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꿈속에서 마법을 훔치는 마법사-3화 (3/200)

마법서를 위하여(1)

“얼마 전 체스터 백작령에 오크 부족 하나가 출몰했다는 얘기는, 억울한 마법사 너도 들어봤겠지?”

“아니. 처음 듣는걸.”

체스터 백작령이라면 내가 있는 케른헴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곳이다.

케른헴과 인접한 영지 중 하나라 그 근처에서 의뢰를 수행한 경험도 몇 번 있긴 하지만, 그뿐이다. 그쪽 사정 같은 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한심한 정보력이군! 이래서 모험가들이란.... 이참에 너도 우리 형제 용병단에 가입하는 것이 어떤가? 대륙 전역을 유랑하는 용병들의 정보를 얻을 수─”

“그만! 헛소리하지 말고 본론이나 얘기해.”

놀랍게도 단 한 문장 만에 대화의 주제를 벗어나려고 했기에 주의를 시켰다.

그리고 형제 용병단이라고 해봐야 얘네 세 명뿐이다. 그러니까 이놈들이 모험가 짓을 병행하고 있지.

“그 오크들은 체스터 백작령의 끄트머리에 출몰했다고 한다. 케른헴 방향이지.”

“그래서? 어쨌든 백작령에 나타났으니 우리랑은 관계없잖아. 그쪽 사람들이 처리할 텐데?”

무려 영주가 존재하는 지역이니까.

“물론 토벌은 이미 끝났다. 뭐 듣기로는 병사들을 동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어서 주로 모험가들과 용병들을 고용해 토벌했다더군.”

오크는 상당히 위험한 존재다.

인간보다 지능은 떨어지지만, 육체적인 면에서는 우월하다. 도구를 다룰 줄 알며, 어눌하긴 해도 의사소통도 가능하다.

숙련된 C급 모험가가 1:1로 이기기 살짝 버거운 정도?

이렇게 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크의 무서운 점은 무리를 지어 활동하는 습성에서 비롯된다. 성장 속도가 빠르며 번식력도 좋고, 심지어는 인간 여성을 납치해 혼혈을 생산하기도 한다.

그렇게 몸집을 불린 오크 무리는, 마치 인간처럼 일대를 장악해나간다. 그래서 보통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에 오크가 등장하면 가능한 한 빨리 토벌한다.

수가 적다고 오랜 시간 방치했다가는, 대규모의 오크들과 ‘전쟁’수준의 싸움을 벌여야 할 수도 있으므로.

“어떻게든 오크 토벌은 마무리 지었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사망자도 제법 발생했다고 한다. 돈에 눈먼 어중이떠중이들이 모여들었으니 뻔한 일이지. 크흐흐.”

하긴. 그 정도 규모의 토벌에 확고한 구심점이 없다면 지리멸렬해지기 십상이다. 지휘가 잘 안 되니 소요 시간은 늘어나고, 전장도 쓸데없이 넓어진다. 당연히 죽는 사람도 많다.

그건 그런데.......

“아니, 그러니까. 그게 네가 말한 고블린 처치 의뢰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고.”

“...오크 토벌대가 전장으로 가는 길에 고블린을 만나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가?”

“뭐 웬만하면 죽였겠지. 귀찮으면 그냥 쫓아내거나.”

“그렇다. 게다가 오크들도 먹이경쟁 상대인 고블린을 적대하지. 그래서 그 일대의 고블린들이.......”

끝까지 듣지 않아도 뒷말을 알 것 같았다.

갑자기 등장한 오크 토벌대. 그리고 오크.

둘 다 고블린을 적대하는 세력이다.

그 상황에 고블린의 선택은 뻔하다.

“등쌀에 못 이겨 도망쳤겠군. 병력이 나오는 체스터 백작령 쪽이 아니라, 이쪽 방향으로.”

“크흐. 그냥 도망만 쳤겠나? 오는 길에 서로 싸우다 죽어버린 인간과 오크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데? 뭐라도 주워왔겠지.”

인간들의 장비를 노획한 고블린이라....

“그럼 너희가 말한 의뢰라는 게 설마...?”

“백작령 근처의 마을에서 길드에 의뢰를 해왔다. 며칠 전부터 고블린 한 무리가 마을 주변에 자리 잡은 것 같으니 처리해달라고. 어떤가. 등장 시기와 위치를 보면 느낌이 오지 않나?”

과연. 그런 것이었나.

군침이 싹 도는 이야기였다.

나 같은 C급 이하의 모험가가 의뢰를 수행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부산물은 역시 장비다.

허접한 몬스터들의 사체는 돈이 안 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장비는 다르다. 조악한 검 따위라도 몇 푼은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일부러 산적을 찾아다니는 모험가들도 있을 정도다. 사람이 쓰는 장비가 가장 비싸니까. 물론 보통은 자신들이 역으로 털리고 돌아오지만.

