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9화 (9/200)

각성(3)

[해당 마법의 속성, 등급, 계열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꿈속에서 마법을 훔칠 수 있다고?’

훔칠 수만 있다면 완전 개사기 능력이 아닌가!

[전격] [전격] [전격] [전격] [전격]

나는 전격 속성밖에 없으므로 전격 마법에 메리트가 있는 대신, 공통계열을 제외한 다른 속성의 마법은 배울 수 없다.

하지만 꿈을 이용한다면 다른 속성의 마법도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꿈속에서 파이어 볼에 맞아 죽으면, 파이어 볼을 쓸 수 있게 된다는 소리다.

심지어 등급과 계열의 제한도 없다니.

대마법사가 스스로 창조해낸 강력한 고유마법이라 할지라도 뺏을 수 있다는 거다!

‘아, 물론 그런 고위 마법사의 꿈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나는 가까이서 자고 있는 사람의 꿈에만 들어갈 수 있다. 고위 마법사가 나와 한방에서 잘 리는 만무하다. 무방비하게 아무 데서나 잠들지도 않을 테고. 아니, 일단 나 같은 하급 모험가를 만나주기나 할까?

‘음... 그저 쉽지만은 않겠네.’

생각할수록 좀 까다로운 느낌이다.

처음부터 고급 마법에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역시 하급부터 얻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모험가 길드에는 하급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이 좀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던 중,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엘님!! 도와주십쇼!”

아, 맞다. 아직 산적 조무래기가 남아있었지.

각성 완료 메시지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잠시 잊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산적 두 명과 케빈 일행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아직도 제압을 못 했다니. 심지어 그중 한 놈은 내가 아까 팔을 베어버려서, 팔 병신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저 D급들이 죽으면 내가 곤란해진다.

나는 바로 놈들을 향해 땅을 박찼다. 그런데,

‘......어? 내가 이렇게 빨랐던가?’

뭔가 이상했다. 몸이 좀 가벼워진 느낌이랄까.

순식간에 산적들에게 당도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너무나도 쉽게 두 놈의 목을 베어버리고 나서야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능력치의 제한이 해제됩니다.]

[기존의 미반영 능력치가 반영됩니다.]

아, 그래. 분명 이런 메시지도 있었지.

지난 몇 년간 칼질을 해도 제한에 걸려 오르지 않았던 능력치. 사라진 게 아니라 유예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이번에 각성을 완료하면서 제대로 적용된 거고.

‘그동안의 고생이 헛되지 않았다니...!’

물론 무슨 기사급으로 강해진 건 아닌 듯했으나, 나는 마법사다. 이 정도의 육체적 능력이라면 마법사치고는 훌륭하지 않을까?

“다들 괜찮아?”

“크, 크윽. 저희는 괜찮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들 팔이나 다리에 검에 베인 상처가 있었다. 그래도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이래서 갑옷이 중요하다. 몸통과 머리만 멀쩡하면 어지간해서 죽을 일은 없으니까. 나도 갑옷 덕분에 왼쪽 어깨를 내주고도 멀쩡히 살아있지 않은가.

물론 움직일 때마다 욱신거리는 것이, 또 뼈에 금이라도 간 듯했지만.

“그런데 저 산적 두목은 어떻게 된 겁니까? 기절시키신 겁니까?”

케빈이 철제 흉갑을 입고 쓰러져있는 두목을 가리키며 물었다.

산적 두목은 감전으로 죽었기 때문에, 겨드랑이를 제외하고는 겉으로 드러난 큰 상처가 없었다.

“죽었다.”

죽은 거 맞겠지? 퀘스트가 완료됐으니.

혹시 모르니 가서 확인 사살을 해야겠다. 전리품도 챙겨야 하고.

“와! 역시... 마법으로 해치우셨습니까? 저도 싸우느라 엘님의 전투를 구경하지 못한 게 아쉽군요.”

