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Episode. 41 명검 중의 명검 (1)
“과하다! 그건 부당한 거래다!”
드워프들이 아우성을 쳤다.
나는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곤,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신엔 잔뜩 녹이 슬어 있었다.
거의 뒤덮이다시피 하여, 예기(銳氣)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
그야말로 ‘죽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의 검이었다.
“그건 우리 하얀 모루 부족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의 검이다! 함부로 만지지 마!”
족장 드워프가 성을 냈다.
불거진 그의 얼굴을 보다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나도 알아. 이게 귀하신 검이란 걸.”
성검, ‘템페스트’.
성마대전에서 활약한 10번째 용사의 검.
신이 사라진 이 세상에서 겨우 찾아낸, 현재로선 유일한 진짜 성유물.
비록 무척이나 비루해진 모습이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재료는 충분하고, 솜씨 좋은 명장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 제안은…….”
내가 족장을 향해 입을 떼려던 참이었다.
머릿속에 작은 소음이 들려왔다.
『이 빛은……?』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음성이었다.
다시금 성검을 두 눈에 담았다.
녹이 덕지덕지 붙은 검신이 울고 있었다.
“……?”
당연한 말이지만, 성검은 말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다.
그러나 나는 직감했다.
이 음성은 성검으로부터 흘러나왔다고.
『아아, 호르시여…….』
『이자가 이번 대의 용사입니까…….』
흐느끼는 음성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인간, 갑자기 왜 멍하니 서 있는 거지?”
“쉿.”
나는 성검에 시선을 집중했다.
그 순간에도 검의 사념은 계속 이어졌다.
『나는 호르께서 선택하신 10번째 용사, 알버트 피기우스.』
『나와 그대가 이리 만난 것은 전부 호르의 의지이니라.』
검의 떨림이 더욱 심해졌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알버트 피기우스.
그는 성마대전에서 활약한 용사이자 이 성검의 주인이었다.
‘그자의 영혼이 검에 갇혀 있었단 말인가?’
이건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천 년 전에 활동하던 인물이 왜 나타난단 말인가.
“용사란 자가 어째서 검에 갇혀 있는 거지?”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없었다.
검에 내재된 힘이 다한 모양인지, 무언가 연결이 끊긴 느낌이었다.
신앙을 불어넣어도 템페스트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드워프들을 바라보았다.
대뜸 혼잣말을 하는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는 난쟁이들.
어쩐지 그들이 유난히 이뻐 보였다.
◈ ◈ ◈
“순 양아치구먼!”
“성자는 개뿔! 시정잡배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하얀 모루 부족의 드워프들은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뒷담화에 불과했다.
이미 리하르트와의 거래가 체결된 뒤였으니.
“끄응…… 수작질을 부리는 게 아니었는데.”
그들이 골머리를 싸맸다.
호구를 잡으려다 되려 잡혀 버린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재현된 ‘명검 중의 명검’ 한 자루.
‘좋은 검’ 천 자루.
‘쓸만한 검’ 만 자루.
거기에 더해 성벽의 보수와 건물까지 지어 달라는 리하르트의 요구는 정말 악독하기가 그지없었다.
“……사실 별것 아니야.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일단 전설의 검은 차치하더라도 말이야.”
“문제는 기 싸움에서 졌다는 거야. 이러면 앞으로 거래를 할 때마다 우리 쪽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어.”
드워프들은 호르교와의 거래를 이번 한 번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훌륭한 무구를 만드는 것이 존재 이유인 그들에게 리하르트의 빛은 그야말로 유일한 동아줄.
그러나 호르교로부터 빛을 공수해 올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곤란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지. 인간 놈들도 우리의 작품을 보면 더 이상 건방지게 굴 수 없을 거다.”
후르큼의 말에 드워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불끈 쥔 주먹엔 각오가 어렸다.
그들은 이내, 템플나이츠의 안내를 받아 왕도의 대장간을 방문했다.
우선 계약 내용대로 무구부터 만들 심산이었다.
“젠장!”
하지만 그마저도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았다.
“너무 좁아. 여기가 무슨 변소야?”
“불은 또 왜 이렇게 미적지근해?”
“맙소사, 이런 허접한 곳에서 대체 무엇을 만들란 거야!”
날 때부터 장인 정신이 남다른 드워프들은 대장간을 볼 때도 깐깐했다.
개중엔 못 볼 것을 봤다며 눈을 찌르려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깡-! 까앙-!
새의 지저귐이라 여기던 망치 소리도 거북하기만 했다.
결국 그들은 도망치듯 대장간을 빠져나왔다.
“이봐, 인간! 다른 대장간은 없나? 저런 곳에선 ‘쓸 만한’ 수준도 만들고 싶지 않아. 그건 무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후르큼의 말에 템플나이츠의 기사, 잭이 머리를 긁적였다.
“있긴 하다만, 그리 다르진 않을 거요.”
드워프들이 성화를 부리며 잭의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서쪽의 대장간까지 찾아갔으나, 그곳 또한 드워프의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잭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살폈다.
“뭐가 문제란 거요? 바렌의 대장간 정도면 훌륭한 편이오.”
“하. 이게 훌륭한 편이라고? 우리가 젖도 못 땠을 적에 사용했을 법한 시설이구만. 안되겠어. 등불이라는 인간과 다시 대화를 해 봐야겠군.”
결국 그들은 아무런 소득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 ◈ ◈
나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보았다.