어쨌든, 인간과 오크가 뒤엉켜 규모 있는 싸움을 벌였으니 분명 눈먼 물품들이 제법 발생했을 것이다. 고블린도 장비를 사용할 줄 아니, 제 딴에 쓸만해 보이는 것들을 노획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질 좋은 장비들은 토벌대가 먼저 수거해갔겠지만, 잡다한 것들도 충분히 돈이 된다.

......이건 진짜로 최소 실버 단위다.

마법서에 가까워질 절호의 기회.

무조건 가야 한다.

“도, 도린 형제님들.... 혹시 매, 맥주가 부족하진 않으십니까? 제가 한 잔씩 더 사드릴깝쇼?”

“크흐흐. 비굴한 모습이 썩 잘 어울리는군.”

“더 마시고 싶지만, 슬슬 출발 준비를 해야 한다!”

“공과 사는 구분해라 억울한 마법사!”

도린 삼형제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쉬운 건 나였기에, 나도 얼른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뭘 준비하면 되는데? 말만 해. 내가 다 할게...!”

“넌 짐꾼으로 쓸만한 D급 모험가를 한 명 구해와라. 우리는 마차를 빌려오도록 하지.”

“오, 알겠어.”

우리는 그렇게 즉시 흩어져서 준비를 시작했다.

***

─덜그럭덜그럭.

승차감이 충격적인 싸구려 마차를 타고 한나절.

“모험가님들!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25쿠퍼씩 각출해 마차 삯 1실버를 지불했다. 다섯 명이지만 짐꾼 역할로 온 D급 모험가는 제외했다. 그에게마저 마차 삯을 내라고 하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일이니까.

“그럼 수고하십쇼!”

활기찬 인사와 함께 마부가 마차를 이끌고 떠났다.

“어? 그냥 저렇게 가버리는 겁니까? 그럼 저흰 어떻게 돌아갑니까?”

D급 모험가 올리버가 떠나는 마차를 보며 당황스러워했다.

“한심한 소릴 하는군 D급!”

“마차가 기다리는 동안의 삯은 네가 낼 건가?”

“당연히 걸어서 돌아간다! 짐은 네가 들고!”

“그, 그렇습니까?”

도린 삼형제가 올리버를 타박했다.

올리버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출내기 모험가였다. 이번 임무에서 짐꾼 역할만 하면 충분했기 때문에, 일부러 D급 중에서도 싼값에 고용할 수 있는 초짜를 골랐다.

“야야, 너무 그러지들 마라. 올리버는 신입이잖아. 그보다 얼른 마을에 들어가서 설명을 들어보자고.”

그렇게 일행을 추슬러서 마을로 들어갔다.

마부의 인사 소리를 들은 건지, 도린 형제의 갈굼 소리를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촌장으로 보이는 노인이 헐레벌떡 다가와 우릴 맞이했다.

“아이고. 어서오시오, 모험가 나으리들.”

“안녕하십니까. C급 모험가 엘입니다. 본격적인 의뢰 수행에 앞서 고블린에 대한 정보를 좀 듣고 싶습니다만.”

“먼 길 오셨는데 식사는 하셨소? 일단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상당히 인심이 좋은 마을이군. C급 모험가가 이렇게까지 환대받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건가? 어쨌든 벌써 점심이 훌쩍 지나 배가 고팠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촌장의 집으로 가니 그의 아내가 금방 스튜를 내어왔다. 평소에 먹던 여관제 스튜와 크게 다를 건 없었지만, 배를 채우기엔 충분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친 내가 물었다.

“고블린에 대해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주로 언제 나타나는지, 수는 얼마나 되는지 그런 것들이요.”

촌장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봤다.

“...한 닷새 전부터 매일 밤 습격해온다오. 주로 가축을 잡아가는데, 나타나는 숫자는 적게는 둘에서 많게는 열까지 봤지.”

“둘? 고작 두 마리에게 약탈당한 적도 있다고요?”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블린 두 마리 정도는 마을 장정들이 합심하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다. 제대로 된 무기와 방어구가 없으니 죽이기는 힘들더라도, 쫓아낼 정도는 된다.

“처음엔 마을 청년들이 농기구를 들고 맞섰었지.... 그러다 톰이 죽었다오. 길쭉한 검에 찔려서. 건실한 청년이었는데.... 그 뒤로 마을 사람들이 겁을 집어먹고 아무도 나서지 않게 된 거요.”

단검이나 손도끼가 아닌 길쭉한 검이라.

고블린이 롱소드를 사용하기엔 어려울 테니, 아마도 아밍소드인가? 브로드소드? 뭐가됐든 고블린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무기는 아니다.

역시 이 녀석들은 오크 토벌지에서 장비를 노획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흐흐흐.

웃을 상황이 아닌데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한다.

“흠흠. 습격당했다는 축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한번 살펴보고 싶습니다.”

“내가 안내해드리리다. 저... 그런데 말이오....”

