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Episode. 38 자이언트 슬레이어 (3)
『흐…… 쥐새끼 자식.』
모리츠는 나의 동료다.
첫번째 성기사이며, 나의 형이다.
그가 칼고스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것을 보았을 땐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가 놈의 아가리에 집어삼켜지는 모습이 아주 천천히, 눈에 박히듯 들어왔다.
“성자님! 안 됩니다!”
“지금 대열을 이탈하시면……!”
찢어질 듯한 아론과 기드의 외침도 내 귀엔 들리지 않았다.
“호르시여…….”
그저 칼고스의 참람한 광소와 모리츠의 체념 섞인 기도만이 들려왔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칼고스의 아가리에 몸을 날린 후였다.
눈앞에, 역병으로 까맣게 물들어 버린 모리츠가 보였다.
그는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마지막 인사에 불과한 읊조림과 함께.
감히 누구 멋대로 죽으려 한단 말인가.
“그래. 호르께서 널 살리실 거다.”
그제야 눈을 뜨고 나를 본 모리츠가 시끄럽게 굴었다.
나는 짓쳐드는 거인의 이빨을 막아선 채로, 모리츠를 별 위에 실었다.
“너, 뭐 하는 거야?!”
“…….”
꾸드득-
칼고스의 이빨이 더욱 무거워졌다.
절로 무릎이 굽혀지기 시작했다.
“야, 리하르트!”
모리츠의 비명 같은 음성이 들렸다.
저 밖에선 아론과 기드, 지크의 다급한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미안.”
모리츠를 실은 별이 칼고스의 입을 빠져나갔다.
서서히 멀어지는, 멍한 얼굴의 형제를 보았다.
온갖 감정이 스쳐 지나는 표정이다.
나도 이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나 후회는 없었다.
그저 이런 선택을 한 스스로가 어이없고 우스웠을 뿐이었다.
내가, 나란 놈도 희생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구나.
툭.
어느샌가 거인의 어금니에 내 무릎이 닿았다.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빠르게 닫혀 갔다.
그 사이로 해괴망측한 표정을 지은 채 서 있는 앨런이 보였다.
‘남쪽의 성자여. 네가 이 전쟁의 희망이다.’
그렇게 입을 달싹여 주니, 앨런의 눈이 부릅뜨였다.
곧 그의 주변에 빛이 피어올랐다.
내가 가진 모든 신앙을 전했다.
‘이것밖에 못해 주겠구나.’
콰득-
◈ ◈ ◈
바닥을 구른 모리츠가 꺽꺽 숨을 몰아쉬었다.
입에선 차라리 신음에 가까운 소리가 연신 흘러나왔다.
“안 돼…… 이럼 안 되는 거잖아…….”
그가 고개를 들었다.
사정없이 떨리는 시선이 거인을 향했다.
『하, 하아아……!』
황홀경에 빠진 듯 눈을 까뒤집은 채 미소를 짓는 칼고스.
놈의 입가에 흐른 핏줄기는 성스러운 기운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성혈(聖血).
독 사과를 씹어 삼킨 칼고스의 아가리에서 매캐한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아아!!”
정신이 혼미한 모리츠의 귓가에 처절한 절규가 틀어박혔다.
주군을 잃은 아론, 그의 절규였다.
“성자, 성자님…… 리하르트 도련님……!”
백전노장이 울었다.
소리 없는 통곡이었다.
『이토록 허무하게.』
『이토록 하찮은, 개죽음이 또 있을까!』
『이것이 정녕 당신의 최후란 말입니까, 아버지!』
칼고스가 피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마, 말도 안 돼. 성자님께서……?”
역병 괴물들과 드잡이질을 하던 리오 성의 병력 사이에서 혼란이 일었다.
겨우 정신을 부여잡은 오르드 성주의 지휘로도, 그 혼란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전장이 충격으로 휘청이기 시작했다.
칼고스는 마치 싸움이 다 끝난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마법 포격이 빗발치든, 기사들의 절규 맺힌 검이 난무하든.
가만히, 성자를 씹어 삼킨 가증스러운 입으로 아버지를 향한 모욕을 쏟아낼 뿐이었다.
