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마법사(2)
내가 이 게임 속으로 떨어진 게 벌써 4년 전의 일이다.
‘Your own story(당신만의 이야기)’라는 이름의 오픈월드 판타지 게임.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듯, 처음 캐릭터를 생성할 때 중간 목표도 함께 설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클리어 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마을 최고의 부호’라는 중간 퀘스트를 선택했으면, 열심히 돈을 벌어 마을에서 최고 부자가 되든, 자기보다 부자인 사람을 싹 다 죽여서 달성하든 상관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목표를 달성하기만 하면, 퀘스트의 난이도, 달성하기까지의 과정과 성향 등을 반영해 보상이 지급되고 다음 퀘스트가 발생한다.
내가 최고 난이도의 퀘스트인 ‘국왕 시해자(King slayer)’를 골라버렸다는 골치 아픈 문제는 일단 넘어가도록 하자. 멋들어진 명칭에 홀린 감도 좀 있었지만, 난이도가 높을수록 보상이 크기 때문에 그랬다.
다른 문제는 내가 이 게임의 베타테스터 선발대라는 점.
바꿔 말하면 나는 이 게임의 고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숙지하고 있는 공략법 따위도 없다.
원활한 테스트를 위해 게임사에서 미리 제공해준 정보를 통해, 약간의 시스템 정도나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게임에 캐릭터를 생성하자마자 빙의하다니.
“나는 공략을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략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폼나게 말하고 싶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가 대체 무슨 수로 국왕을 죽인단 말인가? 국왕은커녕 아직 귀족도 몇 번 본적 없다.
내가 마법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인벤토리!”
캐릭터를 생성하면 인벤토리로 공통계열의 기초마법서가 지급되는데,
“인벤토리! 씨팔, 인벤토리! 아이템창!!!”
게임에 빙의하면서 인벤토리가 사라진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시크한 표정으로 인벤토리에 있는 아이템을 꺼내면 ‘서, 설마 그것은 고위 공간계 마법!?’하며 감탄하는 일 따위가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은 내심 아쉬웠지만, 진짜로 아쉬운 건 마법서다.
마법서도 같이 사라지는 바람에 직업 각성 퀘스트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통계열의 기초마법으로 몬스터를 20마리 이상 처치하여 직업 각성 퀘스트를 완료하십시오.]
조금만 집중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시지다.
웃기는 일, 아니, 억울한 일이다.
퀘스트같은 정보는 이렇게 알려주면서 인벤토리는 쏙 빼놓다니. 어떤 존재가 날 이곳에 처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남의 고통을 즐기는 변태 같은 새끼가 틀림없다.
아무튼 저 각성 퀘스트를 완료해야, 나도 본격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내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다는 점.
‘국왕 시해자’라는 최고난이도의 퀘스트를 선택한 만큼, 특전으로 캐릭터에 좋은 능력들을 부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기본 바탕은 ⌜원소마법사⌟다.
속성은 [전격] [전격] [전격] [전격] [전격].
특전으로 주어진 속성 편집 권한을 이용해 다섯 개 전부 ‘전격’에 몰빵했다.
아마도 먼 훗날, 나는 뇌신(雷神) 토르처럼 천둥번개를 몰고 다니는 짜릿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상상을 해본다.
성장을 돕는 특성으로는 ‘꿈’을 선택했다.
그렇다. 나는 남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게 어떻게 성장을 돕는다는 건지는 당최 모르겠지만. 뭐, 각성 퀘스트를 완료하면 뭔가 달라지겠지.
어쨌거나 특전 중 하나였으니 분명 좋은 특성일 것이다.
“......근데 그러면 뭐하냐고! 그놈의 기초마법을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했는데!”
아직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했다는 게 몹시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었기에, 여러 방면으로 마법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수소문했었다.
마탑이나 아카데미? 불가능하다.
가난한 평민 나부랭이가 쉬이 들어갈 만한 곳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는 배움의 전당 같은 건 이곳에 없다.
수준 높은 마법사에게서 직접 사사하기?
우연히 어딘가에 은거하고 있는, 다 죽어가는 대마법사를 만나고 ‘내가 죽기 전에 나의 모든 것을 전수해주지...!’라는 일이 내게 일어날 리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마법서다.
애초에 인벤토리에 기초마법서가 지급됐었던 만큼, 마법서를 통해 마법을 배우는 것이 정석적인 방법일 가능성이 크다.
기초마법 중 가장 보편적인 [매직 미사일] 마법서의 가격은 3골드. 그마저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가격이지만,
“이제 조금만 더 모으면 된다.”
지난 4년간 개처럼 모험가 일을 하며 모은 돈은 제법 됐다.
모험가 길드에 맡겨둔 돈이 2골드 90실버.
지금 들고 있는 돈이 3실버 100쿠퍼.
도합 2골드 94실버다.
“흐흐흐.”
머지않아 마법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흐흐. 흐흐흐흐. 흐하하핫...윽!”
너무 심취해서 웃다 보니 복부의 상처가 아려온다.
얼른 치료나 받으러 가야겠다.
