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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140화 (140/216)

140화. Episode. 45 최초의 마검사 (3)

꽈아앙-!

굉음이 투기장을 울렸다.

그 여파가 어찌나 강렬하던지, 싸움을 관전하던 오크 중 몇몇이 휘청일 정도였다.

“크, 크륵!”

왕의 거력을 받아 낸 휴거가 피를 게워 냈다.

흉물스럽게 벌어진 가슴팍에선 핏물이 솟구쳤다.

하지만 도끼를 놓지는 않았다.

쾅, 쾅, 쾅!

휴거의 도끼가 연신 위로 쳐들렸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 무식한 도끼질을 크록타가 쌍도끼로 하나하나 걷어 냈다.

그의 얼굴에 희열이 벅차오른다.

제 눈앞에서 투지를 불태우는 새내기 오크가 될 성 부른 떡잎이란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역시 죽이긴 아깝군!’

이대로 타이탄에서 힘을 키운다면 필시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전사가 될 터.

그 미래를 그렸을 뿐인데, 벌써 몸이 달아올랐다.

“애송이! 어디 한번 버텨봐라!!”

크록타의 쌍도끼가 대기를 찢어발겼다.

그 궤적에 걸린 붉은 장딴지가 쩍쩍 갈라졌다.

“크흡!”

휴거가 제 다리에 온 힘을 실었다.

근육을 극도로 조여 절단을 막아낸 것이다.

자칫하면 평생 의족을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중상.

하지만 휴거는 오히려 그것을 기회삼아 크록타의 면상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

“마, 맞췄다아아-!!”

끝도없이 함성을 지르던 구경꾼들이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타이탄의 오크 중에서도 저런 식으로 싸우는 존재는 드물다.

아니, 애초에 왕에게 일격타를 성공할 수 있었던 오크는 현 대장군들 밖에 없었다.

“휴거! 휴거! 꾸이익!”

“휴거어어! 췩!”

그들이 다시금 휴거의 이름을 연호했다.

◈          ◈          ◈

‘죽지는 않겠군.’

나는 신안을 해제하곤, 조금 전에 지켜보았던 광기의 투기장을 떠올렸다.

마지막에 성공했던 일격.

그것이 휴거의 목숨을 살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지금껏 왕에게 일격타를 성공한 도전자가 너무나 적어, 대부분은 모르고 있는 규칙 하나.

‘한 번이라도 공격에 성공하면 무조건 살려 준다.’

그것이 크록타가 스스로 정한 법도였다.

역시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왕이다.

아무튼 휴거의 안전이 보장된 이상, 나는 여지껏 참아온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휴거, 이 미친놈!”

이 미친 오크는 내 우려를 현실로 만들어주었다.

뭐? 나한테 제 무용담을 전해줘?

속에서 천불이 치솟았다.

내가 만약 천벌의 후유증이 끝나지 않았다면, 놈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신안으로 지켜볼 수도, 빛을 부여해 줄수도 없었을 테니.

눈을 감곤 속을 진정시켰다.

위험천만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휴거는 살아남을 것이다.

더불어 장군직에 오르게 되었으니 꼭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앨런이나 휴거나, 왜 이렇게 무모한거야?”

여벌의 목숨이라도 쟁여둔 건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리다, 나도 모르게 방을 살폈다.

이곳에 아론이나 기드가 있었다면 남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핀잔을 들었을 것만 같았다.

“커흠!”

괜히 한번 헛기침을 해주곤 방을 나섰다.

앨런이 제 몸에 불을 지른 호숫가에 도착하니, 알리사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늦었구나. 첫 날부터 지각이라니, 자세가 안됐는걸.”

“죄송합니다. 급히 처리해야할 일이 생긴 바람에.”

“뭐… 오늘은 봐주마.”

팔짱을 끼고 선 그녀의 시선이 호숫가의 한쪽을 향했다.

새까맣게 탄 풀잎의 흔적들이 그곳에 있었다.

“앨런은 순조로이 회복중입니다. 금방 깨어날테니 너무 염려 마시지요.”

