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마법사(1)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의 화살이 녹색 괴물을 향해 쇄도한다.
─화르륵!
맹렬한 기세를 자랑하며 날아간 화살이지만, 목표했던 대상을 맞히지 못하고 허공을 갈랐다.
저 멀리서 마법을 쏘아보낸 마법사의 얼굴이 짜증으로 물든다.
마법이 빗나간 게 벌써 다섯 번째다.
“놈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라니까!”
그가 리자드맨을 에워싸고 있는 모험가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하,하지만 이건 원래 약속과는 다른... 허업!”
도끼를 들고 있던 모험가 하나가 뭐라 항변하려 했지만, 미처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휘둘러지는 리자드맨의 날카로운 손톱을 피하기 위해 뒷걸음질 쳐야했기 때문이다.
“피하지만 말고! 달라붙어서 어디 한 군데 찌르든, 한 대 맞고 버티든 해서 잠깐이라도 발을 묶으란 말이야! 그래야 내가 마법을 맞출 거 아니야?”
마법사가 답답하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쳤다.
“.......”
“.......”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리자드맨을 포위하고 있는 네 명의 모험가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마법사가 요구하는 대로 놈의 움직임을 봉쇄하려면, 한 번쯤은 달려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눈앞에 두 발로 서있는 이 육중한 도마뱀은, 인간보다 두 배 정도는 체격이 컸다. 한낱 C급 모험가에게 이런 체급 차이를 극복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동시에 달려든다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없다.
다만 부상당할 위험이 따를 뿐.
그렇게 되면 며칠간 일을 못하거나, 비싼 값을 내고 치료를 받아야한다. 어느 쪽이든 하급모험가로서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 부담감이 그들을 우물쭈물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한심한 녀석들. 그렇게 몸 사리며 여유부릴 시간이 없단 말이야! 빨리 달려들어!!!”
어느새 다시 캐스팅을 끝마친 모양인지, 지팡이를 치켜들고 있는 마법사의 머리 위에 새로운 불의 화살이 떠있었다.
그는 굉장히 조급해보였다. 아마도 마나가 부족하다거나 남은 마법의 사용횟수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마법사의 다급한 외침에도 불구하고 모험가들이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을 때,
─휙!
돌연 리자드맨의 고개가 마법사를 향해 꺾였다.
버럭버럭 소리 지르고 있는 저 마법사가 이 인간들을 지휘하고 있는 개체라는 걸 느낀 것이다.
“어, 어... 못 오게 막아!!!”
당황하는 마법사.
그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 리자드맨이 도약하기 위해 뒷다리에 힘을 주는 순간─
─촤악!
리자드맨의 등 뒤에 있던 모험가 하나가 빈틈을 노리고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크에엑!!!”
리자드맨이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놈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다리를 벤 건방진 인간을 향해 팔을 힘껏 휘둘렀다.
검을 든 모험가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방어 자세를 취하며 몸을 뒤로 내뺐으나, 충분하지는 못했다.
그는 퍽! 하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무의미한 행동은 아니었다.
─화르륵!
그가 잠시 발을 묶어둔 사이에, 마법사의 마법이 리자드맨에게 성공적으로 적중한 것이다.
몸에 불이 붙어 정신을 못 차리는 리자드맨을 향해 몇 번의 마법이 더 날아들었고, 그 후엔 나머지 모험가들도 달려들어 난도질을 해댔다.
─푸슉! 퍼억!
그렇게 놈을 마무리한 모험가들은, 언제 그랬었냐는 듯 얼굴에서 불만을 지워버리고 마법사를 향해 굽실거렸다.
“훌륭한 마법이었습니다.”
“역시 B급 모험가!”
“헤헤. 다음에도 마법사님과 함께 의뢰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을 대신해 몸을 날렸던 동료는 저 뒷전에 둔 채로.
***
“시팔. 억울하네.”
억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상처를 살폈다.
복부가 붉게 물들어있었다.
저 흉악했던 리자드맨의 손톱이 기어코 나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다.
체인 메일과 갬비슨이라는 근본 있는 두 겹의 갑옷 조합을 일격에 뚫어낸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이미 사체가 된 녀석을 칭찬하는 건 전혀 생산적이지 못한 짓이다.
그래도 갑옷이 나름대로의 역할을 해준 덕분에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아보였다. 적당히 지혈을 하고 도시로 돌아가 치료를 받으면 될 것 같다.
치료비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온다.