***
버려진 도시 케른햄.
내가 생성된 장소이자 지금까지도 계속 몸담고 있는 도시.
직접 통치하는 영주는 없지만, 스스로 자유를 쟁취해냈다기보다는 버려졌다고 하는 편이 더 적절했기에 버려진 도시라 불린다.
노을로 인해 케른햄의 광장은 주황빛을 띠고 있었다.
그 중앙에는 도시민들이 기준처럼 여기는 시계탑이 자리하고 있다. 시계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여기 시계탑 주변은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광장 근처에는 마법 공방을 비롯한 고급품을 취급하는 상가나 식당, 여관 등이 주욱 늘어서 있다. 여기서 서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더욱 고급스러운 구조물이 나온다.
세르시아 교단의 교회.
건물 상단에 양손을 포개어 기도하는 듯한 모양의 상징이 달려있어, 한눈에 보아도 종교 시설임을 알 수 있다.
나는 그 바로 옆에 위치한, 교회에서 운영하는 치료소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안내를 받고 잠시 기다리니 곧 사제를 만날 수 있었다.
단조롭지만 고풍스러운 흰색의 로브와 베일을 쓴 채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그녀는, 척 보아도 신앙심이 충만해 보였다.
“상태와 증상을 자세히 말하세요.”
과연. 벌써부터 신뢰가 가는군.
치료를 잘할 것 같다는 느낌이 물씬 풍겨온다.
나이가 어려 보여서 어설플까봐 조금 걱정했었는데 기우인 듯하다.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들었는데 그런 경우인가?
나는 갑옷을 벗어 상처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를 리자드맨의 손톱에 찔렸습니다. 그리고 그 윗부분도 좀 아픈 게 갈비뼈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환부 외에 다른 특이사항은 없나요? 중독 증세가 보인다든지.”
“예. 말씀드린 부분 외에는 별 이상 없습니다.”
“으음.”
그녀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상처를 꼼꼼히 살폈다.
하지만 갈비뼈는 눈으로만 살필 수 있는 부위가 아니었기에 손가락으로 가슴 아랫부분을 누르며 물었다.
“아픈가요?”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다. 단번에 가장 심각한 부분을 찾아낸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실력에 조금 감탄하며 대답했다.
“오, 아픕니다.”
“이쪽은요?”
“거긴 괜찮은 것 같습니다.”
“으음.......”
그녀가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는 여러 부위를 각기 다른 강도로 쿡쿡 쑤셔대기 시작했다.
“아픈가요? 아픈가요? 여긴? 여기도 아픈가요? 이쪽은 어떠세요? 이래도 아픈가요? 아프죠? 얼마나 아픈가요?”
미친!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고수가 혈도를 점하는 줄 알았다. 이따위로 쑤셔대면 멀쩡한 곳도 아플 것이다.
상처를 자세히 파악해야 과다치유로 인한 신성력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건 좀 과한 감이 있다. 혹시 일부러 상처를 악화시켜서 치료비를 더 받아내려는 수작이 아닐까?
진찰 과정은 광적이었지만, 다행히 진단은 정상적으로 내렸다.
“뼈가 부러진 것 같지는 않네요. 금이 간 정도? 자상은 위험할 뻔했어요. 조금만 더 깊었으면 내장까지 닿았거든요. 이 정도에서 그쳤길 참 다행입니다. 다 세르시아님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이겠지요.”
다 좋은데 마지막 말은 조금 미심쩍었다.
체인 메일과 갬비슨이 보살펴준 건데...?
정말 신이 날 보살폈다면 아예 다치지 않았어야 함이 옳은 것이 아닌가. 내가 교인이 아니라 반만 보살핀 건가?
물론 이런 불경스러운 의구심을 겉으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세르시아 교단은 권세가 막강하다. 케른햄 같은 볼품없는 도시에도 교회를 세울 정도니까.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신성 모독이니 뭐니 하며 광분한 신도들에게 붙잡혀 산 채로 화형 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 눈앞의 이 어린 사제도 상처 입은 내 갈비뼈를 마구 쑤셔대는 광기를 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맞장구를 쳐줬다.
“오오... 역시 세르시아님께서는 무척이나 자비로우십니다.”
“아아, 그럼요. 자신을 섬기지 않더라도 희망을 품은 존재라면 늘 굽어살피신답니다? 후훗. 그럼, 치료를 시작할게요.”
그녀가 자애롭게 웃으며 상처에 손을 갖다 댔다.
─위이잉.
보아라.
백색 광휘를 내뿜으며 빛나는 사제의 손을.
서서히 아물어가는 상처를. 멎어드는 고통을...!
저 신성력을 보건대, 나의 종교관을 떠나서 저 여자가 믿는 신이라는 건 실존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치료비가 좀 비싸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가 회복마법사에게 치료받는 것보다는 저렴하다. 싸게 치료해준다는데 그들이 섬기는 신에 관한 말 몇 마디 못 들어줄 이유는 없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치료가 끝났다. 그녀가 이마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을 훔치며 말했다.
