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의 의뢰(1)
케른헴으로 복귀하는 길.
아론은 더 이상 나와 다른 모험가들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이젠 화도 안 내네.’
나에 대한 적개심조차 사라진 듯 보였기에, 이제 아론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조금 측은한 감정도 들었지만, 그는 파이어 애로우 말고 다른 마법도 쓸 줄 아니 굶어죽진 않을 것이다.
“크흐흐. 라이칸스로프의 머리뿐만 아니라 온전한 다이어울프의 가죽까지 챙겼으니 제법 쏠쏠하겠군.”
테도린이 어깨에 메고 있는 가죽들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테도린이 고개를 돌려 뒤따라오고 있는 아론을 흘끔 쳐다봤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저 미친 마법사가 갑자기 불 마법을 쓰지 못하게 되다니. 누가 저 마법사의 마법을 훔쳐가기라도 한 건가?”
나는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몹시 당황했다. 테도린이 의외로 진실을 관통하는 추측을 내놓은 것이다.
“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크흐흐.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다. 마법을 훔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그런 헛소리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다.”
나는 괜히 찔려서 테도린을 다그쳤다.
“근데 너는 아까 어디를 갔다 온 것인가? 중간에 잠시 사라지던데.”
“아아. 잠깐 볼일이 급해서....”
진짜로 생리현상 때문에 자리를 비운 건 아니었다. 그저 아론에게서 훔친 마법을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기에, 잠시 행렬에서 빠져나와 테스트해봤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파이어 애로우도 굉장히 빠르게 캐스팅할 수 있었다.
다만, 전격 마법인 스태틱 쇼크처럼 속성의 보정을 받지는 못한 탓인지, 위력은 아론이 사용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사용횟수도 비교적 적고.
그래도 이 정도면 뭐 괜찮았다. 마법의 횟수나 위력은, 숙련도가 올라가거나 내가 성장함에 따라 자연스레 증가할 테니. 힘이나 민첩성처럼, 마력에 관한 능력치도 존재하겠지.
“그렇군. 헌데... 우리의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억울한 마법사.”
“약속? 무슨 약속?”
내가 되묻자, 테도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이번 의뢰를 도와주면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잖나!”
아, 맞다. 그랬었지.
정확히는 '빌려준다'고 한 게 아니라, '빌려줄 수도 있다'고 한 거지만.
“아, 당연히 진짜지. 빌려줄게. 5실버면 되나?”
나는 흔쾌히 빌려주겠다고 말했다.
이번 일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 나름대로 테도린의 역할도 있었다. 그리고 이 녀석이 일전의 고블린 토벌에 나를 끼워준 덕분에, 마법서를 빨리 구매할 수 있었기도 하고. 가만 보면 은근히 도움이 되는 녀석이다.
부지런히 걷다 보니 어느새 케른헴에 도착했다.
다이어울프와 라이칸스로프의 가죽을 처분하고, 모험가 길드에서 의뢰 대금을 수령하니 총 24실버가 나왔다.
내가 15실버를 갖고, 나머지 모험가들이 각각 3실버씩 갖기로 했다.
원래대로라면 B급인 아론이 15실버를 받아야 했지만, 그는 사실상 이번 의뢰에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내가 거의 모든 몬스터를 처치하는 등, B급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아론은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3실버를 챙겨서 길드를 떠났다.
“크흐흐. 억울한 마법사, 네 덕분에 제법 괜찮은 의뢰를 했군.”
어쨌거나 테도린은 만족한 듯했다. 의뢰로 인한 수입이 3실버면 B급에게는 적은 금액이지만, C급에게는 큰 금액이니까.
“그러게. 진짜 괜찮은 의뢰였어.”
물론 나도 만족했다.
***
시간은 흘러 흘러 한 달이 지났다.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내가 모험가 길드의 접수대로 다가가니, 그 앞에 서 있던 여성 마법사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예? 저도 보수를 수령해야 하는데.”
“제, 제가 먼저 받을 테니, 당신은 나중에... 꺄악! 다, 다가오지 마!! 누가 저 사람 좀 막아주세요!”
