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1)
“뭐, 글쎄. 리자드맨이나 사스콰치 토벌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데? 자세한 것은 내일 길드에 어떤 의뢰가 들어왔는지 확인해 봐야 알 것 같군.”
또? 이놈은 무슨 리자드맨 페티쉬라도 있나.
저렇게 당일치기로 끝낼 수 있는 의뢰는 곤란하다. 의뢰 중 낮잠을 자지는 않을 테니까. 이 녀석의 꿈속으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리는 의뢰가 필요했다.
“그건 너무 쉽지 않겠습니까? 아론님 정도의 실력자에게는 지루할 것 같은데요.”
“하핫. 사실 좀 그렇긴 하지. 하지만 C급 모험가를 데리고 다녀야 하니, 너무 강한 몬스터는 곤란해. 사실상 나 혼자 싸우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니 말이야.”
혼자 싸우기는 무슨.
지난번 리자드맨 토벌 때에도 마법을 허공에 난사해대는 바람에 내가 도와줬었다. 이게 이 녀석의 패턴이다. 하급 모험가를 미끼로 희생시키고 자신이 막타를 치는 방식.
어쨌든, 더 강한 몬스터를 회피하려 드는 걸 보니, 자신의 마법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자각하고는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 녀석도 바보는 아닐 테니까.
“의뢰에 관한 건 내일 마저 얘기하도록 하지. 피곤해서 오늘은 이만 들어가 봐야겠어.”
아론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 혹시 저 말고 또 생각해둔 멤버가 있으신지...?”
“아직 없다. 내일 길드에서 보이는 녀석들 중 몇 명 고르면 되겠지.”
“그렇다면 제 동료를 데려와도 되겠습니까?”
가능하다면 도린 형제를 데려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슬그머니 제안했다. 내일 의뢰를 고를 때에 바람잡이 역할을 시킬 수도 있고, 여러모로 내게 도움이 될 것이다.
“너의 동료? 실력은 어떤가?”
“저와 엇비슷한 수준입니다.”
물론 각성 이전 기준이다.
지금의 나는 어지간한 B급보다 강하지 않을까.
“뭐,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겠군. 마음대로 해라.”
그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손을 한번 휘휘 젓고 떠났다.
‘아오. 말하는 싸가지 하고는....’
마법보다는 남을 멸시하는 데에 더 재능이 있는 놈이다. 마법사만 아니었다면 바로 죽빵을 갈겨줬을 텐데.
나는 남은 맥주를 원샷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로 여관으로 가서 쉬고 싶었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몇 개 있었다.
먼저 세르시아 교단의 치료소에 가서 어깨를 치료했다. 지난번에 날 쑤셔댔던 그 광기 어린 사제를 만날까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다른 사제가 치료해줬다.
그다음은 마법공방에 가서 매직 미사일 마법서를 본점에 요청해달라고 했다. 내가 지금 가진 돈이 2골드 20실버 가까이 되었으므로, 조만간 구입할 수 있을 듯싶었다. 뭐, 마음이 바뀌면 안 사도 되고.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도박장.
도린 형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만약 여기에 없다면, 달리 찾을 방도가 없으니 포기해야 한다.
도박장에 도착해 들어가려고 하니, 입구를 지키고 있는 거구의 사내가 다가와 제지했다.
“입장하려면 무기를 내게 맡기시오.”
“......? 왜 그래야 합니까?”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반문했다. 다짜고짜 무기를 달라고 하는 모습이 심히 미심쩍었기 때문이다.
“도박장이 처음이시오? 돈을 잃은 자가 칼부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무기는 가지고 들어갈 수 없소. 그리고 최소 1실버는 가지고 있다는 걸 증명해야 입장할 수 있소.”
과연. 듣고 보니 나름대로 합리적인 운영방식이었다. 도박에 목숨 건 밑바닥 인생들이 돈을 잃었다고 젠틀하게 물러나지는 않을 테니까.
고개를 끄덕거리며 1실버를 꺼내던 중, 도박장 안쪽에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놔라! 나는 이대로 갈 수 없다!”
“손님. 돈을 다 잃으셨으면 더 이상 안에 계실 수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오시지요.”
“아직 내 형제들이 안에 있단 말이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돈 없으면 꺼져!”
두 명의 직원이 끌고 나온 사내를 바닥에 패대기치고 돌아갔다. 잘됐군. 수고를 덜겠어.
나는 그 사내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말을 걸었다.
“흐흐. 돈 다 잃었냐?”
“어, 억울한 마법사!”