촌장이 주눅 든 얼굴로 우리 일행을 둘러봤다.

“......?”

“그것이.... 의뢰의 보수가 얼마인지 알고 오신 게 맞소? 가난한 마을인지라 얼마 걸지 못했는데....”

“당연히 알고 왔습니다. 1실버 아닙니까?”

“마차까지 타고 왔던데... 혹시 개인당 1실버로 착각한 것은 아닌지....”

아, 그걸 걱정하던 거였군.

이번 의뢰의 보수는 총 1실버다.

전원이 D급이 아닌 이상에야 다섯이서 나눠 먹기엔 적은 돈이다. 나는 C급 모험가라고 이미 소개했고, 도린 형제는 나보다 덩치가 좋다.

C급으로 보이는 모험가가 네 명이나 있으니, 우리가 보수를 착각하고 왔을 거라고 오해하는 모양이었다.

“하하. 제대로 알고 왔으니 너무 괘념치 마시죠.”

“그, 그렇소? 그것참 다행이구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시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돈은 더 드리기 어렵지만 먹을 것 정도는....”

그래도 보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지 촌장이 계속 미안해했다.

하지만 미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보수를 보고 온 게 아니라, 고블린이 노획한 장비를 노리고 온 거니까.

“아아, 괜찮습니다. 영주 없이 버려진 땅에 사는 사람끼리 돕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자, 걱정은 그쯤 하시고 얼른 축사로 안내해주시죠.”

굳이 속내를 구구절절 설명해줄 필요는 없었기에, 대충 사람 좋은 행세를 하며 말했다.

우리는 안내를 받아 습격당한 축사로 이동했다.

가축의 핏자국이 낭자해 있고, 임시방편으로 보수한 울타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곳에서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촌장은 성심껏 대답해준 뒤 돌아갔다.

나는 일행들을 한데 모아 세웠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해보자고."

"오오! 드디어 싸우는 겁니까?"

올리버가 신입 모험가답게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었다.

"싸우긴 뭘 싸우나 D급!"

"네놈의 눈엔 지금 여기에 고블린이 보이나?"

"고블린이 없는데 대체 무엇과 싸운다는 거지? 혹시 나와 싸우고 싶은가?"

도린 형제가 삿대질을 해대며 목청을 높였다.

고작 한 등급 높은 주제에 엄청 갈궈대는군.

"이리 와봐 올리버. 당장 싸우는 건 아니고, 여기 핏자국 보이지? 일단 이걸 따라가면서 주변을 탐색할 거다."

내가 바닥에 남아있는 가축의 혈흔을 가리키며 설명하자, 올리버가 다가와서 살펴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럼 출발하자. 주로 밤에 나타난다고 했으니 당장 고블린을 만날 확률은 낮겠지만, 뭔가 발견하면 말하고."

내가 선두에 서서 출발했다. 그 뒤는 올리버, 도른 삼형제 순이었다.

축사부터 시작된 혈흔은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 초목을 헤치며 나아가길 한참.

어느 지점에서 혈흔이 끊겼다.

주변을 살펴봐도 고블린들이 은신처로 삼을 만한 장소는 없어 보인다.

"여기서 핏자국이 끊겼다. 이 근처에 숨었다기보다는... 그냥 가축의 피가 바닥나서 끊긴 것 같은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뭐 본 거 있는 사람?"

일행 모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더 이상의 추적은 어려우니, 일단 지형을 파악한 걸로 만족하고 마을로 돌아가자. 어차피 밤이면 습격해올 테니 그때를 노리면 되니까.“

밤에 축사 근처에 매복해서 기다리면 되겠지.

그리 말하며 왔던 방향으로 다시 걸어갔다.

도린 형제도 나를 따라 발걸음을 돌렸다.

"응? 그냥 이대로 돌아가는 겁니까? 뭔가 추적술 같은 걸 발휘해서 발자국을 따라간다든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사삭!

나를 따라오던 도린 삼형제가 순식간에 달려가 올리버를 에워쌌다.

“추적술? 내가 잘못 들었나? 추적수울?”

“짐꾼에게 질문을 허락한 기억은 없는데?”

“너는 정말 나를 미치게 만드는군! D급!”

“하! 고블린의 발자국을 무슨 수로 찾지?”

“차라리 냄새를 추적하라고 하지 그러나?”

“짐꾼인줄 알았는데 짐덩어리군!”

“죄, 죄송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리가 남긴 발자국조차 알아보기 힘든데, 고블린의 발자국을 찾아낼 수 있을 리가.

그런 건 사냥꾼이나,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들이 할 줄 아는 고급 기술이다.

“아쉽지만 우리에게 그런 추적 기술은 없어. 소형 몬스터가 남긴 흔적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도린, 너희들도 제발 그만 좀 하고 따라와.”

우리는 그렇게 별다른 수확 없이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쿨하게 낮잠이나 잤다.

밤새 매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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