“별걸 다 아쉬워하네. 너희들도 얼른 상처를 수습하고 산적의 시체나 뒤져라.”

“네? 시체를 말입니까? 왜 그런...?”

“뭔 얼빠진 질문을 하고 있어. 전리품 안 챙길 거야? 너희도 졸개 두 놈하고는 싸웠잖아. 거기서 나온 전리품은 나눠가질 권리가 있는 거다. 물론 나머지는 다 내 거고.”

산적과의 싸움은 의뢰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전리품을 저들과 나눌 수는 없다. 나 혼자서 처치한 산적 두목과 졸개 한 놈에게서 나온 전리품은 온전히 내차지다.

솔직히 넷 다 내가 처리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차피 산적 졸개들은 돈 될 건덕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오오...! 그렇습니까? 이런 적은 처음이라 몰랐습니다.”

D급 모험가들은 신이 나서 시체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산적 두목이 있는 곳으로 갔다.

─푹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놈의 목을 칼로 한번 찌른 뒤 흉갑을 벗겨냈다. 왼쪽 어깨의 통증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렸다.

“와 씨. 이거 진짜 물건이네. 1골드는 하겠어.”

벗겨놓고 자세히 보니 과연.

플레이트 아머다운 위용이 넘쳐흘렀다.

괜히 갑옷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내 검을 얼마나 막아냈던가. 만약 산적 두목이 흉갑만이 아닌, 풀 세트를 갖춰 입었다면 지금 바닥에 누워있는 것은 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팔지 말고 내가 입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봤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내가 입고 있는 체인 메일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마법서가 더 급했다. 배워야 할 마법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갑옷이나 교체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뭐, 체인 메일도 나름 쓸만하고.

그 외에도 검, 장화, 장갑은 물론 입고 있던 옷까지 싹 다 벗겨냈다. 남자의 옷을 벗긴다는 사실이 썩 불쾌했지만, 사람이 입는 옷은 돈이 되니까 참았다.

이놈이 가지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는 무려 10실버 가까이 들어있었다. 다만, 다른 한 구의 시체에는 별게 없었다.

“전리품을 다 챙겼으면 도시로 돌아가자. 지금 몸 상태로 인다레타 꽃을 더 채집하는 건 어려울 테니까. 지금까지 모은 꽃의 양만 해도 꽤 되잖아?”

무엇보다 이곳은 산적이 나타난 장소.

바닥에 쓰러져있는 저 네 명이 전부일 거라는 보장은 없다. 두목을 제외하면 산적치고는 약한 녀석들이었지만, 그래도 최대한 빨리 자리를 뜨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산적들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 서둘러라.”

그리 말하며 일행들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

케른헴에 도착하고, 모험가 길드로 가기에 앞서 장비부터 처분하기로 했다.

전리품, 특히 갑옷의 부피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가지고 다니기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대장간이 밀집해있는 거리에 들어서니, 플레이트 아머를 향한 열띤 구애가 펼쳐졌다.

“이보게! 그 갑옷은 전리품인가? 처분할 생각이라면 나한테 팔게나. 값을 후하게 쳐주지.”

“아니. 나한테 파시오. 가장 고가에 매입해드리겠소.”

“저희 대장간으로 오시죠! 케른헴에서 가장 양심적인 곳입니다!”

하나같이 자기가 가장 비싸게 매입해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솔직히 어딜 가든 다 비슷한 가격이다.

혼자 특출나게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는 대장간이 있다면, 다른 대장간은 진작 망했을 것이다. 또는 상도덕을 어겼다며 분노한 대장장이들의 망치에 맞아 죽었거나.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발품을 팔며 가격을 비교했다. 예상대로 다 비슷한 금액을 제시했지만, 그나마 한 푼이라도 높게 쳐주는 곳에서 전리품을 일괄처분했다.

“자, 여기 2실버씩 받아라.”

D급들이 처치에 기여한 산적 졸개 두 놈의 검은 8실버가 나왔다. 그들의 몫을 나눠줬다.

