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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13화 (13/200)

1박 2일(4)

“......뭐...라고?”

“역시, 그런 병신은 없겠죠? 마탑의 고위 마법사한테 가르침을 받았을 텐데, 낙제라니. 아하하. 생각만 해도 벌써 웃기네.”

아론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 그걸 나한테 묻는 이유가 뭐지?”

그의 표정은 사뭇 우스꽝스러웠다. 눈썹이 역으로 휘려고 했으나, 그것을 조절하려 했는지 요상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한테 화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아니, 뭐 그냥. 아론님은 뛰어난 마법사이시니, 그런 것들도 알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모른다.”

“아, 모르시는구나. 아론님이 모르는 것도 있네.”

제법 잘 참네?

대놓고 ‘너는 마탑에서 낙제한 병신이야!’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아론의 입장에서,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내가 다 봤다고 밝히면 꿈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근데, 그거 말입니다.”

나는 아론이 들고 있는 지팡이를 가리켰다.

“뭔가 특별한 능력이 붙어있는 아이템 입니까?”

“마법의 캐스팅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켜준다. 대부분의 지팡이가 그렇지.”

“아하. 그렇다면......”

나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허접들이나 쓰는 거겠군요.”

“뭐?”

“아니, 그렇잖아요? 아, 아론님이 허접이란 소리는 아니니 오해는 마시고. 지팡이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캐스팅이 느려터졌다면, 허접이 아닐까요? 아,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론님 얘기는 아니고요. 지팡이를 든 다른 마법사들이요. 예. 다른 마법사.”

누가 봐도 아론 얘기였다.

“이익...! 지팡이를 사용한다고 해서 꼭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조금이라도 캐스팅 속도를 줄여줄 수 있다면, 당연히 사용해야지!”

아론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상하네. 그게 실력이 부족하다는 뜻 아닌가? 아, 아론님 실력이 부족하단 소리는 아니고요. 근데 저는 필요 없던데. 보셨죠? 제 캐스팅 속도. 즉석에서 리자드맨한테 파지직! 꾸에엑!”

“...모든 마법사가 너처럼 빠르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그게 허접한 마법사잖습니까? 단일 속성이 싱글이거나, 끽해야 더블이라 캐스팅이 느린 허접 마법사.”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인가?”

그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싸늘한 목소리였지만, 나는 그가 극도로 분노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쿵! 쿵! 쿵!

꿈의 세계에 아론의 거센 심장박동 소리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예? 아론님 얘기가 아니라고 말씀드렸는데? 다른 마법사들이요. 솔직히 그런 마법사는 그냥 칼 들고 칼질이나 하는 게 나을 텐데. 뭐하러 마법을 쓰나 몰라.”

“그만... 더 이상... 나를... 모욕하지... 말아라....”

“아니라니까 왜 자꾸 화를 내시지? 설마 아론님 속성이 더블이라 나한테 ‘열등감’을 느끼는 건가...? 풉! 농담입니다.”

‘낙제’, ‘더블’, ‘열등감’

세 개의 키워드가 모두 등장하자 아론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그가 지팡이를 치켜들고 주문을 영창 하기 시작했다.

‘......진짜 형편없는 캐스팅 속도군.’

솔직히 반격하려 마음먹었으면 스태틱 쇼크로 두어 번 지지고, 검으로 목을 썰어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시간이 걸렸다.

왜 마법사는 기사한테 거리를 내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화르륵!

아론의 머리 위에 파이어 애로우가 생성됐다.

“죽어라.”

한마디 말과 함께 마법이 나에게 날아들었다.

불의 화살이 내 가슴을 꿰뚫는 순간,

시야가 암전했다.

[꿈속에서 마법 ‘파이어 애로우’에 맞아 사망하여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습득하시겠습니까? 훔치시겠습니까?]

‘오, 드디어...!’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는 ‘파이어 애로우’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훔치는 걸 선택할 경우 아론은 더 이상 ‘파이어 애로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뭘 선택할까....’

밉상이지만 아론은 나에게 마법을 선물한 존재.

게다가 모험가다.

아론이 마법을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케른헴 주변의 몬스터를 처치해서 도시의 안전에 보탬이 될 것이므로 ‘습득’을 선택하는 게 좋을 것이─

─기는 개뿔.

‘당연히 훔쳐야지!’

아론이 몬스터를 잡는다고 설쳐댈수록 총알받이로 쓰이는 하급모험가들이 많이 다칠 것이다.

게다가 기본부터가 글러 먹은 녀석이니, 처음부터 마법을 다시 공부하라는 나의 깊은 뜻도 반영했다.