“후, 대체 막내는 왜 그런 짓을…….”

앨런이 어쩌다 드러눕게 되었는지, 알리사는 이미 파이란에게 전해들은 뒤였다.

잠시 혼란스런 표정을 짓던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잡담은 그만하도록 하고, 수련에 앞서 한 가지 물을 것이 있단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너는 마법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게냐? 지키기 위한 마법을 원하느냐? 아니면, 적을 쓰러트리는데에 용이한 파괴적인 마법을 원하느냐?”

저의를 유추하기 힘든 질문이었다.

지키기 위해선 적을 쓰러트려야하고, 그러려면 적보다 내가 먼저 쓰러져서는 안된다.

즉, 둘 다 필요한 마법이란 뜻이었다.

왜 이런 것을 묻는 걸까.

“혹시 정의의 추구… 같은 것을 말슴하시는 겁니까?”

알리사가 고개를 저었다.

“너는 이미 대단한 경지의 기사다. 마법을 검술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 될 테지. 그렇다면, 네가 배울 마법 중에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게다.”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과연 앨런이라는 걸출한 천재를 키워낸 마법사답게, 그녀는 내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었다.

‘맞는 말이야. 빨리 실전에 도입하려면 포기할 건 포기해야 돼.’

마법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파이어볼과 같은 공격 마법이나 실드 등의 보호 마법, 그 외에 치유와 추적, 저주 마법 등등.

세세히 구분하면 두꺼운 서적의 절반정도는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무릇 대마도사를 꿈꾸는 이들은 모든 마법을 폭넓게 익히는 것이 제일이다.

하지만 나는 대마도사라는 경지에 관심이 없었다.

‘치유 마법은 필요없고, 저주 마법은 더더욱 필요 없다.’

신앙은 더 없이 훌륭한 치유제이자 버프이며, 마기를 받아들인 자에겐 최고의 저주였으니, 그보다 못한 마법에는 별로 흥미가 돋지 않았다.

“너는 아마 공격과 보호를 선택할테지. 그 외의 것은 네 특별한 힘으로 보충할 수 있을 터이니.”

알리사가 내 속을 제대로 꿰뚫어 보았다.

그것이 신앙의 힘을 몸소 겪어 본 덕인지, 뛰어난 통찰력 때문인지는 몰랐다.

“우선은 빠른 캐스팅에 용이한 마법으로 검술을 보조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파괴력이 특히 뛰어난 마법은 5서클부터 배울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 잘 생각했구나. 참고로 라플라스의 눈은 최소 5서클에 이르러서야 배울 수 있단다.”

5서클은 기사의 경지로 따지면 상급 초입의 수준이었다.

오러라는 기사의 전유물이, 마법사들에겐 5서클의 마법인 것과 같은 이치였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          ◈          ◈

알리사의 손짓에 수십개의 마법이 허공을 수놓았다.

일전에 리하르트가 보여주었던 1서클의 세가지 원소 마법들이었다.

쌔애액-!

이글거리는 파이어 볼트 열 개가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허공을 나돌아다녔다.

아이스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도 마찬가지였다.

“내 마법을 동일한 원소 마법으로 적중시켜 파괴해보거라.”

그녀가 리하르트에게 과제를 주었다.

입꼬리에 걸린 도발적인 미소는, 쉽지 않을 것이다- 라는 속내가 여실히 담겨 있었다.

‘아무리 속성으로 지도할 것이라 해도 대충 가르칠 생각은 없단다.’

선택과 집중.

리하르트와 알리사가 추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마법사들의 기준에 크게 어긋난다.

이토록 실리주의적인 수련은, 그 성취의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리사는 리하르트를 대마도사 못지 않은 마법사로 키워낼 자신이 있었다.

영혼마저 꿰뚫어보는 전지의 눈으로 판단한 이상, 적어도 리하르트의 성장이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때, 리하르트가 마법을 발현했다.

쌔액-!

화려한 백색의 불화살이 저 멀리 쏘아져나갔다.

표적으로 정했던 알리사의 파이어볼트는 이미 훌쩍 달아난 뒤였다.