“휴. 상처는 다 아물었어요. 그래도 이미 흘린 피는 어쩔 수가 없으니 오늘은 무리한 활동을 삼가시는 편이 좋아요.”
“감사합니다. 치료비는 얼마죠?”
“3실버입니다.”
“......!”
오늘 피 흘리며 번 돈이 1실버인데!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숨이 턱 막혔다.
분명 치료를 받았음에도 가슴이 다시 아파온다. 일을 하고도 엄청난 적자가 발생했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기 때문이리라.
“여, 여기 있습니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은화 세 닢을 건넸다.
***
다음날.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모험가 길드는 일감을 찾아온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먼저 게시판으로 가서 할만한 의뢰가 있는지 살폈다. 아무리 돈이 급하다고는 해도 어제처럼 또 다치면 손해였기 때문에, 리자드맨 토벌보다는 난이도가 낮은 의뢰 위주로 알아볼 생각이다.
‘푸른 슬라임의 핵 채취라. 이건 너무 보수가 적고... 비야른디라콩거 토벌? 뭔 이름이 이따위야? 흠. 코볼트는 팔 만한 부산물이 안 나오는데....’
어떤 의뢰를 선택해야 적게 일하고 많이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이었다.
“어이! 억울한 마법사!”
“엘!”
“여기다 여기! 고장난 마법사.”
셋 다 나를 칭하는 단어다. 나를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몇 없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들이었다.
“내가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말랬지.”
나는 자연스레 그들이 자리하고 있는 테이블로 다가가 합석했다.
“크흐흐. 우리 마법사님께서 왜 또 아침부터 저기압이시지?”
“리자드맨에게 맞아 배에 구멍이 났다던데, 그래서인가?”
“아니야. 내 생각엔 진짜 마법사를 만난 것 때문에 배가 아파서 그런 것 같군.”
말하는 품새뿐 아니라 생긴 것도 비슷한 이 녀석들은 삼형제다. 내가 이쪽 세상 물정을 잘 모르던 시기부터 알고 지낸, 친구 비스무리한 녀석들이다.
‘도린’이라는 사막 지대 출신인데, 그쪽은 출신지를 이름에 넣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셋 다 이름이 비슷한 관계로, 나는 대충 뭉뚱그려 ‘도린 형제’라고 부른다.
예전에 내가 한창 마법을 배우는 방법을 수소문하고 다닐 때, 도린 형제가 그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내가 마법사라 그렇다’라고 대답했다가 한껏 비웃음을 산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그 이후로 다시는 누구에게도 내가 마법사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는다.
“뭐 그런 얘기는 됐고. 그보다 웬일이냐? 너희가 이렇게 일찍 길드에 다 나오고.”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로군.”
“리자드맨에게 머리도 얻어맞은 것인가?”
“당연히 일 때문이다!”
늘 의문이다.
한 명이 말해도 되는 걸 왜 굳이 셋이 나눠서 말하는 걸까.
“무슨 일? 뭐 던전이라도 발견됐나? 아, 정신 사나우니까 한 놈이 대표로 대답해.”
“.......”
“.......”
“아주 좋은 의뢰가 하나 있지. 크흐흐.... 관심 있나? 너라면 끼워줄 수도 있다.”
상당한 흥미가 동했다. 탐욕어린 저 웃음을 보니 돈 냄새가 솔솔 나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인데?”
“그건 말이지.... 커흠. 아침이라 그런지 목이 칼칼해서 말이 잘 안 나오는군.”
“아오.... 여기 맥주 한 잔, 아니 석 잔!”
한 잔을 주문하려다 옆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는 다른 형제들을 보고 정정했다.
모험가 길드에서 웬 술을 파냐 싶지마는, 이런 녀석들 때문에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밑바닥에서 구르는 모험가들이 고상하게 차를 즐기지는 않으니까.
아무튼 도린 형제의 입은 주문한 맥주가 나오고서야 다시 열렸다.
“크으! 이제야 목이 좀 풀리는 것 같군.”
“그럼 빨리 말해봐. 무슨 일이냐고.”
내 닦달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은 잔을 끝끝내 비웠다.
“꺼억- 그건 바로 고블린 토벌이다.”
“오, 고블린? 정말?”
“그렇다.”
“정말 고블린이라 이거지?”
“그렇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저기 게시판에만 가도 몇 개나 붙어있고, 하루에도 여러 번 의뢰가 들어오는 그 흔해빠진 고블린 토벌을 말하는 게 맞다는 거지?”
“그, 그렇다....”
이 새끼가? 감히 고블린 따위로 나를 낚아?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검집에 손을 가져가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너희 삼형제의 배를 갈라 맥주를 꺼내고 환불받을 것이다!!!”
“자, 잠깐! 진정해라 마법사!”
“그, 그래. 일반적인 고블린 토벌이 아니다!”
“최소 실버 단위로 벌 수 있다! 정말이다!”
뭣! 최소 실버? 리자드맨 토벌보다 더 번다고?
나는 급격히 안정을 되찾았다.
“......어디 한번 자세히 얘기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