 갈등이 서렸다. 그의 성격상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은 지켜보기 어려울 것이었다.

‘구경하느라 방심했군....’

나는 내 실책으로 인해 케빈을 내줬으니, 놈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다.

“내가 대신 인질이 되겠다.”

“뭐, 뭐? 네가?”

“그렇다. 케른헴까지 안내도 해주지. 나는 케른헴 출신이거든.”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

나는 검을 뽑아서 땅바닥에 내려놓으며 스스로 무장을 해제했다.

“이 정도면 믿을만한가?”

“조, 좋다. 양손을 들고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와라.”

그가 내 제안을 수락했다.

나는 서서히 그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케빈과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케빈.”

“네, 네?”

“잠깐만 참아라.”

─파지직!

케빈의 팔을 붙잡고 스태틱 쇼크를 시전 했다.

“으아아아!!!”

“끄아아아악!!!”

케빈과 병사의 비명이 한데 어우러져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들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펠릭스의 장원으로 압송했다.

***

펠릭스의 저택.

“엘님!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저한테 그런...!”

케빈이 몹시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목소리마저 촉촉했다.

“아, 미안하다. 내가 잠깐 방심해버린 탓에 어쩔 수 없었어. 많이 아팠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아픈가?

내 마법의 위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마법에 의한 피해에 대해 면역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캐스팅할 때마다 나도 감전됐을 거다.

“진짜 미안하다. 그래도 어디 다친 데는 없잖아? 대신 사과의 의미로 케른헴에 돌아가면 부츠 하나 사줄게. 그거 구입할 계획이었다며?”

“오오, 정말이십니까?”

케빈이 장난감을 약속받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뭐, 2실버짜리 정도로 사주면 되겠지.

그때, 펠릭스가 저택 지하에서 올라왔다.

“탈영병은 다 구속하셨습니까?”

“그렇다네. 꼼짝도 못 하게 포박해뒀지.”

그는 여러 뭉텅이의 포승줄을 가지고 내려갔었는데, 빈손으로 올라온 것을 보니 얼마나 심하게 묶었을지 상상이 갔다.

그러다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근데... 마법사를 그냥 묶어두기만 해도 충분한 겁니까?”

마법사는 묶여 있어도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좋은 지적이군.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자네에게 부탁을 하나 할 참이었네.”

“어떤 부탁이십니까?”

“잠깐 따라오겠나.”

그는 나를 지하실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번데기처럼 묶여 있는 탈영병들이, 의자와 한 몸이 되어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펠릭스가 구속하면서 그들을 두들겨 패기라도 했는지, 얼굴에 푸르딩딩한 멍과 핏자국이 가득했다.

'의외로 난폭한 구석이 있잖아···?'

또 하나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일반 병사들과 달리 마법사의 목에는 붉은색 고리 같은 게 걸려 있었다.

펠릭스는 다시 나를 일층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말했다.

“자네도 마법사의 목에 걸려 있는 것을 봤겠지. 마나 구속 고리라네. 마나를 응집시키는 것을 방해해주지.”

“오, 과연. 그런 게 있다면 저 마법사도 별수 없겠군요.”

나는 그것을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두었다.

마법사의 천적 같은 아이템은 나도 조심해야 하니까.

“내가 가진 것은 그다지 고급품은 아니라네. 뛰어난 마법사는 구속 고리의 방해를 이겨내고 마법을 사용하기도 하지. 물론 저 정도 수준의 마법사는 고리를 이겨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네.”

“그렇군요.”

“그래서 말하는 거네만, 저들을 감시해주지 않겠나?”

“제가요?”

뜻밖의 제안이었다. 펠릭스의 꼼꼼한 성격상 그런 건 본인이 하려고 할 줄 알았는데. 하다못해 C급 모험가도 본인이 직접 뽑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 바로 말을 타고 백작님의 성으로 가서 사람을 불러올 생각이라네. 직접 저들을 데리고 가면 좋겠지만, 내 마차는 다른 곳에 나가 있거든. 그렇다고 걸어서.......”

펠릭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자신의 부하는 밤에 말을 타고 갈 정도로 승마 실력이 좋지 않아서, 자신이 직접 가는 게 가장 빠르다고 했다. 그렇게 해도 내일 아침은 돼야 장원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먼 거리라고 한다.

게다가 그의 부하들은 유사시에 저 탈영병들을 상대할 만큼 강하지 않으니, 나에게 부탁하는 거라고 했다.

