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Episode. 59 울부짖는 (2)
방주가 깨어진 하늘을 거슬러 올라, 역천(逆天)을 범했다.
활짝 열린 균열에선 검고 붉은 마수들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호르의 군단은 그 끔찍한 물살에 맞서 속도를 높였다.
“크가아악!”
방주의 선두에 선 채로 악연을 휘둘렀다.
빛과 어둠을 꽉 머금은 검신이 역겨운 살덩이를 가르고 뼈를 절단했다.
놈들은 고작해야 마계의 주민이었다.
저쪽 세상에는 널리고 널린, 이쪽으로 따지면 들짐승에 불과한 미물들.
하지만 그 머릿수가 정말이지 폭우 내리는 날의 빗줄기처럼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빛을 더욱 밝게 비추었다.
세계수의 목재로 이루어진 선체가, 호르교의 상징이 그려진 돛이, 뜨거운 태양처럼 형형히 빛났다.
저들은 부나방이라면, 우리는 놈들을 홀리는 불빛이었다.
저들은 폭우라면, 우리는 비를 막아 주는 우산이었다.
“최대한 많은 놈들을 처리해라!”
“포문을 열어라!”
각각의 배에 나뉘어 오른 기사와 마법사들이 목청을 높였다.
쾅!
방주에 탑재 된 철포가 연신 철구를 뿜어냈다.
신성력 가득한 창칼이 바쁘게 움직였다.
균열에서 쏟아져 내리는 어둠이 짙어질수록, 우리의 빛도 그만큼 강해졌다.
그 어떤 마수도 백야의 빛을 가릴 순 없었다.
가장 앞에서 가장 많은 적들을 베어 내던 나는,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대륙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감회가 새로웠다.
“……후.”
멀리서 보면 이렇듯 끝에서 끝까지 이어진 하나의 대륙일 뿐인데, 인간들은 지금껏 북이니 남이니 갈라지지도 않은 땅을 나뉘어 대립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나는 크게 검을 흩뿌리고는 슬쩍 옆을 보았다.
아론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만하다는 듯,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외쳤다.
“제가 살면서 겪은 밤 중에 오늘이 가장 밝습니다!”
저 위에선 이다지도 짙은 어둠이 쏟아지는데, 그 아래엔 빛이 가득하다는 것이.
그 빛이 북대륙, 남대륙 할 것없이 온 세상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이 사무치게 다가왔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크게 실감은 나지 않았던.
고단한 여정의 결과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크게 뛰었다.
나는 슬그머니 웃었다.
호르교라는 등불로부터 번진 불씨가 마침내 온 대륙의 횃불을 밝히고 있었다.
어찌 기껍지 않을까.
검을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흐읍!”
나는 발을 구르며 허리를 비틀었다.
온몸의 탄력을 고스란히 전해 받은 팔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눈앞을 빼곡히 메운 검고 붉은 홍수의 물살이 쩍- 하고 갈라졌다.
세 척의 방주가 갈라진 홍수를 쉼 없이 거슬러 올랐다.
“리하르트!”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한참 적을 썰어 대던 모리츠가 벼락처럼 외쳤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오고 있다는 경고성이었다.
“알고 있어.”
이 처절한 마기는…… 아무렴.
모를 수가 없지.
우웅, 몸을 떨어 대는 악연의 검자루를 꽉 잡아 쥐었다.
『?? ?? ?? ?? ??-!!』
그보다 한 박자 늦게 거대한 포효가 하늘을 집어삼켰다.
“베노모스.”
호르의 두번째 피조물이자 이제는 하나 남은 마계의 군단장.
그 불경한 이름을 중얼거리며 위를 올려다보았다.
연신 마수들을 쏟아내던 균열의 표면이 거칠게 일렁였다.
마치 그 존재를 게워 내는 게 꽤나 부담스럽다는 듯이.
그건 우리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다.
“속도를 높여라! 전속력으로 돌파한다!”
쿠우웅!
