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Episode. 32 정원을 가꾸는 (3)
그 뒤로도 나는 몇 번 더 아델을 찾아갔다.
그럴 때마다 엘프들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고, 아델은 방긋방긋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한데 오늘은 평소와 달랐다.
“어머니께서 오늘, 옥체를 옮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녹색 마법진 위에 누워 있는 아델의 모습에 타사르가 다가와 설명해 주었다.
정원의 틀이 완성되어 가니 준비하는 거라고.
기껏 좋은 소식을 알려 주러 왔건만 타이밍이 어긋나 버렸다.
뭐, 어차피 아델이라면 금방 알아챌 것이다.
그녀를 보다 문득 엘프들로 시선을 옮겼다.
눈에 들어온 그들의 모습은, 마법진에 어찌나 시달렸는지 하나같이 안색이 파리했다.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남쪽 세계수, 마르가르텐이 깨어났다.”
뚝-.
그 말에 엘프들은 손끝에 걸린 마법진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것도 신경 쓰지 못한 채, 낯빛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리고.
“몇 명…….”
바로 옆에서 끊어질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북쪽 엘프들의 수장, 타사르였다.
“몇 명이나 살아 있습니까. 남쪽의 형제들은.”
머나먼 과거, 북대륙과 남대륙으로 찢겨진 엘프들.
말라 가는 세계수를 바라만 보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건 북쪽의 정원사들만이 아니었다.
애석하게도 남쪽의 정원사 역시 영락을 피해 갈 수 없었다.
“팔십 정도.”
나는 신안으로 보았던 엘프들을 떠올렸다.
본래의 싱그러움을 모두 잃어버린 그 모습은, 내가 아델가르텐을 처음 방문했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내 말에 타사르와 엘프들이 고개를 떨궜다.
인고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는지, 남쪽 엘프들을 걱정하는 모양이었다.
축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있노라니 입맛이 영 쓰다.
엘프의 영락이 신의 부재로 초래된 일이란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선, 괜한 죄책감마저 들었다.
“호르시여, 부디 마르가르텐 님과 동족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비애에 젖은 그것은 부탁인지 기도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쓰던 입맛이 더욱 써져 버렸다.
◈ ◈ ◈
엘프들은 인간을 싫어한다.
아니, 이 대륙에 살아가는 모든 이종족을 적대시한다.
탐욕스러우며, 이기적이고, 야만적인.
오직 제 자신의 안위만 찾아 헤매는 자들을 경멸했다.
인간은 세계수의 과실을 탐냈고.
오크는 푸르고 싱그러운 정원을 제 집 삼고자 했으며.
난쟁이들은 세계수를 영원히 타오르는 땔감이라 여겼다.
하나.
탐욕 어린 인간의 군세는, 과실에 닿을 수 없었고.
절제와 예의를 모르는 오크는, 결코 숲에 안착할 수 없었으며.
이기적인 난쟁이의 도끼날은, 세계수에 닿지 않았다.
수천 년을 써 내려온 엘프의 역사 중, 크고 작은 싸움이 끊겼던 적은 전무했다.
침략과 수탈.
엘프들은 항상 당하는 쪽이었고, 방어하는 쪽이었다.
그저 제 영역을 지키고 싶었을 뿐인 그들에게, 다른 종족은 마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원을 지켜 나갔다.
말라 가는 세계수를 붙들고, 생기를 잃은 정원을 등에 업고.
끝끝내 시들어 대륙에서 잊힐 때까지.
『우리는 지키는 파수꾼이로다.』
타사르는 선조에게 물려받은 전승을 떠올렸다.
『그 누구도 이곳을 침범치 못할 것이니.』
『파수꾼들은 죽어서도 이곳을 지키리라.』
지독스런 가뭄에 세계수의 신력마저 잠들자.
시들어 가는 정원에서, 타사르의 선조는 그리 말했다.