“혹시 저도 저들에게 손을 대도 됩니까? 만에 하나 마법사가 정신을 집중해 마나 구속 고리를 이겨내고 마법을 쓰면 곤란하니,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오러를 쓰지 않았다지만 어찌 됐든 그 펠릭스의 공격을 어느 정도 버텨낸 마법사다.

한가닥 하는 놈이라는 뜻이다. 캐스팅 속도는 내가 더 빠르겠지만, 마법의 위력 자체는 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역시 치밀하군. 물론이지. 나도 그런 이유로 저들을 폭행한 것이라네. 죽이지만 말게나. 불구로 만들어도 상관없지만, 목숨을 빼앗는 건 체스터 백작님의 권리라네.”

들어보니 저 탈영병들은 다른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본보기로 처형당할 운명이라고 한다. 상처가 많을수록 병사들에게 경각심을 크게 일깨워주니, 오히려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한다.

탈영병들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저들을 감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믿고 맡기도록 하지.”

그 말을 끝으로 펠릭스는 영주성을 향해 떠났다.

나는 지하로 내려가 탈영병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펠릭스가 아닌 내가 들어오자 만만해 보였는지 그들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은근한 어조로 마법사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

“너도 마법사지? 스태틱 쇼크를 쓰던데... 같은 마법사끼리 사정 좀 봐주지 않겠나? 나를 내보내준다면 고향에 도착해서 돈을ㅡ”

ㅡ짜악!

나는 즉시 뺨따귀를 후려갈겼다.

펠릭스가 돌아올 때까지 편안하게 감시하려면, 기선 제압이 중요하다.

“이 새끼가. 뱀 같은 혓바닥으로 날 농락하려 들어? 고향? 내가 만만해 보여?”

“크윽. 그, 그런 게 아니라... 정말로─”

ㅡ짜악!

탈영병이 성공적으로 탈출하면 무엇이 될지는 뻔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봤자 붙잡힐 테니, 여기저기 떠돌며 도적질이나 하겠지. 실제로 산적 중 다수가 탈영병 출신이다.

“고향은 무슨. 케른헴으로 가려고 했었잖아. 버려진 도시라 검문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으니까. 안 그래?”

“그, 그게... 아, 고향은 나중에 가려고 했다.”

─짜악!

“.......”

─짜악!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왜 때리....”

─짜악!

내가 사람을 때리는 것을 즐기는 가학적 성향의 변태라 이러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 녀석의 마나 회복과 계산, 정신 집중 등을 방해하려고 그런 것이다.

어차피 범죄자이기도 했고.

“이 구속 고리만 없으면 감히 내 눈도 마주치지 못할 놈이....”

“뭐...? 또 맞고 싶은 건가.”

“이익...! 고작 기초 마법사 따위가!”

그의 쒸익쒸익대는 거친 숨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

‘아쉽군. 이게 꿈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꿈에 비하면, 현실에서 사람을 화나게 만들기란 굉장히 쉬웠다. 이렇게 몇 대 때리기만 해도 되니까. 아무리 개연성 없는 일이어도 현실은 현실. 꿈처럼 깨질 염려가 전혀 없었다.

‘아니, 잠깐만. 그렇다면...?’

새로운 길이 열려있지 않은가!

반드시 꿈속에서만 나에 대한 살의를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현실에서 나를 죽이고 싶게 만들면, 당연히 꿈속에서도 나를 죽이고 싶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이 옵션을 고려하지 않았던 이유는, 현실에서 위협하면 상대가 정말로 날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탈영병에겐 그럴 능력이 없다.

내일이면 처형당할 운명이니까.

“야.”

“......?”

“너는 무슨 마법을 주력으로 사용하지?”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은─”

─짜악!

“솔직히 말해. 그럼 풀어줄 수도 있어.”

“저, 정말인가?”

“아니.”

─짜악!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냐!”

“잘 들어. 너는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대답을 할 때까지 맞는 거야. 알겠어?”

그 뒤로 계속해서 뺨을 때렸다.

때로는 스태틱 쇼크를 쓰기도 했다.

“그, 그만....”

“틀렸어.”

“사, 살려줘!”

“틀렸어.”

“차라리 날 죽여라!!”

“그것도 틀렸어.”

내가 세 번째 스태틱 쇼크를 썼을 때, 드디어 원하던 답을 말했다.

“이, 이, 내가 만약 풀려나면 반드시 죽여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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