방주의 후미에 달린 추진 장치가 폭발하듯 불을 뿜어냈다.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방주가 가속에 가속을 더했다.
나는 그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드라우프니르의 사슬을 모두 풀어헤쳤다.
『?? ?? ?? ?? ??-!!』
점점 더 가까워지는 처절한 포효.
등골을 타고 흐르는 소름을 척도 삼아 속으로 숫자를 셌다.
이윽고 놈이 균열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수천 년 묵은 분노를 쉴 새 없이 토해내는 아가리.
능히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한 네 쌍의 날개와 여덟 개의 꼬리.
다만 지금은 개처럼 질질 끌려갈 덧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촤르륵-
여덟 사슬을 매단 별들이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낸 놈을 옭아맸다.
“안녕. 마중 나와 줘서 고맙다.”
◈ ◈ ◈
내가 베노모스를 묶기가 무섭게 방주는 균열 속을 파고들었다.
속이 뒤집힐 듯 격한 현기증이 일었다.
그 직후, 우리의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검게 죽은 땅을 즈려 밟으며 광란의 괴성을 내질러 대던 마수들이 방주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끔찍한 건 마계 그 자체였다.
그저 이곳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영혼이 더러워질 것만 같았다.
“큭……!”
용맹하던 기사들이 신음을 흘렸다.
마법사들이 입술을 짓씹으며 공포를 외면했다.
그나마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건 공포를 공포로 받아들이지 않는 오크들이었다.
"결계를 펼쳐라!”
알리사의 외침에 마법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마력장을 펼쳤다.
요새화를 끝마친 방주의 결계가 조금이나마 마기를 막아 주었다.
다만 고작 그것에 안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쿠구궁!
기세 좋게 나타났던 베노모스가 검게 죽은 땅 위를 볼썽사납게 굴렀다.
그 거체에 깔린 마수들이 펑펑 터져 나갔다.
안개처럼 일대를 장악하는 피와 죽음의 냄새.
나는 숨을 골랐다.
지독한 살기가 피부를 저며 왔다.
울부짖는 존재 베노모스.
놈이 눈만 부릅뜬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놈을 속박한 사슬이 가닥가닥 끊어질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붉게 충혈된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절하고 흉폭하던지, 기사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제2군단, 3군단은 균열 주변의 마수들을 처리한다!”
“마공포를 장전해라!”
알리사와 앨런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명령을 내렸다.
나도 잠시 전황을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제1군단도 함께한다. 전원, 전투 준비!”
여기 있는 마수들만 모조리 처리해도 바깥세상의 부담이 수배는 줄어들 터였다.
베노모스도 문제이기는 했으나, 좀 더 넓게 보면 마수들에게 전력을 집중하는 게 옳았다.
“허면 저 괴물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사슬로는 오래 묶어둘 수 없을 겁니다.”
기드의 말엔 우려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곤 배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별 한 자루가 나를 받쳐 주었다.
“루드비히 경, 스승님.”
두 번째 방주에 서 있던 루드비히와 발락이 나를 보았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호승심 가득한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저와 함께 저놈을 처리합시다.”
“몸을 풀기엔 적당한 상대로 보이는군.”
“좋구나!”
그렇게 세 명의 선수가 출전하나 싶을 때였다.
“취익, 대단한 인간 전사-!!”
세 번째 방주의 난간을 우악스레 붙잡은 휴거가 대뜸 소리를 질러대었다.
“나도 끼워 주시오!”
어째선지 그 붉은 얼굴에 분노가 일렁였다.
“저 드래곤을 닮은 꼬락서니를 보니 짜증이 나는구려! 도저히 가만히 있지 못하겠소!”
휴거가 묻지도 않은 이유를 떠들어 댔다.
하지만 썩 납득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드래곤과 휴거의 악연은 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
뭐, 휴거 정도면 이 멤버에 끼워도 마냥 부족한 전사는 아니었다.
◈ ◈ ◈
콰가가-!
세 척의 방주가 허공 위에서 폭격을 쏟아부었다.