“이, 이럴 수가. 2실버라니...!”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 목숨도 구해주시고 이렇게 전리품까지 나눠주시다니... 흑.”

케빈 일행이 뛸 듯이 기뻐했다. 심지어 여성 모험가는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나는 조금 무안해짐을 느꼈다.

왜냐하면 내 몫은 1골드 56실버였기 때문에.

일단 플레이트 아머와 산적 두목의 검만 해도 1골드 50실버에 육박했다. 거기에 나 혼자 처치한 졸개의 검과 잡다한 것들을 더하니 이렇게 나왔다.

저들의 목숨을 구해준 것도 내가 곤란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D급들이 싹 다 산적의 칼에 맞아 죽었으면, 길드로 혼자 돌아온 내가 범인으로 몰릴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흠흠. 뭐, 선배 모험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어쨌거나 나는 미친 듯한 거금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모험가 길드에 가서 이들에게 포션을 한 잔씩 돌렸다.

“크으...!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군. 안그래 케빈?”

간만에 마시는 맥주의 청량감은 짜릿했다.

이게 하급 모험가들의 포션이다.

원래 매일매일 고되게 의뢰를 하느라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 같은 날은 마셔줘야 한다. 각성 퀘스트도 완료하고, 큰돈도 벌었는데!

어쩐지 요즘 들어 일이 잘 풀리는 느낌이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엘?”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엘이 맞군. 긴가민가했는데.”

“아, 마법사님. 안녕하십니까.”

누군가 하니, 시계를 사 갔던 마법사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서 맞은편에 앉았다.

“우리 사이에 딱딱하게 마법사님이 뭐야? 아론이라고 불러라.”

“그러죠. 아론님.”

우리 사이가 무슨 사이지? 의뢰를 한 번 같이 한 사이? 회중시계를 사고판 사이?

아무튼 그렇게 불러달라고 하니 그리 불러줬다.

“의뢰를 마치고 돌아온건가?”

“그렇습니다.”

“하, 이 애송이들이랑? 그런데 대체 무슨 의뢰를 수행했길래 다들 이렇게 상처를 입었지?”

“딱히 어려운 의뢰는 아니었는데, 중간에 산적들을 만났습니다.”

“하하! 고작 산적 따위에게 당한 거였나? 그것참 부끄러운 일이군. 이래서 하급 모험가는 안 돼. 나도 일전에 산적들을 만난 적이 있었지. 전부 내 마법에 당해버렸지만. 아, 그리고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는데 말이야.......”

그 뒤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 자랑과 하급 모험가 비하에,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다. D급 모험가들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나는 화제 전환을 시도했다.

“그나저나 회중시계는 잘 사용하고 계십니까?”

“오, 그래. 덕분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지. 체스터 백작의 명예로운 기사 제임스 경이 쓰던 거라고 했었나? 아주 고급스러운 것이, 나의 품격에 모자람이 없어. 왠지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아론이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킁킁거렸다.

‘그거 고블린 냄새인데.’

“아하하.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내가 감사의 의미로 한 잔 사도록 하지. 아니, 그걸로는 부족한 것 같군. 좋아! 내일 의뢰에 같이 데려가 주지. 너도 D급이나 C급 떨거지들보다는 나와 함께 가는 게 좋을 테니.”

이 새끼는 내가 C급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이딴 식으로 말하는 건가? 하급 모험가를 쓰레기 취급하는 버릇은 여전하군.

“아, 괜찮.......”

기분도 상하고, 리자드맨에게 당했던 기억도 떠올라 거절하려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어쨌든 이 새끼도 마법사잖아?’

어쩌면 이 녀석의 꿈에 들어가서 마법을 훔칠 수 있지 않을까? 내일 자정이 지나면, 일주일간의 쿨타임이 끝나서 다시 꿈에 들어갈 수 있다.

함께 의뢰를 나가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급히 말을 바꿨다.

“괜찮...은 의뢰라도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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