그녀가 거의 발작하듯 외치자, 같이 있던 모험가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멈춰라! 네 녀석... 대체 무슨 파렴치한 짓을 했길래 에렌 양이 저러는 거지?”
“아무 짓도 안 했는데요.”
“거짓말 마라! 에렌 양이 너를 저렇게나 무서워하고 있지 않나!”
나를 막아선 모험가 하나가, 접수대 앞에서 덜덜 떨고 있는 여성을 가리켰다. 나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후... 아니, 그쪽들도 같이 있었으니 알 거 아닙니까. 제가 의뢰 수행 중 저 여성 마법사분께 뭐 이상한 짓이라도 하던가요?”
이상한 짓? 사실 하긴 했다.
나와 원한 관계에 있는 마법사는 아니니, 훔칠 생각이 아니라 습득할 생각으로 그녀의 꿈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나를 공격하도록 유도했는데, 실패했다.
아론 때처럼 역린이 드러나는 꿈은 아니었기에, 그냥 삼류 양아치 같은 허접한 멘트나 좀 날리다가, 그래도 나를 공격하지 않길래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었다.
최후의 수단이라 함은 내가 그녀를 공격하는 걸 말한다. 엄밀히 말하면 공격한 건 아니고, 공격하는 시늉만 했는데, 꿈이 깨져버렸다.
“그건 에렌 양한테 물어보면 알겠지. 에렌 양! 이자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그, 그게....”
“혹시 말 못할 음흉한 짓이라도 했습니까?”
“아, 아니요....”
“신체적 위해나 협박 같은 건?”
“그것도 아니긴 한데....”
“그럼 이자를 왜 두려워하시는 겁니까?”
그녀는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꾸, 꿈을... 저 사람이 저를 공격하는... 꿈을 꾼 것 같아요....”
“뭐라고요? 꿈? 그게 다입니까? 저희가 안 보는 곳에서 실제로 뭔가를 하거나 그러진 않았습니까?”
“네? 네... 실제로는 아무것도....”
나를 막아섰던 모험가들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 이게 무슨···. 오해해서 미안하군. 내가 사과하지.”
“아, 예. 뭐 괜찮습니다.”
나는 보수를, 여자마법사가 떠난 뒤에 수령하겠다고 말한 뒤 테이블에 가서 앉았다.
‘후... 이거 영 찝찝하네.’
솔직히 선량한 사람의 꿈에 들어가서 무턱대고 시비를 건다는 것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저렇게 마음이 유약한 상대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아론처럼 나쁜 놈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성공하기도 어렵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아론 때에는 운이 정말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취약점이 드러나는 꿈, 열등감이 심한 성격, 그리고 화가 잔뜩 나 있던 상태까지.
여러 요인이 우연찮게 들어맞아 성공한 거였다.
그 후로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저 여성 모험가를 포함해 세 명의 마법사의 꿈에 들어갔었다. 그리고 모조리 실패했다.
‘뭔가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꿈속에서 막무가내로 시비를 걸거나 공격해봤자, 좀처럼 나를 향한 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괜히 현실까지 이어지는 반감만 살뿐이다.
계속 이 방법만 고집하며 모험가들의 꿈속으로 들어갔다가는, 모험가 길드에서 나를 경계하는 마법사만 늘어나게 될 것이다. 괴소문도 돌 테고.
‘흠.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당장 떠오르는 뾰족한 수는 없었다.
어차피 다시 일주일간은 꿈속에 들어갈 수 없으니, 그동안 생각을 좀 해봐야겠다.
“엘 씨! 보수 받아 가세요!”
접수대에 있는 여직원이 나를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아까 그 기겁하던 마법사는 떠난 모양이다.
접수대로 다가가니 여직원이 은화를 내밀었다.
“자, 여기 10실버에요.”
“감사합니다.”
이틀 일하고 10실버다.
그렇다. 나는 B급으로 승급한 것이다.
