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Episode. 45 최초의 마검사 (1)
“대체 뭐 하는 거야, 저 미친 놈!”
창밖으로 앨런을 살피던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호숫가에서 웬 궁상을 떨고 있나 싶더니, 제 몸에 불을 지른 것이다.
도대체 왜?
눈을 비볐다.
하지만 앨런의 몸을 집어삼킨 백염은 사라지지 않았다.
‘자살이라도 하겠단 거냐?’
그러라고 나뭇잎을 날려 보낸게 아닌데.
그냥 그거라도 보고 기운내라는 의미였는데.
이렇게 가만히 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
나는 당장에 방을 뛰쳐 나와, 호숫가로 향했다.
화르륵-
무척이나 뜨거운 열기가 피부를 달궜다.
백염에 휩싸인 앨런은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앨런!”
“오지, 마……!”
이글거리는 불꽃 사이로, 독기 가득한 눈이 나를 향했다.
방해하면 죽여 버리겠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빌어먹을. 아직 천벌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신앙이라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건만, 지금의 난 한줌의 신앙도 운용할 수 없었다.
앨런에게 보내준 나뭇잎의 빛은, 비상시에 대비해 미리 비축해 놓았던 신앙이었다.
그마저도 앨런의 불꽃으로 승화하고 난 뒤였다.
‘냅다 걷어차야 하나.’
놈을 호수에 빠트리면 살 가능성이 있다.
뒷감당은 퍽 고달프겠으나, 우선은 살리고 봐야 했다.
저 자식이 앞으로 해줘야 할 일이 얼만데.
내가 도움닫기를 위해 몇 걸음 뒤로 물러날 때였다.
“리하르, 트……! 방해하지 말라고 했다!”
“쯧.”
귀신같은 놈이 재차 눈을 부라렸다.
물론, 저녀석의 생각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몸 속에 있는 마기를 불태우려는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너무 극단적이다.
이 세상에 태우고 싶은 것만 쏙쏙 골라 태울 수 있는 편리한 불따윈 없다.
마기보다도 육신이 먼저 재가 될 것이고, 마기보다도 생명이 먼저 사그라들 터였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이변이 일어난 건 앨런이 두번째 불꽃을 제 몸에 쏟아붓고 난 후였다.
푸스스-
백염이 매캐한 검은 연기를 뱉어냈다.
보는 것만으로도 역한 기분이 드는, 산화된 마기의 잔재.
“……!”
불꽃의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꺼져가는 듯, 사그라드는 듯 보였으나 실상은 앨런의 몸에 흡수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럴수록 검은 연기가 더욱 짙게 뿜어졌다.
연기 사이로 드러난 앨런의 살갗은 큰 화상을 입었을 지언정, 내 예상보다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다.
원래같았으면 진작에 잿더미가 돼도 이상하지 않았다.
앨런이 흩뿌리는 백염은 칼고스에게도 제법 큰 데미지를 입혔었으니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러한 내 의문을 해결해 준 것은 별안간에 나타난 시스템 창이었다.
[신도 앨런 마르크스 - 호르교 특수 직위, 이단 심판관 자격 충족.]
[특기 - 성화(聖火) 습득.]
“……하.”
내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나옴과 동시에, 앨런의 몸이 허물어졌다.
정신을 잃고 기절해버린 그에게선 더이상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나도 남김 없이, 깨끗하게 불태운 것이다.
“네가 이겼다. 앨런.”
◈ ◈ ◈
알리사의 옆방에 앨런의 병실이 마련되었다.
그의 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치유 마법사들이 다시 한 번 땀구슬을 흘려야 했다.
“공자님. 앨런 도련님께선 대체 어째서……?”
왜 난데없이 자해를 했는지, 혹시 알고 있느냐고 물어오는 파이란에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발견했을 당시엔 이미 온몸에 불이 붙은 채였습니다. 저도 앨런이 그런 짓을 한 이유를 모르겠군요.”