“……정말 그놈이 죽은 건가.”
한참 말을 고르던 앨런이 마르에게 물었다.
마르는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입술만 짓씹고 있었다.
그것이 곧 앨런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왜지……?”
앨런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호르의 총애를 빼앗은 연적.
그에게 리하르트는 눈엣가시였다.
한데 리하르트의 죽음이 전혀 기쁘지 않았다.
마치…….
“호르시여, 대체 이 감정은 무엇입니까.”
마치 호르의 최후라도 목격한 것 같은 기분.
커다란 상실감이 그를 괴롭혔다.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입을 꾹 다물지 않으면 저 최전방의 기사들처럼 절규라도 내지를 것만 같았다.
사아아-
그때 앨런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리하르트가 죽기 전에 양도한 호르의 힘이었다.
『……!』
칼고스의 시선이 앨런을 향했다.
“이단…….”
앨런 또한 칼고스를 마주 바라보았다.
모든 의문과 혼란은 저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 ◈ ◈
절망이 가득 찬 전장에 빛이 폭사했다.
앨런으로부터 터져 나온 신앙이었다.
“호르…… 호르시여!”
절망에 빠져 숨만 몰아쉬던 모리츠가 악을 썼다.
리하르트와 동고동락하던 이들 모두가 그랬다.
제발 그를 살려 주십시오.
그것이 저희의 소망입니다.
간곡한 기도를 올렸으나, 북쪽의 성자는 되살아나지 않았다.
“정신 차려라, 머저리들.”
빛을 휘어감은 앨런의 날카로운 독설만 돌아올 뿐이었다.
“네놈들이 진정 기사라면, 너희의 주군을 죽인 거인에게 복수해라.”
마법 연합의 요새에서부터 들려오는 그 음성은 신앙이 가득 섞여 있어, 마치 리하르트의 그것과 비슷했다.
혼란한 전장을 밝히는 빛 또한, 숱하게 함께해 온 리하르트의 것과 같았다.
그래서 기사들은 다시 일어섰다.
검과 창을 쥐고, 거인을 마주했다.
짐승 같은 포효가 그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때였다.
콰가각-!
거대한 나무줄기가 솟아 칼고스의 다리를 옭아맸다.
“칼고스…… 칼고스으으으으!”
북쪽의 세계수 아델.
그녀가 원색적인 분노를 토해 냈다.
이어서 또 다른 나무줄기가 거인의 팔을 묶었다.
남쪽의 세계수 마르의 것이었다.
“당장 이 괴물들을 쳐 죽이고 하늘의 복수를 가하자!”
오르드 성주가 불거진 눈으로 소리쳤다.
숭고한 사명으로 비롯된 전쟁이 어느샌가 처절한 복수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 ◈ ◈
사지가 묶인 거인을 향해 기사들이 맹렬히 공격했다.
강맹한 마법이 거인의 머리를 쉬지 않고 폭격했다.
날붙이도 쉬이 박히지 않던 붉은 피부가 쩍쩍 갈라졌다.
“죽어어-!!”
모리츠가 미친 듯이 단검을 박아 넣었다.
더럽고 불쾌한 피가 솟구쳤다.
『발악을 하는구나.』
삽시간에 피투성이가 된 거인은 입매를 비틀어 올렸다.
그의 내부는 사실 만신창이였다.
리하르트라는 독사과를 집어삼킨 대가였다.
더불어 리하르트가 앨런에게 양도한 빛이 칼고스를 더욱 약화시켰다.
그럼에도.
칼고스는 여유로웠다.
콰직, 콰지직-
그의 사지를 속박하고 있던 나무들이 썩어 문드러졌다.
재차 수어 줄기의 나무가 솟구쳤으나, 역병의 검에 전부 잘려 나갔다.
『아델가르텐, 마르가르텐…… 나의 형제들이여.』
『너희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
제 몸에 달라붙어 살갗을 헤집는 기사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칼고스는 두 세계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볕 좋은 정원의 화초.』
『너희들은 결코 겨울을 버티지 못한다.』
역병의 거검이 휘둘러졌다.
아론이 땅을 굴러 궤적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거검에서 쏘아진 참격은, 저 멀리 떨어진 마법 연합의 요새를 무자비하게 갈랐다.