“지금 억울한 사람은 14실버를 다 잃은 네가 아닐까 싶은데?”
도린 삼형제 중 맏이인 테도린이었다.
지저분하게 자란 수염을 보니 그야말로 폐인이 따로 없었다.
“도, 돈 좀 빌려다오! 금방 따서 갚겠다...!”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따악!
뒤통수를 한 대 때려줬다.
“크윽....”
“근데 다른 애들은 어쩌고 너 혼자 쫓겨났어?”
“다른 형제들은 아직 돈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그 녀석들은 꼬시기 힘들겠군.
“내일 아침에 모험가 길드로 나와라. 이제 다시 돈 벌어야지? B급 마법사랑 의뢰를 같이 나갈 거다. 아마 1실버 정도는 떨어지지 않을까 싶은데.”
“......너무 적군.”
“1실버가 언제부터 너한테 적은 금액이 됐지? 헛소리하지 말고 나와. 만약 열심히 한다면, 내가 몇 실버 정도는 빌려줄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지.”
돈을 빌려줄 수도 있다는 말에 테도린이 반색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나도 참여하겠다!”
“그래. 늦지 말고 와라. 속 쓰릴 텐데 이걸로 수프나 한 접시 하던지.”
테도린에게 동화를 한 닢 튕겨주고 헤어졌다.
***
다음 날 아침.
“이틀 이상 걸리는 의뢰 말인가?”
약속대로 길드에 나온 테도린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 밖에서 야영을 해야 하는, 그런 걸로 하자고 바람 좀 잡아 달라 이거야.”
“왜 그래야 하지?”
“사정이 있어서 그래. 그리고 소요 시간이 긴 의뢰일수록 실적에도 좋잖아?”
“나는 한낱 모험가의 실적 따윈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용병이다!”
“너 이 새끼. 돈 필요 없어? 안 빌려준다?”
“적극적으로 돕도록 하지.”
그렇게 테이블에 앉아서 얼마간 기다리고 있으니, 아론이 도착했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아론님. 오셨습니까. 이쪽은 어제 말씀드렸던 제 동료입니다.”
“반갑소. 테도린이라고 하오.”
어울리지 않게 테도린이 목소리를 깔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아론은 대꾸하지 않고 위아래로 테도린을 쓰윽 훑었다.
“흠... 뭐, 험상궂게 생긴 게 기본은 하겠군. 그럼 어떤 의뢰가 있는지 좀 살펴볼까.”
그리 말하며 아론이 게시판으로 걸어갔다. 나는 잽싸게 따라가며 운을 띄웠다.
“제가 괜찮은 의뢰를 하나 봐둔 게 있습니다.”
“뭔데?”
“라이칸스로프의 대가리 두 개를 구해오는 일입니다.”
라이칸스로프는 쉽게 말해 늑대인간이다.
단일 개체로는 리자드맨보다 조금 약하지만, 다이어울프를 몇 마리씩 거느린다. 주로 산이나 숲속에 살기 때문에, 금방 발견해내기 어렵다. 게다가 동족끼리 어울리지 않고, 자신만의 무리를 만드는 습성이 있다.
즉, 라이칸스로프의 대가리를 두 개 구하려면, 두 개의 무리를 찾아내야 한다.
“그건 좀 귀찮을 것 같은데. 차라리 다른─”
“미결 의뢰랍니다! 그것도 일주일이나! 그래서 의뢰인이 보수를 늘렸다고 합니다. 무려 15실버로!”
아론이 탐탁지 않아 하는 반응을 보이길래 냉큼 말을 덧붙였다.
“15실버? 그럼 내가 10실버는 먹을 테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군. 근데 대체 라이칸스로프의 대가리 따위를 어디에 쓰려고 이런 의뢰를 넣었지?”
“그런 게 중요합니까. 돈만 받으면 되지. 뭐, 귀족이나 부유한 상인이 박제해서 장식품으로 쓰려나 보죠. 어떻습니까?”
“흐음.......”
그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그래도 별로 내키지 않는데. 생각해보니 밖에서 야영까지 해야 하는데, 10실버면 적은 것 같군. 내가 받는 비율을 더 올린다면 모를까....”
이 탐욕 덩어리 새끼. 더 달라 이거지?
나는 그 놀라운 욕심에,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말했다.
“아, 그럼 저희 C급들은 1실버씩만─”
“내 고향에는 아주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지.”
“......?”
갑작스레 테도린이 내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라이칸스로프는 달빛을 머금은 존재라고.”