솔직하게 말하자니, 호르교에 대한 설명부터 해 주어야 했기 때문에 모르쇠로 일관했다.
나는 파이란을 비롯한 왕실 마법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어둡고 짙은 우려가 면면에 돋보였다.
가뜩이나 꾹 억눌려있던 라플라스의 공기가 이제는 숨까지 막힐 지경이었다.
이 분위기를 해소하는 건 내가 아니라 알리사와 앨런의 몫이다.
지금의 난 어디까지나 외부인일 뿐이었다.
숨막히는 공기를 피해 객실로 자리를 옮겼다.
툭, 툭-
의자에 앉아 팔걸이를 두드리고 있노라니, 머릿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라플라스와 마르크스는 이제 완전히 틀어졌다.’
알리사와 이 왕국을 포섭한다는 초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일이 쉽게 풀리고 있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마왕…… 이 개자식이.”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그저 바펠이 알아서 착각했겠거니.
강대한 힘에 굴복한 것이겠거니.
그렇게 안일하게 여겼다.
하나, 이제는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감히 내 흉내를 내?”
마왕을 신으로 추앙하는 바펠.
그는 내 빛을 어둠이라고 악에 바쳐 소리쳤다.
언데드의 눈엔 산 자가 죽은 자로 보이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삿됨을 남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누가 빛을 휘감고, 누가 어둠을 휘감았는지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망가져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세뇌를 당했다.
바펠에게 호르는 곧 마왕이란 뜻이었다.
『흐흐…….』
거슬리는 웃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악연’의 검면 속에서 마왕의 똘마니가 눈깔을 들이밀고 있었다.
『우매한 왕께서 재밌는 놀이를 찾으셨나 보군요.』
『아아-, 아쉬워라.』
『나도 같이하면 무척 즐거울텐데.』
끄흐흐.
혀를 낼름거리며 웃어재끼는 놈을 보다, 눈을 감았다.
‘진짜 갖다 버릴까. 알버트, 이 개자식은 대답도 없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애써 털어냈다.
어쩌면 알버트는 나와 이야기를 하고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막 천년이 지난 알버트보다 수천년을 살아온 칼고스의 자아가 더욱 강할 것은 자명했다.
물론, 영혼의 힘만 따지자면 칼고스는 약해질대로 약해졌을테지만 알버트에게 싸울 의지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라플라스의 눈만 배워 봐라.’
무려 영혼을 볼 수 있는 눈이니만큼, 그것을 배우면 알버트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 ◈ ◈
하루 뒤, 알리사가 드디어 눈을 떴다.
멍한 얼굴로 저를 둘러싼 인파를 보던 그녀는 다짜고짜 앨런부터 찾았다.
“앨런은 어디에……? 그 아이는 무사하더냐?”
왕의 충신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흐릿하던 그녀의 눈동자에 절박함이 차올랐다.
“내가 묻지 않느냐.”
이번엔 그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어서 알려달라고 채근하는 음성에 입을 열었다.
“옆방에 앨런이 있습니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큰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얼마나, 얼마나 다쳤지? 상태가 심각하더냐?”
“치유 마법사들의 노고 덕에 큰 부상은 면했습니다.”
“내가 그 아이의 상태를 보겠다.”
기어코 알리사가 파이란의 부축을 받아 몸을 일으켰다.
마법사들은 연신 입만 우물거릴 뿐이었다.
‘이제 막 깨어난 왕에게 동생의 자해 소식을 말해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어찌 된 일인지 듣게 된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입으로 들어야함이 옳다.
죽은 것도 아니고, 제법 멀쩡히 살아있으니까.
“앨런…….”
눈을 감고 누워있는 동생의 뺨을 누이가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그 가녀린 몸 위로 서슬퍼런 기운이 피어올랐다.
“필시 나를 데리고 도망치려다 다친 것이겠지. 이 누이가 동생의 발목을 붙잡은 것이겠지.”