뭔가 감정적인 고통이라기엔 이상할 정도로 구체적인 통증이 느껴져 가슴을 눌러봤더니 과연, 갈비뼈도 몇 대 나간 모양이다.
“하아... 뭔 마법을 저따위로 써?”
일이 이렇게 틀어질 줄이야.
애당초 나를 포함한 C급 모험가는 토벌하러 오가는 길에 만나는 하급 몬스터들이나 처치하는 게 주된 역할이었다. 그런 몬스터들에게 마법을 낭비하기는 아까우니까.
그리고 리자드맨과 싸울 경우, 마법을 캐스팅하는 동안 리자드맨이 마법사에게 달려들지 못하도록 시선만 끌어주는 정도. 딱 이 정도였다.
계획대로 진행됐으면 쌩쌩한 리자드맨과 직접 붙을 일 따위는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출발 전 자기만 믿으라며 큰소리치던 것과 달리, 마법을 다섯 번이나 날려먹을 정도로 마법사의 적중률이 형편없었던 것이다.
물론 일을 하다보면 계획과는 달라질 때도 있기 마련이지만, 남의 잘못으로 인해 내가 피해를 입는 것은 늘 빡치는 일이다.
그렇다고 가서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마법사인 B급 모험가고, 나는 C급 모험가니까.
억울함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을 때, 도끼를 든 사내가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은가?”
전에도 몇 번 같이 일을 해본 적이 있는 헵슨이었다.
“아, 헵슨. 마법사에게 굽실거리는 일은 다 끝내셨나 봐요?”
“하하. 멀쩡한 모양이군. 너무 그러지 말게. 자네도 잘 알잖나. 마법사와 친분을 쌓아두면 이번처럼 보수가 높은 의뢰를 수행할 기회가 늘어난다는 걸 말이야.”
‘실패할 뻔 했는데 기회는 무슨.......’
그는 나의 비아냥거림에 아랑곳하지 않고 넉살좋게 웃으며 옆에 털썩 앉았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억울했나.”
“......?”
“우리가 부상당한 자네를 제쳐두고 마법사에게 먼저 달려간 것 말일세. 지금 자네의 표정에 억울함이 가득 차있군그래.”
그걸 말이라고? 당연히 억울했다.
물론 마법사의 실력이 기대 이하였고 그가 무리한 요구를 했다지만, 리자드맨을 포위하고 있던 모험가들 중 누구도 나서지 않았었다.
만약 계속 그렇게 몸을 사리느라 머뭇거리는 사이에 마법사의 마나가 바닥났다면, 임무 실패와 동시에 피해도 더 커졌을 수도 있다. 아니, 그 정도로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다.
마법사가 공격받아 목숨을 잃기라도 했다면?
그대로 우리의 모험가 인생은 끝장이다!
마법사와 동행해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중요한 인력인 마법사는 죽게 놔두고 지들끼리만 살아 돌아온 비겁한 C급 모험가에게 누가 의뢰를 맡기겠는가.
누구라도 나서지 않는다면, 다같이 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단 말이지.
그런 상황에 내가 나서서 헌신적인 몸빵을 해줬으면, 전투가 끝나고 내게 감사인사를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게 웬걸.
다들 전투가 끝나자마자 마법사에게 달려가 알랑방귀나 뀌고 있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마법사의 실력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주제에 말이지.
이건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
내가 진짜로 억울한 부분은 그게 아니었다.
“뭐 그렇긴 한데,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럼 역시 치료비 때문인가. 다른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보태줄 수도 있다네.”
헵슨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가죽주머니에서 동화를 몇 닢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보였다.
“그것도 아닙니다. 아, 치료비를 안 받겠다는 소리는 아니니, 그건 감사히 받도록 하죠.”
나는 냉큼 돈을 낚아챘다.
20쿠퍼였다. 치료비에는 턱없이 모자라겠지만, 이번 의뢰의 보수가 80쿠퍼라는 것을 감안하면 제법 성의를 보였다고 느껴진다.
낚아챈 돈을 고통 속에 신음하며 주머니에 쑤셔 넣고 있으니, 헵슨이 의아한 듯 물었다.
“치료비 때문도 아니라고? 흠. 그럼 대체 무엇이 그렇게 자네를 억울하게 만드는가?”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이유를 말해봤자 믿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저 멀리서 거들먹거리고 있는 마법사를 바라봤다.
마법사. 그래, 마법사. 저게 내가 억울한 이유다.
