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5화 (15/200)

펠릭스의 의뢰(2)

일주일에 1골드? 그 정도의 거금이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내 평균 수입의 두 배를 상회한다.

내가 현재 소지한 금액은 약 1골드 30실버.

원래 더 있었는데, 얼마 전에 2골드짜리 마법서를 하나 구매했다. ‘쉴드’다. 공격 마법은 당장 급하지 않으니, ‘매직 미사일’은 보류했다.

기초 마법 ‘쉴드’는 모든 공격으로부터 보호를 도와주는 만능 방어마법은 아니다. 물리적인 공격과, 마법적인 공격에 대한 쉴드로 나누어져 있다.

나는 주로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 많으므로, 물리 방어를 도와주는 쉴드만 먼저 배웠다. 반쪽짜리 상태라는 거다. 마법 방어 쉴드 역시 2골드.

이번 의뢰를 마치면, 그 마법서도 살 수 있다.

“잘 생각했네. 고맙군.”

펠릭스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은 언제입니까?”

“몇 명 더 구하는 대로 곧장 출발할 생각이라네. 밖에 내 마차가 대기하고 있지.”

“출발 전에 뭔가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까? 식료품이라든지....”

“의욕만 가지고 오면 충분하다네. 음식과 잠자리는 내 장원에서 해결하면 되니까.”

장원에서 숙식이라. 나쁘지 않군.

돈이 굳는다는 측면도 있지만, 또 다른 흥미로운 점도 있었다. 기사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떠올릴 때마다 골치가 아파오지만, 내가 선택한 메인 퀘스트는 ‘국왕 시해자(King slayer)’다.

언젠가는 왕을 죽여야 한다는 소리다.

당연히 왕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왕을 보호할 테고,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자들은 근위기사일 것이다.

펠릭스는 비록 은퇴했지만 어쨌든 기사였던 자. 그의 장원에서 머물며 그를 지켜보면, 기사라는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명을 더 구하실 생각입니까?”

“글쎄. 자네를 제외하고 C급 두세 명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군.”

미리 정해두진 않았는지, 펠릭스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로 어떤 몬스터를 상대하게 될지 말씀해주시면, 제가 견적을 내 볼 수 있을 것 같군요.”

“흐음. 대부분 오크나 사스콰치 미만의 몬스터일세. 최근 들어 트롤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긴 하네만, 그런 강력한 몬스터를 상대할 땐 나도 함께 갈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네.”

설명을 쭉 들어보니 별 건 없는 것 같았다.

트롤을 제외하면 나 혼자서도 무난하게 처치할 수 있는 수준. 일주일간 발생하는 전리품을 챙길 D급 짐꾼 한 명과, 나를 보조해줄 C급 한 명 정도면 충분할 듯싶었다.

나는 생각한 바를 그에게 전했다.

“그렇군. 그럼 짐꾼은 자네가 원하는 사람으로 찾아보게. 나는 그동안 C급을 찾아보지.”

“알겠습니다.”

펠릭스는 꼼꼼한 성격인지, 중요한 인력은 자기가 직접 확인하고 뽑고 싶어 했다. 도린 형제 중 하나를 추천할까 싶었지만, 그의 안목이 나보다 뛰어날 테니 그만뒀다. 게다가 도린 형제는 지금 길드에 있지도 않았다.

나는 장기 의뢰를 나가는 만큼, 아는 사람을 짐꾼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일주일이나 도시 바깥에 있어야 하니 심심할 테니까.

그렇게 한동안 길드를 돌아다니다 보니 아는 D급 모험가를 발견했다. 산적과 함께 싸웠던 케빈이었다. 그에게 의뢰를 제안하니, 또 마법사와 함께 할 수 있게 됐다고 기뻐하며 수락했다.

그 사이 펠릭스도 C급 모험가를 하나 데려왔고, 우리는 곧장 마차를 타고 체스터 백작령 변방에 있는 펠릭스의 장원으로 이동했다.

─덜그럭덜그럭

엄청난 고급 마차는 아니었지만, 내가 타본 마차 중에서는 승차감이 가장 훌륭했다. 앉아서 한숨 자고 일어나니 어느새 장원에 도착했다.

“와! 이곳이 바로 기사의 장...원.......”

나는 장원을 둘러보며 감탄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기 때문이다.

“왜, 너무 작아서 실망했나?”

“아, 그게....”