아닌데요.
그게 아닌데요.
차마 말은 못하고 뒷머리만 긁적였다.
“……이제는 당신이 그리도 아끼던 앨런까지!”
원망 가득한 읊조림에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해는 오해인데, 꼭 고쳐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만약 그자리에서 앨런이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을테니까.
“파이란 경.”
“말씀하시지요, 전하.”
“왕실 내 모든 귀족과 마법사들을 소집하시오. 마르크스 가문에 대해 긴히 할 이야기가 있소.”
좌중의 마법사들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본가를 방문하러 갔던 그들의 왕은 처참한 상태가 되어 돌아왔다.
이미 알리사가 깨어나기 전부터 마르크스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한 채였다.
제아무리 남대륙을 지배하는 가문이라 하더라도, 선을 과하게 넘은 것이다.
분노 어린 알리사의 어조가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파이란과 마법사들은 결기 어린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떴다.
앨런의 병실에 남은 것은 알리사와 나 뿐이었다.
“저는 전쟁을 막는 것을 도와달라고 이곳에 온 것인데, 이제보니 알리사 국왕 전하께서 전쟁을 일으키실 기세군요.”
“전쟁을 막기 위해선 또 다른 전쟁이 필요하단다. 바펠, 그는 대화가 통하는 자가 아니더구나.”
“저번에도 말씀드렸으나, 이 세상에 일어나 마땅한 전쟁은 없습니다.”
“맞는 말이지. 나도 네 말에 동의한다.”
줄곧 앨런에게 시선을 고정한 그녀가 몸을 돌렸다.
나를 마주한 알리사의 얼굴엔 씁쓸함이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괴물과 공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물며 그 괴물이 남대륙을 지배하고 있다면 더더욱.”
아버지를 괴물이라고 부르는 알리사의 참담한 심정이 손에 잡힐듯 생생했다.
‘역시 전쟁은 결국 일어나겠군.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마왕과 마계의 존재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뼈아픈 일이다.
우리끼리 칼 끝을 겨눌 상황이 아닐진대, 이렇듯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한숨을 삼키고 있는데 그녀가 내 앞에 바짝 붙어섰다.
“우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싶구나.”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나를 구해주지 않았느냐.”
슬쩍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손을 저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위험을 무릅 쓴 건 알리사 국왕 전하 아니십니까. 그저 제 반지가 도움이 되었다니, 마음이 놓일 따름입니다.”
겸손을 떨어보였다.
그러자 알리사가 마음에 든다는 듯이 살풋 웃었다.
“과연 반지가 도움이 된 것일까, 아니면 네가 도움이 된 것일까.”
나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네 정체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으마. 너는 내 동생의 친우이자, 나의 은인이다. 덕분에 내 눈의 저주도 완전히 풀렸구나.”
이 은혜를 대체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녀는 몇번이고 내게 감사와 호의를 표했다. 그럼에도 왕의 위엄은 조금도 상하는 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시지요.”
“그래. 말해 보거라.”
선뜻 끄덕이는 그녀를 보며 말을 골랐다.
부탁할 것이야 차고 넘친다.
‘호르교를 믿어도 좋고, 아티팩트나 영약도 좋고.’
얻을 것은 산더미지만 욕심은 금물이다.
기회가 지금 당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 가장 필요한 것부터 입에 담기로 결정했다.
“제게 마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플라스의 국왕이시여.”
“……뭐라?”
“마. 법. 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플라스의 국왕이시여.”
중요한 부분을 강조하며 재차 말해주었다.
굳어가는 알리사의 얼굴은 퍽 볼만했다.
“기사가 어찌 마법을 배우겠다는…….”
화륵.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다음엔 한기를 내뿜는 얼음덩어리가 생성되었다.
파지직, 푸르른 전류가 몸을 꿈틀거렸다.
그것들을 게워 낸 고리가 뒤편에서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어, 어어……?”
국왕이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