비록 마법을 쓰지는 못하지만, 나도 마법사였다.
그것도 성장 잠재력이 매우 높은 마법사.
마법을 쓰지 못하는데 어떻게 마법사냐고?
그야, 캐릭터를 생성할 때 그렇게 설정했었으니까.
***
“어머, 생각보다 일찍 끝내셨네요?”
지친 몸을 이끌고 모험가 길드로 들어서니 접수대에 앉아있던 여직원이 상큼하게 미소 지으며 우릴 맞이했다.
“마법사님 덕분에 수월했지. 대가리를 챙겨왔으니 한번 확인해보시오.”
헵슨이 리자드맨의 대가리가 담긴 자루를 접수대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물론 마법사에 대한 아부도 빼먹지 않았다.
“네에.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길드 직원이 자루를 챙겨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함께 임무를 수행했던 마법사는 자연스레 비어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고, 헵슨과 나머지 모험가들 역시 따라가서 착석했다.
나는 딱히 그들과 함께 앉고 싶지 않았기에 구석진 자리에 있는 테이블에 따로 앉았다.
늦은 오후라 그런지 모험가 길드 내부는 비교적 한산한 편이었다. 굵직한 일은 대개 오전에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런 애매한 시간에는 보수가 적은 자잘한 의뢰밖에 없어서 그렇다.
나는 그런 자잘한 의뢰도 마다하지 않는 편이지만, 지금 몸 상태로 한탕 더 뛰는 것은 무리였다.
“엘 씨!”
역시 의뢰를 수행할 때에는 의뢰 자체의 난이도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사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엘 씨!”
큰소리만 치던 허접 마법사야 그렇다 쳐도, 나머지 C급 모험가들 중에서 나와 합이 잘 맞는 사람이 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을 텐데.
“엘! 엘 씨!!! 보수 받아 가셔야죠!”
아, 나를 부르고 있었군.
어느새 접수대로 돌아와 있는 여직원이 머리위로 동전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내 이름은 엘이 아니다.
한국사람 이름이 엘 일리가.
캐릭터명도 따로 있긴 한데 ‘lI1llIlll’이다.
뭔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바코드처럼 보이고 싶어서 대소문자와 숫자를 조합해 저렇게 지었을 뿐이다.
하지만 저대로 ‘엘아이일엘엘아이엘엘엘’이라고 부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앞글자만 따서 ‘엘’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 여기. 80쿠퍼에요. 이번에도 절반은 길드에 맡기실 건가요?”
“아뇨. 오늘은 치료를 받아야 해서 다 가져가려고요.”
대다수의 하급 모험가들은 그날 번 돈을 그날 바로 탕진해버리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지만, 나는 절실한 목표가 있기에 착실히 모으고 있다.
다만, 모은 돈을 전부 소지하고 의뢰를 수행하러 나갔다가 도적떼라도 만나면 낭패기 때문에, 적당한 금액을 제외하고는 길드에 맡겨두는 편이다. 떼일 염려도 없고 내가 머물고 있는 싸구려 여관방 보다 훨씬 안전하니까.
접수대 앞에 서서 수령한 돈을 가죽주머니에 넣고 있으니, 뒤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이름이 엘 이었나?”
그 허접 마법사였다. 그도 접수대에 와서 보수를 수령했다. 내가 받은 구릿빛 동전과는 빛깔부터가 다른, 탐스러운 은화였다.
“C급 모험가 치곤 괜찮더군. 다른 녀석들과 달리 판단도 빠르고. 수고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의뢰에 데려가주지.”
그가 선심 쓰듯 말했지만 내 귀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배에 또 구멍이 뚫리는 건 사절이니까. 그저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탐스러운 은화 다섯 닢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나도 마법을 쓸 수 있었다면 저렇게 받았을 텐데.’
아쉬움이 물밀 듯 밀려왔지만 계속 쳐다본다고 해서 저 돈이 내 돈이 되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대충 인사를 하고 길드 밖으로 나왔다.
슬슬 해가 넘어가려는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잠시 자리에 서서 하늘을 멍하니 바라봤다.
“아아,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은 정말이지....”
정말이지 상처 입은 내 복부를 연상시켜서 몹시 서러워졌다.
게임 속에 떨어지고,
마법을 쓰지 못해 칼질이나 해대고,
그러다 다친 것 등등.
지난 4년 동안 겪은 서럽고도 억울한 많은 일들이 떠올랐지만,
“...이제 얼마 안 남았다.”
내게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