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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망나니가 되었다-122화 (122/216)

122화. Episode. 39 중급 신격 (3)

칼고스가 검신 안에서 눈알을 뒤룩뒤룩 굴렸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까 고민해 보았으나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

곧 자리에서 일어난 리하르트는 백귀의 검자루를 쥐곤 한참이나 칼고스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 서서히 살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전후 사정 따윈 필요 없이, 곧장 백귀를 깨부수려는 낌새였다.

칼고스가 히죽 웃었다.

『끄흐…… 아버지?』

『이 검을 부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시겠지요?』

『저도 이곳이 답답하던 참이니 별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은 마계에서도 지고한 위치에 있던 역병 군단장.

몰락한 아버지의 눈치를 살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칼고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힘을 잃고 검에 갇혔다 하여, 설설 기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네놈이 왜 거기 있는 거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음성에 칼고스의 눈이 둥글게 휘었다.

『당신께서 모르시는 것도 있습니까?』

『전능(全能)하지도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 보니 전지(全知)도 못하는군요.』

『그러고도 신 행세를 하고 계시던 거였습니까?』

『끄하하하하!』

으드득-

리하르트의 이가 부러질 듯 비명을 질렀다.

그의 몸에 빛이 일렁였다.

‘후,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리하르트는 자신의 안일함을 반성하는 동시에 현 사태를 파악하고자 머리를 굴렸다.

‘이놈한텐 영혼을 다루는 능력 같은 건 없어. 백귀(百鬼), 요검의 특성으로 일어난 변수일지도 모른다.’

백 마리 귀신을 품었다하여 백귀라는 이름을 얻은 요검.

지금 칼고스는 백귀에 갇혀 있던 귀신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귀신들은 어떻게 했지?”

끄흐흐-

기분 나쁜 웃음이 검신에서 흘러나왔다.

“물었다. 그 안에 있던 귀신들을 어떻게 했냐고.”

리하르트가 눈을 한껏 치켜뜨고 나서야 칼고스의 입이 열렸다.

『꺼억.』

시원한 트림.

몇 번 입맛을 다신 칼고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          ◈          ◈

“하아…….”

잠이 싹 달아났다.

나는 야영지를 벗어나 넓다란 바위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이 자꾸만 터져 나왔다.

“미친놈.”

내 손엔 목함이 들려 있었다.

백만의 신앙을 꾹꾹 눌러 담고, 잠에 빠진 아델을 깨워 덩굴로 빈틈없이 감아 놓은 목함.

이 안에 백귀가 있고, 칼고스가 있다.

놈은 내가 목함에 처박아 놓는 순간까지 도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 강대했던 힘과 격조차 거의 다 잃은 주제에.’

그야말로 천성부터가 미친놈이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절로 목함에 힘이 들어갔다.

“……부술까.”

후환을 없애기 위해선 백귀를 산산조각 내는 한이 있더라도 놈의 영혼을 끝장내야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정말 만약에, 백귀를 부수는 것이 칼고스를 해방시키는 짓이라면?

이건 쉽사리 결정을 내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이대로 지켜보자.’

이제 목함 자체는 완전히 밀봉했으니, 앞으로 칼고스가 허튼 짓은 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점차 하늘이 밝아졌다.

하나둘 깨어난 기사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잠 많은 성자님께서 오늘은 웬일이십니까?”

“어떤 개자식이 잠 많은 나를 계속 깨우더라고.”

“……예?”

나는 기사의 어깨를 두드려 주곤, 목함을 내 짐 속에 깊이 파묻었다.

이내 아침을 해결한 우리는 다시금 왕도로 향했다.

아델과 템플나이츠에겐 백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괜히 그들에게 불안감을 심을 필요가 없었으니.

더불어 칼고스가 그 간교한 혀로 어떤 헛소리를 내뱉을지 모르기도 했고.

“성자님?”

한참을 묵묵히 걷는데 아론이 나를 불렀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계십니까? 저기, 왕도가 보입니다.”

그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무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렌 왕성의 모습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          ◈          ◈

리하르트 일행은 왕도의 정문을 지나쳐, 곧장 왕성으로 이동했다.

친위대의 호위를 받으며 왕도를 가로지르는 그들을 향해, 시민들이 밖으로 나와 함성을 내질렀다.

호르교가 이곳에 첫발을 내딛었을 때보다도 더욱 큰 활력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리하르트 공, 우리 바렌의 영웅들이여. 이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구려.”

리하르트와 템플나이츠를 맞이한 국왕 또한 안색이 밝아진 채였다.

꼿꼿이 펴진 허리는 위엄이 들어찼고, 현기가 한층 깊어진 눈동자는 현왕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여독이 남아 있을 리하르트 일행에게 귀빈실을 내주었다.

그리고 리하르트에겐 독대를 요청했다.

“고맙소. 그대 덕에 우리 바렌은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되었소.”

체통도 잊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하는 그를 리하르트가 만류했다.

“모든 것은 바렌의 호르 덕이지 않습니까. 어찌 제게 고개를 숙이려 하십니까.”

“그대가 행한 일이 곧 바렌의 호르였소. 정말 고맙소.”

국왕은 리하르트의 업적을 하나하나 입에 담았다.

듣는 당사자에겐 부담스러운 일이었으나, 그것은 바렌이 앞으로도 자국의 은인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 같았다.

“……그리고, 트란티스 후작이 사절단을 꾸려 프로트 왕국으로 향했소. 바렌의 암운은 사라졌으나 대륙의 암운은 여전하니, 그들에게도 호르가 필요할 것이오.”

“바렌의 결단에 호르께서 흡족해하실 겁니다.”