40년이나 체스터 백작을 섬겼다고 했으니, 꽤나 방대한 봉토를 받았을 줄 알았다. 근데 이건 농노 스무 가구 정도밖에 안 되는 규모로 보였다. 체스터 백작은 좀생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펠릭스 면전에 대고 너무 작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저 당황하고만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다 안다는 듯, 펠릭스가 지긋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백작님께서 더 큰 장원을 주시려고 했었지. 하지만 은퇴한 기사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큰 장원을 필요로 하겠는가. 나의 명예를 지킬 수 있을 정도만 있어도 충분하다네.”

“오....”

나는 나지막하게 감탄을 내뱉었다.

적당히 자신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만 받고, 나머지는 거절했다는 소리였다. 검소한 사람이군.

“자, 얼른 들어가서 식사나 하지. 오늘은 날이 어두워졌으니, 일은 내일부터 시작하게나.”

귀족의 호화로운 식탁? 그런 건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빵과 수프, 그리고 약간의 고기를 곁들인 식사를 마친 우리는, 방을 안내받고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의뢰를 시작했다.

***

의뢰는 별다른 문제 없이 무난하게 진행됐다.

아침 일찍 나가서 주변을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가난한 마을이 있으면 도와주고, 어두워질 즈음에 펠릭스의 장원으로 돌아가서 쉬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위협적인 몬스터는 거의 없었고, 가끔 강력한 녀석이 출몰하면 펠릭스가 동행해줬으므로 크게 어렵지 않았다.

거의 뭐, 요양하러 온 느낌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허접한 몬스터를 처치하고 장원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펠릭스님 말입니다.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하시지 않습니까?”

문득 D급 모험가 케빈이 물었다.

“대단하긴 하지. 그 만티코어를 혼자서 처치했으니.”

펠릭스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며칠 전에 만티코어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펠릭스와 함께 토벌하러 나선 적이 있었다.

만티코어는 사자의 몸통에 인간 비스무리한 얼굴을 한 괴물인데, 강하기도 강하지만 몹시 날렵하다. 근접해서 싸우기엔 위험하다는 판단에, 내가 거리를 벌려서 파이어 애로우를 쐈는데 모조리 피해버릴 정도였다.

그런데 펠릭스는 그놈 못지않은 몸놀림을 선보이면서, 시퍼런 오러가 맺힌 검으로 혼자서 녀석을 처치해버렸다.

“강하시기도 하지만, 은퇴 후에도 여전히 영지민을 위해 일하신다는 게 너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따로 몬스터를 토벌하러 나가셨잖아요?”

“그러게 말이다. 나는 우리를 고용한 이유가 자기는 좀 쉬려고 그러는 건 줄 알았는데.”

펠릭스는 명예와 의무를 대단히 중요시하는, 기사의 귀감이라 부를 만한 자였다.

은퇴했으면 딱히 체스터 백작을 위해 영지민을 지켜줄 필요도 없는데, 여전히 마음속으로 백작을 섬기는 듯 보였다.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매일 자신의 휘하에 있는 병사 두 명을 대동해 몬스터를 찾아 나서고 있다. 심지어 우리를 고용했는데도 말이다!

“모든 기사는 다 펠릭스님 같을까요?”

“글쎄....”

그건 나도 궁금했다.

의무와 명예를 중시하는 그런 거 말고, 펠릭스처럼 강할지가 궁금했다.

모든 기사가 그 정도 수준이라면....

국왕을 죽이려 달려드는 것은, 고철 분쇄기에 맨몸으로 뛰어드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아니, 근위기사는 펠릭스보다 더 강하겠지.

‘시팔. 왜 그런 퀘스트를 선택해가지고....’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지만, 뭐 어쩌겠는가. 후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그냥 나 스스로 그들 이상으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나는 잠재력이 있으니까.’

아론의 마탑 꿈에서 보고 알게 된 사실인데, 단일 속성 ‘펜투플’은 미친 듯이 희귀하다. 아론의 스승이자, 마탑의 원로인 고위 마법사조차 나보다 한 단계 낮은 ‘쿼드러플’이었으니까.

보통 ‘트리플’이면 대성할 가능성이 있는 마법사라고 보는데, 나는 그것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물론 속성을 타고났다고 해서 강함이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릇’은 보장된다. 누구보다 많이 담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릇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론상으로는 다른 속성이 펜투플인 마법사의 고유마법까지도 훔칠 수 있으니, 잠재력만큼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는 세상의 모든 마법을 다 훔쳐 주마.’

“흐흐흐....”

“엑? 왜 갑자기 그렇게 음흉하게 웃으십니까?”

