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Episode. 50 쏘지 마라! 성자다! (2)
“크르륵.”
2공자가 피 끓는 소리를 냈다.
쩍 갈라진 이마에 드러난 눈은 핏발이 선 채였다.
난 그 불길한 눈에 왼손을 가져다 댔다.
“끄윽?!”
덜컥.
발버둥 치던 놈의 몸이 멈췄다.
왼손을 통해 어둠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놈은 점점 말라 비틀어져 갔다.
그와 동시에 내 손은 점점 더 흉측하게 변모했다.
손등을 물들였던 거뭇함이 팔목을 타고 기어 오른다.
뜨겁고 차가운, 형용할 수 없는 고통에 이를 악다물었다.
마침내 모든 어둠을 흡수하니, 2공자가 한 줌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혼돈의 성향이 더욱 강해집니다.]
[서둘러 어둠을 제거하십시오.]
“하아…….”
급격한 피곤이 몰려와 시야가 흔들렸다.
그러나 쉴 때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전장을 살폈다.
적장을 잃은 이단들은 공포에 짓눌린 표정을 지었다.
개중엔 무릎을 꿇고 항복을 외치는 이도 더러 있었다.
저들에겐 이쪽이 어둠으로 보일 텐데, 고작 적장을 잃은 것으로 항복을 표명한다.
그 모습엔 터럭만큼의 신념도 느껴지지 않았다.
각오는 더더욱 없었다.
저들은 애매한 마음가짐으로 살다 애매하게 어둠을 받아들이고, 애매한 전의로 라플라스를 침공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따위 적들로 인해 아군은 대체 몇이나 죽었을까.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지 마라.”
나는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쿵쿵.
결연한 얼굴로 가슴을 두드린 그들이 달려 나갔다.
피보라가 일었다.
그리고 한 박자 늦게, 비명과 절규가 쏟아졌다.
나를 향해 온갖 욕지거리를 내뱉은 이단의 목이 방금 막 떨어졌다.
“…….”
칼이 사람을 죽였다 하여 칼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칼을 뽑아 들고 휘두르는 자가 살인을 범한 것일 뿐이다.
그래, 저들을 죽이고 있는 건 나였다.
그래서 이단들은 나를 욕했다.
죽는 순간까지 원망과 공포를 내뱉었다.
- 죽여. 다 죽여. 전부 다 찢어 죽여.
내가 보고 있는 게 현실인지, 불가해(不可解)한 장막 너머의 무언가인지,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았다.
“…….”
손을 들어 입매를 만지작거렸다.
어째선지 내 입꼬리는 한껏 말려 올라가 있었다.
왼손은 어느새 검을 뽑아 버릴 듯 꽉 쥐고 있었다.
부들부들.
손이 제멋대로 떨려 왔다.
이 떨림은…… 살인을 앞둔 살인귀의 흥분과도 같았다.
- 죽여어-!!
몸속의 어둠이, 어둠을 섬기는 저들을 죽이라 외쳤다.
피륙을 가르는 소리와 폭음이 울리는 전장에서, 난 그렇게 혼란스레 서 있었다.
『장관이군요.』
『고작 한줌의 어둠에 타락해 가는 신성이라니.』
“…….”
칼집 속의 거인이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다만 그 덕분에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콰득-
곧장 검을 역수로 뽑아 들곤 땅에 박아 넣었다.
“그 입 닥쳐라, 칼고스.”
앞으로의 수난이 절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한 번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그대로 대참사가 벌어질 터.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 ◈ ◈
라플라스의 연이은 승전보가 온 대륙을 울렸다.
세 국가의 지원을 받은 마르크스의 참패.
그것이 일으킨 반향은 눈에 보이지 않았으나,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라플라스와의 교류를 금지한 마르크스의 명령은 이제 옛것이 되었다.
여러 국가의 사신들이 라플라스를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금 자국으로 돌아갈 때면 늘 ‘빛나는 물건’을 품에 안은 채였다.
[라플라스가 빛이다.]
[어둠은 마르크스였다.]
기정사실이 반박 불가의 진실이 된 건 순식간이었다.
전세 역전이라 해야 할까.
어떤 이는 대륙의 평화를 위해 라플라스에게 힘을 보태야 한다며 열변을 토했고, 또 어떤 이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전쟁은 더 이상 마법제일가와 일개 국가의 싸움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빛과 어둠, ‘호르교’라는 종교와 어둠의 싸움이었다.
각국의 참모들은 이제부턴 라플라스가 역공에 나서리라 예상하였다.
하나 실상은 달랐다.
라플라스도, 마르크스도 한 걸음 물러선 채 대치하고만 있었다.
한바탕 휘몰아친 뒤에 또다시 찾아온 폭풍전야.
그러자 애가 타는 건 싸움을 관망하던 타국들이었다.
대세의 흐름이 변한다면, 그 흐름에 빨리 올라탈수록 유리하다.
그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옛 흐름을 따라 어둠을 섬길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빛을 품을지.
“호틴 공국의 콘트라 가문. 그대들이 마지막이군.”
앳된 음성에 콘트라의 가주가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에게도 마침내 선택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자신들을 이단심판관이라 칭하며, 악을 불태운다는 천명을 떠받드는 집단.
그 집단이 각국의 마법가를 포섭한다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라플라스와 마르크스의 전쟁이 발발하기 전이었다.
“앨런 공자께서 이제야 당도하신 것을 보아하니, 삿된 말이지만 섭섭함이 밀려오는군요. 포섭 순위에서 밀려난 기분이랄지.”
가주가 실로 섭섭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며 미소 지었다.
앨런의 뒤엔 군단에 버금가는 마법사들이 줄지어 늘어선 채였다.
익숙한 얼굴들.
