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2)
테도린이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물었다.
“네, 네가 어떻게 마법을 쓴 것이지?”
“마법사니까.”
엘이 검에 묻은 리자드맨의 피를 휙휙 털어내며 말했다.
“그럴 리가! 네가 어떻게 마법사란 말인가!”
“무슨 헛소리야? 너도 맨날 나보고 마법사라고 불러놓고서는.”
“그, 그거야 그렇지만... 그럼 그동안 왜 마법을 쓰지 않았나!”
“그동안은 못 썼으니까. 배운 지 닷새 됐다.”
엘과 테도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아론은 테도린 이상으로 경악했다.
‘......뭐? 배운지 닷새밖에 안 됐다고?’
그럴 리가 없다.
닷새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마법을 저리 빠르게 캐스팅한다는 말인가? 기초 마법을 영창 없이 캐스팅하려면 적어도 중위 마법사는 되어야 한다.
게다가 저 위력은 또 뭐고?
방금 전 엘이 사용한 마법은 분명 ‘스태틱 쇼크’였다. 기초 마법 중에서도 약하기로 유명한 마법인데, 단 한 방 만에 거대한 리자드맨을 마비시키다니.
‘실력을 감추고 있었나?’
아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닐 것이다. 분명 엘은 일주일 전 리자드맨과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었다. 자신이 분명히 목격했다. 그때에도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미련하게 얻어맞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로 귀결된다.
트리플 이상의 타고난 속성.
“너는 전격 속성 트리플인가?”
“...마법사의 상세한 속성을 묻는 건 금기사항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엘이 살짝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이거 실례했군. 사과하지.”
마법사의 속성은 스스로 밝히지 않는 이상, 묻는 것은 터부시되고 있다. 약점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건방진 새끼....’
엘이 대답해주지는 않았지만, 아론은 확신했다. 저 녀석은 분명 전격 트리플이다.
“마법은 어디서 배웠나? 케른헴에는 딱히 마법을 배울 만한 곳이 없는데. 아, 이것도 실례되는 질문은 아니겠지? 하하.”
아론은 속내를 감추고 애써 웃으며 말했다.
상대는 단일 속성 트리플.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질은 갖춘 자다. 언젠가는 자신보다 강해질 터. 괜히 적으로 만드는 것보다는 가깝게 지내는 편이 좋을 것이다.
“마법서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 그래? 도, 독학이라니, 힘들었겠군.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다지 선호되는 방법은 아닌데 말이야.”
빌어먹을. 아론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그는 저런 부류의 인간들을 종종 마탑에서 봐왔다. 트리플 이상의 속성과 재능을 타고나, 별도의 가르침 없이 마법서만 읽고도 마법을 깨우치는 자들.
그들을 향한 동경심은 이내 열등감으로 변했고, 결국엔 증오로 변질됐다. 그것이 아론이 쫓겨나듯 마탑을 떠난 이유였다.
“...혹시 마법에 대한 조언이 필요하다면 내게 말해라. 얼마든지 도와주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그 감정이, 아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마법사는 쉽게 동요해서는 안 된다. 감정에 동요가 생기면 마나 회복 속도가 더뎌지니까.”
“아, 네... 그렇군요.”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러지?’
아까부터 자꾸 아론이 들러붙어서 살갑게 굴고 있다. 요청하지도 않은 마법에 관한 조언을 해주면서.
“고위 마법사를 만나본 적이 있나? 그들은 눈앞에서 동료가 죽어도 절대 흥분하는 법이 없지. 냉철하게 판단해서 상황을 타개하려 들.......”
아론이 혼자서 주저리주저리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거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렸다.
처음엔 경청했었으나, 별로 영양가 있는 얘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는 원론적인 얘기를, 왜 자꾸 대단한 정보인 마냥 늘어놓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첫 마법으로 스태틱 쇼크를 선택한 걸 보면... 역시 주력 속성이 전격은 맞나보지?”
아론이 스리슬쩍 다시 속성에 관한 말을 꺼냈다.
뭐, 주력 속성을 묻는 것 정도는 실례되는 질문은 아니다. 더블인지, 트리플인지, 쿼드러플인지 그런 상세한 내용을 묻는 건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아론님은 파이어 애로우를 자주 사용하시던데, 혹시 불 속성이 주력이십니까?”
