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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141화 (141/216)

141화. Episode. 46 드라우프니르 (1)

알리사를 도발한 효과는 굉장했다.

이전보다도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표적.

색색의 마법들이 호수 위를 수놓고 있었다.

“방식은 똑같다. 다만 세 가지 원소 마법을 각각 열 번 이하로 사용하여 내 마법을 전부 격추시켜 보거라.”

언뜻 보아도 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저것들을 총 30번의 마법으로 파괴하란다.

‘한 번당 두개 이상을 파괴해야 하는군.’

무척이나 높은 난이도.

여기서부터는 꽤 애를 써야 할 것 같았다.

“마법의 위력과 컨트롤을 동시에 수련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이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눈을 부릅뜨고선 알리사의 마법을 향해 불화살을 발사했다.

펑-!

하나의 마법을 꿰뚫은 불화살의 궤적이 급격하게 휘청거리다, 호수에 처박히고 말았다.

‘하나를 꿰뚫고 나면 조절하기가 더 어려워지는군.’

더 많은 표적과 충돌할수록 마법의 고삐를 잡기가 힘들어질 터.

그렇다고 위력만 무식하게 높이면 곡사 같은 기예는 시도조차 해 볼 수 없다.

“음.”

고리를 내려다보다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할 만하지.

그날 이후부터 나는 오후에는 격추 훈련을 하고, 저녁엔 마법 서적을 붙들고 지식을 우겨넣었다.

“써클의 상승은 내게 합격점을 받으면 도와주마.”

중간에 넌지시 일러준 알리사의 발언이 내 열정에 불을 지펴 주었다.

그렇게 어느 마법가의 자제들 마냥 바쁜 나날을 보내는데, 앨런이 깨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난 훈련도 미루고 그의 병실을 찾았다.

따끔하게 한마디 해 줄 생각이었다.

다음부턴 무모한 짓거리는 하지 말라고.

“…….”

하지만 퀭하디 퀭한 앨런의 얼굴을 보고 난 후론, 그럴 마음이 쏙 들어가고 말았다.

알리사와 파이란 등, 그와 친분이 있다는 이들이 죄 몰려와 앨런에게 잔소리를 쏟아부은 모양이었다.

대체 어찌나 시달린 건지, 그가 나를 보자마자 질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차라리 쓰러져 있을 때가 더 안색이 좋아 보이는 것 같은데.”

“후…… 시끄럽다.”

앨런이 침상에 반쯤 기대 누운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얼굴은 퀭할지언정, 눈가엔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침내 마기를 온전히 불태운 것에 대한 성취감.

혹은 해방감처럼 보이기도 했다.

화르륵-

그의 손끝에서 자그마한 불씨가 피어올랐다.

백염보다도 순백하고, 빛보다도 따스한 성화(聖火).

‘흐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선 그것을 유심히 살폈다.

대게 마법으로 이루어진 불꽃은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앨런의 손에서 일렁이는 성화는 달랐다.

그것은 오로지 빛으로 빚어진 불씨였다.

‘성기사는 마나를 소모하여 신성력을 다룰 수 있다. 이단심판관은 무엇을 대가로 성화를 다루는 거지?’

세상에 조건없는 힘은 없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나도 모른다.”

한데 제 자신도 모른단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네 힘이잖아.”

“이제 막 얻은 힘에 대해서 알턱이 있을 것 같나? 마나도, 정신력에도 아무런 영향이 없다.”

화악-!

성냥불 같던 하얀 불꽃이 순식간에 몸을 부풀렸다.

그럼에도 앨런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정말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고?’

한참 불꽃의 열기를 쬐는데, 문득 그럴듯한 가설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당장에 내면을 관조했다.

역시라고 해야 할지, 앨런이 불꽃의 크기를 키울수록 내 신앙이 조금씩 소모되고 있었다.

‘호오.’

얼렁뚱땅 사라지는 신앙을 꽉 붙잡아 보았다.

그러자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다는 것처럼 성화가 사그라들어갔다.

퍽 신기한 힘이었다.

시전자가 아닌, 내가 그 부담을 짊어지는 힘이라니.

“축하한다, 앨런. 그분께서 축복을 내려 주셨구나.”

“아니, 이건 축복이 아니다.”

한껏 으스댈 줄 알았던 앨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단 심판관의 소임을 맡은 바, 내 능력의 부족함을 지켜보신 그분께서 도구를 건네주신 것이다. 나로서는 황송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는 정말 부끄럽다는 듯이 머리를 푹 숙였다.

참. 뜻밖의 선물을 받고서도 자책하는 꼴이라니.

“……리하르트. 전도는 언제 할 생각이냐.”

한참 말이 없던 그가 내게 대뜸 물어 왔다.

나는 그가 무언가 결단을 내렸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 마침 회의가 예정되어 있거든.”

◈          ◈          ◈

회의장에 마법사들이 소집되었다.

안도 짙은 음성으로 앨런에게 인사를 건네던 마법사들은, 회의가 시작되고 나서부턴 열과 성을 다해 의견을 꺼내 놓았다.