트란티스 후작을 포함한 바렌의 사절단이 일장연설을 펼치고 있었다.
그 상대는 다름 아닌 프로트 왕실의 국왕과 귀족들이었다.
‘불신이 가득하네.’
트란티스 후작이 늙은 몸으로 후광을 뿜어냈지만, 프로트 왕실은 영 믿기 어렵단 기색이었다.
어디서 사특한 힘을 얻어 온 것은 아닌가.
그 힘을 종교로 포장해서 헛수작을 부리려는 것은 아닌가.
그들의 생각이 손에 잡힐 듯 훤히 보였다.
‘좀만 더 고생하쇼, 후작.’
업보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호르교를 받아들이는 것에 결사반대를 외쳤던 후작에겐 딱 알맞은 말이었다.
나는 재밌는 구경거리를 보듯 지켜보다 신안을 해제했다.
제법 고난은 있겠으나, 후작이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들의 불신을 깨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었다.
지금 내가 신경 써야 할 문제는 템페스트였다.
정확히는 그 안에 있는 용사의 영혼.
“흐음…….”
툭, 툭-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마음 같아선 다시금 대화를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후르큼의 완강한 거부에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망가트리지 말라 했지.’
그건 나로서도 겁나는 일이었기에 순순히 돌려주었다.
“알버트 피기우스, 알버트 피기우스…….”
나는 몇 번이고 용사의 이름을 되뇌였다.
당연하게도 난 그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외골수에 불굴의 의지를 가졌으며, 정의로운 성정의 소유자다.
전형적인 용사상의 인물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간혹 적에게 불필요한 관용을 베푼다는 점이었다.
‘결국 성마대전의 끝에 죽고 말았지. 그놈의 관용을 베풀다가.’
그 당시의 영웅들은 알버트를 두고 용사로서 실격이라 평했다.
당신의 나도 절반 정도는 동의했다.
그가 관용을 베푼 상대가 다른 누구도 아닌 칼고스였기 때문이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이봐, 인간!”
한참 생각에 빠져 있던 중, 난쟁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 면면엔 불만이 한가득이었다.
“대장간이 마음에 안 들었나 보군.”
“그렇다! 그런 누추한 곳에서 우리를 부려먹을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죄악이다, 인간 놈아!”
후르큼은 부러 목청을 높이며 소리쳤다.
이대로 주도권을 휘어잡을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어찌 되든 간에 빛을 쥔 쪽은 나인데.
나는 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말했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드워프와는 별개의 이야기인가?”
“좋은 도구는 장인의 손에서 좋은 무구를 만들어 낸다. 그딴 헛소리는 좋은 도구의 가치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만들어 낸 말이다.”
척!
후르큼의 짧고 두툼한 손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수염 성성한 얼굴엔 비장함이 차올랐다.
“해서, 거래 내용의 수정을 요구한다.”
“어떻게?”
“왕도 근처에 우리들의 대장간을 따로 만들겠다. 인간들은 우리의 수고스러움을 감안하여, ‘좋은 무구’ 오십 자루와 ‘쓸 만한 무구’ 오백 자루로 조정했으면 좋겠군.”
“흐음.”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왕도 안쪽도 아니고, 왕도 근처라. 속이 뻔히 보이는군.’
바렌과 호르교는 이 거래를 놓칠 수 없다.
눈앞의 난쟁이들도 이를 잘 알았고, 그들 또한 나의 빛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주기적으로 거래를 이어 나가고 싶을 터.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거래의 주도권이니, 저들은 지금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속셈이었다.
“너희 좋으라고 짓는 대장간인데 왜 이쪽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지?”
“무, 무슨 소리를! 우리 마을엔 이미 훌륭한 대장간이 있다. 이건 그저 거래를 이행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 후로 몇 마디 갑론을박이 오고갔다.
후르큼과 드워프들도 이번만큼은 쉽사리 물러가지 않을 생각인지, 작달막한 몸뚱어리로도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슬슬 당겨 볼까.’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나는 고심하는 척, 미간을 짚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지. 이쪽에서도 너희가 원할 법한 자재를 하나 주겠다.”
“흥! 우리가 너희에게 원하는 건 빛이다. 그것 말곤 없어!”
“세계수로 만든 땔감이라면?”
“……!”
소리 없는 경악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머나먼 옛날.
엘프들과 주구장창 싸운 종족 중에 하나가 바로 드워프였다.
세계수라는 신묘한 장작을 얻기 위해서.
‘아델, 허락해 줘서 고맙다.’
그녀는 다른 방에서 숙면을 취하는 중이었다.
드워프들이 이곳에 당도하기 전부터 미리 양해를 구했는데, 아델은 생각보다 쉽게 허락해 주었다.
“세, 세계수의 땔감이라면…….”
“맙소사! 그게 여기 있단 말이야?”
드워프들이 머리를 맞대고 쑥덕거렸다.
기이하게 일렁이는 눈빛은, 갈망하는 자의 것이었다.
“내 말 다 안 끝났어. 이쪽이 세계수의 장작까지 주는데, 거래 내용이 그대로라면 수지가 안 맞지.”
“…….”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내가 또 얼마나 과도한 요구를 해 올지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쿵.
나는 테이블 위에 목함을 꺼내 올렸다.
촘촘히 묶어 놓은 덩굴을 하나씩 풀어 내며 말했다.
“그 ‘명검 중의 명검’과 이 검을 하나로 합쳐 줬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