나 역시 은근슬쩍 아론을 떠봤다.
내가 이 녀석의 꿈속에서 맞게 될 마법은, 아마도 주력 속성의 마법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 불이 내 주력이다.”
“오호. 그렇군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기왕이면 3골드짜리 매직 미사일보다, 4골드 50실버짜리 파이어 애로우를 맞는 게 더 좋을 테니까.
‘......근데 꿈속에서 어떻게 나를 공격하게 만들지?’
생각해보니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꿈을 꾸고 있는 당사자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바꿔 말하면,
꿈을 꾸는 동안에는,
꿈을 현실로 받아들인다는 뜻.
아론이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꿈속에서, 과연 나를 공격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것도 내가 죽을 정도로?
쉽지 않다. 아론이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면 모를까.
‘내가 먼저 공격하는 것도 곤란한데....’
꿈속에서 뜬금없이 내가 선빵을 날리면?
개연성이 완전히 붕괴돼버린다.
아무런 이유 없이 다짜고짜 공격하는 나를 보고 이상함을 느낀 아론이 ‘아, 혹시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의심하면, 꿈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꿈을 자각하는 경우, 보통 그 꿈은 깨진다.
뭐, 루시드 드리머(Lucid Dreamer)라고 하는, 꿈을 자각하면 오히려 꿈을 원하는 대로 통제해버리는 특이한 사람들도 있긴 한데, 흔하지는 않다.
‘뭔가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싸매고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억울한... 아니, 엘!”
앞서서 걷고 있던 테도린이 나를 불렀다.
“...응? 왜?”
“여기서 산맥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어느 쪽으로 가는 게 좋겠나?”
앞을 살펴보니 길이 좌우로 갈려있었다.
왼쪽에 있는 산은 푸르른 나무가 무성했고, 오른쪽에 있는 산은 조금 삭막해 보였다.
라이칸스로프는 왼쪽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군.
그때 아론이 끼어들었다.
“당연히 나무가 우거진 왼쪽으로 가야지. 그런데... 이봐, C급. 테도린이라고 했나? 왜 그걸 내가 아닌 엘한테 묻는 거지?”
아론이 뭔가 불만스럽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은 이쪽 지역에 처음 와봤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엘한테 물었을 뿐이오.”
“그래도 여기서 가장 실력자인 내 의견을 먼저 구했어야지.”
그럴 수도 있지. 별 걸로 다 트집 잡는군.
“실력자? 크흐흐.”
“...왜 웃지? 내가 농담이라도 했나?”
“리자드맨을 누가 처치했더라... 크흐. 뭐, 아무튼 알겠소. 왼쪽으로 가면 될 거 아니오?”
테도린이 어깨를 한번 으쓱하며 말했다.
‘테도린 이 새끼는 또 왜 이래?’
당황스러웠다. 이건 뭐 거의 대놓고 빈정거리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아론의 언성이 높아졌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당신 말대로 왼쪽으로 가겠다고 하지 않았소?”
“누굴 바보로 아나? 비아냥거리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죽고 싶어?”
살해 협박이 튀어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험악해져 갔다. 물론 실제로 공격하진 않겠지만, 아론이 지팡이까지 치켜들었기에 나는 개입할 필요성을 느꼈다.
“워워, 다들 진정하시죠.”
나는 아론과 테도린 사이로 걸어가 그들을 갈라놓았다.
“함께 의뢰를 수행해야 하는 구성원끼리 이렇게 다퉈서 되겠습니까. 지팡이는 내려놓으시죠. 함부로 파티원을 공격하면 아론님도 곤란해지실 텐데요. 테도린 너도 말 함부로 하지 말고.”
“흥! 앞으로 언행을 주의해라. 감히 C급 주제에 건방지게.”
아론이 그리 말하며 왼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놈의 자존심은.... 어, 잠깐. 자존심?’
나는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그를 불러세웠다.
“아론님. 왼쪽으로 가실 생각입니까?”
“그렇다. 왼쪽 산이 더 울창하니 라이칸스로프가 있을 확률도 높겠지.”
“흠. 저는 오른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왜지?”
“그냥... 뭐, 감입니다.”
“큽, 크흡!”
내가 별다른 근거 없이 아론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자 테도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감? 그냥 단순히 감이라고......?”