그가 고개를 살짝 들어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본래 인간이었던 자가 저주에 걸려 달빛을 받게 되면 라이칸스로프가 된다고 하지. 대부분은 이지를 상실하고 완전히 짐승이 되지만, 드물게 원초적인 인격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 그런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달을 바라보게 되지. 자신이 인간이었던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며...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나면, 몸속에 달의 기운을 머금은 보주가 생긴다고 전해지지. 천금의 가치를 지닌 보주가.”
‘??????’
나는 테도린을 구석으로 끌고 가서 속삭였다.
─그게 무슨 소리야?
─뭐가 말인가?
─너 사막 출신이잖아. 라이칸스로프가 존재하지도 않는 지역인데, 그딴 전설이 있다고?
─억울한 마법사 네가 바람을 잡아달라고 했잖나!
미친! 지어낸 이야기였냐!
이마를 탁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터무니없는 스토리였지만 노력은 가상했다.
“호오. 흥미로운 전설이군.”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아론에게 먹혀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C급 모험가를 하나 더 구해서, 라이칸스로프를 찾아 나섰다.
***
“이쪽 산은 처음 와보는군.”
“이곳에 다이어울프가 자주 출몰한다고 하니, 라이칸스로프도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번 의뢰는 정해진 목적지가 없었다.
라이칸스로프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모험가 길드에서 정보를 수집해, 늑대가 많이 나온다는 소문이 무성한 곳으로 왔다.
“오늘 안에 적어도 한 마리는 찾을 수 있으면 좋겠군. 이봐, 대머리. 내 짐을 들어라.”
아론이 마차에서 내린 자신의 짐을, 자연스럽게 대머리 C급 모험가에게 떠넘겼다.
“뭐야. 불만 있나? C급 중에서 가장 약한 네가 내 짐을 드는 게 당연한 것 같은데?”
“...아닙니다.”
대머리 모험가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C급이 짐을 드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다. 그런 일을 시킬 거라면 짐꾼을 따로 고용했어야 한다.
“쯧. 데려와 준 걸 감사하게 여겨야지. 가자.”
아론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차며 앞서나갔다.
곧 나머지 일행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아론이 이동하는 내내 사소한 트집을 잡아대며 대머리 모험가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
불편함 속에서 행군하기를 한참.
테도린이 슬쩍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어이, 억울한 마법사. 어디서 저런 미친 마법사를 찾았나?”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사이다. 나도 마음에 들진 않지만...”
“참아주기 힘들군.”
“풉. 안 참으면 어쩔 건데? 싸우기라도 하게?”
아론 앞에서는 불평 한마디 못하면서, 나한테 와서는 센 척 하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크흐흐. 못 싸울 것도 없지. 나는 마법사와 싸워서 이긴 적이 있다.”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내 고향에는 신비한 우물이 있다. 그 근처에서는 마법을 쓸 수 없지. 그래서 내가 주먹으로 마법사를 두들겨 패.......”
또 그놈의 장황한 고향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다는 점을 이용해 허풍을 떠는 것 같았다. 아까의 라이칸스로프 전설처럼.
그래도 테도린의 개소리를 들으며 걸으니 지루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조금 재미있기도 하고.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걷던 중, 갑자기 아론이 아연한 표정을 지은 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쪽에 리자드맨이 나타났다!”
아론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과연.
리자드맨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라이칸스로프에게 쓸 마법을 아껴놔야 하니, 최대한 적은 마법으로 해치워야 한다. 그러니 너희들이 놈의 움직임을 봉쇄해야 한다!”
그리 말하며 지팡이로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검을 뽑아 들고 테도린, 대머리 모험가와 함께 리자드맨이 있는 나무에 접근했다. 그러자 놈도 나무 위에서 사뿐히 내려와 우리 앞에 착지했다.
“젠장! 왜 나를 이런 의뢰에 불렀나 억울한 마법사!!”
파충류 특유의 소름 끼치는 세로 동공.
그것을 보고 테도린이 잔뜩 긴장하며 소리쳤다.
소리에 반응한 리자드맨이 손톱의 날을 세웠다.
이윽고 놈이 팔을 휘두르려는 순간─
─파지지직!!
내 손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스파크가 리자드맨을 강타했다.
“꾸에에엑!!!”
놈이 잠시 경련하듯 몸을 떨고 비틀거렸다.
그 틈에 달려나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리자드맨의 대가리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
너무나도 삽시간에 벌어진 일.
나는 경악하고 있는 테도린을 향해 말했다.
“아, 맞다. 나 이제 억울한 마법사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