강퍅하게 마른 뺨엔 굵은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우리는 가꾸는 정원사로다.”
정원 준비 작업을 지켜보던 리하르트의 시선이 타사르를 향했다.
타사르는 그 시선을 느끼지 못한 것인지, 마법진을 그려 내며 홀로 중얼거렸다.
“위대한 어머니 계시는 곳이 곧 성역이며.”
“정원사들은 죽어서도 이곳을 가꾸리라.”
그것은 단순한 중얼거림이 아니다.
한 종족이 짊어진 업(業)의 결의였으며, 염(念)의 표현이었다.
족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전승에 방의 분위기가 변했다.
엘프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다부져졌다.
반짝이는 눈매엔 신념이 돋보이기도 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흐트러진 마음이 다잡아지고, 호흡이 고요해진다.
그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변화는 마치, 신앙의 빛을 마주한 신도를 보는 것 같았다.
“허.”
벽에 등을 기댔던 리하르트가 헛웃음을 흘렸다.
닳고 닳아 그 존속마저 위태로웠던 정원사들은, 이런 상황이 되어서까지 전승을 떠받들고 있었다.
지잉, 지이잉-
업과 염을 떠올린 엘프들이 다시금 작업에 열중했다.
형형색색의 마법진들이 그려지는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성자님.”
지잉, 마법진을 손끝에 매단 타사르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고해하듯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저희는 인간들이 밉습니다. 오래전부터 그들은 탐욕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요.”
그 안에 담긴 원색적인 감정은 조금 전 읊조렸던 전승의 염과는 정반대였다.
타 종족에 대한 케케묵은 원한, 그건 엘프들이 제 영역을 지키는 것을 업과 염으로 삼게 한 원흉이었으니.
밉고, 밉고, 또 미우리라.
몇 마디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리하르트 또한 엘프들의 처절한 역사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은 인간들이 세우고 인간들이 지키는 성.
한데 어째서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정원을 내주는가.
아무리 세계수의 의지에 따른다 한들, 한 치의 반발조차 없이 밤낮을 새가며 정원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비정상적이기까지 했다.
“이곳의 인간들과 고작 몇 번 함께 싸웠다 해서 그 원한이 식었을 리는 없고.”
그러기엔 팬 골이 너무나 깊다.
더군다나 그 골을 채운 건 붉은 피요, 동족의 시체였다.
“너무도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동족이 저급한 탐욕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백 번, 천 번을 같은 전장에 선다 하여도 이 증오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럼 왜 여기서 이러고들 있는 거지?”
“어머니의 뜻입니다.”
리하르트가 속으로 혀를 찼다.
그저 따를 뿐이라며 자신의 속마음에서 눈을 돌린 엘프들.
그 시꺼멓게 타 버린 속내가 훤히 보였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다.
평화와 자연을 사랑하는 엘프들이 그렇게도 잦은 전쟁을 겪었다는 것도, 인간이 증오스럽다면서 인간의 성에 정원을 짓고 있는 지금도.
아득히 먼 선조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타 종족으로부터 지켜 오던 정원을 제 손으로 내주게 된 심정은 대체 어떨까.
리하르트로서는 감히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었다.
“너희들이 반대했다면 아델도 뜻을 굽혔을 텐데.”
“염려로 비롯된 만류는 할 수 있어도, 어머니의 뜻에 반기를 드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건 내가 원하던 답이 아니야.”
“……저희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이것뿐입니다.”
지잉-, 마법진을 바닥에 흘려보낸 타사르가 재차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기계를 보는 것 같았다.
감정을 죽인 채 명령에 따르기만 하는.
그렇게 가만히 엘프들을 지켜보던 리하르트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 ◈ ◈
“수백 년을 살아도 번뇌를 벗어나진 못하나 보군.”
나는 소파에 몸을 뉘이곤, 조금 전의 대화를 되새겼다.