마법사들의 고절한 마법과 방주라는 결전 병기가 가진 살상력이 가감 없이 빛을 발했다.
땅이 뒤집어지고 대기가 터져 나갔다.
저 하늘까지 팔이 닿지 않는 마수들은 그저 아가리를 벌리다 죽을 운명이었다.
비행 능력이 있는 마수들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방주에는 내로라하는 기사들이 들끓고 있었으니까.
힐끗 군단을 살핀 리하르트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합류합시다.”
그들의 앞엔 베노모스가 살기를 뿜고 있었다.
당장 드라우프니르의 사슬이 끊어질 상황이라, 리하르트가 황급히 사슬을 풀어냈다.
『?? ?? ?? ?? ?? ??-!』
육신의 자유를 되찾기가 무섭게 거대한 아가리가 리하르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리하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에 하얗게 타오르는 여덟 별이 베노모스의 이빨을 가로막았다.
키르르-
찢어지는 듯한 소음과 함께 광풍이 휘몰아쳤다.
쿵! 쿵!
반드시 통째로 씹어먹고 말겠다는 듯이, 베노모스가 발돋움까지 더해가며 이빨을 들이밀었다.
“너한테 무슨 원수라도 졌더냐. 유독 너에게만 살기를 흘려 대는구나.”
곁에 서 있던 루드비히가 물었다.
때에 맞지 않게 평온한 음성이었다.
“원수지간이라면 원수지간이지요. 그것도 이놈 입장에선 아주 지독한.”
리하르트의 눈빛이 깊어졌다.
떠나간 아비를 향해 분노를 토해 내다 끝내 말조차 잃어버린.
미련하고 폭급하기로는 제일인 녀석.
“그래서 이번에 악연을 끊어 낼 겁니다. 악연으로 말이죠.”
우웅.
마계에 들어선 직후부터 끊이질 않던 악연의 떨림이 더욱 거세졌다.
검 자루를 타고 칼고스의 감정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저를 둘러싼 이 땅의 마기를 반가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제 형제의 목을 취해 흡수할 영혼을 고대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아니면 순전히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리하르트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였다.
“취익! 내가 먼저 가겠소!”
휴거가 도끼를 꼬나들고는 내달렸다.
“용은 날개부터 떼어 내는 게 현명하지.”
발락과 루드비히가 땅을 박차 베노모스의 몸 위에 올라탔다.
대륙에서도 적수를 찾아볼 수 없는 강자들이 놈을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노모스의 눈은 오로지 리하르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말이라도 통했으면.”
용을 닮아 길쭉한 목이 더욱 거칠게 들이밀어졌다.
키르르-
송곳니와 별 사이의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그랬다면 몇 마디 말이라도 주고받았을 텐데.”
리하르트는 그저 검을 늘어뜨린 채 베노모스를 올려다보았다.
말을 잃어버린 존재가 울부짖었다.
콰앙-!
도끼와 별, 검이 거체를 수도 없이 두드렸다.
다만 베노모스는 여전히 리하르트만을 노려보았다.
“쯧. 미련하기는.”
한 차례 숨을 고른 리하르트가 그제야 검을 들었다.
그의 마나 루트를 타고 빛이 질주했다.
마왕과의 전투에 앞서, 베노모스는 새로운 힘을 시험해 보기에 딱 좋은 상대였다.
“췩……!”
한참 도끼질을 하던 휴거가 홀린 듯 시선을 돌렸다.
루드비히와 발락도 리하르트를 눈에 담았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세가 사뭇 달랐다.
여태까지의 그가 그저 빛을 뿜어낼 뿐이었다면, 지금은 마치 빛 그 자체가 된 것 같았다.
“취익! 저건 내 기술인데! 대체 언제 연습한 거요!”
일전에 휴거가 보여 주었던 새로운 운용법, 오러의 육체.
리하르트는 그 위에 오러의 갑주를 채워 입었다.
고오오-
그리고는 신격을 온몸에 휘감았다.
“어울려 주마. 덤벼.”
그렇게, 마계 한복판에 빛이 강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