아, 속으로 웃는다는 게 그만.

“어어...? 그냥... 이번 의뢰가 마음에 들어서. 돈은 많이 받고, 일은 쉽고. 거의 날로 먹는 의뢰잖아? 하하....”

“저도 동의합니다! 지난번 산적의 전리품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엘님이랑 함께하면 좋은 일만 생기는군요!”

케빈이 그리 말하면서 자신이 입고 있는 갬비슨을 어루만졌다.

“그때 받은 돈으로 이 갑옷을 샀습니다.”

“오, 잘했네. 돈은 그렇게 써야지.”

천으로 누빈 갑옷이라 방어력이 좀 부족해 보였으나, 다른 하급 모험가처럼 술이나 도박에 돈을 탕진하는 것보다는 백배 잘한 일이다.

“이번 의뢰를 마치고 돈을 받으면 부츠도 바꿀 생각....... 어, 펠릭스님!”

신나서 자신의 계획을 말하던 케빈이 펠릭스를 발견했다. 그도 병사들과 몬스터 토벌을 마치고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자네들도 이제 장원으로 돌아가는 길인가?”

“그렇습니다.”

“수고했군. 같이 가지.”

자연스럽게 펠릭스와 두 명의 병사도 합류했다. 그가 내 옆에서 걸으며 물었다.

“오늘의 성과는 어땠나?”

“뭐, 대체로 코볼트 같은 잔챙이들이었죠. 아, 숲에 숨어 살던 오크 세 마리도 처치했습니다.”

“잘했군. 지난번 대대적인 오크 토벌이 워낙 지리멸렬하게 끝나는 바람에 잔당들이 좀 남아있으니, 꼼꼼하게 수색해야 하네.”

모험가와 용병들을 고용해 토벌했다고 했었던가. 그래서인지 돌아다니다 보면 숨어있는 오크를 발견할 때가 간혹 있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 오크는 번식력 때문에 영주들이 매우 경계하는 몬스터로 알고 있는데, 차라리 백작님께 병력을 요청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틀에 한 번꼴로 오크가 보이던데요.”

“......사정이 좀 있다네. 그래서 지난 토벌 때에도 백작님께서 모험가를 고용한 것이었고. 그리고 이 정도의 소규모 오크는 그렇게 금방 불어나지 않는다네.”

펠릭스가 수심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외부인인 내가 자세한 내막을 묻기는 좀 뭐해서 대충 화제를 돌렸다.

“흠흠. 그나저나 트롤은 발견하셨습니까?”

“오늘도 찾지 못했다네. 별다른 흔적도 없는 걸 보면 뜬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군. 정말로 트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진작 피해를 보았다는 마을이 나왔을 텐데 말이야.”

원래 소문이라는 게 좀 그렇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건너갈 때마다 조금씩 왜곡되고 부풀려진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거치다보면, 나중에는 웬 뜬금없는 개소리로 탈바꿈한다.

“그럼 트롤 수색은 이제 그만두실 겁니까?”

“내일까지만 더 해볼 생각이라네. 혹시 정말 트롤이 존재해서, 피해를 보는 영지민이 발생하면 안 되니.”

‘진짜 기사의 귀감이긴 하단 말이지....’

그렇게 펠릭스와 대화를 하며 걸어가던 중이었다.

길옆에 있는 숲에서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

몬스터인가 싶어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곧 풀숲을 헤치고 다섯 명의 사람이 걸어 나왔다.

복장 상태를 보아하니 영주의 병사 같았다.

마법사 한 명과, 네 명의 보병.

그들은 길 위에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릴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그러더니 마법사가 우릴 향해 질문을 던졌다.

“혹시 케른헴에 가려면 어느 쪽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아십니까?”

“.......”

왜인지 펠릭스는 입을 다문 채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기에, 내가 대신해서 대답했다.

“아,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내게 질문을 던졌던 마법사가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동료들과 함께 걸어가기 시작했다.

“멈춰라.”

불현듯 펠릭스가 그들을 불러세웠다.

“......? 무슨 일이십니까?”

“너희 소속 부대 지휘관의 이름을 말하라.”

펠릭스가 그리 묻는 순간, 마법사를 비롯한 병사들의 표정에 경계심이 돌기 시작했다.

“...그걸 왜 물으시는 겁니까?”

“말하라.”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답해드릴 의무는 없습니다.”

“말하라.”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는지, 마법사가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기사 로렌스 경입니다.”

“엘. 너의 동료들을 보호해라.”

펠릭스가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탈영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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