자신이 또다시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아론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는 내가 의도한 바였다.
내가 아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아론이 꿈속에서 나를 공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선빵을 날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아론이 나를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미리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녀석이니, 그 부분을 살살 긁어대면 될 것이다.
그리고 라이칸스로프가 없을 것 같은 쪽으로 가야 의뢰가 길어지지 않겠는가? 하루 만에 전부 찾아내 버리면 곤란하다.
“예. 왠지 오른쪽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지금... 장난... 하나...?”
아론이 푸들푸들 떨기 시작했다.
아, 이건 너무 억지인가? 나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
“실은... 아까 오른쪽에서 늑대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확인해볼 필요는 있지 않겠습니까?”
“오, 억울한 마법사 너도 그런가? 나도 그런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테도린이 지원사격에 나섰다.
“.......”
“어떻습니까? 아론님만 허락해주신다면 오른쪽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아론이 이를 악물은 채 대답했다.
***
“크흐흐. 내가 뭐랬나!”
테도린이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그는 죽은 라이칸스로프의 대가리를 잘라내고 있었다.
‘시팔. 진짜 늑대 울음소리를 들은 거였냐....’
놀랍게도 이곳에서 성과가 있었다.
해가 져서 어두워질 무렵쯤, 다이어울프 세 마리를 이끌고 있는 라이칸스로프를 조우한 것이다.
전투는 어렵지 않게 승리했지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한 마리만 발견한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론이 테도린을 향해 물었다.
“보주는? 놈의 몸속에 보주는 없나?”
“없는 것 같소.”
“다시 한번 잘 찾아봐라. 천금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넌 또 그 허접한 전설을 믿고 있냐.
그렇게 한동안 라이칸스로프의 몸을 샅샅이 뒤지고, 다이어울프의 가죽을 벗겨내고 나니 어느덧 해가 완전히 저물었다. 당연히 달빛을 머금은 보주 따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나머지 한 마리는 내일 찾기로 하고, 이쯤에서 야영을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쩝. 그러도록 하지. 어두워서 더 이상의 수색은 불가능하니 말이야. 내일 찾는 놈에게는 보주가 있었으면 좋겠군.”
아론이 못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우리는 커다란 바위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모아 간단히 모닥불을 만들고, 누울 자리에는 다이어울프의 가죽을 깔았다.
딱히 춥지도 않고, 비가 오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자, 이제 불침번을 정하자고.”
“수고들 해라. 나는 이만 자도록 하지.”
아론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안쪽 자리에 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아론님.”
“뭐지? 설마 나더러 불침번을 서라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
너도 당연히 서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생각해보니 아론은 그냥 푹 자는 게 나았다. 그래야 내가 꿈속으로 들어가기 편할 테니까.
“아, 그게 아니라 회중시계를 좀 빌려주십시오.”
“회중시계? 하긴. 불침번을 서려면 필요하겠군. 자, 가져가라. 귀중한 물건이니 망가뜨리지 말고 조심히 다루도록.”
그가 누운 채로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나는 그것을 받아들고 돌아와 C급들과 불침번 순서를 정했다.
테도린이 초번, 내가 중번, 대머리가 말번을 서기로 했다. 원래 불침번이라는 것은 중번이 가장 엿 같지만, 내가 스스로 자원했다.
나는 어차피 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여러 명과 함께 잠들면, 내가 원치 않게 능력이 발동되어 아론이 아닌 다른 사람의 꿈으로 들어갈 수도 있다. 계속 깨어 있다가, 대머리 모험가가 말번을 설 때 아론의 꿈으로 들어갈 생각이다.
그렇게 누워서 가만히 기다렸다.
어두운 밤에 잠들지 않고 누워있기만 한다는 것은 상당한 고역이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갔다.
“억울한 마법사. 교대다.”
어느새 테도린과 교대할 시간이 다가왔고,
“이봐요. 불침번 설 차례입니다.”
대머리 모험가와 교대할 시간도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회중시계를 넘겨주고 아론의 옆자리로 향했다. 그리고는 아론의 얼굴, 특히 눈을 주시했다.
“.......”
감겨있는 눈꺼풀 안쪽에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이 보이는 특징.
나는 자리에 드러누워, 아론의 꿈으로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