인간들이 밉다 말하는 타사르의 표정이란.
수장이란 직책에 어울리지 않게, 온갖 감정이 뒤섞여 혼탁하기만 한 기색이었다.
오늘의 대화로 나는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엘프와 타 종족은 깊이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을.
필요에 따라 잠시간 손을 잡을 순 있어도 진심 어린 유대를 쌓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공동체를 중시하는 엘프들에게 역사는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선조의 원한은 자신의 원한이었다.
그 원한이 쌓이고 쌓여 급기야는 대전쟁의 포문을 열어 버렸을 정도니, 결코 쉬이 증오가 사라질 순 없을 터다.
그리고 그것은 꼭 엘프라는 종족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륙에 세를 꾸리고 살아가는 사대 종족 중 서로 앙금이 없는 종족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불편한 이웃으로 대할 뿐이었다.
얽히고설킨 복잡한 관계.
하지만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해결책은 간단했으니까.
이 땅에 사는 종족들은 이미 한 번 단합한 적이 있었으니.
이제는 나와 세계수만이 기억하는 성마 대전이 바로 그 시절의 증표였다.
각 종족 간의 케케묵은 원한보다도 한참은 더 오래된 시절의 일이었으나,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갈 자신이 있었다.
“호르교는 모든 연결 고리가 될 것이다.”
툭, 툭-
소파의 팔걸이를 두드렸다.
그러다 이내 신안을 사용했다.
모든 연결고리고 자시고 간에 우선은 이제 막 깨어난 마르가르텐을 살펴야 했다.
시점이 저 하늘 위로 솟구치고, 순식간에 숲이 보였다.
신안은 남쪽 정원의 삼엄한 결계 너머를 비췄다.
“아, 아아!”
“어머니께서 깨어나셨다!”
무릎을 꿇은 채,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는 엘프들.
바짝 말라 살가죽만 남은 뺨에 굵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싸아아-.
그런 그들을 세계수의 가지가 품었다.
앙상한 가지 끝이 파르르-, 떨렸다.
“쯧.”
정원 한편에 팔짱을 끼고 선 앨런이 혀를 찼다.
무엇이 그리도 불만인지, 중얼중얼하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앨런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세계수 옆에 처량 맞게 굴러다니는 유리잔이 있었다.
그 잔에 듬뿍 담아 주었던 신앙은 이미 마르가르텐이 쪽 빨아먹은 뒤였다.
곧 나는 앨런이 무엇 때문에 심통이 났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내 빛인데…… 내 건데……!”
마르가르텐이 빨아먹은 유리잔의 신앙이 몹시 아까운 모양이다.
눈가에 깃든 진득한 아쉬움과 상실감은, 신격 앞에서 아득바득 기를 세우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심지어는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쟤가 왜 저럴까.
처음부터 마르가르텐을 위해 준비했던 건데.
“빌어먹을 나무 자식. 그 빛이 뭔 줄 알고!”
이를 박박 가는 앨런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마르가르텐과 엘프들은 아직도 재회의 기쁨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리오 성의 엘프들도 이 광경을 보면 좋아하겠지.
그들은 자신들에게만 광명이 찾아온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디 제 동족들을 보살펴 달라는 타사르의 부탁이 떠올랐다.
나는 그들 앞에서 단언했다.
너희는 앞으로 번영의 길만 걸을 것이라고.
지나가 버린 세월을 바꿔 줄 순 없지만, 다가올 미래를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는 있었다.
그 미래는, 엘프와 인간이 만나도 서로를 하나의 신도로 대하는 세상이리라.
‘자, 그럼…….’
아무튼 간에 이로써 남대륙의 무대는 준비가 끝났다.
주연인 앨런과 엘프들도 한자리에 모였으니 일을 진행할 차례였다.
‘계시(啓示).’
바닥을 굴러다니던 유리잔.
그 비좁은 잔 속으로 신격이 흘러 들어갔다.