비명과 신음이 곳곳에서 터졌다.
내로라하는 마법사들이 쌓아 올린 요새는 칼고스에겐 종잇장과도 같았다.
두 세계수가 이를 악물었다.
혼을 쥐어짜 생명의 정수를 뿜어내고, 발악 같은 발 구름으로 나무를 뽑아냈다.
그리고 모두 단칼에 베여 검게 썩어 문드러졌다.
콰과과광-!
그때 앨런이 쏘아 낸 백염이 칼고스의 몸을 집어삼켰다.
대마도사의 반열에 든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초고열의 불이었다.
신앙이라는 특수한 힘까지 더해진 화염은 칼고스로서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쿠웅-!
칼고스가 기세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역병의 기운이 들끓으며, 몸을 집어삼킨 백염을 걷어냈다.
“커, 커억……!”
불결한 역병의 기운이 전장을 뒤덮었다.
그것이 어찌나 지독스럽던지, 무너진 요새의 마법사들까지 피부가 거멓게 썩어 들어갔다.
미간을 와락 찌푸린 앨런이 더욱 크게 빛을 밝혔지만, 이미 전염병이 모두를 물들인 뒤였다.
“빌어먹을.”
패배.
그 두 글자가 사무치게 다가왔다.
◈ ◈ ◈
몽롱한 와중에 눈을 깜빡였다.
아니, 깜빡이려고 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몸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몸 자체가 없는 것만 같았다.
‘나, 죽었을 텐데.’
모든 게 희미한데, 마지막의 그 고통만큼은 선명했다.
온몸이 일순간에 짓이겨지는 끔찍한 격통.
그래. 나는 칼고스에게 씹어 삼켜졌다.
이렇게 ‘생각’이라는 것을 유지할 수 있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녀석들은? 전쟁은 어떻게 됐지?’
동료들이 걱정됐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내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전장의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내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데, 절망 어린 악다구니가 몰아치듯 들려왔다.
‘…….’
전장은 빈말로도 좋다 할 수 없었다.
지금 내 머릿속에 나열되는 이것이 진실일지, 그저 환상에 불과할지는 모를 일이었으나.
울컥-
치솟는 내 감정은 모두 진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절규를 멈추지 않는 모리츠.
얼굴에 커다란 상처가 아로 새겨진 아론.
기드와 지크는 당장에라도 쓰러질듯 피를 게워 냈다.
‘안 돼.’
곧이어 역병 괴물들을 처리한 리오 성의 병력이 칼고스와의 대치에 합류했다.
마법 연합의 마법사들도 칼고스에게 총공세를 퍼부었다.
내 모든 신앙을 받아들인 앨런이 분전에 분전을 거듭했다.
그런 그들의 피부에 본래의 색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절망했다.
칼고스가 휘두른 일검에, 방패를 꼬나 쥔 기사들이 갈려 나가고, 놈의 발길질에 수십이 날아갔다.
엘프들은 마나 역류 현상으로 검붉은 피를 줄줄이 토해 냈다.
그건 더 이상 전투가 아니었다.
학살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나는 발버둥쳤다.
없는 손으로, 없는 발로 힘껏 몸부림을 쳤다.
‘난 죽지 않았어……!’
내가 정녕 죽은 것이라면, 이렇듯 마음이 있고 생각이 이어질 리가 없었다.
그때였다.
사아아-
온통 새까만 칠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이 피어났다.
신앙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더욱 상서롭고 거룩한 빛이었다.
그것은…… 신격.
‘호르’였다.
『내가 나에게 계시를 내리노니.』
『빛을 품은 영혼은 비로소 알맞은 위를 갖추었다.』
『나는 나를 희생함으로 진정한 빛을 품었노라.』
신격이 내게 말했다.
그 경외스러운 존재가 점차 내게 다가왔다.
이윽고, 그가 내게 닿았다.
『성부로부터.』
『성령을 통하여.』
두근-
[영혼에 대한 신격의 간섭.]
[신격에 대한 영혼의 간섭.]
[육신에 대한 영혼과 신격의 간섭.]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몸의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등극 ? 성육신(成肉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