[마법 ‘파이어 애로우’를 훔쳤습니다!]

[금일 사용 가능한 ‘파이어 애로우’ - 3회]

[동일한 대상에게서는 더 이상 마법을 습득하거나 훔칠 수 없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끝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아아, 좋은 꿈이었다.”

만족스럽게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대머리 모험가는 불침번을 서고 있었고, 테도린과 아론은 아직 자고 있었다.

“잘됐군.”

꿈을 꾸는 도중에 깨어나면, 높은 확률로 그 꿈을 기억한다.

하지만 꿈은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

꿈을 꾸고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잊혀 진다. 게다가 무언가 꿈을 꿨어도, 또 다른 꿈을 꾸면 이전의 꿈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렇게 아론이 계속 자고 있을수록, 나와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물론 충격적인 내용의 꿈이었으니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뭐 내가 어찌할 방법이 없다.

그냥 계속 자도록 내버려두는 수밖에.

“좋은 꿈꾸시길.”

***

따사로운 햇살이 만연한 정오.

우리는 잠시 수색을 멈추고 식사를 하고 있다.

‘이 새끼. 설마 기억하고 있나...?’

기계적으로 턱을 움직여 육포를 씹고 있는 아론이, 나를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늘 내내 저랬다. 잠에서 깬 뒤부터 노골적으로 나를 경계하고 있다.

나는 그를 떠보기 위해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아론님. 식사를 마친 뒤에 어디를 수색해보는 게 좋겠습니까?”

“......아무 데나 상관없다.”

그가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대답했다.

“그럼 다른 산으로 가보도록 하죠. 이 산은 거의 다 뒤져봤으니.”

“아니. 이 산을 계속 수색하도록 하지.”

“예? 방금 아무데나 상관없다고 하셨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여기는 마땅히 더 수색해볼 곳도 없잖습니까?”

“나는 분명 이곳을 더 수색하고 싶다고 말했다. 설마 나를 무시하는 건가?”

‘미친놈.’

역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지만, 순순히 따라주기로 했다. 나는 이제 라이칸스로프따위는 아무래도 좋았기 때문이다.

애당초 이 의뢰를 나온 진짜 목적이었던 마법 훔치기는 이미 달성했다. 의뢰의 완료까지 하루가 더 걸리든, 이틀이 더 걸리든 별로 상관없는 일이다.

“아, 예. 그럼 뭐, 여기서 계속 찾아보죠.”

식사를 마친 뒤 수색을 이어나갔다.

당연히 이곳에서는 라이칸스로프가 발견되지 않았고, 결국엔 내가 말했던 대로 다른 산으로 이동했다.

다른 산을 수색하는 동안에도, 아론은 계속 신경질적으로 굴었다.

걸음이 너무 빠르다거나, 너무 느리다거나, 제대로 주위를 살피지 않는 다거나 하는 등의 온갖 억지를 부리며 트집을 잡아댔다.

보다 못한 테도린이 슬쩍 다가와 물었다.

“어이, 억울한 마법사. 저 미친 마법사가 너한테 왜 저러는 것이지?”

나는 꿈속에 들어갈 수 있는 내 능력을 웬만하면 감추고 싶었기에, 그냥 적당히 둘러댔다.

“나도 몰라. 그냥 저놈이 미친놈이라 그래.”

“그래도 어제에 비해 유독 심해졌군. 네가 뭔가 잘못이라도 한 것이 아닌가?”

“잘못? 잘못이란 잘못은 저놈이 다했지. 하급 모험가 무시에, 자기 짐은 대머리한테 떠넘기고, 불침번은 빠지고. 안 그래?”

“그렇긴 하지. 크흐흐.”

그렇게 테도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 아론이 나를 불렀다. 그는 지금껏 보여 왔던 신경질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엘. 뭐하는 거지?”

“......?”

“왜 너희끼리 몰래 대화하고 있었지? 설마 나를 무시하는 건가?”

“그게 무슨...?”

“네가 나를 무시하는 것인가! 또 나를!”

어쩌면 내가 사람 하나를 망가트린 게 아닐까?

아론의 피해망상이 놀라울 정도로 심해졌다.

하다 하다 이젠 내가 테도린과 대화하는 것마저 자신을 무시하는 거라고 느낀다니!

아, 물론 실제로 대화 내용이 아론을 욕하는 거긴 했지만 아무튼.

꿈에서 있었던 일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봤다.

‘......아니 잠깐. 근데 좀 억울하네?’