리하르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실제로 그는 무척이나 흡족했다.

프로트 왕국으로 향한 트란티스 후작과 사절단.

바렌의 각 영지에서 소임을 다하는 스노우폴의 전도사들.

머지않아 그들 중에서 중급 전도사가 탄생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곧 프로트 왕국도 호르교의 손길을 받아들이게 될 터였다.

그것도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있소.”

“무엇입니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호르라고 하였지…… 그렇다면, 악인의 소망도 호르라 할 수 있소?”

국왕이 물었다.

그 물음은 바렌의 전도사들이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악인이 악한 소망을 간절히 품으면, 그것이 이루어지는가.

선과 선이 서로 상충할 때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신이라는 존재 앞에서 선과 악의 구분이 있기는 한 것인가.

현 소망론의 커다란 맹점.

리하르트는 그것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호르는 각자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이고, 믿음의 발현…… 이라고 했지.’

애당초 틀린 믿음이다.

당장 앨런의 경우만 보아도, 그는 ‘호르’라는 실존하는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지 않았는가.

이대로 소망론과 실제론의 극이 벌어지면, 언젠가 북대륙과 남대륙처럼 종파 대립으로 변질될 것이다.

하지만 리하르트는 그 종교적 관념의 차이를 바로잡을 생각이 없었다.

다만 선(線)은 있었다.

“우리 모두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인 또한 마찬가지지요.”

“…….”

“하지만, 유념해 두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리하르트의 몸에서 후광이 일었다.

그는 잘게 떨리는 국왕의 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호르께선 선을 추구하십니다.”

“……!”

“올바른 소망이 곧 호르입니다. 악인의 악한 염원은 호르께 닿지 못하겠지요.”

생각을 정리하는 듯, 국왕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가 입을 연 건,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난 후였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구분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오. 각자의 선이 누군가에겐 악이 될 수도 있지 않겠소.”

그 물음에 리하르트가 빙긋 웃었다.

◈          ◈          ◈

“취이익! 췩! 췩!”

리하르트의 모습을 한 휴거가 콧노래를 불렀다.

그런 그의 앞에는 큼지막한 고기가 놓여 있었다.

“난쟁이 친구들! 고맙소, 잘 먹겠소!”

잔뜩 신이 난 휴거의 음성에 난쟁이들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려 그려. 많이 먹어라.”

“생긴 건 인간인데 행동거지는 오크 같군.”

난쟁이들은 서로 속닥이면서도 휴거와 나르를 곁눈질로 살폈다.

그들은 하얀 모루 부족의 드워프들이었다.

“그래서, 인간. 우리 부족엔 대체 왜 찾아온 거냐?”

족장 후르큼이 휴거에게 물었다.

“대단한 인간 전사가 이곳에 들렸다 가라고 했거든!”

“대단한 인간 전사?”

도무지 알 수가 없는 대답에 난쟁이들이 눈짓을 주고받았다.

마음 같아선 인간 따위 단번에 내쫓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후르큼의 눈이 배를 깔고 누워 있는 나르에게 향했다.

그 새하얀 사자로부터 신성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얀 모루 부족의 드워프들에겐 그것이 필요했다.

“그대는 도끼를 사용하나 보군.”

“취익! 맞소! 도끼가 손맛이 좋지!”

“흐흐…… 그대도 알다시피 우리는 드워프다. 좋은 도끼를 만들어 줄 테니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나?”

휴거가 고개를 갸웃했다.

드워프가 선뜻 나서서 무기를 만들어 준다는 일은 드물기 때문이다.

“무슨 부탁이오?”

후르큼의 짧은 손가락이 나르를 향했다.

“저 사자 놈, 이빨이라도 몇 개 뽑아 다오.”

“절대 안 되오.”

휴거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드워프제 도끼는 그도 무척 탐나는 물건이지만, 그렇다 해서 죄 없는 친구의 이빨을 뽑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드워프들도 제법 간절해 보였다.

그래서 휴거가 이유를 물었다.

“대륙에 낀 마기 때문에 무구를 만드는 족족 마기가 섞여 버려! 우린 하얀 모루 부족인데, 죄 까무잡잡한 것들만 만들어진다고!”

“빌어먹으을! 선조를 뵐 낯짝도 없다!”

난쟁이들이 하소연을 했다.

족장 후르큼은 몇 남지도 않은 머리를 쥐어뜯기까지 했다.

“취익……? 그거랑 이빨이랑 무슨 상관이 있소? 거기! 가까이 오지 마시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읽은 휴거가 나르를 감쌌다.

“그 사자한테는 마기와 반대되는 기운이 느껴져. 그것도 꽤 강렬히.”

“이빨을 가공해 망치와 모루로 만들면 앞으로 마기가 섞이지 않을 거다! 가능하다면 가죽도 좋지!”

난쟁이들의 눈에 초점이 흐릿해졌다.

그들에겐 좋은 무구를 만들지 못하게 된 것은, 세상이 멸망한 것과 같은 격이었다.

크워어엉-!

심기가 불편해진 나르가 포효했다.

그 사이에 끼어 버린 휴거는 속으로 리하르트를 떠올렸다.

‘참, 타이탄에 가기 전에 오른 산맥 근처에 들렸다 가라.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분명 리하르트가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좋은 친구들이란 게, 휴거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대단한 인간 전사! 또 나더러 큐피트 노릇을 하란 거요! 허, 참!’

마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드워프들.

리하르트가 휴거에게 원하는 바는 무척 명확했다.

“애꿎은 친구 이빨 뽑으려 들지 마시오. 내가 등불이 있는 곳을 알려 줄 터이니. 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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