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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199화 (199/216)

199화. Episode. 62 천국과 지옥, 떠난 자와 남겨진 자들 (2)

“미안하다.”

짤막한, 그리고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째서인지 모든게 비현실적이었다.

나를 향한 동료들의 시선도, 육신을 좀먹는 어둠의 한기도 전부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것이 내가 인간의 감정 따윈 이해하지 못하는 ‘주신’이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몸에 오직 어둠만이 남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따위 정신 상태로 마지막 인사를 마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겐 전우, 누군가에겐 가족, 누군가에겐 주군.

고된 여정을 함께한 저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그러한 인간이었다.

마지막 인사는 신격이 아니라 인격으로 끝마쳐야 했다.

때문에 나는 비대해진 신격을 뒤로 미뤄 놓았다.

어둠에 물들어 가는 일개 인간으로서 동료들 앞에 섰다.

“미안하다.”

그렇게, 나는 나로서 동료들에게 재차 사과했다.

“미리 말하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말할 기회는 많았다.

하지만 나는 미루고 또 미루었다.

혹여 그들의 만류에 이 얄팍한 인간의 마음이 흔들릴까 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뜻을 밝힌 나는 정말이지 욕을 먹어도 싼 망나니였다.

“나는 어둠으로 지옥을 만들 거야. 난 악을 벌하는 필요악이 되어 세상의 뒤편에서 평화에 이바지할 거야. 그래서 너희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고 싶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머리로는 이해한다 해도 가슴으론 부정하고 싶겠지.

그러나 결말은 이미 오래전에 정해진 뒤였다.

“시끄러워, 리하르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아니야.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

모리츠는 못들을 것이라도 들은 것처럼 세차게 고개를 저어 댔다.

부릅뜨인 눈 속엔 불신과 불안, 그리고 원망이 가득했다.

“그럼 우리는? 우린 그저 두 눈 뜬 채로 네가 희생하는 걸 보고 있으란 거냐? 그게, 고작 그게 너와 함께 싸운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냐고!”

몰아쉬는 그 숨결에 울분이 차올랐다.

“뭐 하고 있어! 너희들도 저 녀석 좀 말려 봐!”

모리츠가 대뜸 아론과 기드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음성은 차라리 애원에 가까울 만큼 물기에 젖어 있었다.

“……당신은 최악입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저희들의 심정을 헤아려 주셨다면, 적어도 지금에서야 이리 말씀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아론이 씹어 뱉듯이 중얼거렸다.

그 충성스런 사내가 이렇게나 험악한 표정을 내게 지어 보이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최악이라.

그래.

역시 난 최악의 망나니인가 보다.

그 별명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고, 성자가 됐음에도 이 육신의 천성은 변하질 않은 모양이라며 속으로 자조했다.

“…….”

늙은 노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주름 자글자글한 눈가에 사무치는 감정이 맺혀 있었다.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고 싶으시다고요.”

기드는 그렇게 나를 바라만 보다, 힘겹게 입을 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시선을 돌려 다른 이들을 눈에 담았다.

“호르교는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너희들이 호르교를 잘 이끌어 줬으면 해. 내가 없어도.”

한때 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이종족이 호르 아래 규합했다.

오랜 시간 대륙을 갈라 분쟁을 거듭하던 기사와 마법사가 호르 아래 규합했다.

나는 이토록 힘겹게 일궈 낸 평화가 다시금 한때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죄악감에 괴로워하는 다섯 피조물들이 보였다.

“내가 가진 빛을 저 다섯에게 나눠 주었으니, 앞으로는 저들이 호르다.”

이제는 호르교도 나의 것이 아니다.

대륙의 신도들이 올리는 기도는 나에게 향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의 찬양과 경외는 나에게 닿지 않을 것이다.

“그 말씀은 설마……!”

기드가 당장 비명을 지를 것 같은 얼굴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내 말의 저의를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았다.

“그래. 너희들은 만인에게 호르가 천국을 만들고 통치한다고 밝혀 다오. 세상을 어지럽혔던 악은 지옥에 처박혀 죄인들을 처벌하는 것으로 속죄를 거듭하게 되었다 전해 다오.”

다섯 피조물의 어둠을 품었다는 것은, 내가 곧 그들이 받아야 할 멸시와 증오까지 전부 끌어안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당연했다.

세상 천지에 찬양받는 필요악이란 존재할 수 없다.

모두가 멸시하고 두려워해야 진정한 필요악이었다.

진짜 호르는 사실 지옥에 있네 마네,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믿음의 방향에 혼선을 안겨다 줄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호르교가 만연한 세상에서 지옥의 신을 숭배하는 이단이 탄생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아, 아아…… 정말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대체 어떻게 저희에게 그런 지시를 내리시는 겁니까!”

결국 기드가 참았던 절규를 터트리고 말았다.

연신 숨을 몰아쉬던 모리츠가 악을 쓰며 달려들다 주저앉듯 쓰러졌다.

그들이 표출하는 감정이 칼날이 되어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입힌 상처에 비하면 이런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미안하다. 가장 큰 상을 받아야 할 너희들이건만, 내가 줄 수 있는 건 상처밖에 없는 것 같구나.”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내가 내뱉은 몇 가지 당부조차 그들에게 상처가 되었다.

나는 그들더러 제 입으로 동료를 욕받이로 삼게 하라 말했으며, 원수를 찬양의 대상으로 삼게 하였고, 그것이 영원토록 이어지게 이끌라 명했다.

정말 지독히도 잔인했다.

“죄를 저지른 건 저 빌어먹을 괴물들입니다! 지옥에 처박혀야 할 놈도, 영원히 증오받아야 할 놈도 모두 저것들이란 말입니다!”

아론이 눈에 불을 켰다.