간만에 나의 억울함이 발동하려 했다.

내가 꿈에서 아론을 좀 무시하기는 했지만, 아론은 나를 죽이지 않았던가. 서로 잘못의 크기를 놓고 따져보자면, 명백히 아론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근데도 계속 나한테 이렇게 시비를 걸어대? 나랑 싸우면 이길 수는 있고? 뭘 믿고 까부는 거지?

나는 억울한 마법사가 되어 아론에게 따졌다.

“아니, 아론님.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이러시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라고?”

“어제 리자드맨도 제가 혼자서 처치했고, 라이칸스로프도 제가 가자고 했던 방향에서 나왔는데. 저한테 뭐가 그렇게 불만이십니까?”

“그, 그건... 네, 네가 꿈에서 나를....”

아론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다 큰 성인 남성이 ‘어젯밤 내 꿈속에서 네가 나를 괴롭혔어!’라고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그도 그걸 느끼고 말문이 막힌 것이다.

“꿈에서 뭐요. 지금 설마 고작 꿈 때문에 이랬다고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하, 미치겠네.”

“억울한 마법사의 말이 맞소. 조금 너무하다고 생각되는군.”

“제,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

이때다 싶었는지 테도린과 대머리 모험가도 나서서 내 편을 들었다.

잘 생각해보니 더 이상 내가 아론한테 저자세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이놈이 꿈에서 있었던 일로 나한테 원한을 가졌다 한들,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마법은 이미 훔쳤고, 나도 조만간 B급이 될 거고, 싸워도 내가 이긴다. 아론이 나한테 물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가할 수 있는 위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앞으로는 좀 자중해주셨으면 좋겠군요.”

“...그...러지.”

당연히 합당한 이유 따위는 없었으므로, 아론이 마지못해 수긍했다.

그 뒤로는 편안한 수색이 진행됐다.

마음이 편안하니 능률도 올랐기 때문일까.

우리는 해가 지기 전에 라이칸스로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우우!

하울링 하고 있는 네 마리의 다이어울프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라이칸스로프가 섬뜩한 안광을 내뿜으며 우릴 노려본다.

눈빛만 섬뜩하지 솔직히 별거 아니다.

리자드맨보다도 약하니까.

나는 아론에게 보란 듯이, 스태틱 쇼크를 연달아 캐스팅해 라이칸스로프에게 날렸다.

─파지직!

─파지직!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4회]

“크으! 미친 속도! 역시 억울한 마법사군!”

순식간에 라이칸스로프가 땅바닥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자, 테도린이 감탄을 내질렀다.

반면에 아론은 똥을 씹은 듯한 표정이 되었다.

열등감에 젖은 그 표정은 썩 볼만한 것이어서, 나는 내친김에 다이어울프 네 마리에게도 마법을 사용했다.

[금일 사용 가능한 ‘스태틱 쇼크’ - 0회]

“자, 전부 마비됐으니까 가서 편하게들 마무리 지으라고.”

내가 그리 말하니, 테도린과 대머리 모험가가 칼을 뽑아들고 다가가서 다이어울프의 숨통을 끊었다.

그리고 테도린이 라이칸스로프의 목을 잘라내려 할 때였다.

“기다려라!”

“왜 그러시오?”

“그건 내가 마무리하겠다.”

아론은 자기도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급하게 테도린을 제지했다.

“당신이 마법을 쓰면 라이칸스로프가 불에 타버리잖소?”

“몸통에 쓰겠다! 대가리만 멀쩡하게 가져가면 되지 않나!”

“그건 그렇소만....”

테도린이 뒷말을 흐리며 나를 쳐다봤다.

몸통이 불에 타버려도 괜찮겠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쩝. 알겠소.”

테도린이 입맛을 다시며 라이칸스로프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더 멀리 비켜서라!”

아론이 그리 말하며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치켜들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는지, 몹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어... 어...?”

나는 당황하고 있는 아론에게 다가갔다.

“뭐하십니까?”

“마, 마법이... 마법이... 왜... 안 나가지...?”

“예? 무슨 마법이요?”

“파, 파이어 애로우 말이다! 내 주력 마법...인데... 왜... 대체...? 무슨 일이...?”

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끔뻑이며 횡설수설했다.

‘훔치면 이렇게 되는 거였군.’

“테도린! 아무래도 아론님께서 고장 나신 것 같으니, 그냥 네가 칼로 마무리 지어.”

“크흐흐. 그러도록 하지.”

─푸욱

테도린이 웃음을 흘리며 보란 듯이 라이칸스로프의 목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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