“음…”

“부던히 노력해야 할게다.”

알리사가 발현한 마법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제 막 고리를 만들어낸 초짜가 적중시키기엔 턱없이 빠른 속도.

과연 하나라도 맞추는데에 얼마나 걸릴까, 그녀가 쿡쿡 웃을 때였다.

퍼어엉-!

백색의 불화살이 알리사의 파이어볼트를 정확히 터트렸다.

“어…?”

파칭, 파지직-!

이어서 아이스 볼트와 라이트닝 볼트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어, 어어…”

조금씩, 마법이 파괴되는 소음의 간격이 좁혀진다.

리하르트의 눈이 매섭게 반짝였다.

『특기 - 초집중 발동.』

예상을 뛰어넘는 솜씨에 알리사가 침음성을 삼켜냈다.

감히 소드마스터의 동체 시력을 얕본 것은 아니다.

다만 대마도사라고 검에 일가견이 있는게 아니듯이, 소드마스터라고 마법을 다루는 데에 능숙할 것이라곤 믿지 않았다.

퍼어엉-!

리하르트의 고리에서 쏘아진 불화살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어, 알리사의 마법을 꿰어냈다.

‘앨런도 이 시기엔 제법 고생했었는데…’

설마, 이제 막 마법을 배운 놈이 마법의 궤적을 틀어버리다니.

황망하게 입을 벌린 알리사를 향해, 리하르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씩 웃으며 말했다.

“다 했습니다.”

어느새 주변을 수놓던 마법이 죄 사라져 있었다.

리하르트는 흘끔 파괴의 현장을 보다, 속으로 쾌제를 불렀다.

‘그깟 1서클 마법의 궤적을 트는 것 쯤이야, 검성을 다루는 게 더 어렵지.’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벌써 네 자루의 별을 다루는 리하르트에게, 1서클 마법은 그리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스승님, 수련 강도를 좀 더 올려볼까요? 앨런, 그 친구한테 콧대 좀 세워보일려면 이정도론 부족할 것 같습니다.”

빠직.

알리사의 이마에 핏대가 올랐다.

제자가 감히 스승의 페이스를 넘어서려 하다니.

“하하, 그러자꾸나.”

그녀는 위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이번에도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가 나온다면 상을 줄 생각이었다.

◈          ◈          ◈

“리하르트! 이 하나뿐인 스승이 왔단다!”

발락이 별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외쳤다.

리오 성 한복판에 뚝 떨어진 노인의 모습에, 병사들이 억 소리를 내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에잉! 이것은 스승이 왔는데 마중도 안 나오는 것이냐!”

“당신은 누구십니까! 신원을 밝히십시오!”

혀를 차는 발락에게 병사 하나가 창을 들이밀었다.

창병, 한스였다.

“끌끌, 당돌한 병사로구나. 난 너희들이 성자라 부르는 녀석의 스승이다.”

“예……?”

“그래서, 리하르트는 어딨느냐?”

발락의 질문에 답해준 것은 급히 달려온 아발트였다.

“발락 경! 성자님께선 남대륙으로 훌쩍 떠나셨습니다만…….”

그리고는 쪽지 하나를 건네주었다.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발락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스승님. 약조한 대로 네 자루의 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헌데 이번에도 스승님께선 머리카락 한 올 비춰 주시지 않는군요.]

[이 제자는 기다리다 지쳐 새로운 스승을 찾으러 떠납니다.]

[혹여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남대륙의 라플라스 왕국으로 오십시오.]

[P.S 빈손으로 오시면 이 제자는 숨어 버릴 겁니다.]

부들부들.

발락이 손을 떨었다.

“새, 새로운 스승을 찾는다고……?”

사정이 있어 조금 늦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야속한 제자는 벌써 다른 스승을 찾아 떠났단다.

“안 돼!”

그가 다시금 별 위에 올라탔다.

매섭게 날을 세운 별은 남대륙을 향했다.

‘이놈아! 스승과 제자의 연은 영원하다는 말도 모른단 말이냐! 내 너를 위해 진귀한 아티팩트까지 공수해 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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