그 충직한 기사는 창을 치켜들고 다섯 호르를 향해 살기를 피워 올렸다.

그러자 공기가 급변했다.

이를 악물고 감정을 추스르던 호르의 군단이 저마다 무기를 쥐어 들었다.

“맞아. 저것들은 호르의 이름을 이을 자격이 없어. 지옥의 밑바닥은 네가 아니라 저 녀석들이 가야만 한다.”

“바텐베르크가 섬기고자 한 것은 저런 괴물들이 아니다. 감히 이 아비를 기만한 것이냐.”

지크도, 루드비히도, 방주에 올라탄 알리사와 앨런마저 기세를 끌어올렸다.

당장 다섯 피조물을 참살하고 말겠다는 군단의 의지가 천국을 뒤덮었다.

『…….』

나의 이름을 이어받은 다섯은 그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면 베이고, 마법을 쏘면 쏘는 대로 맞겠다는 내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그 다섯은 죽음을 반겼다.

고작 죽음으로 자신의 죄를 감면받고 싶어 했다.

“이들을 용서할 생각인가?”

그래서 나는 동료들에게 물었다.

“이미 죽음보다 더한 벌을 내렸다. 그런데도 너희는 그저 이들이 죽기만을 바라는 건가. 겨우 맞춘 균형이 다시 어그러지기를 바라는 거냐.”

“리하르트! 우린 네가 희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거다!”

모리츠의 대답에 문득 쓴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희생하는 게 아니야.”

진즉에 해야만 했던 것을 이제야 하는 것일 뿐이니, 희생이라는 고상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너희를 설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사로운 감정에 휩쓸려 일을 그르치려 하지 마.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야.”

힘을 담아 말했다.

주신의 격을 이용해 그들의 영혼에 나의 뜻을 억지로 욱여넣었다.

치사하다 욕해도 좋다.

나를 원망하고 증오해도 좋다.

겨우 그것으로 나의 동료들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다.

“이제 작별해야 할 때가 왔구나. 다른 녀석들에게도 안부를 전해 다오.”

나는 첫 번째 피조물에게 눈짓을 보냈다.

몇 번이나 망설이던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이내 그 손끝에서 휘몰아친 빛이, 이곳에 거하기를 허락받지 못한 자들을 감싸 안았다.

이곳은 천국.

선하게 살아온 자들을 위해 내가 마련한 세상.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 이곳은 훗날 나의 동료들이 누구 하나 빠짐없이 당도할 세상이다.

하지만 지금의 그들이 거하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다.

“리하르트……!”

빛에 휩싸인 동료들의 모습이 흐릿해졌다.

그들은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있었다.

“죄 짓고 살지 마라. 내 손으로 너희를 벌하는 것은 무척이나 끔찍한 일일 테니.”

“아, 아아……!”

빛살 너머 허우적거리는 손짓이 절박했다.

그들을 보며, 난 인사를 건넸다.

“즐거웠다. 리하르트로서도, 호르로서도.”

◈          ◈          ◈

“…….”

거의 다 끝났다.

텅 빈 자리를 보니 그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은 몹시 슬퍼할지언정 내 당부를 어기지 않을 것이고, 천국의 죄인들은 평생을 봉사할 것이다.

검성의 명맥도 나로부터 끊기지 않도록 수를 써 놓았다.

그러니까.

이젠 정말 끝마쳐야 할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시는 겁니까.』

하얀 거인이 물었다.

“그래. 천국에 어둠이 있어서야 안 될 일이지.”

눈을 감았다.

감은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곳은 천국보다 아래, 인간들이 사는 세상보다도 아래, 지옥이 있어야 할 가장 아래의 자리였다.

그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을 보며, 주신이 되어 얻은 권능을 발동했다.

천지창조(天地創造).

영겁 동안 타오를 지옥불의 땅이 만들어졌다.

영겁동안 얼어붙을 하늘이 만들어졌다.

어떤 곳은 극한의 한기가 몰아치고, 또 어떤 곳은 칼날의 비가 쏟아졌다.

죽어도 죽지 않으며 끔찍한 고통만이 반복되는 죄인들의 집행장.

필요악을 빌어 비로소 지옥이 완성되었다.

『조금 전 인간들은 틀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결코 이 결말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벌받아 마땅한 것은 저희입니다.』

그 세계를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칼고스의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차라리 빛을 품은 상태로 지옥에 가겠다고.

그곳에서 영원히 고통받겠다고.

“너희들이 그리 생각하기 때문에 더더욱 내가 가야만 하는 것이다. 죄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가장 기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최악의 형벌이 아니더냐.”

그런 그에게 나는 말했다.

“후회하고 또 후회해라. 스스로를 혐오해라. 만인에게 찬양받는 자신을 보며 환멸감에 몸부림 치거라. 그리고 빛으로서 봉사해라.”

그동안 가장 낮은 곳에서 난동을 부렸으니, 가장 높은 곳에서 죄를 뉘우쳐라.

그 말을 끝으로 나는 손을 들었다.

이젠 나도 가야 할 때였다.

촤륵.

손목에 감겨 있던 사슬이 풀어헤쳐졌다.

내게 물들어 버린 사슬의 색이 유달리 새까맸다.

드라우프니르, ‘떨구는 자’라는 이름의 아티팩트가 신물이 되어 스스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새까만 사슬이 내 온몸을 휘감는다.

나를 뱀처럼 포박한 사슬의 끝단이 천국 아래, 지옥까지 닿았다.

『아아……!』

촤르르륵.

다섯 피조물의 절규가 울려 퍼질 적에, 나는 가장 아래의 세계로 끌어내려졌다.

그리하여 ‘리하르트’라는 육신에 할당된 사명은 끝을 맺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주신이 된 직후에서야 떠오른 기억이 머릿속에 재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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