“마르크스 가문의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들이 최우선적으로 대비하고자 하는 것은 마르크스의 선제공격이었다.

국왕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앨런이 없었다면 그자리에서 알리사는 끝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마르크스가 라플라스를 적으로 규정했다는 뜻이었다.

언제가 되든 무시무시한 정예 군단이 이 왕국에 처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회의장에 모인 마법사들 중 상당수가 마르크스 소속이었던만큼, 그들은 마법제일가의 저력을 잘 알고 있었다.

뿐만일까, 마르크스의 압박에 남대륙의 모든 국가가 라플라스를 적대시할 가능성도 결코 좌시할 수 없다.

“주변 국가에 협력 요청의 서신을 보냈으나, 모두 반송되어 돌아왔습니다.”

가능성이 확신이 되기 시작하는 순간.

마법사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빳빳히 굳었다.

이미 마르크스의 입김이 라플라스를 둘러싸고 있단다.

회의장의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기 시작했다.

“……활로를 열어야 한다.”

알리사가 짐짓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들의 비정상적인 작태를 만천하에 알리는 것만이 이 상황을 타개할 방도일 터. 아무리 마르크스라 한들, 아무런 명분 없이 우리를 철저히 고립시킬 수는 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크스의 괴의함을 눈치채는 곳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언제 정예 군단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마당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앨런이 입을 열었다.

“활로를 열 구석이 있습니다.”

그에게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역병을 막아섰던 마법 연합. 그들이라면 라플라스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들은 칼고스와의 전쟁에서 마기의 흉악함을 절절히 느꼈으며, 호르의 힘을 몸소 겪기도 했던 자들이었다.

그중엔 당장 마르크스의 정예 부대도 있었고, 각 왕국의 전력을 담당하는 마법가도 상당수 존재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그들을 찾아 설득하면, 그 또한 적지 않은 세력이 되어 줄 터였다.

하지만, 라플라스의 마법사들은 앨런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과연 그들이 저희들의 편을 들어 줄지 의문이군요.”

“앨런 도련님과 인연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르크스라는 절대적인 가문에게 이빨을 들이밀 정도로 두터우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앨런의 미간이 작게 찌푸려졌다.

호르에게 경외심을 가졌던 연합이라면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적은 더 이상 마르크스가 아닌, ‘이단’일 뿐이니까.

다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그것을 설명해 주려면, 호르에 대해 먼저 알려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건 리하르트의 몫이었다.

기분은 나쁘지만, 앨런이 생각하기에도 전도에 관한 능력만큼은 리하르트가 탁월했다.

이미 그는 호르교라는 깃발 아래 큰 세력을 모으지 않았던가.

줄곧 부정해 왔던 진실을 인정하고나니, 앨런의 마음은 한결 편해진 채였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또 다른 집단을 모으는 것이다.’

앨런은 현실을 직시했다.

리하르트가 다른 이들에게 빛을 전하는 성자라면, 자신은 신벌의 대행이라는 임무를 짊어진 성자다.

그리고 강대한 어둠을 불태우기 위해선 더 많은 불씨를 끌어모아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언제 시작할 거냐, 북쪽의 성자.’

앨런이 시선을 돌려 리하르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따라 장내의 모든 이목이 리하르트에게 쏠렸다.

“이제 슬슬 숨기고 있는 것을 밝힐 때가 된 것 같구나.”

알리사의 음성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조금 더 짙어졌다.

이내 리하르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몸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래. 뜸은 들일만큼 들였지.’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장내를 훑어보았다.

라플라스의 마법사들은 적이 누구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고, 활로를 갈구하고 있었다.

이만큼 호르교의 존재를 드러내기 적절한 타이밍이 없었다.

파앗-

크게 뿜어진 빛이 회의장을 뒤덮었다.

“……!”

“무슨!”

난생처음 겪어 보는 신성의 기류에 그들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알리사 국왕 전하께선 알고 계시겠지요. 거대한 십자가의 존재를.”

거대한 십자가라.

호오-

알리사가 흥미 짙은 음성을 내며, 이제야 확신이 든다는 듯 눈을 빛냈다.

“역시 그것이 마기의 대척점이로구나.”

리하르트는 싱긋, 웃음으로 화답했다.

신앙을 줄기차게 뿜어내는 그에게서 서서히, 압도적인 격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성자의 위격에 오른 이후로 가능해진 신격의 발현이었다.

◈          ◈          ◈

“…….”

바펠의 고개가 휙, 하고 한쪽을 향했다.

저 멀리서 느껴지는 불쾌하고 역겨운 기운.

마치 영혼까지 더럽혀지는 것만 같았다.

- 이단을…… 없애라…….

- 단 하나도 남김없이…….

그때, 신의 음성이 그의 온몸을 울렸다.

바펠의 눈에 망설임이 차올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아! 신이시여!”

망설임을 밀어내고 광기가 자릴 잡았다.

싸아아-

지독한 어둠이 그의 몸을 휘어감았다.

이내 그것이 폭발하듯, 마르크스의 성채를 죄 뒤덮었다.

- 우으…….

그 음울한 울음소리를 들은 누군가는 황홀함을 느꼈고, 또 누군가는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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