지난 한 달간 실패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착실히 의뢰를 수행하다 보니, 스태틱 쇼크의 사용횟수가 1회 늘어났다.
스태틱 쇼크 7회, 파이어 애로우 3회.
도합 10회를 달성해 B급으로 승급했다.
솔직히 나는 각성 퀘스트를 완료한 뒤에 반영된 능력치로 인해, 검으로도 충분히 B급을 쌈싸먹는 수준이다.
마법으로도 B급, 검으로도 B급.
하이브리드 B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말 이상한 여자네요. 그쵸? 고작 꿈 가지고 엘 씨를 그렇게나 미워하다니.”
은화를 건넨 여직원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어쨌든 내가 원인을 제공한 건 맞으니까.
“그럴 수는 없어요. 엘 씨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인데. 그리고 최근 들어 엄청 빠르게 성장하고 있잖아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엘 씨가 마법사였다니!”
“아하하. 아직 멀었죠. 이제 시작한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그녀의 칭찬에 머쓱해졌다.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마법사는 나보다 강할 테니까.
“그래도 그렇게 성실하게 노력하시니, 분명히 뛰어난 마법사가 되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생글생글 웃던 그녀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참! 괜찮은 의뢰가 하나 들어왔는데, 혹시 생각 있으세요?”
“어떤 의뢰입니까?”
“조금 특이해요. 옆 영지에서 돌아다니며 몬스터들을 토벌하는 일인데.......”
“별로 특이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게 뭐가 특이하다는 거지?
케른헴의 모험가들은 다른 곳에 있는 모험가들에 비해 인건비가 싸다. 그래서 가까운 영지의 변방에 있는 가난한 마을에서 종종 의뢰를 해오기도 한다.
“저희 길드에서 몇 명 추천을 해주면, 이따가 의뢰인이 직접 만나보고 누구에게 맡길지 결정할 거예요. 소요 기간은 일주일 정도? 대신 보수는 높아요. 엘 씨만 괜찮으시다면, 제가 의뢰인에게 추천해드릴게요.”
의뢰인이 직접 모험가를 고른다고?
이건 확실히 특이하다고 할만하군.
뭐, 특이하든 말든 돈만 잘 받으면 상관없다. 어차피 능력의 쿨타임 때문에, 일주일 정도는 돈을 버는데 주력할 생각이었으니까.
“그 의뢰인이 누굽니까?”
“은퇴한 기사인데... 아! 마침 저기 오시네요.”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절그럭 절그럭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걸어들어오는 남자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고블린의 은신처에서 만났던, 은퇴한 노기사 펠릭스다.
펠릭스 역시 나를 알아봤다.
“오, 자네도 있었군.”
“오랜만에 뵙는군요. 펠릭스님.”
“어머, 두 분 서로 아는 사이셨어요?”
내가 펠릭스와 인사를 나누자, 여직원이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다마다. 나한테 케른헴의 모험가 길드를 추천한 게 이 친구라네. 책임감이 무척 강한 친구라, 믿어볼 만 하다고 생각했지.”
“와아. 정말요? 신기하다.”
그땐 빨리 마법서를 사러 가고 싶어서 대충 아무 말이나 둘러댔던 건데, 진짜 의뢰를 넣을 줄은 몰랐다. 심지어 본인이 직접 찾아오다니.
“마침 잘 만났군. 자네는 등급이 어떻게 되나? 혹시 내 의뢰를 받아볼 생각이 있나? 의뢰의 내용은 지난번에 말했던 것과 동일하네.”
“아, 저는─”
“엘 씨는 B급 마법사에요! 케른헴에서 제일 성실한 모험가이기도 하구요!”
왜인지 여직원은 자기가 신이 나서 설명했다.
“......마법사라고? 그렇게 보이진 않았는데. 지금도 검을 차고 있지 않은가.”
“아, 예전엔 검을 주로 썼었습니다. 지금도 종종 쓰고요.”
“호오. 특이하군.”
펠릭스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물었다.
“그래, 대답은? 내 의뢰를 수락해주겠나?”
“아, 저는─”
“일주일에 1골드를 주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