전부 마법 연합에 참가했던 자들이었다.
“콘트라 가문은 예로부터 마르크스에게 헌신을 다했지. 그저 그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 것일 뿐이다.”
앨런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결정할 시간은 충분히 주었다 믿는다. 콘트라의 가주여, 그대는 관망할 텐가. 이단이 될 텐가.”
“다른 선택지는 없는 겁니까?”
“물론 있다. 다만 그대의 가문이 마르크스를 적대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군.”
가주가 눈을 감았다.
마르크스를 적대시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가주도 제 스스로 몇 번이고 자문했던 것이었다.
그에게 가신들의 시선이 쏠렸다.
가주의 대답 여하에 따라 가문의 향방이 갈리는 상황이었다.
“작금의 마르크스가 무엇을 섬기고 있는지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도저히 모를 수가 없지요.”
콘트라 가문 또한 역병 전쟁에 참가했었다.
그때의 거인이 뿜어내던 마기는 아직도 생생하기만 했다.
오늘날 마르크스는 그 끔찍한 마기를 섬기는 마굴이 되고 말았다.
그곳은 더 이상 마법제일가라는 지배 가문이 아니었다.
그저 ‘이단’에 불과했다.
“본 가문도 대업에 함께하겠습니다. 앨런 공자님.”
“좋군. 콘트라는 오늘부로 빛을 섬기고 악을 멸할지어다.”
가주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가신들도 일시에 고개를 조아렸다.
적막이 맴돌 때쯤, 콘트라의 가주는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저희가 더 이상 마르크스를 섬기지 않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뭐라?”
“제 앞에 계시지 않습니까. 올바른 길을 걷고 계신 마르크스의 혈통이.”
총 2,315명.
역병 전쟁에서 살아남은 마법사들의 머릿수.
그리고 이제는 이단심판관들의 머릿수였다.
◈ ◈ ◈
알리사와 나를 비롯한 기사들은 왕도로 귀환했다.
마르크스 측에선 별다른 움직임도 없거니와, 우리 또한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던 터였다.
그렇게 왕도에서 작전을 수립하는 사이, 수많은 사신들이 왕도를 오갔다.
그들을 박쥐 같다며 폄하하는 귀족들도 몇몇 있었으나, 알리사는 각국의 사신들을 성대히 환영했다.
“흐름이 우리에게 넘어왔다. 이는 환영해야 할 일이 당연하지 않느냐.”
“그렇지요. 더불어 저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개개인의 이익이 아닌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인 것을.”
나는 차를 홀짝였다.
심신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고 해서 한번 마셔 본 찬데, 이제는 아예 입에 달고 살았다.
몇 번 더 홀짝이고 있노라니, 맞은편의 알리사가 힐끔 내 왼손을 바라보았다.
“장갑은 손에 맞느냐?”
“예. 신경 써 주신 덕분에 잠자리에 들기는 편해졌습니다.”
내 왼손엔 두터운 장갑이 씌워져 있었다.
알리사가 왕국의 비고를 뒤져 찾아낸, 마력 억제 아티팩트였다.
마력과 마기는 분명히 다른 힘이었으나 아주아주 약간의 효력은 있었다.
“대체 왜 그리 무리하는고. 어둠이 필요하다 한들, 굳이 네 몸에 담아 둘 이유는 없지 않느냐.”
“조그만 충격에도 터져 버리는 폭탄은 가장 안전한 곳에 두어야죠. 애석하게도 제 몸만큼 안전한 장소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리하르트. 이런 말하기는 부끄럽다만, 이 전쟁에서 네 힘이 가장 큰 의지가 된단다. 한데 네가 필요할 때 힘을 쓰지 못한다면 어찌 되겠느냐.”
타당한 소리였다.
부득불 어둠을 품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내 모습을 보면, 의지하는 마음이 달아날 터였다.
다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스승님. 걱정 마십시오.”
“어찌 걱정되지 않겠느냐. 수많은 이들의 목숨이 오가는 전쟁이다.”
“제가 짐이 될 일은 없을 겁니다.”
“…….”
알리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댓 발 튀어나온 입이 불만을 한껏 표출했다.
“대체 뭔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군. 이해 불가로다.”
나는 어색하게 웃는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일상이다.
기사들과 아델, 마르부터 시작해서 알리사까지.
계획을 말해 주지 않는 내게 이렇듯 툴툴거리기 일쑤였다.
‘조금만 기다리십쇼. 마르크스의 어둠을 전부 흡수하고 나면 밝힐 테니까.’
그때가 되면 돌이킬 수 없을 터다.
이들이 나를 아무리 설득하려 해도,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을 테지.
어색한 공기 속에서 티타임이 이어졌다.
그러다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왕도의 정문 앞, 웬 마법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물경 2천에 달하는 1개 군단급 병력이었다.
선두의 앨런이 호르교의 휘장을 치켜들었다.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하는 행동만큼은 개선장군만큼 의기양양했다.
“앨런! 훌륭한 성과로구나! 이렇게나 많은 아군을 포섭하다니!”
정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달려 나간 알리사가 앨런의 노고를 치하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누구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남매를 보다 시선을 돌렸다.
앨런이 이끌고 온 마법사들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다들 나를 기억하나 보군.’
칼고스와의 전쟁에서 함께 싸웠으니, 나를 알아볼 만도 했다.
그렇게만 생각할 때였다.
화륵-
앨런으로부터 청렴한 백색의 불길이 일었다.
한데 나를 노려보는 눈빛에선 지옥의 겁화가 엿보였다.
“뭐야. 갑자기 왜 난리야?”
“어둠이 느껴진다. 이건, 이단의 기운!!”
“……?”
“이단이다!! 네놈을 태워 죽이겠다!”
아.
이거 참 큰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